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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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생명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존귀한 생명 앞에 우리는 비약한 존재이며 지키려고 애쓴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힘으로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 앞에 숙연하며 자세를 낮추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의학드라마를 좋아하고, 의사가 직업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환상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그들에 대한 동경심에서 일 수도 있다. 난 그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수많은 만남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는 그 순간이 좋다. 의사와 환자, 의사와 보호자, 환자와 보호자, 의사와 의사가 만들어내는 일상 같은 이야기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경이롭고 인간적이며, 이상보다는 현실을 인정해 나가는 과정을 조금은 안정된 맘으로 지켜볼 수 있다. 의사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해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을 거라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몇 달 전, 신문에 실린 오열하는 의사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맡아 진료하던 환자가 죽어 고통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의사의 뒷모습에서 가운 속에 감춰진 그들의 고뇌와 책임감 그리고 환자를 바라보는 인간적인 눈빛을 보게 되었고, 그 동안 얼마나 깊은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함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도달하여 끊임없이 분투하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점근선(漸近線)은 믿을 수 있다. (141)

 

-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환자를 예전의 삶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붕괴된 환자와 그 가족을 품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하여 그들의 실존적 상황을 직면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새롭게 배운 의사의 의무이다. (196)

 

나는 오늘 의사들의 속마음을 여실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뿐 아니라 철학과 문학, 과학까지 의학과 관련된 학문에 온 정성을 기울여 배우고 익히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의사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때로는 자신감 넘치며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나눔에 항상 적극적이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뛰어넘지 못할, 누구도 넘으려고 하지 않는 장애 앞에서 당당하고 장애물이 가진 진실을 스스로 파헤치며 쉽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도전과 배짱은 아내와 그의 딸 그리고 가족들과 동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숨결이 바람 될 때책 소개를 보며 글쓴이이자 글의 주인공인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두려워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누구나 죽음 앞에 설 것이고, 죽음을 경험해야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쉽고 가벼운 일이 결코 아니다.

 

폴은 미래를 꿈꾸며 당당한 걸음을 옮길 때 이라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장애물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몸 안에 키워진 장애물을 탐색하고 치료 과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수술을 하고, 혼자 남을 아내에 대한 걱정과 2세의 출산, 그의 평생 꿈이라고 여기고 있던 글쓰기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일궈간다.

 

-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할 테니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178)

 

폴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자신의 삶에 장애가 된 암과 맞서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 을 순회 방문객으로 비유하며 지금 현재도 살아있다고 인정하며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긍정적 사고와 삶에 대한 의지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게 느껴진다.

 

폴은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자신의 선택과 가족들의 인정이 그를 편안하고 다행스럽게 그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여전히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고,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을 앞에 둔 이가 자신의 죽음을 경건히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죽음의 시간 정도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가족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은 이미 과거의 사람이고, 환자가 어떤 미래를 원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이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편안한 죽음을 원할까, 아니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112)

 

폴은 남겨두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8개월 딸 그리고 가족과 동료들. 그들은 폴이 그들 옆에 좀 더 있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폴은 선택했다. 치열하게 장애와 맞섰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폴은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준비됨을 선포하고 아내의 품에서 깊은 잠을 빠져 든다. 폴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마무리 지었고,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추억하나로 기억될 수 있는 모습으로 곁을 떠났다.

 

-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중략]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4)

 

의사에서 환자로 갑자기 바뀐 입장이 된 폴. 그는 용감했다. 그리고 용기 있게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책임져 갔다. 하늘을 원망하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투쟁도 그는 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와 긍정적 사고.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와 주변을 보살피는 따스함이 참 부러웠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주었다.

폴의 이야기는 분명, 살아가는 힘든 순간 옳음에 대한 믿음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함께 할 수 있었던 며칠 참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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