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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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마운틴 걸이었다. 4~5년을 꾸준히 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먼 산은 자주 다니지 않고 가까운 뒷산, 혹은 트레킹 위주로 다니고 있다. 일 년쯤 쉬었을까. 쉬었다 다시 다니기 시작했더니 이렇게 좋은 산을 왜 다니지 않았던 걸까, 후회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집에서 나서기가 힘들지 가면 좋은데, 하는 말들을 했다. 앞으로 자주 다니자고 함께 다닌 친구랑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무래도 등산에 관련된 소설을 읽자니 즐겁게 산행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여러 명이서 함께 어울려 색색의 반찬들로 된 도시락을 챙겨먹고 하하호호 웃었던 기억들이었다. 상쾌한 공기와 친구들간의 관계가 더욱 좋아진 건 덤이었다. 그 친구들과 한라산을 등반하기도 해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다.

 

나는 이 소설이 그의 유명한 소설 『고백』처럼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소설로 보았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신 인물들의 연결 고리와 함께 산이라는 것에 대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등산을 하게 되면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도 각자의 생각에 빠져 걷게 된다. 과거의 일들, 현재의 상황, 미래에 펼쳐질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돌아 상황들을 정리하기에 퍽 좋다. 묵묵히 고 있지만 머리속은 무척 번잡하달까.

 

 

 

 

소설 속 인물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물들이 속해 있는 장소에 따라 일본의 산과 뉴질랜드의 산을 걷게 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들 번잡한 마음들을 가지고 산에 올랐다는 거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등산용품 행사할 때 구매하게 된 등산화 때문에라도 첫 등산을 하게 된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이해되지 않았던 남자 친구의 행동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함께 산에 오르는 동갑내기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엔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우정의 형태를 지니는 것이 등산 후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여성이 언니를 불편해하는 동생과 함께 산행을 하며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언니가, '노조미, 너랑 오는 게 좋았어.'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은 함께 산행을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랑 함께 산행했던 마키노는 '야리가타케' 정상을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산행을 하면 맞지 않아 등산을 혼자 다니곤 했었다. 이번에 '야리가타케' 정상을 오르리라 다짐하고 휴가를 내어 산행을 하던 그녀는 등산을 하며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이끈다는 게 싫었던 그녀지만 다른 일행과 걸어가며 그때 아버지가 지쳤던 게 아니었을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색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346페이지) 

 

 

미나토 가나에게 이렇게 따뜻한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소설이었다. 추리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 등산을 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짐들을 벗는 과정을 나타낸 수작이었다. 각자의 시선에서 산을 오르지만, 결국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등산을 하는 것임을 말했다.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면의 우리와 마주한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내면 속의 나,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득 산길을 걷고 싶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산 속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과 마주하고 싶어졌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와 더불어 나 혼자 걸어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 걸음이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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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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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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