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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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간의 갈등을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그려놓았던 크래쉬라는 영화였는데 미국 내에서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과 아랍인들 사이의 끝날 것 같지 않은 갈등을 그렸다. 사소하게 시작된 상처들이 또 다른 형태의 갈등으로 전이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랄까.
하지만 실타래처럼 꼬인 끝날 것 같지 않은 세상사도 사랑이라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풀어나간다는 내용이었다.

여기 소록도라는 작은 섬에도 충돌(크래쉬)은 끊이지 않았다.
한센병(나병, 문둥병) 환자들이 수용된 그곳에 “새 원장이 부임해온 날 밤, 섬에서는 두 사람의 탈출 사고”가 발생한다. 더군다나 바깥세상의 손가락질에 쫓겨 섬에 유배된 그들인데다 전임 원장들의 만들어놓고 떠나버린 ‘동상(섬에 대한 전임원장들의 명예욕, 공명심)’으로 인해 정상인들에 대한 마음의 문이 사라진지 오래였기에 새로 부임한 병원장(조백헌)과 그가 제시한 섬 운영계획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내비치지 않는다.
더욱이 이곳 사정을 잘 아는 보건과장(이상욱)은 새 원장의 의욕 넘치는 활동이 섬 환자들의 상처만 더 긁어 놓지나 않을까 못미더운 눈초리로 원장을 주시한다. 그의 눈에는 새 원장 역시 전임 원장들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의 동상만을 채우고 떠나가 버릴 그저 그런 ‘정상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새 원장은 나병 환자들이 맘 편히 생활할 수 있는 섬, 진정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축구나 대표자회의를 만들기도 하고 섬에서 행해진 차별도 없앤다.
그리고 원생들과 함께 바다를 매우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시작한다. 오랜 배신의 섬, 소록도 주민들은 쉽사리 사업에 동참하려들지 않지만 원장의 끈질긴 노력과 집념이 더해진 원생 스스로의 약속으로 사업에 동참한다.
둑길이 세워지고 허물어지길 몇 번,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 등허리가 굽어지는 길고 지루한 공사 끝에 드디어 330만평의 새 간척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그들을 뒤덮고 있던 눈물의 역사가 걷혀지고 새로운 희망이 쏟아지는 것처럼 광활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잘 마무리 될 것 같던 공사는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면서 중단되기에 이른다. 소록도의 나병 환자들에게 나누어질 ‘천국’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은데...

소록도의 원로격인 황희백 노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제 다시 이 섬에 치욕스런 배반의 일어나선 안 될 테니......”라 말한다. 결국 원생들의 배신감과 원장의 공명심만 부추긴 꼴이 되었던 아픈 과거사처럼 전락하고 말 것인가?
그러면서 천국에 대한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목적이나 쟁점이 될 수 있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천국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그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일상 속에서 ‘천국’이라는 자기만족, 혹은 집단의 목표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묻는다.
하지만 거기에 어르기까지의 과정이 타인의 의도나 강요에 의해서라면 어떤가. 과연 그렇게 도달한 천국에는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찾은 만족은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으로 와전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책에 적힌 한 문구가 기억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후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한다. 어쩌면 나환자와 정상인 사이의 인식의 차이 때문에 애초에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사랑이라는 수용적인 마음으로 차근차근 접근할 때 진정한 천국이 자라나지 않을까라고.

소록도를 통해 살펴보는 천국의 의미, 삶의 의미...
결국 우리 인생 최고의 키워드는 사랑이 아닐는지. 서로간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전제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리라. 사회와 동떨어진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사회속의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우리들의 천국'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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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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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벨빌, 창녀들의 아이를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와 그곳에 맡겨진 모모(모하메드)의 이야기로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러운 꼬마 소년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모는 엄마가 창녀였다는 것 외에는 자신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것 때문에 주눅들거나 의기소침해하진 않는다. 가끔 로자 아줌마를 힘들게도 하지만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등 모모 특유의 영민함으로 자신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로자 아줌마의 병이 깊어지자 그녀를 간병하면서 자신에게 닥칠 새로운 앞날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나이가 실제로는 열네 살, 이제 더 이상 꼬마 소년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스스로의 성장을 대견스러워한다. 이제 모모 앞에는 스스로 헤쳐가야할, ‘자기 앞의 생’이 주어지는 순간이다.

초등학생이 되어 시장통을 누비는가하면 먼 훗날에 대한 상상으로 떠들썩했던 유년 시절을 여행한 기분이다. 모모가 오르던 삐걱거리는 층계는 옛날 다락방을 생각나게 하고, 우연히 만난 나딘 아줌마의 눈매에선 초등학교 때의 뒷집 누나를 생각나게 했다. 마치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처럼 모모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눈과 마음으로 벨빌 거리를 여행하고 온 듯 하다.
그렇다고 옛 향수만을 자극하는 감성소설은 아니다. 어린 소년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유치하지 않고 매우 현실적이다. 직설적이고 엉뚱한 듯하지만 때 묻지 않은 진솔함으로 빈민층의 생활상이나 주변 인물의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특히 임종을 눈앞에 둔 로자 아줌마와 새로운 ‘생’에 눈 떠가는 어린 모모, 즉 죽음과 탄생이라는 상반된 생이 인상 깊다. 의사는 아줌마에게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하지만 그녀와 모모는 식물처럼 생을 연명하기보다는 깨끗이 마감하고 싶어 한다.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접어두고서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원하지 않는다고 도망갈 수도 없고, 희망한다고 해서 다 될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랑과 행복 속에 진정한 ‘생’의 가치가 있다는 건 아닐까 한다.

사실 이글의 작가는 에밀 아자르가 아니다. 그러니까 한참 잘나가던 ‘로맹 가리’라는 자신의 본명 대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글을 썼는데 권총을 물고 자살한 이후 유서처럼 발표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를 통해 이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무엇이 자신을 숨기게 했으며 자살이라는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아갔는지 궁금함에 이 책을 고른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어쩌면 ‘로맹 가리’라는 이름의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기 위해 벌인 마지막 쇼였단 말인가? 인생이 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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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0
윤대녕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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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방, 커튼이 드리워진 베란다에 “육중하고 커다란 물체”가 으르렁거린다. 커튼을 젖히자 “푸른 인광을 발하는 두개의 눈동자가 불안스럽게 영빈을 노려보고 있다.”
호랑이...
과연 영빈이 찾으려는 호랑이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한순간의 환영이란 말인가. 심연에 감추어진 호랑이를 찾아 제주도로 떠난다.

존재는 인식하지만 직접 만질 수는 없는 그림속의 호랑이처럼, 풀리지 않는 내면의 숙제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것은 망막한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의 바위섬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학원프락치라는 주위의 시선에 못 이겨 자살한 형과 이로 인해 생겨난 아버지와의 커다란 벽, 그리고 9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에서 처음 만난 해연과의 미묘한 관계. 여기저기 직장으로 옮겨보지만 결국 버릴 수 없었던 글쓰기에 대한 미련 등 영빈을 둘러싼 복합적인 모순들이 ‘호랑이’라는 상징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영빈은 오랜 사투 끝에 돌돔(해연의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사라진), 아니 호랑이를 찾는다. 그리고 돌돔을 풀어주듯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응어리들을 바다에 풀어버린다.

검은 표지의 책이지만 그 속에는 푸른 파도소리가 가득하다. 거기다 제주도와 주변 바위섬을 오가며 펼쳐지는 낚시이야기가 그 현장성과 긴장감을 더한다. 팽팽해진 낚싯줄에 매달려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물고기처럼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상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장면들도 몇몇 눈에 띈다. 현실성이 부족하고,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그래서 지나치게 심미적인 건 아닌가 하는 주변의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시간의 묘사라든가 4.3사태, 학원민주화 같은 근현대사나 바다낚시 같은 현재형의 작업들을 강조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신을 대표하지만 극복하기 힘든 꼬리표로 작용했을 수도 있는 ‘심미’에 대한 강한 반발심은 아니었을까...
(사실 윤대녕님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기가 뭣하지만, 이번에 참석한 독서토론회에서 거론되었던 가장 테마 중의 하나였다.)

문득, 제주의 바다가 그립고,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회 한점이 생각난다.
독서토론회를 위해 기꺼이 ‘호랑이’에 동참해 준 그녀와 '바다'를 먹고 싶다.
가자! 바다로...


And 독서토론회 단상 :
노곤한 호랑이가 되어 찾은 독서토론회였지만 정작 윤대녕님이 불참해서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한 내용을 들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의 단편들이 여러 사람들의 입으로 가시화될 때의 즐거움, 그리고 한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앉은 3,40대의 진지함,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곳을 찾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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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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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감싼 후미지의 손등에 데쓰조의 이빨이 파고들었다. 후미지의 째지는 울음소리에, 온 힘을 짜내어 데쓰조를 떼어놓은 고다니 선생님은 흰 뼈가 드러난 후지미의 손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청소년도서 맞아? 일본 책은 다 이런 식인가? 학급 동료들을 죽여야 살아남는다는 일본영화 ‘배틀 로얄’이나 부모와의 갈등을 다룬 가출소년의 이야기 <내가 나인 것> 역시 그러했던 기억이 난다.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가학적이다 못해 엽기스러운 부분들은 공감대 형성을 방해하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흐름상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내용이 아동도서인지 연애소설인지, 아니면 스릴러물인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번쩍거리는 배경과 과장된 몸짓의 뒤섞인 일본 특유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는 것 같다.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화면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닐까. 좀더 순화된 내용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던가 아쉽기만 하다.
문화적으로 일찍 개방된 일본의 이야기라 그러지 더욱 걱정스럽다. 책이나 영화 속의 이런 황당한 내용들과 가까워지면서 우리의 문화도 점점 자극적인 일본식으로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바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날 흐뭇하게 한다.
김용생이라는 한국인 친구와의 아픈 기억과 동양척식회사에서 일하면서 고문에 의해 독립 운동가를 밀고하게 된 경위 등 일제 식민시대의 상황을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역사외곡으로 문제가 많은 일본에서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게 무엇보다 흐뭇하다. 올바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교과서도 좋지만 소설이나 산문과 같은 간접 문화를 통해 전달되는 것도 상당히 효과적이라 생각이 든다.

히메마쓰 초등학교의 고다니 샘과 파리를 키우는 데쓰조를 중심으로 한 학교이야기로 청소년소설(아동도서)이라기보다는 학교를 소제로 쓴 ‘사회소설’로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아동도서’라는 틀에서만 봤을까? 동화 같은 책 표지와 어린이가 등장하는 삽화들, 그리고 여러 청소년 단체에서 ‘권장도서’로 지정했다는 띠지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 선입견 때문에 삐딱하게 책을 바라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동도서의 모호한 경계에서 오가며 약간의 혼란함으로 책읽기를 마친 지금 출판사의 교묘한 판매 전략에 놀아난 듯해 마음에 약간은 떨떠름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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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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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사진의 가벼움?
감각적인 색감으로 치장된 예쁜 사진이나 겉멋만 잔뜩 부린 가벼운 사진은 가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작가의 고뇌가 담긴 생각하는 사진을 창조하자!
작가 최민식 님이 <사진은 무엇인가>에서 줄곧 강조한 내용이다.

책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보다는 왜 찍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더 가깝다. 또한 리얼리스트가 되어 세상을 해석하고 그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르라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진과 더불어 세계적인 작가도 소개한다.
그래서 사진에 대해 어느 정도 참맛을 알아가는 ‘중수’ 이상에게 유용한 책인 듯 보인다.

특히, 자신의 일에 대해 떳떳이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인상 깊다.
“내게 사진은 대상들의 모습을 시각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사진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진에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인간, 특히 서민들의 모습을 탐구적인 자세로 대해 왔다.” (본문 110쪽)

사진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자칫 교만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열정과 자부심만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떤 일이든 간에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이런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에 프로인가? 내가 하는 일에 얼마만큼의 열정과 자부심이 있는가? 사진이라는 인화지에 들어있는 작가정신이 나를 매질한다.
우리 모두 프로가 됩시다!

사진,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평등하다.
연설하는 대통령이나 시골길의 코스모스, 나뒹구는 운동화나 구걸하는 소년,
그리고 나의 모습마저도 ‘피사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동등하다.
그런 평행상태에서 잡아내는 순간의 질서가 사진의 참 매력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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