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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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이 있었지!

옛날 옛날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 있었어!

옛날 옛날에, 쌍둥이가 있었어......

 

이 세상에 책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나에게 책이 감히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어서는 안될, 나의 온 생을 다해 제일 중요한 친구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책이 없었으면 아마 나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부터 책은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책을 읽지 못하면 불안함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책에 빠져 있다. 책에 대한 이러한 감정을 나만 갖는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책에 미쳐 있으며, 책에 빠져 있다는 것을 나는 한 소설 책에서 경험했다. 소설속 인물이 가진 책에 대한 감정이 마치 내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우리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서 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엠마』,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혹은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흰옷을 입은 여인』 등이 소설책 속에 언급되면 같은 책에 대한 느낌을 책속의 인물과 교감하는 것 같다. 위 소설들은 책 속의 주인공인 마거릿 리와 비다 윈터 자매들이 제일 좋아했던 소설들이다. 그 중에 특히 중요한 책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다. 소설에서 말했다시피 『제인 에어』는 겉도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 없는 아이의 겉도는 이야기.

 

소설 속 헌책방은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헌책방과는 느낌이 다르다. 주변의 헌책방이 누군가 보지 않은 헌책들, 참고서들을 판매한다면, 책 속의 헌책방은 주로 희귀본의 책들을 다룬다. 우리나라에서야 크게 다루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초판본이나 희귀본의 책들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룬다. 희귀본과 초판본은 굉장히 비싼 가격에 판매될 뿐만 아니라 경매에 나올 정도다. 이런 책방에서 일하는 주인공 마거릿 리에게 어느날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금세기의 디킨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작가인 비다 윈터라는 작가에게서 였다. 어린 아이가 쓴 듯한 필체로 여섯 장의 편지지로 된 글이었다. 편지에서 비다 윈터 여사는 마거릿에게 전기를 맡기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몇십 권의 소설을 썼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는 늘 소설처럼 각색해 온 윈터 여사가 마거릿에게 진실을 말하겠다고 했다. 윈터 여사가 또다시 각색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을까 의심스러웠던 마거릿은 공식 기록으로 나타난 사건을 알고 싶다고 한다.

 

윈터 여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마거릿은 처음으로 현존하는 작가의 책을 찾아 읽었다. 비다 윈터의 책이었다. 잠이 오지 않은 밤, 꿈을 꾸었던 마거릿은 책방의 캐비닛으로 가 비다 윈터의 특별한 소설을 꺼냈다. 「열세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로 열두 가지의 이야기만 들어 있을 뿐 열세 번째 이야기가 빠져있는, 그래서 전량 회수된 책이었지만 한 수집가에 의해 존재하고 있었던 책이었다. 마거릿은 열세 번째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죽은 자의 무덤을 보살피듯 나는 책을 보살핀다. 책을 닦아주고, 작은 흠집을 보수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한다. 날마다 나는 책을 한두 권 뽑아 몇 줄, 몇 페이지를 읽으며 죽은 자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게 한다. 죽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책이 읽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날카로운 한줄기 빛이 그들의 어둠을 가를까? 자신을 책을 읽는 누군가의 섬세한 손길에 그들의 영혼이 동요할까? 그러기를 바란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일 테니까. (31페이지)

 

어느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비다 윈터가 마거릿에게 진실을 말한다. 자신이 애덜린 마치 였으며, 자신의 삶은 열여섯 살에 일어난 엔젤필드에서의 불 때문이었다고. 조부모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의 이야기, 쌍둥이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윈터 여사는 이야기의 재미가 발단, 전개, 결말 때문이라며 발단에서부터 전개, 결말 까지를 이야기한다.

 

비다 윈터가 말하는 애덜린과 애멀린 자매의 탄생에서부터 삼촌인 찰리와 어머니 이사벨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닮아 있다. 비틀어진 사랑과 욕망의 결과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비통한 감정들이 히스클리프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던 것이다. 찰리와 이사벨에게서는 『폭풍의 언덕』이, 애덜린과 애멀린 자매들에게서는 『제인 에어』가 저절로 연상되었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있는 자매와 숨어 있는 자매, 사랑에 대한 고통, 그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저택. 무엇보다 어느 누군가의 사생아로 보이는 한 남자의 존재가 고딕 소설 속에서 각자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 그 모양이나 무게, 깊이는 다를지라도 슬픔의 빛깔만큼은 모두 똑같다. (565페이지)

 

그 사람의 진실함을 나타내는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다른 사람의 진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것. 아마도 그 사람의 진실함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상처가 내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진실함이 내 상처를 내보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결국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내 슬픔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방은 한때 너무도 사랑받았지만 더 이상은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다. (25페이지)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이 책을 처음 읽은게 아마 2009년쯤. 소설에 반했고,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 반해버렸었다. 이 책을 쓴 작가도, 이 책을 번역한 작가도 마치 각인된 것처럼 뇌리에 스며들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때면 항상 이 책을 권했다. 절판되어 아쉬웠던 책을, 새롭게 출간되어 만나니 그 기쁨이 더해졌다. 누구나 읽는 책,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쏙드는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다. 아주 가끔, 드물게, 만날 뿐이다. 나는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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