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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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생명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존귀한 생명 앞에 우리는 비약한 존재이며 지키려고 애쓴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힘으로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 앞에 숙연하며 자세를 낮추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의학드라마를 좋아하고, 의사가 직업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환상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그들에 대한 동경심에서 일 수도 있다. 난 그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수많은 만남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는 그 순간이 좋다. 의사와 환자, 의사와 보호자, 환자와 보호자, 의사와 의사가 만들어내는 일상 같은 이야기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경이롭고 인간적이며, 이상보다는 현실을 인정해 나가는 과정을 조금은 안정된 맘으로 지켜볼 수 있다. 의사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해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을 거라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몇 달 전, 신문에 실린 오열하는 의사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맡아 진료하던 환자가 죽어 고통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의사의 뒷모습에서 가운 속에 감춰진 그들의 고뇌와 책임감 그리고 환자를 바라보는 인간적인 눈빛을 보게 되었고, 그 동안 얼마나 깊은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함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도달하여 끊임없이 분투하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점근선(漸近線)은 믿을 수 있다. (141)

 

-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환자를 예전의 삶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붕괴된 환자와 그 가족을 품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하여 그들의 실존적 상황을 직면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새롭게 배운 의사의 의무이다. (196)

 

나는 오늘 의사들의 속마음을 여실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뿐 아니라 철학과 문학, 과학까지 의학과 관련된 학문에 온 정성을 기울여 배우고 익히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때로는 자신감 넘치며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나눔에 항상 적극적이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뛰어넘지 못할, 누구도 넘으려고 하지 않는 장애 앞에서 당당하고 장애물이 가진 진실을 스스로 파헤치며 쉽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도전과 배짱은 아내와 그의 딸 그리고 가족들과 동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숨결이 바람 될 때책 소개를 보며 글쓴이이자 글의 주인공인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두려워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누구나 죽음 앞에 설 것이고, 죽음을 경험해야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쉽고 가벼운 일이 결코 아니다.

 

폴은 미래를 꿈꾸며 당당한 걸음을 옮길 때 이라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장애물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몸 안에 키워진 장애물을 탐색하고 치료 과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수술을 하고, 혼자 남을 아내에 대한 걱정과 2세의 출산, 그의 평생 꿈이라고 여기고 있던 글쓰기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일궈간다.

 

-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할 테니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178)

 

폴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자신의 삶에 장애가 된 암과 맞서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 을 순회 방문객으로 비유하며 지금 현재도 살아있다고 인정하며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긍정적 사고와 삶에 대한 의지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게 느껴진다.

 

폴은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자신의 선택과 가족들의 인정이 그를 편안하고 다행스럽게 그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여전히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고,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을 앞에 둔 이가 자신의 죽음을 경건히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죽음의 시간 정도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가족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은 이미 과거의 사람이고, 환자가 어떤 미래를 원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이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편안한 죽음을 원할까, 아니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112)

 

폴은 남겨두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8개월 딸 그리고 가족과 동료들. 그들은 폴이 그들 옆에 좀 더 있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폴은 선택했다. 치열하게 장애와 맞섰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폴은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준비됨을 선포하고 아내의 품에서 깊은 잠을 빠져 든다. 폴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마무리 지었고,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추억하나로 기억될 수 있는 모습으로 곁을 떠났다.

 

-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중략]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4)

 

의사에서 환자로 갑자기 바뀐 입장이 된 폴. 그는 용감했다. 그리고 용기 있게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책임져 갔다. 하늘을 원망하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투쟁도 그는 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와 긍정적 사고.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와 주변을 보살피는 따스함이 참 부러웠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다.

폴의 이야기는 분명, 살아가는 힘든 순간 옳음에 대한 믿음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었던 며칠 참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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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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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로 나에게 다가온 이름 김려령.

새로운 단편집이 출판되면서 창비에서 단편을 미리 읽어보는 기회를 얻게 되어 받게 된 "고드름"

출판되기 전이라 어떠한 부호도 표기되지 않았고

누구의 대사인지 설명도지 않은 채 나에게로 온 샘플북.

어색함과 함께 집중됨.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고드름.​

어린 시절, 정말 춥다하는 강원도에서 자란 나에게 고드름은 겨울에 할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지붕 아래로 매달린 고드름을 톡하고 잘라서 쪽쪽 빨아먹어보기도 하고

툭툭 자르며 나름의 스트레스도 풀어보고

형제들과 함께 칼싸움 한다고 휘휘 팔을 휘둘러보기도 하였던 그 고드름.

도시에서 살면서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든 그것이

소설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어릴 적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의 놀이였던 칼싸움이 정말 누군가에게는 살인의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고등학생들의 천진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혹시? 하는 동요가 되기도 하였다.

실시간으로 뉴스가 올라오는 요즘.

살인과 폭력. 폭행. 이 단어가 너무나 익숙해져가고 있음에 무섭고 불안한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오래도록 몰랐으면 하는 학생들의 입에서 살인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수다의 시작이 단순한 수다였을지라도 함께 동참할 수 없으며

단순한 수다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 


'고드름' 안에는 고등학생과 그의 부모. 그리고 선생님. 고등학생을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피해자. 그리고 경찰관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받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져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누구에게 자신이 피해받지 않았음을.

다만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해줬으면 하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고드름은 안다.

볕이 조금만 들어도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조금씩 녹아내린다는 것을.

그러지 않게 위해선 차가운 기운이 내내 감돌아야 하고 자신의 몸을 꽁꽁 얼려야만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고드름은 꽁꽁 언 자신을 어루만지는 아이들의 손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행복해 할 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이의 손에서 자신의 생을 다했기에...


김려령 작가님은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는 살인의 무기로 쓰일 수도 있는 매서운 고드름과 같은 현실에서

누군가의 작은 입김과 마음이 고드름의 마지막 눈물을 흘려보내듯

이 세상의 차가운 벽을

우리의 손길로 녹아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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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한국사 여행 떠나요! 1 - 선사시대에서 고대국가의 시작까지, 48주간의 생생한 한국사 대탐험 주말에 떠나는 한국사 여행 시리즈 1
김원미 외 지음, 이동철 그림 / 코알라스토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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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 배워야 할까?

나의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엔 역사를 지금처럼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들어가면 배우는 교과목의 일부로 취급되어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중학교 들어가면 시험을 대비하여 암기과목으로 전략해 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텨였을까?

지금 내가 사는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어떻게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너무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철이 들은 한참뒤에야 말이다.

언제였을까, 악기를 연주하는 대학생들이 인사동에서 아리랑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우리의 음악 '아리랑'을 연주해 줄 때 그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엄마의 눈물을 보고 있던 우리 두 딸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우리나라 사랑해" 한다.

나들이 나온 많은 사람들과 낯설은 음악과 낯선 풍경의 모습에 발길을 돌린 외국인들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척 올릴 때 또 한 번 울컥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에 엄지 손가락에 얕은 고개짓으로 답례를 보냈다.

 

큰 아이가 5학년, 작년부터 역사 책을 읽으면서 나라의 처음이 언제였는지,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지도와 유물들을 토대로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새롭게 배운 사실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며 귀담아 들으며 질문을 던지는 아이를 볼 때 너무나 어설피 알고 있는 엄마이기에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보다 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주고 있음에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함께 들었다.

 

코알라 스토어에서 나온 "아빠, 한국사 여행 떠나요"를 펼치는 순간, 5명의 인물과 시대가 펼쳐졌던 옛날 그 지역을 모험하는 느낌에 사로잡혀 마치 내가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유적지를 돌아보며 탐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을 토대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어떤 것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어 왔는지 유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으로 표현하고 글로 설명하는 과정으로 어떻게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는지 마치 옛시대를 살아가는 듯 자세하고 쉽게 설명하여 준 점이 참 인상깊었다.

제목에서 주듯이 아빠와 함께 유적지를 돌아보며 하나씩 새로움을 배워가고 현실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가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만화 형식으로 실제 상황을 재연하듯 표현한 것이 보는 재미를 넘쳐 순간 웃음이 '빵'하고 터져 버린다. 역사책을 보며 웃음을 낼 수 있다는 것, 바로 이 책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주먹도끼를 찾아서 (구석기 시대) _ 씨앗의 비밀을 알다 (신석기 시대) - 고인돌에 담긴 이야기(청동기 시대) - 최초의 나라 고조선 - 크고 작은 여러 나라들, 부족국가 - 하늘의 자손이 세운 나라들 - 해상왕국을 꿈꾸는 백제 - 드넓은 땅을 차지한 고구려"

 

여덟번째 여행을 떠나면서 , 여행을 마칠 때마다 제시되는 '한눈에 정리하기'의 질문들이 단순하게 암기하는 형식의 문제가 아닌 생각키우기의 질문이 던져져 여행을 마치며 느끼는 나의 생각이나 역사의 전개에 대한 또다른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대별로 떠나는 여행지를 단순히 글자의 나열이 아닌 책이란 도구를 통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빠, 한국사 여행 떠나요!"는 온가족이 함께 한 시대씩 여행을 떠나며 책에서 살짝 비춰주는 생활벽화 그리기, 청동기 시대의 부족장 꾸미기 등 활동을 직접 해 보며 눈으로 만나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여행의 길을 열어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운 책읽기로 시작해서 마무리짓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고, 서로를 가슴으로 안아주는 따뜻한 세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길에 우리나라의 뿌리를 찾아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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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알을 찾아라 책읽는 가족 51
백은영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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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라는 소리만 들으면 난 요즘 아이들 말로 “헉~”하는 갑갑증이 생긴다. 암기에 너무나 약한 나는 학창 시절 역사 시간이 너무나 재미없었다. 흐름을 전달해주기 보다는 연도와 인물, 사건들을 정리해 주며 무조건 외우라는 식의 수업이 난 너무나 버거웠고, 시험에서도 똑 떨어지는 답은 아싸~ 하며 정답을 맞힐 수 있었지만, 국사와 세계사를 연관지어 낸 문제에서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때의 힘겨움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방송매체를 통해 보는 사극에서도 난 재미난 이야기로만 볼 뿐, 역사의 흐름까지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나라가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하게 느껴질 때면 나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 같아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것이 역사를 만나는 나의 솔직한 모습이다.
처음 “주몽의 알을 찾아라”라는 책 제목을 본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피하고 싶은 맘 간절하지만,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나눌 인물 이야기에서 엄마가 깊지는 않지만 전해주는 작은 이야기가 아이에게 흥미를 끄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효과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기에 손에 잡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굳은 결심을 하고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쩜 좋지?

책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것이, 비가 내리는 날이라 오랜만에 김치전이라는 별식을 준비하는 내 손에서 떨어지지가 않아 김치전을 까뭇까뭇하게 태웠음에도 눈길은 자꾸 책 속으로 빠져 들어만 갔다. 이렇게 재미난 역사 뒷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니…

가상한 이야기만 어떻고, 판타지면 어때?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모두 전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서울과 평양 그리고 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우와 금옥이. 그리고 검은 늑대와 연 교수님.
방울 소리와 함께 찾아온 청동거울, 청동거울은 통일이라는 의미를 달고 현우와 금옥이와의 만남을 이끌어가고, 주몽성하의 사당을 지키는 열쇠지기 가문과 자물쇠지기의 가문의 자손인 검은 늑대와 연 교수님. 그들의 만남에 바탕이 되고 있는 고구려 안장태왕과 백제 처녀의 설화가 허구가 아닌 역사 속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며 그 속에 담겨진 의미들이 하나 둘 밝혀질 때마다 재미와 숨가쁨은 고조되어 간다.  
유화 부인에게서 태어난 알은 활을 잘 쏘는 청년이자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주몽의 태생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일 뿐, 알은 주몽이가 아닌, 주몽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새로운 설에 의해 전해지는 신비로움과 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몽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솔깃하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주몽의 알을 찾아라』를 통해 여러 의미를 찾고 느낄 수 있다.

생활양식도 언어도 다른 현우와 금옥이가 서로를 믿으며 그리워하는 마음 아래에는 한민족이라는 곧 통일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냈음을 알 수 있다. 강한 남자 검은 늑대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역사 왜곡과 역사의 중요성보다는 개인을 앞세우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역사를 바탕으로 허구라는 장식을 단 판타지 동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서 서로가 알고 있는 역사 사실부터 또 다른 방향으로의 생각을 나누는데 무척 흥미로운 시간을 줄 수 있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통틀어 말한다. 우리가 입는 옷부터 시작하여 먹는 음식까지도 후손에게는 역사가 되고, 삶의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혼을 그대로 담아 보존되어 온 유물의 자취가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과 다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시간임을 전하고 있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 속에 우리의 삶을 엿보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정신을 느끼는 시간, 이것이 바로 『주몽의 알을 찾아라』가 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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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시계가 많아지네 I LOVE 그림책
팻 허친스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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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은 7시 30분이네.”
“정말? 엄마, 밥상 들여가요. 저녁이 너무 늦었어요.”
누나의 시계 공부를 어깨 너머로 배우고는 시계만 보이면 “지금 시간은…'하는 새해 들어 일곱 살이 된 조카의 말에 엄마인 언니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왜 이렇게 집에 오면 시간이 빨리 가는 거야? 우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올 설 연휴가 너무 짧아 지방으로 성묘를 가야 하는 우리 집을 염려하여 설 전날 미리 친정집에 모여 저녁을 먹기로 하여,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부랴부랴 넘어간 터라, 저녁을 먹고 넘어와야 한다는 것에 나는 아쉬움을 토해 냈다.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피고 지고를 몇 번 한 끝에 밥상을 물리고, 다과상까지 다 물리고 나서 다시 들려온 소리.

“지금 시간은 1시 35분이네.”
“뭐? 1시?”
언니가 조카의 소리에 벽시계를 보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이 쏙 날만큼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제야 우리는 시계를 보았고, 조카의 시간 계산에 모두들 깜빡 속은 것을 알았다.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의 뒤바뀜으로 7시 5분을 1시 35분으로 읽은 조카. 모두의 손과 입을 바쁘게 만든 조금 전의 7시 30분은 5시 35분이었던 것이다.

시계 바늘의 움직임에 대해 마냥 신기해하며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조카와 다락방에서 시계 하나를 발견하고는 신기한 마음에 시간을 확인하는 히긴스 아저씨.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리고 조카의 시간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서두른 가족 모두와 히긴스 아저씨의 의문에 의아해하면서 직접 확인하러 길을 나선 시계방 주인, 한 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시간을 읊어주는데 재미를 느낀 조카와는 달리 히긴스 아저씨는 다락방에서 침실로, 침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거실로 다니면서 시간을 확인하며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인 통에 단순히 시간을 읽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시계 보는 재미를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하였다.

다락방에서 발견한 시계를 깨끗하게 닦는 히긴스 아저씨의 모습에서 시계가 단순히 시계가 아닌 바늘의 움직임을 인지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너무나 행복해 하는 조카의 천진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고, 시계가 잘 맞을까 하는 의문으로 생각에 잠긴 모습은 바늘의 숫자를 보며 시간을 읽어내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는 조카의 진지함이 묻어나 히긴스 아저씨를 만나는 동안 내내, 어른들을 깜빡 속인 후에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싶은지 방으로 쏘옥 들어가 모습을 감추는 조카의 뒷모습이 떠올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락방에서 처음 발견된 시계. 그 시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시계를 사 오는 길에 그려진 4층집. 4층의 다락방. 3층의 침실, 2층의 부엌, 1층의 거실이 차례대로 내부를 열어 보이면서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의 모양과 색이 다르고, 허둥지둥 방을 오르내리면서 보이는, 시계가 놓인 자리와 집안의 가구를 가까이에서 보듯 보여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올 때마다 1분 또는 2분의 시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시계를 배우는 아이뿐만 아니라, 시간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며 흘려보내는 많은 어른들에게 참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방 주인에게서 마지막으로 산 시계를 옷에 달고 다니면서 시간을 확인하는 히긴스 아저씨와 환하게 열린 집 안으로 보이는 시계의 시간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시계를 처음 배우고,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갖는 많은 아이들에게, 시간은 어디에 있건, 누구와 있건, 무엇을 하고 있건 누구에게나 항상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 말보다 더 강한 효과를 보인다.

우리 아이에게 시계는 새로운 물건이고, 엄마가 두 손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입으로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한 시!에 손바닥을 한 번 부딪히는 재미있는 놀이일 뿐인데, 그 물건이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바늘이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가 되면,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로 히긴스 아저씨를 만나게 될까 벌써부터 그 때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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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진사랑 2007-08-2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학진사랑입니다..^^ 반가워요....어머 서재 보니까 여행가고 싶어지네요..ㅎㅎ 전 꾸밀줄 몰라서 그냥 리뷰만 올린답니다..잘 지내시죠...ㅋ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날이 더워서 힘이 쫙 빠지는 계절인지라........아프지 마시고..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