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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창비시선 387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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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년 2월의 마지막 날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고 서울로 떠났다. 이방인, 대학생, 하숙생으로 봄을 맞았다. 하숙집 주인 아저씨는 과일 장사를 하셨다. 매일 아침 저녁 밥상에는 사과와 귤이 있었다. 하숙집 바로 옆이 교회였다. 일요일마다 찬송가가 잠을 깨웠다.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생활도 익숙해져 갔지만 집에 가고 싶어 1학년 때는 기차를 타고 집에 갔었다. 서울역에서 창원으로 가는 새마을 호를 타면 대략 5시간 걸린다. 충북 영동을 지나 경북 김천 즈음이면 엄마가 쌀 씻는 소리가 들렸다. 김천은 가보지 못한 지나치는 장소지만 잊혀지지 않는 망각의 도시다.




2.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 텔런트 송윤아, 그리고 이 시집을 쓴 문태준이 김천출신이다. 조용한 시골의 정치를 느낄 수 있지만 교통의 요지이기도 한 묘한 정서가 이름에서 묻어난다. 그냥 내 느낌이다. 내가 자란 '창원'과 '김천'이 풍기는 향기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 번 김행숙 시인의 시집 '에코의 초상'에 관한 글을 쓰면서 김경주, 황병승, 김행숙 등으로 칭해지는 '미래파' '뉴웨이브'에 대해 언급했었다. 김행숙 시인이 문태준 시인은 1970년 생으로 동갑이다. 그러나 시적으로는 결이 다르다. 김행숙 시인이 존재의 내면에 눈길을 준다면 문태준 시인은 그가 사는 자연과 풍경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조춘(早春) 25쪽, 전문



그대여, 하얀 눈뭉치를 창가 접시 위에 올려놓고 눈뭉치가 물이 되어 드러눕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뭉치는 몸을 부수었습니다 스스로 부수면서 반쯤 허물어진 얼굴을 들어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게 웅얼웅얼 무어라 말을 했으나 풀어져버렸습니다 나를 가엾게 바라보던 눈초리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한접시 물로 돌아간 그대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제 내겐 의지할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눈뭉치이며 물의 유골인 나와도 이제 헤어지려 합니다



--- 장춘(長春) 31쪽 전문

참 꽃을 얻어와 화병에 넣어두네// 투명한 화병에 봄빛이 들뜨네// 봄은 참꽃을 기르고 나는 봄을 늘리네



: 접시에 놓인 눈뭉치가 창가에서 일찍 찾아온 봄의 햇볕에 몸을 녹인다. 스스로 봄을 부순다. 녹을 수 밖에 없는 운명, 하얀 몸은 한접시 검은 물로 풀어지고 만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더욱 슬픈 것은 의지할 곳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른 봄, 길이를 늘인 봄'은 꽃에는 축복이고 눈에는 비극이다.




3. 얼마전 양양 낙산사에 다녀 왔다. 2005년 화마가 덮쳐 거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다.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암과 함께 전국 3대 기도처라는 홍련암은 살아남았다. 해수관음상 앞에 일렬로 줄 선 사람들은 두꺼비 발가락을 세 번 만지고 소원을 빌었다. 해수관음상은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처음에는 바다를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눈을 감은 듯 하다.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듣고 있었다.




여시(如是) 39쪽 전문

백화(百花)가 지는 날 마애불을 보고 왔습니다 마애불은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면의 윤곽이 얇은 미소처럼 넓적하게 펴져 돌 위에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도객들은 그 마애불에 곡식을 바치고 몇 번이고 거듭 절을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깊은 밤에 홀로 누워 있을 때 마애불이 떠올랐습니다 내 이마와 눈두덩과 양 볼과 입가에 떠올랐습니다 내 어느 반석에 마애불이 있는지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데간데없이 다만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 집에 돌아와서도 낙산사 해수 관음상이 잊혀지지 않았다. '여시(如是)'는 '이와 같다'는 뜻인데 '밝은 곳과 어두운 곳', '여행지에 거주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과 모든 곳이 이와 같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4. 시인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악취나는 시간을 건축하고 있다고 노래했다. 시간의 방에 방향제를 뿌려서 잠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은 소용 없겠지. 시간의 더미들 속에 숨겨진 좋은 향이 나는 자갈 하나 찾기 위해 나는 자갈밭에 앉았다.



--- 더미들(드로잉3) 50쪽 전문

한 여름이 지나가는 휴일 오전이었다/ 딸이 거울과 책상과 옷장과 침대의 위치를 이러저리 바꾸고 있었다/ 엉킨 더미들은 정오에 자리를 잡았다 단련된 근육인 태양이 나의 딸의 정수리 위에 두건처럼 얹혔을 때에/ 나도 오후에 자갈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건축하려는 인부가 되어/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향기이며 악취인 시간을 건축하려고/ 느닷없는 소낙비의 곡조, 흐트러진 꽃밭더미, 옥수수의 어긋난 치열(齒列), 무너진 분수(噴水)더미, 비탄에 퍼질러 앉은 하오의 어머니들, 깨진 석양 항아리/ 이 시간의 더미들을 이고 지고 안고 밀고 끌어 옮기려고, 건축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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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 시인선 455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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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에 20살이 되었다. 컴퓨터가 이상해질거라는 걱정,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종말론은 새천년의 도래와 동시에 철새처럼 날아갔다. 나는 대학캠퍼스 대신 재수학원에 갔다.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간 대학생활도 그리 낭만적이거나 서정적이지 않았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고 복학한 선배들은 불안해 했고, 저학년들도 미리미리 토익점수라도 따 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학원이나 덜그럭 거리는 책상에 앉아 문제집 풀고 있을 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부터 새로운 시(詩)가 등장했다. '미래파' '뉴웨이브' 등으로 불리면서 이전과는 다른 경향을 띄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시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서정에서 벗어나 도무지 읽어도 알 수 없는 말들과 기괴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김경주, 황병승, 김행숙 시인 등의 시들은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몇 번을 읽으면 겨우 알 것 같은 시도 있다.



2. 일단 이 시집의 첫 시를 보자.


- 인간의 시간, 11쪽, 전문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 우리는 깊고/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 인간은 불안한 존재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어디로 툭 내던져진(피투성) 존재다. 시간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계를 발명했다. 흘러가는 시간을 쪼개어 그에 맞추어 생활한다. 연인과 약속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시간에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시간은 딱딱하지 않다. '물결처럼' 부드럽고 그래서 쪼개지기 쉽고 부서진다. 우리는 언제나 어느 시간 한 가운데에 있다.



3. 이 시집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존재' '시간' '에코' '죽음' '침묵' '말(언어)'을 꼽겠다. 단어들만 봐도 하이데거가 떠오른다.



- 존재의 집, 12쪽, 전문


 그런 입 모양은 아직은 침묵하지 않은 침묵을/침묵으로 들어가는 입구를/입구에서 조금만 더,/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기다리고, 끊어질 것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을 뜻한다/ 그 사람이 얼음의 집에 들어와서 바닥을 쓸면 빗자루에 묻는 물기 같고/ 원래 그것은 물의 집이었으나 살얼음이 이끼처럼 끼기 시작하고/ 물결이 사라지듯이 말수가 줄어든 사람이/ 아직은 침묵하지 않은 침묵을/침묵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를/ 그런 입 모양은/ 표시했다/ 식사 시간에 그런 입 모양이 나타났을 때 숟가락을 떨어뜨렸고, 그 사람은 숟가락을 떨어뜨린 줄도 몰랐는데/ 그 숟가락은 무엇이든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기에 좋은 모양으로 패어 있고/ 구부러져 있다/ 숟가락의 크기를 키우면 삽이 되고, 삽은 흙을 파기에 좋다/ 물, 불, 공기, 흙 중에서 흙에 가까워지는 시간에/이를테면 가을이 흙빛이고 노을이 흙빛이고 얼굴이 흙빛일 때/ 그런 입 모양은 아직은 입을 떠나지 않은 입을/ 아직은 입으로 말하지 않은 말을/ 침묵의 귀퉁이를/ 아직까지도 울지 않은 어느 집 아기의 울음을



: 인간을 입을 열어 말을 한다. 입을 닫고 침묵한다. 입을 반쯤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는 것은 할말이 있어 말을 하려는 순간이거나 할 말이 있지만 말을 삼키는 순간, 즉 '침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막 들어선 순간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갓 태어나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순간이거나 '얼굴에 흙빛'을 띄는 죽음의 순간에 마지막 유언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쓸 때다. 그런 입은 존재의 집이다.



4.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이자, 이 시집의 표제작이다.



- 에코의 초상, 136쪽, 전문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 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 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일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있는 얼굴 같고,


: 여기서 입은 조금 더 구체화 되고 있다. '끝모를 장례 행렬'과 누군가를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드는 손짓, '마지막 얼굴'이 나타나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에코'는 수다스러워 헤라에 의해 벌을 받아 남의 말이 끝난 뒤에는 지껄일 수 있지만 남에게 먼저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에코'는 후에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지만 나르키소스가 아무리 불러도 그의 끝말만 반복할 뿐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타자성의 실패의 전형이 에코다. 타자성을 잃은 입(말)은 죽음과 같다.


쭉 읽어나가다가 눈에 가는 시를 반복해서 읽고 의미를 추론해보고

나의 생각을 접목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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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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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21세북스
#김정운 #가끔은격하게외로워야한다



1.『장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 ‘호접몽’처럼 내가 나비가 되는 무아지경, 무위의 경지에 오를 줄 알았는데, 머리에 지끈 열이 올랐다. 뇌에 시원한 탄산이 필요했다. 전작인『에디톨로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프롤로그와 목차만 서점에서 살핀 후에 김정운 교수의 책을 미리 사놓았다.




2. 영화감독의 성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김기덕, 홍상수 감독 같은 ‘작가주의’, 박찬욱, 봉준호 감독처럼 상업영화를 만들지만 작가의식을 그 안에 심으려는 ‘상업적 작가주의’, 《해운대》《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처럼 철저한 대중성을 추구하는 ‘상업주의’다. 김정운 교수는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영화감독 분류법에 따르면 어디에 해당될까? 전작인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노는만큼 성공한다’ ‘남자의 물건’ 이 ‘상업주의’에 가까웠다면 『에디톨로지』와 이번 책은 작가적 상업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유머에 대한 약간의 강박증을 동반한 잘 읽히는 쉬운 문체와 사회현상에 결부시킨 쉬운 문화심리학 설명은 모든 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뿌리라면 이번 책은 뿌리는 견고해지고 굵은 가지 2개가 더 생겼다.





우선 저자가 일본의 전문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덕분에 직접 그린 삽화가 실려있다는 점이다. 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그림이나 사진 1장이 모든 것을 설명할 때가 있다.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는 그림이나 사진도 있지만 글의 빈틈을 메워주고 글과 같이 버무러져 맛있는 향을 내는 그림이 많다. 다음으로 각 챕터마다 본문에 언급된 심리학 용어나 전문용어를 미주 형태로 쉽게 풀어쓰고 있다. 본문에 담기엔 말이 너무 길어지고 소개 안하고 지나가기엔 찝찝한 개념들을 별도 항목으로 나눈 것은 적절했다. 꼭 모든 용어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본문만 읽고 끝부분 용어해설은 발췌독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3. 메모 중


- 내 직업이 공무원이기에 이런 말을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교수나 선생, 공무원처럼 정년이 긴 직업이 좋은 건 절대 아니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정년 하고 나면 바로 죽었다. 그러나 요즘은 보통 90세까지 산다. 50대에 회사를 일찍 그만두면 또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해볼 수 있다. 아직 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이 긴 직업은 다르다. 예순을 훌쩍 넘겨 은퇴하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가 없다. 힘도 없고 용기도 없다. 정년이 길다고 자랑할 일만은 아니라는 거다.” 65쪽






- 독일 공영방송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연합군한테 박살나는 영화를 보여주는 데 놀랐다며
“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군이란 자신들의 아버지다. 아무리 나치 시대 일이라도 자신들의 아버지가 나쁜 놈으로 나오고, 온갖 흉악한 짓을 저지르다가 잘생시고 용감한 미군 총에 집단적으로 살해당하는 영화를 주말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여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걸 지켜보는 독일 사람들은 전혀 괴롭지 않을까? 독일 친구들에게 수없이 물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들은 나치 시대의 독일을 자신들의 독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90쪽



: 일본은 반대다. 일본은 만행을 반성하지 않고 가미카제 특공대가 탔던 비행기를 실제로 복원해 하늘에 띄웠다. 일본은 죽었다 깨어나도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과 제국주의가 지배한 경험으로 영국과 독일과 유사점이 많다고 인식되기도 하는데 내 생각엔 일본은 일본이다. 일본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우리’가 있어야 한다. 설마 ‘우리’가 ‘일본’이 되는 최악의 상황은 안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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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비움의 미학 - 장석주의 장자 읽기
장석주 지음 / 푸르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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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비움의 미학(장석주의 장자 읽기) 장석주, 푸르메, 2010
1#장자 #느림과비움의 미학




1. 진정 국면이긴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지금까지 제주공항은 아수라장이다. jtbc뉴스에 이메일을 보낸 한 시청자는 "6.25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여기는 전쟁의 상흔만 없을 뿐 전쟁터"라고 울부짖었다. 공항이 생긴 이래 천재지변으로 이처럼 대규모 결항사태를 겪어보지 못했다는 놀라움 뒤에는 과연 국가나 조직이 국민을,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회의감과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




- 작은 재주를 뽐내다가는, 213쪽, 서무귀(徐无鬼)

오나라 왕이 강을 타고 내려가다가 원숭이 산에 올라갔다. 많은 원숭이가 오나라 왕을 보고 무서워 달아나 깊은 숲에 숨었다. 그중 한 원숭이는 까불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왕에게 재주를 자랑했다. 왕이 그 원숭이에게 활을 쏘았더니 원숭이는 그 화살을 재빠르게 잡았다. 왕이 시종들에게 서둘로 활을 쏘라고 명했다. 원숭이는 화살을 손에 쥔 채 죽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최초의 국가" "세계 최초로 우리 나라 과학자가 발명한..." "헐리우드 대작 에니메이션에도 한국사람이 주축" 등등
심심찮게 들려오는 뉴스제목들이다.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고 FTA 그물을 치고, 외국 유명한 과학잡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한류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과연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났는가? FTA로 경제영토를 확장했다고 하는데 우리 국토를 빼앗기지 않고 있는가?
최초라는 수식에 붙들려 표절하고 양심을 파는 행위를 하지 않는가?
한류는 역풍을 맞고 혐한의 물결이 흐르는 곳은 없는가?
원숭이처럼 작은 재주만을 믿고 사리분별에 어긋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반성해본다.




2. 책의 얘기를 해보자.



이 책의 기본구성은 장자에 나오는 주요 구절을 인용하고 간단히 1페이지 정도 내용을 부연설명한다. 그 다음 저자의 생각이나 여러 고전의 글을 더하고, 마지막 한 문단 정도를 다시 처음 장자의 구절의 뜻을 새기는 방식이다.
문체가 현학적이고 한자어도 많고 비유가 많아서 솔직히 잘 읽히는 글은 아니다. 그래서 완독하는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중간의 저자의 설명을 다 읽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장자의 내용파악에 충실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챕터의 첫장과 마지막 장만 읽어나가도 충분할 것 같다.



3. 빈 배, 81쪽 산목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가 떠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다. 사공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그 배가 빈 것을 알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떠내려온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당장 소리치며 비켜 가지 못하겠느냐고 했을 것이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째 소리치는데, 그때는 반드시 욕설이 따르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은 배가 채워져 있는 까닭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롭게 하겠는가?





공항은 항의하는 손님과 메뉴얼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공항직원과 책임을 미루는 공항공사와 제주도 관련자들의 아우성과 한숨, 상호 비난의 공기로 가득차 있다.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없애지 않는 한 고쳐야 한다. 배를 비우고, 보복운전이 없는 무인차가 다니는 이상적인 도로를 닦는 일의 시작으로 '장자'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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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0
안상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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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실천문학사
‪#‎안상학‬ ‪#‎그사람은돌아오고나는거기없었네‬

1. 안도현 시인의 트위터 글 모음집 '잡문'을 통해 이 시집을 알게 되었다. 
경북 안동출신 답게 시골의 일상과 풍경을 묘사하는 시도 있는 반면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시도 많았다.
(팔레스타인 1,300인- 그들은 전사하지 않고 학살당했다. 47쪽, 평화라는 이름의 칼 51쪽)

- 발밑이라는 곳, 40-41쪽, 부분

내 발밑은 나만의 공간이다/ 중략 // 사람은 발밑을 밟으면서부터는 단독자다// 중략 // 발밑을 가진 적 없는 젖먹이와/ 발밑을 상실한 노인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닮았다/ 발밑을 잠시 버리고서야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몸짓/ 발밑 없이 와서 발밑과 동행하다 발밑을 잃고서야 돌아가는 인생/ 때가 되면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가 한 번은 오는 법이다// 후략

: 인간이 갓 태어나 기어다니다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두 손의 자유를 얻는다. 성인도 가끔 과도한 음주로 네 발도 걸을 때도 있지만. '나만의 공간'인 '발밑'에서 실존이 탄생한다. '발밑'을 잃는 순간은 살아도 죽은 것이다. 연인을 위해 서로가 발밑을 잠시 버리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이라면 찰나에 교환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엄밀히 발밑을 잃는 것은 아니다. 타자성의 인식을 통해 '우리'의 발밑을 만드는 과정이다.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란 탄생과 살아감 죽음의 과정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2. 서정적인 시나 존재를 다루는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읽어나가기만 해도 잔잔히 미소가 번지게 하는 시골의 일상과 유머가 담긴 시도 많다.

858-0808 56-57쪽 부분

권정생 선생 생전의 집 전화번호/ 콩팥이 안 좋아서 이마저 그런가 하며/팔어팔으 콩팥콩팥으로 외워둔 전화번호/돌아가시고 재단으로 기어코 살려왔다// 거기 공판장이지요/난데없이 공판장 찾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온다/ 전화번호를 괜히 살렸다고 투덜대다가/ 문득 공판장에서 몇 번이가 번호를 사겠다는/ 전화가 왔다던 선생 말씀 생각난다// 중략... // 마음을 다잡다가도 끝내는 공판공판이 아니고 콩팥콩팥이라니까요/덜컥 끊어버린다// 나는 아직 멀었다.

시인의 말이 감명깊어 적어두었다.

- 시인의 말 142쪽
“내 인생의 대지에 나는 시를 뿌렸다. 내가 고른 씨다. 못난 손길로도 예쁘게 싹이 텄고, 슬픈 마음으로 어루만져도 기쁘게 자랐다. 꽃이 피었던 기억은 있는데 열매는 글쎄다. 시의 열매는 무엇일까 묻지 않았다. 삶이 여물면 시도 여물겠지 하며 지냈다. 사실 그것이 열매가 아닐까 생각하며 서두르지 않았다. 남의 논밭 기웃거리지 않았고 남의 작물이며 작황에 마음 쓰지 않았다. 그저 내가 뿌린 씨 하나도 버거워하며 나는 나의 대지에서 시와 함께 소요했다. 꽤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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