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가 예외 없이 증명된 욕실 바닥을 훔쳐냈다. 리버스는 젖과 꿀처럼 넘쳐난 목욕물에 익사할 뻔했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가 속삭였다. 옷을 챙겨 입은 질이 근엄하고 유능해 보이는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20분짜리 공식 방문을 막 끝낸 사람 같았다.

"다음 데이트 약속을 잡아볼까요?" 그가 제안했다.

"그래요." 그녀가 가방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리버스는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난 여자들이 항상 그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특히 영화나 스릴르 소설 속에서. 섹스 파트너가 자신들의 가방을 몰래 뒤졌다고 의심하는 건가?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질이 말했다. "사건이 흘러가는 걸 보면. 그냥 나중에 기회 봐서 연락하기로 해요. 괜찮죠?"

"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실망스러움을 그녀가 똑똑히 알아챘기를 바랐다. 간절한 요청을 거절당한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얼얼해진 서로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헤어졌다. 그는 아파트에 감도는 그녀의 향기를 맡으며 하루를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담배 냄새가 배지 않은 셔츠와 바지를 찾아보았고, 그것들을 걸치고 나서는 젖은 발로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가끔 살아 있는 것만으로 기쁠 때가 있다. 아주 가끔. (p.84-85)

















리버스는 아내와 이혼하고 십대의 딸과도 떨어진 채 혼자 지낸다. 자신의 집은 우중충하고 빛을 잃었고, 딸이 쓰던 방은 자물쇠로 잠가놓고 있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 아픈 과거가 있고 좀처럼 웃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그가 동료 형사인 '질'을 만나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나서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 기쁠 때가 있다고 한다. 하!


그 기쁨은 단순히 이혼한 후에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데서 오는 건 아닐테다. 외롭고 공허하고 우중충한 자신의 삶에 누군가 끼어들었다는 것,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의 공간도 마찬가지로 활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 이 지하처럼 잿빛의 공간이 숨을 쉬게 됐다는 것.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뜻밖의 반가움. 이런 것들이 한데 모여 살아 있는 걸 기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오래전에 짧게 데이트 했던 상대에게 이별통보를 받고는 굉장히 절망한 적이 있었다. 사실 짧게 데이트한만큼 그에게 어떤 애정이라든가 하는 게 생기진 않았던 터라 그 이별 자체가 '그를 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슬픔이나 절망으로 채워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내게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나로 하여금 '아, 나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그런 그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이사람하고 헤어지고나서도 누군가 나를 좋아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이제 이사람하고 헤어지면, 누가 나를 또 좋아해주지?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지? 그래서 그가 원망스러웠다. 좋다고 했으면 질릴때까지 좋아하다 관둘것이지 이렇게 나는 시작도 못했는데 이럴 게 뭐람, 하면서. 그래서 그 뒤의 연애들은 나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과 그냥 시작했던 것 같다. 딱히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싶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것 같은데,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은 그당시 내게 꽤 크게 다가왔다. 


리버스가 또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를 기대하며 살아왔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우중충한 자신의 집과 자기 자신을 그냥 그런대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에게 찾아온, 아니 자신이 다가갔던 여자는 그 모든 것들에 색을 입힌다. 어쩌면, 어쩌면 모든 것들이 다시 시작되고 다시 생명을 얻게 될지도 몰라.



나는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건 기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비록 짧더라도, 그걸 깨닫는 그 순간.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깨달았다면, 그 순간을 아주 오래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혹여 다시 절망이 찾아오고 다시 삶이 잿빛이라 느낄 때, 아 그 때는, 모든 것들이 색을 입고 내게 다가왔지, 하고 추억했으면 한다. 나로 말하자면, 스스로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여긴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사건들을, 기억들을, 하나씩 곱씹고 또 곱씹으며 돌이켜보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때로는 생각하다 아파하기도 하지만, 기쁨을 느꼈던 순간만큼은 잊지 않은 채로 자신 안에 켜켜이 쌓아두었으면 좋겠다. 물론, 리버스의 삶이 앞으로는 색을 입힌 채로 진행되길 원하지만, 혹여라도 다시 잿빛이 되는 순간, 모든 것들이 화려한 빛을 띠고 자신에게 있었음을 기억하기를. 


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로 채워진 순간인가.


물이 넘쳐버린 욕실 바닥, 아파트에 감도는 그녀의 향기, 귓가에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 그렇게 시작되는 하루, 서운함을 느끼는 내 마음. 




위스키가 들어가자 속이 한층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나빠졌다. 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곳 악취가 속을 더 뒤집어놓았다. 그는 세면대 위로 몸을 숙이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정작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술과 담배를 끊어야 했다. 지금껏 자신을 살게 해준 것들이 이제는 그를 죽이려 들고 있었다. (p.91)



신문기자 '스티븐스'는 리버스를 내내 주시하고 있다. 그에게는 분명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스티븐스는 허구헌날 술을 달고 산다. 어제도 술을 정신을 잃을 정도로 퍼마셔놓고는, 오늘 또 그 속을 술로 달랜다. 헛구역질을 할만큼 술을 마신다. 이러고나서 다음날 안마시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계속 마신다. '자신을 살게 해준 것들이 이제는 그를 죽이려 들고 있'다고 하니, 아, 이 얼마나 리얼한 비유인가. 나를 살게한 달고 짠것들이 비만으로 나를 죽게할 수도 있듯이, 나를 살게한 술이 내 속을 다 병들게 하고 죽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와중에 안나를 살게 한 브론스키와 그로 인해 또 죽음을 결심한 안나가 생각나는 건..뭐징........슬퍼....나를 살게 했으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진 마. 그냥 계속 살게 하란 말이야, 이것들아!!



어제 친구랑의 대화도 그렇고 며칠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무엇을 끊기가 더 힘든가에 대해 얘기했었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는 끊을 수 있겠는데 밀가루는 끊기 힘들다' 라고 말했다. 한 친구는 술을 앞으로 안마시고 살아도 아쉬울 게 없는데 커피는 끊기 힘들다고 했다. 크- 나로 말하자면 면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밀가루 끊는 게 그다지 스트레스 받진 않는다. 그보다는 고기쪽이 훨씬 더 큰 스트레스가 온다. 빵이나 면류를 안먹는 건 큰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는데, 고기는...아...안돼. 고기를 끊으라고 하면 일단 삼겹살 갈비 스테이크..부터 시작해서 돈까스, 햄, 제육볶음 이런것까지 안먹는 거잖아? 그러면..세상에 대체 먹을 게 뭐가 남지? 안돼 ㅠㅠ 난 밀가루보다는 고기가 더 좋아!! 커피도 물론 좋지만, 나는 둘 중에 꼭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망설임 없이 술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마시는 액체라고 하면 술과 커피와 물이 전부인데, 이중에 커피를 들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술을 남겨둔다면 살면서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크- 나는 진짜 술을 쌓아놓고 살고 싶어. 냉장고를 열면 술이 가득가득하고 찬장이든 책장이든 어디든 술이 가득가득 했으면 좋겠다. 술이 없으면 초조해...


오늘 아침에 엄마가 콩나물과 고구마줄기 반찬을 해놓으셨길래 아침부터 비벼먹자고 세숫대야를 꺼내가지고서는 나물과 밥을 넣고는 고추장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자 지난 주말에 남동생이 사두었지만 채 다 마시지 못한 캔맥주와 소주가 잔뜩 보였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졸 행복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건 보기만 해도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계속 행복하기 위해서는 끊이지않게 술을 채워둬야 해. 게다가 내 책장에는 내가 사둔 와인이 한 병 있고, 지난주말에 친구로부터 이른 생일선물로 받은 와인이 또 있다! 꺅 >< 세상은 진짜 살만한 게 아닌가!!!!!!!!!!!!!!!!!!!!!!!!!!!!!!!!!!!!!!!!!! 진짜 세상엔 뭐 그렇게 큰 게 필요없다. 늘 마실 수 있는 술과 안주만 있으면 돼...같이 마실 남자 있으면 또 행복하고. 같이 마실 여자들이 있어도 행복하다. 음탕한 얘기를 섞어가며 술 마시면 천국이로다.




어젯밤에 조카들이 자려고 누웠고 그래서 나도 내 방으로 갔는데, 세 살 조카가 애타게 '이모이모'를 불러댄다. 그래서 가보니 자기 옆에서 자라면서 손으로 자기 옆자리를 탁탁 치는 게 아닌가. 아이구 이뻐라. 나는 또 행복해져서는 여섯살 조카의 뺨에 뽀뽀를 해준 뒤에 세살 조카의 옆에 누웠다. 누워서 가만히 잠들려는 세 살 조카를 보는데 너무 예쁜거다. 그래서 아이의 드러난 팔에 쪽- 하고 입을 맞춰줬는데, 아아, 이 녀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런 나를 보더니 "가"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이모 가라고?" 하고 되물으니 손가락으로 방 바깥을 가리키며, "가!" 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놈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니가 오랬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 이제와 가라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 이제 너한테 뽀뽀 안한다? ㅠㅠㅠㅠㅠ



여섯 살 조카는 어릴 적부터 브로콜리 삶은 것을 그렇게나 잘 먹었다. 아삭이 고추도 잘 먹었고. 세상에 못 먹는 게 없는 아이었는데, 아이가 야채 먹는 걸 보면 다른 아이엄마들이 그렇게나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세 살 조카도 자기 누나에게 지지 않는다. 엊그제 엄마가 저녁에 취나물을 볶아주셨는데, 이제 막 젓가락질을 습득해서 곧잘 하는 세 살 조카가 맙소사, 취나물을 그렇게나 먹어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엔 너무 먹어서 안되겠다고 여동생이 치웠을 정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나물을 잘 먹는 아이를 본 적 있냐며 여동생과 나는 웃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 살 조카는 여섯 살 제 누나보다 밥도 더 많이 먹는다. 참외도 혼자서 하나를 뚝딱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보는데 어지나 이쁜지! 그렇지만 너한테 이제 뽀뽀 안할거야.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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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5-08-06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니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아흥~!! ♡

다락방 2015-08-06 16:52   좋아요 1 | URL
요즘에 아주 이뻐 미치겠어요. 저녀석이 막 이모이모이모이모 하고 애타게 나를 부른다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