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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ㅣ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0
윤대녕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불 꺼진 방, 커튼이 드리워진 베란다에 “육중하고 커다란 물체”가 으르렁거린다. 커튼을 젖히자 “푸른 인광을 발하는 두개의 눈동자가 불안스럽게 영빈을 노려보고 있다.”
호랑이...
과연 영빈이 찾으려는 호랑이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한순간의 환영이란 말인가. 심연에 감추어진 호랑이를 찾아 제주도로 떠난다.
존재는 인식하지만 직접 만질 수는 없는 그림속의 호랑이처럼, 풀리지 않는 내면의 숙제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것은 망막한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의 바위섬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학원프락치라는 주위의 시선에 못 이겨 자살한 형과 이로 인해 생겨난 아버지와의 커다란 벽, 그리고 9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에서 처음 만난 해연과의 미묘한 관계. 여기저기 직장으로 옮겨보지만 결국 버릴 수 없었던 글쓰기에 대한 미련 등 영빈을 둘러싼 복합적인 모순들이 ‘호랑이’라는 상징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영빈은 오랜 사투 끝에 돌돔(해연의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사라진), 아니 호랑이를 찾는다. 그리고 돌돔을 풀어주듯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응어리들을 바다에 풀어버린다.
검은 표지의 책이지만 그 속에는 푸른 파도소리가 가득하다. 거기다 제주도와 주변 바위섬을 오가며 펼쳐지는 낚시이야기가 그 현장성과 긴장감을 더한다. 팽팽해진 낚싯줄에 매달려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물고기처럼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상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장면들도 몇몇 눈에 띈다. 현실성이 부족하고,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그래서 지나치게 심미적인 건 아닌가 하는 주변의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시간의 묘사라든가 4.3사태, 학원민주화 같은 근현대사나 바다낚시 같은 현재형의 작업들을 강조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신을 대표하지만 극복하기 힘든 꼬리표로 작용했을 수도 있는 ‘심미’에 대한 강한 반발심은 아니었을까...
(사실 윤대녕님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기가 뭣하지만, 이번에 참석한 독서토론회에서 거론되었던 가장 테마 중의 하나였다.)
문득, 제주의 바다가 그립고,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회 한점이 생각난다.
독서토론회를 위해 기꺼이 ‘호랑이’에 동참해 준 그녀와 '바다'를 먹고 싶다.
가자! 바다로...
And 독서토론회 단상 :
노곤한 호랑이가 되어 찾은 독서토론회였지만 정작 윤대녕님이 불참해서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한 내용을 들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의 단편들이 여러 사람들의 입으로 가시화될 때의 즐거움, 그리고 한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앉은 3,40대의 진지함,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곳을 찾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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