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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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직장 친구, 혹은 사회 친구, 학교 친구 등. 그렇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조금씩 빗겨나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떤 것을 바랄 때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대방, 상대방 또한 나한테 따뜻한 마음 한조각을 건네길 바라지만 그 또한 빗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조금씩은 다른.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겪어오던 것들이다.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는 낯설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관계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다양한 관계들을 보여준다. 미용실의 실장으로 일하는 해미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해미는 미용실에 몇개월 동안 오지 않는 손님을 생각한다. 바쁜지 토요일에만 와서 무언가를 물어도 단답형의 대답만 할 뿐 대화에 섞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해미의 인생 소설을 선물해 준 뒤부터 오지 않았던 손님이었다. 은정은 영화사에서 일한다. 8개월 전 새로운 영화 제작 때문에 서균을 시부모님에게 맡기고 일을 했고, 시부모님과 교회 수련회에 갔던 아이는 스키를 타고 들어온 뒤 쓰러져 몇 달째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은정은 누군가의 위로가 간절하다.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은정은 종종 생각했다. 친구가, 마음을 터놓을 곳이 딱 한 군데만 있었으면. (20페이지)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은정은 그런 적립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도,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예측도 하지 못했다. (23페이지)

 

 

어떤 사람의 경우,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굳이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직장에서도 개인적인 일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특별한 교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아이가 쓰러진후 어느 누구에게도 속에 있는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을때 그녀가 느끼는 답답함은 무척 크다. 아이의 친구들과 엄마들이 아이는 어떠냐고 한 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  

 

 

은정이 몰랐을 뿐 은정의 아이를 염려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용실의 지현이 그렇다. 자신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 같고, 깨어나지 않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지현이 해미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위로의 한 마디 때문에 마음을 놓는다.

 

 

소설은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또다른 사람과 이어지며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은정의 서균과 같은 유치원에 다닌 율아의 엄마 진경과 세연의 관계를 보면 친구 사이에서 무엇을 바라고 어떤 것 때문에 서로를 찾게 되는지를 볼 수 있다. 고등학생들에게 군대식 교육을 했던 게 교련이었다. 제식훈련과 남자들에게는 총검술을, 여자들은 붕대 감기를 배웠었다. 학교에서 왕따였던 세연과 한팀이 되어 붕대감기를 하던 진경이 친해지게 된 사연은 특별하다.

 

 

결혼후 아이가 있는 진경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세연의 댓글을 기다리지만 세연은 좋아요를 누를 뿐 댓글을 달지 않는다. 세연은 자신의 일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간단하게 적을 뿐 진경의 글에 반응이 없다.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듯하면서도 우리는 친구의 관심과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친함의 척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친구가 올리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게 맞는 것일까.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 혹은 내가 처한 상황들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조금쯤은 느끼겠지만 말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라는 이야기다.

 

 

우린 승객이었을 뿐, 그동안 이 버스에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어지러운 거겠지. 방향 하나하나, 신호 하나하나, 승객들 한 명 한 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니까. (155페이지)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들이다. 여성들의 다양한 관계를 보이는 내용들에서 페미니즘 적인 내용임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했던 행동이 다른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법이고, 그걸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얻은 것처럼 여기는 뭇사람들의 시선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법. 많은 관계에서 우리는 조용히 이별을 하고 마음을 닫는다. 그러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좋아하는 친구와의 우정이다. 내가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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