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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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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을 펼쳐도 생각이 마구 달려간다 [다정한 편견]

 

 

[손홍규의 로그인]이라는 경향신문 칼럼이 묶여 책으로 나왔다.

일주일에 한 편씩 꼬박꼬박 써나왔던 정성도 대단하거니와 그 다양한 생각들의 물꼬를 어디서 틔웠을까, 상상하니 더 이상 헤아릴 엄두조차 안나왔다.

아무리 원고지 4,5매 내외라는 분량이라지만 꾸준히 꼬박꼬박 써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제목을 쭉 훑어내려와 본다.

 

우산, 길고양이, 사내들의 대화, 싸목싸목, 여름 밥상, 곶감, 존재를 엿듣다, 마음의 창, 명절의 쓰임새, 남의 일, 영혼으로 난 길, 다음 생, 밥 먹는 이유, 지상의 방 한 칸, 아름다운 막말, 장마, 팔을 번쩍 드시오, 장기려 선생, 비정규직 소설가, 사람 소리, 작가의 말, 모국어, 문학과 질문, 왜 사냐건, 포퓰리즘, 은어의 귀환, 소문들, 만석보와 사대강, 행복 레시피, 모순어법들...

 

 

초등학생의 일기 제목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조금 진지하려나...생각되는 단상들, 그리고 민감한 정치적 현안을 건드리려는 것 같은 꽤 세 보이는 제목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칼럼을 모은 것이니 5년 동안의 글들이 모인 셈이다.

목차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나도 지금부터 한 5년 부지런히 짧은 단상들을 모아 볼까...하는 것이었다.

누가 보상해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봐주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일주일에 한 편씩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4,5매 내외의 규칙을 적용시키면 글쓰기에 발전이 있지 않을까, 하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에헴~ 그럼,

내용을 한 번 볼까.

짤막한 글이니 쉽게 읽어내려가겠다, 마음 먹고 잡았는데,

웬걸.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지나 고작 두 번째 글 <라면엔 계란>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라면 속에 들어가서 탁 깨어져야 할 계란이

고이 삶겨진 다음 물도 없이 맨목에 삼켜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만 가슴에 꽉~ 막혀버렸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이어, 아버지라는 단어가 생각지도 못하게

암흑의 우주를 날아다니다 지구에 툭 와서 부딪치는 소행성처럼

가만 있는 나를 세게 치받고 가버렸다.

 

이놈아, 라면엔 계란을 넣어야지! 라면만 먹으면 죽어!

-14

 

뜬금없이 작가의 아버지라는 분이 저렇게 빽 소리를 질렀다지.

 

그 뒤로 의뭉스럽게 이어지는 작가의 부연설명이

이 시대 우리네 아버지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것만 같아 그만 가슴이 메이고 만 것이다.

 

물론 내가 라면에 계란을 넣지 않아 아버지가 그토록 분개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사는 꼴이 탐탁지 앟은 내게 무언가 훈계를 하고 싶어도 머리가 굵은 아드리 들어줄 리 만무일 테고 분통을 터뜨리고는 싶은데 마땅한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마침내 아버지는 기회를 잡았고 라면에 계란도 넣지 않은 걸로 짐작건대 네 사는 꼴이 얼마나 한심하고 망측할지 눈앞에 훤하다는 힐난을 했던 거다.-15

 

부모님의 마음이란, 자식이 어리든 장성했든 가리지 않고 언제나 물가에 어린 자식 내놓은 것 마냥 안절부절이겠지.

 

라면에 계란이라는 단순한 조합 속에 이런 감동이 스며 있을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나.

손홍류는 그렇게 짧은 글 속에 나름의 농도와 오미를 가미하여 멋들어진 한 상을 차려 주었다.

 

나의 여행과 작가의 여행에서 얻는 체험이 다를 것이고

나의 장마와 작가가 겪었던 장마가 다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지난 주 내내 겪었던 장마가 주는 습기와 끈끈함 덕분에 태풍이 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중임에도 오늘 갑자기 날이 쨍~ 하자 이불빨래부터 해야지, 하고 허둥거리는 주부다. 작가는 윤흥길의 [장마]를 읽은 소감을 기가 막히게 풀어내 놓았다.)

 

[다정한 편견]은 물론 작가의 편견이 100%

스며 있는 사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어느 곳을 펼쳐도 작가의 짧은 글 위로 내 생각이 빠르게 덧입혀지고

어떤 부분은 공감을, 어떤 부분은 눈썹 위로 당겨지며 찌푸리게 되는 반발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글감을 다시 내 식으로 덧입혀 생각하게 되고, 상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큰 제목 하나로 내용을 끌어 안는 소설에서는 흠뻑 빠져들어서 다 끝나고 난 뒤에 다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면,

작은 제목 100개 넘는 단상들의 모음인 이 책에서는 한 꼭지를 읽고 나면 다시 튕겨져 나오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한 셈이다.

노래에 맞춰 탱탱한 고무줄 위로 발을 얹어 가며 살짝, 넣었다 뺐다 했던 학창시절의 고무줄 놀이가 떠오른다.

흥겹게 뛰어노는 사이에 땀은 비오듯 흐르고 집에 가서 보면 놀 때는 못 느꼈던 생채기가 여러 줄 발목이며 종아리에 나 있다.

그 흔적을 보며 괴롭다, 다시는 안하고 싶다, 할 아이는 없을 것이다.

또 다시 내일이면 뛰어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고무줄 놀이에 열을 올린다.

손홍규의 [다정한 편견]도 고무줄 놀이와 같아서 작가의 편견 투성이 글을 읽고서 가끔은 내 생각을 얹기도 하고 튕겨져 나가기도 하면서 다시금 달려들게 된다.

흥겹고 재미있고 신 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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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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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동반자, 이오덕, 권정생[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몽실아, 몽실아, 뭐하니~~

목이 드러나게 단발머리를 하고 아기를 등에 둘러맨, 그래서 왠지 등이 더욱 시려워보이는 착한 아이 <몽실이>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존재로 환하게 피어날 밝은 노랑꽃, 민들레를 위해 아낌없이 저를 희생한 <강아지똥>

 

권정생은 가난 속에서 살다 갔지만, 그의 맑은 영혼이 진하게 피워낸 작품들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 있다.

 

이 세상 어떤 어른보다도, 또 그 어떤 아이들보다도 천진난만한 세계 속에서 살면서 영롱한 글들을 길어올렸던 권정생.

많은 것에 욕심을 내며 살아가는 나에게, 비움의 미학을 실제 삶으로 보여주고 떠난 그와 이오덕 선생과의 정감 어린 편지글들은  그 어떤 말보다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힘겨운 가운데 한 자 한 자 손편지로 정성스레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기도 하고, 문학론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한국의 아동문학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위로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권정생은 누가 쓴 글이라도 잠시만 일별하고도 글 속에 삿된 것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아보았다고 한다.

엄마가 아이의 눈을 보면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귀신같이 알아내는 것처럼^^

엄마가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이 가능했듯이, 맑은 마음을 오로지 글에만 투사한 권정생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강아지똥>같은 글은 결코 아동의 눈으로 보는 척해서는 나올 수 있는 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읽는 이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있는 글이 진짜 글이다. 가짜 글에는 진짜 글이 낼 수 있는 향기가 없다.

 

아무리 어렵고 고달픈 시절을 보냈더라도 이렇게까지 “비움”의 미학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간 이가 있었을까. 아니, 오히려 간난신고의 세월을 보낸 이이기에 더욱 세상에 대해 원망하고 미워하며 더욱 자신을 위해서 이 악물고 ‘보란 듯이 성공하리라...’ 부르짖는 사람들이 얼마나 넘치고 넘쳐나는 세상인데...

날마다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차갑고 이 시린 우물물처럼 “맑음, 순수” 그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지니고 있지 않은 권정생이 생전에 친하게 지냈던 몇 안 되는 친구였다는 이오덕, 이현주 등등은 정말로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광경의 배후엔 후광이 드리웠을지도...

 

 

도무지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

동심을 잃어가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고학년만 되어도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삶.

가장 낮은 곳에 살며 교회 종지기로 인생을 살다 갔지만, 권정생은 밤하늘에 걸려 있는 강아지똥별이 되었다.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갔지만, 이땅에 살고 있는 나는 평생을 우러르며 그의 마음 한자락을 닮아가고 싶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13 (권정생)

 

 


 

 

 

생활에서 도피한다는 것,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활이 없이 어떻게 글을 씁니까?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 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팔 병신은 팔 병신다웁게 몸을 움직이고, 다리 병신은 다리병신다웁게 절뚝거리는 것이 정상이라 봅니다.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함을 숨기려는 데서 비인간화시켜 버린다고 봅니다.-159 (권정생)

 

 


 

 

거기 일직 교회는 햇볕이 앉을 곳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얼마나 추울까요.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그렇게 쇠약하신데도 책을 읽고 싶어하시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반성됩니다. -(이현주 )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단출한 차림으로 어깨를 마주대고 한적한 오솔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영혼의 동반자, 권정생, 이오덕.

그들이 나눈 아름다운 편지에 집중하자, 한여름의 땡볕도 잠시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는 듯이 옆으로 비켜선다.

밖은 쨍하고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구름도 그림처럼 움직임 없이 멈춰서 있는데, 가슴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휘~ 지나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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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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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작가들이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전에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되는가, 가 무척 궁금했었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당연히 작가가 되겠지만

문체를 꾸미고 수려한 어구를 구사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써낼 수 있는 작품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될 텐데...

내가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오지랖 넓게 작가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나간다는 것이

마냥 신기해서 영양가 없이 허여멀건한 죽 같은,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해대기도 했다.

이런 걱정을 하는 내가 더 신기한 건가?^^

 

아마도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에 새겨진 상처를 핥으면서 글을 쓰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리 허구의 문학이라고 해도 글을 쓰는 사람의 인생이 글 속에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하면 그건, 순전히 거짓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적 소설, 이라고 대놓고 광고하지만 않았지, 작가 스스로의 삶이 어떤 작품에건 조금씩 들어가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커다랗고 완전한 자신의 몸을 하나 하나 떼어서 이 작품에는 머리를, 다음 작품에는 다리를, 또 그 다음 작품에는 손과 발을...

좀 서늘한 비유 같지만 자신을 토막토막 내어서 각각의 작품 속에 흩뿌려 놓는 것이 작가가 아닌가...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크게 작법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작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나뉜다.

작법에 대해 쓴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작가들이 왜 쓰는가를 다룬 책을 보면 그런 책은 작가 자체의 인생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에서도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단답형 혹은 짤막한 서술형 답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챈들러가 보맨 편지 속 챈들러 스타일을 알 수 있을 따름이고

"작가들이란 모두 자기 중심적이기 마련입니다. 마음과 영혼을 소진하며 글을 쓰다 보면 결국 자기 안으로 파고들게 되니까."라는

단편적인 대답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창훈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다른 작가들처럼 배배 꼬거나 회피하지 않고 즉문즉답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아주 무성의하게.

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라지만

물어보니까 답한다는 투로

첫 번째. 원고료 때문

둘째, 남의 피 빨아먹는, 남을 짓누르고 올라서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훼손당하지 않고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

셋째. 내 주변의 기록.

우울한 소설을 쓰는 작가 말고 화내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며 사람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서.

 

어찌보면 삐딱하고 거친 그의 말투 속에서 문학에 대한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사진작가 김홍희에게 "사진이 뭡니까?"

라고 물었더니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김홍희다."라는 말로 대신하면서 건방져 보이지만,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결국 사진은 각자의 인생을 담는 것이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 떠난 빈 속으로 바람이 분다> 에서 거친 바람, 사나운 파도 같은 사나이 한창훈은 이렇게 목소리를 한껏 드높인다.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파도 더욱 높아가고 바람은 사나워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땅한 게 없다 하더라도 먹을 게 없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도 배가 고플 것이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어쩌면 단순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새벽 기상.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기. 담배 피우면서 그냥 있기. 원고 쓰기. 낚거나 뜯어온 것으로 국 끓여 밥 먹기. 책 읽기. 산책이나 생계형 낚시하기.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듣고 있기.

-109

 

거칠고 사납지만 그 맘 속에 바닷말 속살같은 부드러움이 들어차 있어서인지 그의 주변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두툼한 소바닥을 가졌고 빛나는 분노를 간직한 유용주 시인, 경험 많은 순박한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의 송기원 선생, 로마 병정 같고 네모나고 단단한 몸을 가졌으며 각 부위마다 근육이 찰진 이정록 시인.

때로는 웃음기 머금은 눈으로 때로는 소금기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읽게 되는 행간마다 구성지고 입에 찰싹 붙는 한창훈의 말주변이 새어나온다.

 

천상 넘쳐나는 글재주를 쏟아내는 것이 거친 바람 마주서고 세찬 파도 맞서 맞장뜨는 것보다 어울려 보인다.

중화의 한가운데서 고수라고 자처하며 무술의 대가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앉아 백발과 멋들어진 수염을 뽐내는 이들이라기보다는

무림의 숨은 고수 쯤 되는 한창훈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더 애정이 가는 것은 왜일까.

헐거운 옷과 진동하는 술냄새에 당장은 눈살을 찌푸려도 같이 쭈그리고 앉아 한 두시간만 같이 대화해 보면 금세 호형호제 하게 되는, 취권의 "사부님" 과 "성룡"같은 매력을 물씬 풍기는 한창훈.

 

글쓰기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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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2015-06-28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댓글 연결이 잘못 된 것 같습니다ㅜㅜ
확인 부탁드릴게요!

http://blog.aladin.co.kr/trackback/proposeBook/7577375

남희돌이 2015-06-28 23:08   좋아요 0 | URL
네. 다시 연결했습니다.
확인을 안 했나 보네요.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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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마다 쏟아져 나오는 뉴욕의 향취 [나의 사적인 도시]

 

외국의 낯선 도시에 대해 이렇다 할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만약 내가 한동안이나마 살고 싶은 곳에 거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노랑머리, 파란 눈의 이방인보다는 조금은 익숙한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의 조용한 거리 어디쯤이 좋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뉴욕"이라는 도시는 너무나 북적거릴 것 같고, 이방인에 대해 차가운 눈길이 돌아올 것만 같고 어깨가 부딪쳐 한쪽으로 살짝 물러서게 되어도 사과 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결국은  나같은 무지렁이 한국 아줌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는 뉴욕을 대표하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 중 어느 한 유형에도 감히 끼워달라고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소심녀인지라 "뉴욕"은 그저 도로시가 노란 벽돌길을 밟아 찾아가는 꿈의 도시 오즈와 동의어이다.

  

그렇기에 작가 박상미가 사적인 도시로 꼽은 "뉴욕"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얘기들을 풀어놓아도 그리 쉽게 동화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개인 블로그에 썼던, 일기와도 비슷한 성격의 글들을 읽고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오늘 휘트니에서 리처드 터틀의 전시를 보았다. 전시장 구석에 조그맣게 관을 만들고 조용히 거기 들어가 누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

결국 나를 깊숙이 건드리는 것은 이런 미학이다. 터틀은 가장 가난한 재료를 가장 겸손하게 사용해 뭔가 다른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람이다.-15

 

전시장 벽에 3인치 길이의 끈을 잘라 붙여놓은 작품을 보고 저런 감상을 쏟아낼 정도의 사람이라면 나는 도저히 그 깊이있는 정신세계를 따라갈 수 없을 거라는 위화감이 들어 책을 덮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이상한 호기심이란 놈이 기어코 몇 장 더, 몇 장 더 팔락거리며 넘기게 부추기더니

"뉴욕"이라는 곳이, 그리고 작가가 그렇게 낯설고 무시무시한 괴물류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만들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지극히 사적인 거라고-88

얘기하는 그 솔직함과 당당함이 나를 사로잡았고

뉴욕이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도시라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따.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88 

 

뉴욕은 이렇게 즐겨라! 라고 은밀하게, 화끈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밀집은 피하고 밀도는 즐기라는 말.

 

인류가 이렇게 작은 섬 위에 높은 빌딩들을 빽빽하게 지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이 빌딩들은 격자 위에 지어졌다.

구불거리는 골목길은 서울이나 로마에서 즐기고, 뉴욕에선 마천루가 그리는 밀도의 미학과 1점 소실 원근법의 드라마를 경험하자. -216

 

 

뉴욕에서 재즈를 즐기고 미술관을 돌아보고 칼럼을 쓰며, 한 사람의 컬렉션을 들여다 보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하는 사람.

그녀의 일상이 처음에는 내게 아무런 흥취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았으나 책장을 들출수록 향취가 쏟아져 나왔다.

내게는 왜 사물을 이렇게 깊이 있게 그윽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걸까.

그림을 보면 금세 싫증이 나고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걸까.

자주 좌절하게 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때마다 꽃잎이 떨어져 예쁘게 덮인 작은 길 위에 발걸음을 확 확 내딛어 그 어여쁜 조화로움을 부숴놓고 싶어지는 충동같은 것이 불쑥 치민다.

하지만  곧 그 마음을 읽어주고 해답을 내려주는 작가의 말에 불쑥 치밀어 오른 무언가는 조용히 사그러들고 만다.  

그림은 '논문 같은 것'이라서 그림을 즐겨 보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생래적으로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스타일이 같은 기호가 있지만 그림을 보는 눈의 바탕이 될 수는 있어도 그림을 보는 능력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질투와 편견이 섞인 이 비좁은 마음을 한 켠에 내려놓고 점점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자부심.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잘나고 최고라고 생각하고 사는, 뭔가 단단한 속내. -225

 

부자가 멋진 소파를 사는 '좋은 취향'으로 정의를 얻는다면, 가난한 이들은 '변형의 힘'을 갖는 취향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변형의 힘이 있는 취향에는 그걸 보는 눈이 필요하다.-226

 

그녀가 쏟아내는 향취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되기 전에, 나의 취향을 좀 업그레이드 시킬 필요가 있겠다, 싶다.

나만의 자부심을 드러낼 뭔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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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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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확실해 질까?  [태도에 관하여]

 

어른이 되면 확실해 질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시작했으니, 나를 아직 어린 사람으로 보는 이도 있겠다.

아니다. 나는 중년이다.

30과 50의 사이에 있는.^^

 

나의 나이를 밝혔으되 이 책을 읽고 나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이 바로 저 질문이다.

나이로는 어른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나이에 접어든 내가...한심하게도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음을 책의 갈피마다에서 느꼈다.

 

아니다 싶으면 서로 확실히 NO를 말하고 오로지 내가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YES를 하는 것. 어른으로서 꼭 갖추고 싶은 습성이다. -228

 

인간관계 중 여러 상황에 저 말이 통용될 수 있으나 작가는  친구관계와 특히 연애에 있어서 희망고문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다른 모든 관계에서는 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흐리멍덩하게 되지만 맹세코 '연애'에 있어서는 확실히 선을 그어 관계를 이어나갔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의 모든 부분에서 어른이 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가슴에 콕콕 가시가 박혔으나, 이 부분을 읽을 때만은 이상하게 가슴이 활짝 펴졌다. ^^

어린 시절 철모를 때라 흑백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알아서 맺고 끊는 게 확실했던 것일까. 아니다. 마음이 약해서 먼저 상처받기 싫어서 관계의 단절을 한발앞서 선고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나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할 줄 알게 되어서 그 약한 마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제대로 어른이라 불릴 만큼 확실한 의사표현을 아직까지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그렇다고 인정하자.

 

작가는 12년의 직장 생활을 거쳐 11년째 전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기에 그녀의 삶의 태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나 [태도에 관하여]라고 제목에 못박고 있는 이상, 이 책은 "태도"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정한 태도의 카테고리, 즉 부제인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로 꼽은 것은 크게 다섯 가지다.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

 

이 작가의 책은 꾸밈이 없어서 솔직담백한 매력을 가감없이 발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살짝 두렵기도 하다.

자신의 태도에 대한 가치관을 밝히는 것이 좋게 보이기도 하지만 나쁘게 비춰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약간은 "센" 여자? 의 웅변을 듣는 듯도 하여 잔잔한 독서를 즐기던 내게는 '어랏?'싶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그녀의 방식이 부러워서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가로이 물에 띄워놓은 보트처럼 바람에, 물살에 살짝 살짝 기우뚱하기도 하며 흔들리는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인 것 같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어놓고 왜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야?

라고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가 책 갈피 사이에서 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휴~ 정신이 바짝 드는 걸.

 

[태도에 관하여]에서 특히 크게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마지막 장, "공정함" 부분이다.

책을 읽다 문득 만나게 되는 특별한 부분에 표시를 해 두는데, 그 부분들이 "공정함"에 몰려 있었다. 의도치 않은 것임에도 은연중에 그 부분에서 나와 대척점에 있든지 혹은 공명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나 보다.

 

타인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나 자신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내가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열을 올린다면 나는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210

 

어쨌든, 나와는 확연히 다른 작가의 가치관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 나와 다른 사람의 솔직 화끈한 발언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작가가 꼽은 5가지의 가치들이 발현되는 상황에 나를 넣어보고 혼자 시뮬레이션 해 보며 나만의 대처방법을 살며시 정리하게 되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세상, 기왕 사는 것 유연한 태도로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

너무 유연하여 유약하게 비춰지면 안되겠지만.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을 선호한다.

 

나이로 매겨서 어른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보다는  정신적 성숙으로, 가치관의 확고함으로

어른이 될 날을 고대한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어서 고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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