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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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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여행은 싫어 [떠나는 이유]

 

단출하게 떠나는 여행.

카메라 없이 몰스킨과 연필만 있으면 된다나...

 

작년인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리뷰이벤트에 참여했다가 헤르만 헤세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색 몰스킨 하나를 받았다.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가 즐겨 쓰던 노트였고 미술가와 작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몰스킨은 반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가 썼던 것과 분명히 다르지만 그 명성이 남아 몰스킨이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글을 쓰는 무선 노트들은 차곡차곡 쟁여 놓을 정도로 많았는데 몰스킨이라는 것은 처음이었다.

손바닥 크기만한 것이 야무지고 단단해 보였다.

벌어지지 않게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밴드가 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는데 밥장이 7년간 열 세 권의 몰스킨을 썼다며 증명 삼아 찍어 올린 사진을 보니 터져나갈듯 빵빵한 몸을 밴드가 잡아주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이해했다.

아직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는 내 몰스킨은 납작하지만 밥장의 손때가 묻고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묻어있는 무언가가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몰스킨은 무엇을 그렇게 집어먹었는지 뚱뚱해져 있었다.

머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그리워진다며 여행이란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유목민 놀이라고 표현한 밥장의 말이 내 마음에 점 하나를 찍는다.

여행이랍시고 집을 나와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카메라와 한 몸이 되어 모든 것을 그저 렌즈 안에만 담으려 발버둥쳤더니, 그래 남는 것은 정말 사진 밖에 없었더라.

후일에 한가득 저장해둔 사진을 보며 그 순간의 얼굴표정, 주변 풍경 등에서 조각조각난 이야깃 거리를 주워 올리기만 했었다.

밥장의 한껏 배불린 몰스킨을 보니 내게는 지나가 버린 여행의 순간을 갈무리하는 것이 사진 한 장 뿐인 것이 좀 시시해졌다.

먼저 내 두 눈에다 여행지의 정취를 한껏 담고 나머지는 천천히 바라보며 그 느낌을 연필로 꾹꾹 눌러 적는다는 발상을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

시간이 없어서, 감상을 적으려니 열없어서, 와아, 멋지다. 외에는 느낀 점이 없어서.

참..초라한 변명이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떠날 때의 준비물은

카메라와 등산복이 되어버렸을까.

여행에 대한 남다른 계획 없이 패키지여행에 합류하는 관광객의 자세가 한나절 내내 솥에 눌러붙어 있던 누룽지처럼 딱 들러붙어서 이제는 잘 떼어내지지가 않는다.

여행지의 모든 것을 그림으로 슥슥, 잘도 그려내고 짧은 글이나마 자신있게 끼적이는 밥장의 능력이 부럽다.

어두운 곳에 오래 살아 시력이 퇴화된 박쥐들은 초음파를 쏘며 거리를 측정하고 장애물을 피해간다. 나도 그저 그림그리는 것을 안해 버릇해서 그 능력이 조금씩 사라져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동심의 세계에서는 눈 하나, 삐뚤어진 코라도 이게 사람이구나, 알아볼 만 하면 자신 있게 알록달록 색칠해가며 그리지 않았는가. 이제는 그림그리는 능력 대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지극히 기계적인 능력에만 숙달이 되어 있으니,  이걸 어떡할 것인가. 그림 대신 카메라 셔터 누르기 신공을 완벽하게 터득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조금씩 느낌과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는 일에 위대한 첫발을 내딛을 것인가.

 

동그란 안경을 쓰고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쾌적한 여행과는 거리가 먼, "모험"에 가까운 여행을 즐기는 밥장이 이끄는 세상은 완전 자유롭다.

어린 시절 [몬도가네]를 보며 세상을 편견 없이 보는 눈을 틔운 것 때문인지 시골스러운 곳을 가든, 성스러운 땅을 밟든, 그가 지나치는 모든 곳에서 행복을 길어올린다.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여행 큐레이터 '코스프레'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당당하다.

 

카메라 없이 떠난 여행의 허전함을 달랠 방법으로 여행지에서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라는 팁을 전해주는 밥장.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여행에서 얻어오는 조그마한 것이라도 느낌을 적어서 마무리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제주의 푸른 밤도 경주의 안압지 야경도, 프로 카메라맨이 아니기에 떨리는 빛줄기로 죽죽 그어진 사진으로만 남겼던 지난 여행들을 몰스킨과 함께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때, 그 밤에 수많은 조명등과 화려한 불빛들을 잠시 접어두고 두 눈 가득 쏟아져 들어올 듯한 별들을 담아왔더라면 어땠을까.

설레며 떠났던 여행 뒤에 노곤한 피로감 을 느끼는 대신 가슴 뛰는 감동을 글로 적을 생각에 산뜻한 열병을 며칠씩 앓았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누가 귓불을 만지는 듯한 짜릿함이라고 했나.

그 짜릿함이 다시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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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스킨과 일반 노트랑 차이점이 있습니까? ^^;;

남희돌이 2015-02-1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기가 무지 작죠. 일반 노트도 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쓴 것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몰스킨이란 것을 한 번 써보고 싶어진다는 뜻에서~몰스킨에 대한 얘기가 좀 커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