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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미국의 역사
아루카 나츠키.유이 다이자부로 지음, 양영철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나라가 시끄럽다. 매일 아침마다 뉴스와 신문은 전날 밤 광화문 앞에 몇 만명이 모였고,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일면 탑으로 보도한다. 정부는 무능했고, 국민들은 화가 났다. 출범한 지 불과 100일밖에 되지 않은 정부가 십만이 넘는 군중을 도시의 중심으로 나오게 한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 민심을 외면하고, 더욱이 극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일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정부는 미국을 너무 얕잡아 봤다. 어쩌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취임 극초반기의 민심 이반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특질과 속성에 많은 부분 맞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미국과 관련된 민심의 혼란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미군에 의해 발생한 효순이·미선이 장갑차 사건은 수많은 군중을 시청 앞으로 모이게 했고, 아직도 상반된 평가가 잇따르는 한미FTA 협상 타결 후에도 적잖은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유럽을 위시한 서구 선진국에서도 반미시위의 규모는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아랍권에서의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며 강렬하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세계 도처에서의 안티 물결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세계 초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쉬운 질문이면서도 두세번 곱씹으면 결코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밝음과 어두움이 대극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인권의 유토피아, 장애인들의 천국, 민주주의의 전도사 등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불리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어느덧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해석이 학자들 사이에서 다수설로 일치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급부상하며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가 된 미국은 자국 내외의 많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꿈과 기회의 국가라는 이면에는 세계 제일의 양극화 사회가 존재하고, 자유와 인권의 이면에는 총기사고를 위시한 각종 범죄가 도사리는 불안정한 사회가 존재하며, 평화와 사랑을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의 이면에는 석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전쟁제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제대로 알고 연구해야만 흔들리고 있는 미국의 헤게모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은 자명하다. 미국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며, 연구할 때만이 불완전한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제이션에서 살아남는 자생적 길임을 단언한다.
현재 미국 관련 도서는 수많이 출간되었고 또 출간되고 있다. 주류역사를 초점으로 그저 사실에만 입각한 책이 있는가 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에서 미시적인 관찰을 보여준 책도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혼란한 미국의 현재성을 분석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책도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두 명의 일본 지식인이 집필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미국의 역사』는 230년의 미국사를 주류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몇가지 주제로 카테고리화해 미국사를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다.
사실 미국역사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개괄을 정리한 도서는 서점에 수없이 많다. 이 책의 경우도 미국역사의 객관적 서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의 주관성은 철저히 배제된 채 미국의 주류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해석'과 '변혁'이 아닌 그저 '반영'의 잣대로 미국사를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의 강점이라면 바로 목적에 충분히 충실했다는 점이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알맞게 주제화하여 무난하게 책 속에 담아내고 있다.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부분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일방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닌 21세기에 이슈가 되는 열다섯 개의 아이콘으로 카테고리화하여 미국사를 가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환경'을 위시하여 경제, 국민통합, 젠더(gender), 문화, 민주주의 등의 코드로 미국사를 서술한다. 각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도판과 표, 그래프와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이다. 게다가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칼럼'과 '미국 역사 깊이 읽기'라는 코너로 내용을 부언하며 마무리한 점은 단연 깔끔하다.
하지만 저자의 주관적 '논설'이 결락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객관적으로 정리된 주류의 미국역사는 출판계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서 많이 노출된 바 있다. 저자 나름의 미국사에 대한 견해와 비주류적 관점, 합리적인 비판의식 등이 언급되었다면 더욱 힘있는 인문서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제 더이상 '미국'이라는 아이콘은 통일된 시각의 객관화로 공유하기에는 수없이 많은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일본사람이었기에 일본 학계와 출판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미국사를 기대했던 것은 애당초 무리였던 것이다.
지식인의 미국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건전한 비판은 대중의 안목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균형있게 미국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학문은 객관적 '사실'만을 지향하는 작업이 아니다. 학문의 종국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가장 좋은 최선의 세계로 <변혁>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닿아 있다. 230년의 미국사를 마치 잘 다듬어진 교과서를 보는 것인양 체계적으로 다룬 점은 돋보이나 조금 더 멀리 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끝내 잔존한다. 하지만 괜찮다. 건전한 주관화와 진실된 용기는 제대로 된 <앎>을 전제하기 마련이며,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존재가치는 딱 그 즈음에 있다.
헤게모니가 흔들리고 있다 할지라도 아직까지는 미국은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다. 어마한 시장규모를 기반으로 한 경제력과 강력한 군사력, 그리고 타국이 쫓아갈 수 없는 문화의 힘은 아직 건재한 미국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시대는 급변하며, 영원한 제국은 일찍이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국의 과거를 학습하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안목은 응당 필요한 작업이다. 비단 쇠고기나 FTA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21세기 미국을 <정확히> 알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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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