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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신경병자 슈레버의 회고록이 2/3를 차지하며 금치산 선고에 따른 법의학자의 감정서, 이에 대한 슈레버의 항소이유서, 판결문, 옮긴이 해제로 나머지가 구성되어 있다.


 #1.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전직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까지 지냈다는 이력을 보면 굉장히 집요하고 분석적인 사람일 것 같았다. 그런 철저함이 신경병의 원인이 되어 그를 미쳐버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 신경병자의 '지독한' 정신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자 슈레버의 막강파워에 여간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은 글이되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슈레버의 개인적인 경험은 조금 이해되다가도 이를 설명하고 회고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좀처럼 읽혀지지 않았다. '검증된 영혼들', '신경첨부', '영혼살해', '광선', '일시적으로 급조된 인간들', '세계구체' 등 단어의 의미는 물론 이를 설명하는 내용들을 이해할 수 없으니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중에 100페이지 남짓 읽은 시점이지만 계속 읽어낼 수 있는 이해력과 인내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내 머리가 이상한건지, 슈레버의 머리가 이상한 건지, 글(번역)이 이상한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책을 '보이콧'하다! 할 수만 있다면... 보이콧을 인터넷에 찾아보니 "부당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분야에서 조직적 ·집단적으로 벌이는 거부운동"이라 설명되어 있다. 물론 이 책 자체가 부당하다거나 읽기를 강요당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서평단이라는 환경에 놓여 있다 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읽어내야 하는 강박관념일 수도 있고, 나만 이해 못했을 때 오는 '쪽팔림'을 염두해 뒀는지도 모르겠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어려운 책이라 하더라도 조금 읽다보면 대략적인 구조는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 책은 몇 줄의 문장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설사 이해되는 문구가 있더라도 다음 단락과 도저히 연결할 수 없었다. 뭔가 잡힐 듯 하다가도 이네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과연 누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슈레버'라는 멋진 이름 속에 숨겨진 광기를 나의 이해력으로는 판가름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읽으라는 책은 읽으려 하지 않고 보이콧이니 뭐니 하면서 책과는 상관없는 쓸데없는 사설만 늘어놓는 모습이 우습다.
 "슈레버 아저씨, 난 당신 정신의 총체였던 회고록 앞에서 이렇듯 농을 까고 있습니다. 어때요?"


 #2. 법의학 감정서

 슈레버의 회상록 부분을 1/3 정도 읽다가 금치산(가정 법원에서 심신 상실자에게 자기 재산의 관리, 처분을 금지하는 일) 항소심을 위해 의학고문관이자 정신병원 의사인 베버 박사가 작성한 법의학 감정서를 먼저 읽었다. 그의 회상록은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의 코드였기에 그의 정신에 대한 의사의 감정서(비록 슈레버에 의해 회고록에 첨부되었지만)는 회상록 전반에 걸친 코드를 해독하게 해주는 설명서 같았다. 드디어 독해의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유레카!
 베버의 감정서에는 슈레버의 신경병적인 집착과 과대망상이 어떤 식으로 발전되었으며 어떻게 고착화되었는지 나타내고 있다. 슈레버는 자신과 신을 동일시 해가는 모습을 통해 죽음의 영역까지도 극복해 버린 듯 보였다. 심지어 여성성으로의 변신을 통해 신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신, 죽음과 같은 집착 대상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정신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까지 맞았던 전문가가 스스로의 정신 속에 지나치게 깊게 함몰되어 가는 과정은 일 속에 파묻혀 집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껍데기를 보는 것처럼 씁쓸했다.

 이 감정서와 함께 슈레버의 항소이유서와 법원의 판결문도 첨부되어 있다. 책 후미는 뭔가 술술 풀릴 기세다. 회상록 부분의 막막함은 법의학 감정서를 거치면서 서스펜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흥미마져 느끼게 된다.


 #3. 항소이유서, 판결문

 자신에 대한 감정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앞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느꼈던 난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없이 논리적이고 침착하게, 해박한 법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경병자로 생활했던 지난날을 회고하고 대변한다. 결국 재판을 통해 목적(금치산 선고 철회)을 달성한다.
 "드레스던 지방법원 민사 7부는 원고의 항소에 기초해 1901년 4월 13일의 판결을 변경하여, 1900년 3월 13일 드레스텐 행정법원에서 내린 금치산 선고를 철회한다."


 #4. 옮긴이 해제

 옮긴이(김남시)가 알고 있는 회상록 전후의 이야기를 첨부한다. 이 회상록이 슈레버 가문에 의해 대부분 폐기되었다는 것과 프로이트 등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슈레버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슈레버 아버지(모리츠 슈레버)에 대해 "아이들의 자발적 욕구나 의지를 북돋기보다는 이상적 목표를 위해 그를 제한하고 규제해야 하다는 신념의 소유자"라 말하며, 권총 자살한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슈레버의 신경병도 성장기에 겪었던 폐쇄적이고 엄격한 가정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그를 무너지게 한 중요한 원인이었으리라.

 또한 번역의 어려움도 이야기한다.
 "그에게 작용하고 있는 증상으로서의 언어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는 일반적인 문학 텍스트와는 구별된다. (중략)
 슈레버 텍스트의 번역자는 이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증상을 그대로 옮김 - 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 으로써 읽을 수 없는 번역문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가독성 있는 번역을 위해 텍스트의 언어적 증상들을 임의로 '치유'해야 하는 양자택일에 처한다. (중략)
이 번역은 타협의 산물이다. 슈레버의 증상적 문장을 되도록 그대로 전하려던 처음의 시도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국어 문장의 끔찍한 비가독성 앞에서 좌절했다. 오랜 고심 끝에 번역문의 가독성을 위해 언어적 징후들을 치유하는 길을 택했다. 긴 문장은 짧게 나누고, 어색한 수동문은 능동으로 바꾸었다."


 사실 그의 회상록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회고록에 첨부된 법의학 감정서를 통해서나마 그에게 일어났던 정신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신경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법의학 감정서>나 <옮긴이 해제> 부분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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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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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는 어렵다. 정확한 단어와 문법을 통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가 많았고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 문장도 허다했다. 이상야릇한 표현은 글의 의도를 희미하게 만들었고 정리되지 못한 성급함만 남겨버렸다.
 불분명한 표현과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쓰면서도 이를 찾아보고 공부해보려는 노력은 늘 게을렀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문장들을 보면서 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은 느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올바른 표현에 대한 필요성과 국어공부에 대한 내 가능성도 확인할 겸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펼쳤다.

 국어의 어려움은 먼저 조사에 있었다. 조사는 명사에 붙어 주어나 목적어 등의 기능을 하게 만드는 요소로 '이/가, 은/는', ‘에’, ‘에서’와 같이 그 정확한 의미와 기능을 혼동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훈 작가 역시 <남한산성>을 쓸 때 조사 하나로 며칠씩이나 고민했다고 한다.
 <조사>에서는 그 의미와 올바른 사용법을 알기 쉬운 예문을 통해 설명한다. 가령 주어라든가 새로운 정보가 있을 때는 '이/가'를, 주제어나 서술어에 있으면 '은/는'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며 여러 예문을 곁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간단한 문제를 통해 자신의 국어실력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계속해서 <어미>에서는 '고, 며', '므로, 으로'의 차이점을, <호응>에서는 주어와 서술어의 제약 관계를, <생략>에서는 주어나 서술어, 조사의 지나친 생략으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를, <축약>에서는 지나친 수식이나 한자어 남용으로 인한 모호함에 대해 살펴본다. <높임말>과 <시제>에 대한 중요성도 지적한다.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문장들은 내 독해력에 대한 그 동안의 오해를 일부 해소시켜줬다. 몇 번을 되짚어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은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표식 같았다. 하지만 내 독해력과는 무관하게 문장 자체의 오류도 상당히 많았다. 조사와 어미가 잘못 사용되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되지 않는 문장,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지나친 은유는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했다. 이렇게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비문은 유명 작가의 소설, 산문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기성 작가부터 글쓰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요구한다. "정확한 문장과 개성 있는 문체"를 위해 평생을 공부하라고 충고한다. 문학적 글쓰기가 문법적 글쓰기와 전적으로 동일할 수는 없겠지만 글을 표현함에 있어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지 싶다.

 그래도, 국어는 어렵다.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문장이 엉성해지고 문장의 구성에 신경쓰다보면 글이 막히기 일쑤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 느끼는 어색함도 결국에는 엉터리 문법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바른 문장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어를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고 정확한 언어로 다듬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저자의 말을 들으니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해 아무렇게나 써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문법책이나 사전, 글쓰기 책을 찾아보며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 쓰는 이글에도 온갖 엉터리 문법과 알 수 없는 미문으로 가득할 것이다. 십여 년 가까이 써왔던 엉터리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처지겠냐 마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겠다. 머릿속 생각을 체계적으로 풀어놓을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도 배워야겠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한번 읽고 밀쳐버릴 것이 아니라 손닿는 곳에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으며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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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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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스름달밤,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여는데 창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하얀 물체가 커튼 뒤로 숨는 것이 아니던가. 뭐지? 놀란 마음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 커튼. "워이"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커튼을 열어젖혔다. 스르륵 밀려나가는 커튼 뒤로 보이는 것은 반쯤 열려진 창문. 휴~ 하는 안도감으로 돌아서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허연 물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체 하얀 소복을 입은, 입가에 배인 옅은 미소와 핏자국이 선명한, 텔레비전이나 동화책에서나 보던 봤던 바로 그... 처녀귀신!

 무서움과 공포로 다가왔던 그녀의 이야기는 실제로는 억압된 여성성의 상징이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을 맘 편히 하소연할 곳 없는 여성들의 선택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특히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나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경우는 더욱 가혹했다. 남성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소품으로서의 가치와 열녀에 대한 사회적 강요,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던 상황으로 인해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었고, 죽어서도 쉽게 원한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구천을 떠도는 그들을 도와준 이가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사대부들이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녀들을 농락하고 이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원을 준 것 역시 그들이었다. 그녀들의 사연을 듣고 가해자를 찾아 처벌함으로써 원한을 풀어준 것까지는 좋았으나 '귀신스토리'를 통해 사대부 남성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사회적 우위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글을 통해 알려진 대부분의 귀신이야기가 그들의 손에 의해 쓰였고 읽혀졌기에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 맺힌 원혼을 통해 남성중심의 사회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하지만 권선징악의 이면에 숨어있는 여성들의 억압은 여전했다. 오직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자신의 한과 의지를 표현하고 보상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죽어야 사는 여자'인 것이다.

 "한국인에게 귀신의 이미지가 유독 처녀귀신으로 고착된 것은 미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희생의 그림자를 반영한다. 부모의 명에 따라 혼인해야 했던 딸, 전쟁의 폭력 속에서 성적으로 희생당한 여성, 사랑의 자율성을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처녀, 재혼 가정에서 소외되었던 전실 딸, 일부일처로 구성된 가족관계망의 바깥에 있었기에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첩, 남자의 사교 파트너로만 인정되었던 기생 등, 전근대 사회의 제도와 이념 속에서 숨죽인 채 살아야 했던 여성들은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p173)

 결국 처녀귀신은 남성중심의 사회에 은폐된 슬픔의 역사였다. 단순히 일회성의 흥밋거리로만 넘길 것이 아니라 그 억압의 의미를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요즘이다.
 시간이 흘러 처녀귀신의 출연빈도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녀들의 한과 설움이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노동자귀신, 빈곤층귀신, 다문화귀신, 장애인귀신, 취업귀신, 청소년귀신 등 더 많은 ‘슬픔’을 대동하고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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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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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역할과 한계 속에 갈등하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했고 민주적 국정운영으로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비판과 냉대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진보의 미래>라는 민주주의 교과서 집필을 통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보다 나은 미래를 구상했지만 검찰과 언론이 봉하마을로 집중되던 2009년 5월, 모든 것을 남겨둔 체 우리 곁을 떠났다.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한다>는 2009년 말,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린 강독회의 내용을 옮긴 것이다. 10명의 친노 성향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명암을 집어보고 잘못 알려진 점에 대해 반론한다. <국가의 역할>,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슈퍼자본주의>, <더 플랜>, <빈곤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생각의 오류>, 여기에 등장하는 열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가 생전에 추구해온 평등과 진보, 자유와 복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에서는 '진보'라는 화두가 어떻게 적용되고 시도되었는지 비중 있게 다룬다. 그래서 보수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작위적이라 느껴질 수도, 실패한 정권에 대한 변명이라 매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런 비판에도 당당히 맞서 싸웠다. 미련스러워 보일 정도로 정면승부만 고집했다. 깨어지고 흠집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벗어던지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각 속에서 고민했던 참여정부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빈곤의 종말>에 관심이 컸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이 11억 명이나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자(제프리 D. 삭스)는 입으로만 빈곤을 떠들기보다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실천했다. 강연을 맡았던 박능후 교수님의 말처럼 "뜨거운 가슴(warm heart)과 차가운 이성(cool head)"을 겸비했기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비야님이 강력 추천한 <왜 세계의 절반은 굷주리는가?>(장 지글러)와 더불어 읽으면 더욱 좋지 싶다.

 정치인,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며 명패나 집어던지는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는 탈피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복지를, 사회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정치인, 학자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국의 우수 사례들을 우리나라와 비교해 분석하고, 여기서 얻은 해안을 정치, 경제 전반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목소리에서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제대로 실천되고 발현되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우리의 무지와 일부 권력자, 언론의 사욕으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와전된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무엇보다 올바른 정책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해안,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나 정치, 경제를 논하는 이런 비평서들이 일반인의 자성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겐 약간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무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였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떠나 서민의 편에 서서 국정을 이끌려했던 노력과 눈물이 세삼 느껴진다. 나날이 혼탁해지는 사회를 살면서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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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7-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이번에도 알라딘 서평단을 하고 계시네요. 왕성한 활동과 리뷰 기대합니다.

프리즘 2010-07-25 00:41   좋아요 0 | URL
서평을 쓰고 싶었지만 어줍잖은 감상만 끄적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간단명쾌한 철학>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간단 명쾌한 철학 간단 명쾌한 시리즈
고우다 레츠 지음, 이수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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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 현대철학... 연대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철학 사상들이 그림과 함께 시대 순으로 정리되어있다. <간단명쾌한 철학>이라는 제목처럼 간단하고 명료하게...
 하지만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만 집고 넘어가다보니 무엇하나 또렷하게 남는 것이 없다. 평생에 걸쳐 사색하고 토론했을 철학들을 단 몇 페이지로 요약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워낙 방대한 철학사라 한 번에 모든 것을 섭렵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덥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 책읽기마저 방해했다. 무거워진 책장을 넘기면서 '간단'은 이해가 됐지만 '명쾌'는 잘 와 닿지 않았다.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베이컨,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 흄, 홉스, 루소, 칸트, 헤겔,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베르그송, 야스퍼스, 하이데거... 이름만으로도 질려버릴 것 같은 그들의 철학이 삼국지의 장수들처럼 인해전술로 밀어닥쳤다.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흙먼지와 함께 달려드는 그들 앞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책 역시 교양서가 범하는 오류, 전공자에게는 너무 쉽고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니었을까. 지나친 섬세함과 친절이 책을 방대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철학사상만 따분하게 늘어놓은 체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철학의 큰 흐름을 잡은 체 대표적인 철학만을 골라 일반인의 눈으로 집중 조명하는 것은 어땠을까. 철학 자체의 개별적인 의미에 집착하지 않고 수평적 접근을 통해 일상적인 현상이나 사건을 철학적으로 풀어보는 편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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