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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21세북스
#김정운 #가끔은격하게외로워야한다
1.『장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 ‘호접몽’처럼 내가 나비가 되는 무아지경, 무위의 경지에 오를 줄 알았는데, 머리에 지끈 열이 올랐다. 뇌에 시원한 탄산이 필요했다. 전작인『에디톨로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프롤로그와 목차만 서점에서 살핀 후에 김정운 교수의 책을 미리 사놓았다.
2. 영화감독의 성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김기덕, 홍상수 감독 같은 ‘작가주의’, 박찬욱, 봉준호 감독처럼 상업영화를 만들지만 작가의식을 그 안에 심으려는 ‘상업적 작가주의’, 《해운대》《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처럼 철저한 대중성을 추구하는 ‘상업주의’다. 김정운 교수는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영화감독 분류법에 따르면 어디에 해당될까? 전작인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노는만큼 성공한다’ ‘남자의 물건’ 이 ‘상업주의’에 가까웠다면 『에디톨로지』와 이번 책은 작가적 상업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유머에 대한 약간의 강박증을 동반한 잘 읽히는 쉬운 문체와 사회현상에 결부시킨 쉬운 문화심리학 설명은 모든 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뿌리라면 이번 책은 뿌리는 견고해지고 굵은 가지 2개가 더 생겼다.
우선 저자가 일본의 전문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덕분에 직접 그린 삽화가 실려있다는 점이다. 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그림이나 사진 1장이 모든 것을 설명할 때가 있다.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는 그림이나 사진도 있지만 글의 빈틈을 메워주고 글과 같이 버무러져 맛있는 향을 내는 그림이 많다. 다음으로 각 챕터마다 본문에 언급된 심리학 용어나 전문용어를 미주 형태로 쉽게 풀어쓰고 있다. 본문에 담기엔 말이 너무 길어지고 소개 안하고 지나가기엔 찝찝한 개념들을 별도 항목으로 나눈 것은 적절했다. 꼭 모든 용어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본문만 읽고 끝부분 용어해설은 발췌독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3. 메모 중
- 내 직업이 공무원이기에 이런 말을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교수나 선생, 공무원처럼 정년이 긴 직업이 좋은 건 절대 아니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정년 하고 나면 바로 죽었다. 그러나 요즘은 보통 90세까지 산다. 50대에 회사를 일찍 그만두면 또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해볼 수 있다. 아직 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이 긴 직업은 다르다. 예순을 훌쩍 넘겨 은퇴하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가 없다. 힘도 없고 용기도 없다. 정년이 길다고 자랑할 일만은 아니라는 거다.” 65쪽
- 독일 공영방송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연합군한테 박살나는 영화를 보여주는 데 놀랐다며
“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군이란 자신들의 아버지다. 아무리 나치 시대 일이라도 자신들의 아버지가 나쁜 놈으로 나오고, 온갖 흉악한 짓을 저지르다가 잘생시고 용감한 미군 총에 집단적으로 살해당하는 영화를 주말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여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걸 지켜보는 독일 사람들은 전혀 괴롭지 않을까? 독일 친구들에게 수없이 물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들은 나치 시대의 독일을 자신들의 독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다. 90쪽
: 일본은 반대다. 일본은 만행을 반성하지 않고 가미카제 특공대가 탔던 비행기를 실제로 복원해 하늘에 띄웠다. 일본은 죽었다 깨어나도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일본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과 제국주의가 지배한 경험으로 영국과 독일과 유사점이 많다고 인식되기도 하는데 내 생각엔 일본은 일본이다. 일본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우리’가 있어야 한다. 설마 ‘우리’가 ‘일본’이 되는 최악의 상황은 안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