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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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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서재가 궁금하다면...[책이 좀 많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은 말 그대로 책방 주인이다.

"책방" 이라고 하면 "서점"과는 또 다른 어감을 품는다.

좀 더 정서적으로 다가 가기 쉽고 편안한 느낌.

부산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입 속에서 되뇌어지기 때문에 "책방"이라고 하면 헌책방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버스만 타면 금세 도착하는 보수동이었어도 바로 옆 남포동과 중앙동, 국제시장 거리가 일명 '번화가'였기 때문에 학생 시절에 꽤 책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보수동 책방 나들이를 자주 하지 못했다.

순진하고 허름한 행색의 나를 누가 잡아 채갈 일은 없었겠지만 어린 마음에 괜히 어른들이 겁주는 말에 속아 보수동을 코앞에 두고도 함부로 발을 들이지는 못하고... 그저 "꿈의 공간"으로 치부하곤 했던 그 시절.

<슬램덩크>,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만화책 시리즈나 참고서 등을 살 때 재빨리 들러 필요한 것만 사고 얼른 자리를 뜨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 때는 억센 사투리를 뱉어 내거나 먼지털이로 총총 책을 털어내는 무뚝뚝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무서웠던 것이다.

새학기에 참고서를 사러 가면 또 인파가 얼마나 모여드는지.

사람 우글거리는 곳 자체를 싫어했던 나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책이 좋아도, 조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그 골목에 발을 들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때 좀만 더 용감했더라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바닥 한 뼘만큼만 더 컸더라면, 어느 구석의 책방 하나에 들어가 주인 아저씨의 눈을 들여다보며 진정 원하는 책을 찾아달라고 말이나 붙여보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억센 말투 뒤에 숨어 있는 다사롭고 살가운 마음을 읽고 "책방" 속으로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 같은 분을 만나 더 깊고, 넓은 책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중에 크면 꼭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누비며 맘껏 책 냄새를 맡으리라 했었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보수동 갈 일이 있어도 어린 시절 그렇게 몸 사리며 멀리하려 했던 남포동, 국제시장의 화려함에 빠져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먹거리를 즐기는 것으로 끝내게 되었다.

 

그럼, 문학 소녀 비스름한 흉내를 내던 나는 어디서 책을 고르고 사곤 했던가?

역시 나같은 사람은, 작고 조용한 책방, 순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학생들을 챙겨주곤 하는 주인이 있는 책방과 궁합이 맞았던 게다. 내 수줍음을 품어주는 주인 아저씨가 좋았다.

이사 가는 곳마다 단골 책방을 만들어 놓고 그 곳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용돈이 들어오면 한 권, 한 권.

초등학생일 때는 지경사의 책들을 많이 골랐고, 중고등학생일 때는 역시나 추억의 이름, "삼중당" 문고를 하나씩 사서 읽는 것이 낙이었다.

이광수의 <유정>, <무정>,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등 한국 문학을 섭렵한 뒤에는 책 뒤의 목록을 보고 외국 문학까지도 사들였고 좀 뒤에는 두툼한 "범우사"에도 도전했다.

책을 사는 게 녹록치 않을 때는 집 앞 "대여점"을 활용했는데, 박경리의 <토지> , 일본 대하소설 <대망>, 최명희의 <혼불>등 웬만한 시리즈는 거기서 다 빌려 읽었다.

이사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정이 들었던 대여점 아저씨와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대여점을 개척하러 간 길에,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끼리 친척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만난 것이 어찌나 반갑던지...^^

휴우~ 반납하지 않고 책을 떼어먹었더라면 어쨌을까...하는 마음에 잠시 철렁하기도 했다는 것은 비밀!!

 

그렇게 모아둔 책은 결혼과 동시에 이별!

지금의 서가에는 내 새로운 취향을 반영한 책들이 주루룩 꽂혀 있다.

 

일본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를 읽으며 품었던 의문.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개인의 책을 매입하는 고서점, 혹은 "책방"이 있을까?

보통은 개인이 책 몇 권을 싸가지고 헌책방에 가서 파는 형태가 아닌가?

 

이 책의 저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 씨는 2011년 500권 정도의 책을 처분하고 싶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너무 사랑하여 아파트 전체를 서재로 쓰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을 계속 사들이기 위해서 있던 책을 처분하고 다른 책을 들이려 했던 '괴짜'였던 것이다.

아~ 우리 나라 헌책방서도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긴 책을 좋아하는 애서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책에서 개인의 사연이 적힌 메모나 글들이 발견되는 것은 부지기수일 것이고...장서를 위해 책을 처분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겠지.

논어 이불과 한서 병풍을 둘러 치며 한겨울을 보낸 간서치도 있었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통임을 알려주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스스로 책을 사랑하면서 더 많은 애서인들을 만나본 윤성근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쩌면 이 정도까지...라고 하며 읽을지라도 결국에는 책을 사랑한다는 점 하나로 많은 것이 용서되는 이 책 덕후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젖은 책 다림질하는 노자 덕후, 한옥 책 거실을 만들어 놓은 오지 방랑자,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천천히 책 읽는 바리스타, 애묘와 애서를 동시에 즐기는 수의사,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수학 교사...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책 수다를 제대로 떠는 것을 한바탕 읽고 나니 지금의 내 서재에도 이야기를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직은 책이 좀 많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날, 내게도 처분할 책이 500권 쯤 쌓이게 되면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그 누군가는, 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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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 제대하고 나서 부산 보수동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대학 졸업 전까지 부산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보수동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후회 되요. 그 ‘누군가’에 절 포함시켜주세요. 책 이야기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