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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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는 신랑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온다.
부모님의 서두름에 얼떨결에 결혼이라는 것을 한 내가 이혼은 내 힘으로 해 보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20개월을 바라보고 있는 딸 아이가 백일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보면 볼수록 이쁘고 사랑스러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사실이다.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잠시도 내 손이 쉬고 있으면 난 자리는 안다고 금새 표가 나고, 내 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뿐 아니라, 잠시도 그냥 두지 않는 아이로 나는 나날이 지쳐만 갔다.

식은 밥이라도 끼니를  챙겨먹고, 화장실이라도  잠시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누군가가 잠시라도 아이를 안고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날마다 회사 일로 새벽에 들어오는 신랑을 이해하면서도 난, 내 편이 되어, 육아에 대한 힘겨움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기만을 바랬지만, 피곤에 찌든 신랑 앞에서 나의 힘겨움은 팔자 편한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신랑과의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이의 얼굴에 태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하루 24시간을 손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 삼일 밤낮을 품에 안고 웃고 울고 자야만 했다. 그 때 난 결심했다.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지금의 이 힘겨움보다는 나을 거라고, 혼자 이렇게 바둥거려도 이 모습 이대로가 끝이라면 더이상 기댈 것도 바랄 것도 없다고 말이다.

요군과 나나는, 흔들리는 나를 단호하게 잡은 신랑이 없었다면 나의 아이가 평생 가슴에 안고 갈 상처이고,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오래된 그리움을 현실로 보여주는 단상이며, 나의 이기적이고 섣부른 행동에 마침표를 찍어주기에 충분하였기에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다.
요군은 엄마의 상처를 드러내어 감싸주면서 새로운 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11살 생일을 맞이한 엄마의 아들이다.

바보, 멍청이에 속 뒤집어지는 낙천주의자. 이것이 요군이 바라본 엄마의 진짜 모습이고 마음 깊이 보듬어 줘야만 하는, 어른이기에 안타까운  엄마의 모습이다.  덤벙거림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일을 할 때면 아이들의 식사는 번번이 잊어 아이들의 아우성을 들어야 하고, 차에 열쇠를 꽂아놓고 문을 잠그고 나와 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보내면서 전차 역이름을 잘못 말하여 졸지에 미아 신세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나약하고 허점투성이 엄마가 처음으로 '노란 코끼리' 같이 생긴 자동차를 사 차고에 집어넣었을 때 또 한 번 기암을 토하고 말았다. 실기에서 떨어졌지만 언젠가는 면허증을 손에 넣을 테니 미리 차를 샀다는 것이 엄마의 해명이다. 이를 본 요군은 어른이면서 자신보다 생각이 짧은 엄마때문에 한숨이 절로 내쉬어지고, 마냥 어린 아이 나나는 행복에 젖어 노란 코끼리와의  만남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요군은 잠시 나나였으면, 나나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나이라면 빗속을 뚫고 지나가는 아빠를 쫓아가 우산을 씌워 주며 마지막으로 한 번 가지 말라고 잡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군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커버렸다. 아빠가 왜 돌아올 수 없는지, 우산을 받으면 다시 돌려주러 와야 하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아빠의 말에 담겨진 의미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기에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단한번도 바라보지 않고 나나의 어깨를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아빠와의 이별이다.  이것은 더이상 요군과 나나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아빠도 남편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엄마는 모든 일에 서투른, 요군의 마음을 쓰이게 한다. 엄마 자신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안절부절해 하며 새로운 일을 또 시작한다. 엄마는 요군과 나나에게 멋진 엄마로 잘하는 엄마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아빠가 없는 집에서 요군과 나나를 지켜낼 사람은 엄마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예전처럼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쉴새없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작고 낡은 노란 코끼리는 할 수 없다는 우물 안 개구리를 사회 속으로 밀어내는 촉매제를, 나약하고 잘하는 것 없는 한 사람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아주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그들 곁을 떠나갔다.
나약한 이혼녀가 아닌 당당한 엄마인 다나짱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노란 코끼리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연결 고리가 되어 주었다.

노란 코끼리. 그의 가슴 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10년이란 사회 생활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로 인해 힘들었을 신랑이,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 머물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내 마음속에 담겨진 소중함과 고마움 그리고 항상 곁에 있어줄 거라는 믿음이 노란 코끼리였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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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안신영 지음, 최승이 그림 / 행복한상상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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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방주'라는 단어에 참 많이 고민스러워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노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방주는 물건인지 지명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궁금증을 접어야 했으며, 더 이상 호기심을 키워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노아의 방주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진짜 노아의 방주를 만난 것이다.

지인들과 처음 가 본 관악산 산행. 제각각인 바위를 디디며 오르기를 2시간 꼬박하여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산사람들의 ‘거의 다 왔어요.’라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얼마나 더 올랐을까, 바위를 땅으로 나무를 병풍으로 우거진 숲 사이에서 마치 빛이 동그란 원을 이루듯이 새어나왔다. 다가갈수록 원은 점점 넓어져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빛을 쏟아내 주었다.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하던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그 순간의 기쁨.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노아의 방주를 만나면서 그 때의 기쁨, 그 안도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을 잡고 120년이란 시간을 방주를 지으면서 많은 이들에게 대홍수의 위험을 알리는데 힘을 기울인 노아와 비난과 괄시 속에서 노아의 굳은 믿음을 따르며 꿋꿋하게 그 날을 기다려온 가족. 그들과 함께 먼 여정을 떠나는 암수 한 쌍의 동물들이 이야기의 인물이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주인공이다.

방주의 문이 닫히는 순간, 맑고 포근한 날씨를 자랑하는 세상은 무서운 소리와 함께 많은 비가 내리고, 믿음을 져버린 채 욕심으로 가슴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많은 이들은 대홍수와 함께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대홍수의 위험에서 벗어나 방주 안에서의 1년. 사람과 동물들 간의 믿음과 서로를 향한 배려가 읽는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힘든 여정 속에서 탄생한 세 마리의 아기양이 준 새 생명의 축복과 생명의 신비로움, 아빠양의 죽음을 두고 엄마 양과 공룡 핀의 엇갈린 마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워가는 까마귀 까야와 까우. 사람들의 이기심에 상처를 받아 힘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을 저지르고만 원숭이 비니. 이들을 둘러싸고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항상 그 자리를 지켜준 기린과 거북이 그리고 자신의 우렁찬 울음에 스스로 놀라 휘청거리는 귀여운 사자가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며, 그들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 오래 전부터 내려온 사랑의 약속

     세상이 무너진대도 영원히 변치 않네

     비바람과 어둠이 눈앞을 가려도 우리는 믿어요

     언젠가 찾아올 아름다운 세상을

     슬픔도 눈물도 없는 눈부신 빛의 나라

     그곳에서 해처럼 맑게 웃으며 살아요 』

새로운 생명의 주인공, 그들이 다함께 부른 노래.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하였기에 답답한 방주 안에서의 1년을 견딜 수 있었다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언젠가는 슬픔도 눈물도 없는 눈부신 빛의 나라로, 해처럼 맑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겠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120년을 기다려온 것처럼, 우리가 살아갈 세상, 우리가 탄생시킨 새 생명들이 살아갈 세상은 분명 욕심 없고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지금 당장은 빼앗고 뺏기고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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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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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집을 산다고?

작년 2월 아기가 태어나기 석달전, 신랑이 느닷없이 집을 사자고 하였다. 결혼하면서, 결혼하고 나서도 양쪽 부모님에게 단 돈 십원 하나 받은 거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에 어떻게 집을 사느냐는 내 말에 신랑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적금 통장과 집은 다르다고. 아기가 태어나면 집은 꿈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설득시켜왔다.

대출? 결국 은행에서 돈을 빌리자는 말인데, 육아로 무기한 휴직으로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전환이 되는 이 상황에 대출이자와 원금은 다 어떻게 갚을까,란 생각에 난 두려웠다.

우리는 완공 되지 않은 아파트에 P라는, 정말 납득이 되지 않는 정말 아깝다는 생각만 드는 P를 일이만원도 아닌 천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다.  P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남의 손에 쥐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아깝다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설쳤다.

이렇게 난 경제에 무지하고 내가 아는 얄팍한 상식으로 경제를 논하는 탐관오리였던 것이다.

 나는 여자다.

여자는, 결혼 잘 해서 신랑의 그늘 아래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눈꼽만치도 해 본 적 없는 여자다.

내가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고, 그 댓가로 주어지는 월급을 요긴하게 잘 나누어 쓰면서, 적당한 금액만큼 적금을 넣어 목돈을 만드는 것이 경제이며, 돈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왔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흥청망청 쓰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적금 만기일에 모인 목돈이 나의 자랑이며, 사회 생활 10년이란 시간을 대신해 주는 뿌듯한 증거물이라고 여겨왔다.

나는 그랬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고, 경제를 모르는 여자라는 것을 떠벌리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나름대로 경제에 밝지는 않지만, 돈을 열심히 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회와 돈을 잃게 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 경제학』이라는 단 한권의 책으로 나의 경제적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말았다.

나 자신을 위해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것,

경제는 남자들의 전유물인양 등한시 하며 사는 것,

나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현실이고, 경제를 모르는 여자의 표본이 되어가고 있었다.

환율, 금리, 부동산, 시세, 펀드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서 날마다 떠들고,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데, 여전히 그 사람의 관심사가 모두 나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난, 절대 아싸~ 가오리!가 될 수 없음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절망만을 안겨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희망이 존재하며, 얼마든지 기회가 있음을 말하는 친절함이 나에게 경제적 펀드가 되었음을 말하고 싶다.

남자 중심의 세상에서 남자 여자 평등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제는 자신이 지닌 가치와 존중을 지켜나가는 필요조건이며, 관심을 기울이며 귀를 기울였을 때 경제에 눈을 뜨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모아 놓는 족족 카드값으로 대출이자로 나가는 우리의 가계를 살리기 위해 가계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돈을 아끼고 아끼는 나의 유일한 경제활동이, 나아가 경제 마인드를 갖는 나로 발전되는 그 날까지 어렵고 재미없다는 경제의 문턱을 열심히 넘어보련다.

나에게 찾아오는 기회와 재테크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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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관계 1
안도현 지음, 이혜리 그림 / 계수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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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걔랑 어떤 사이야? 사귀는 거 아니야?"
하는 주위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우리로 얽히는 것을 겁내한 나와 걔는 친구라는 관계로 단정지으며, 그 이상 그 이하로 관계를 짓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초라한 핑계라는 것을 대면서 극구 부인할 때가 있었어요. 그러길 세 해를 넘기고 나와 걔는 주위의 의심을 현실로 전환시키면서 누가 보아도 연인임을 알 수 있는 우리가 되어가길 바라면서 사랑의 고리를 채웠지요.
'나와 너'에서 '우리'라는 관계를 맺으며 어느 새 '우리 마누라는, 우리 신랑은'하는 부부가 되었고, 두 돌을 바라보는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로 불리우며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요.

나라는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는 고집 센 셋째딸로, 형제에게는 제 할 일 똑 부러지게 하는 동생으로 누나로, 신랑에게는 어설픈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마누라로 아이에게는 항상 곁에 있어주는 든든한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 믿음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깨어지더라도 곁에 있어주는, 우리의 관계를 의심치 않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압니다.
그들과 나의 연결 고리 속에는 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혈연 관계가 적용되어 있지만, 그 보다 더한 것은 한 번 맺어진 관계는 신뢰와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라는 믿음이 해를 더해 갈수록 더 큰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동화 '관계'
갈참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져 버린 도토리 한 알.
외롭고 캄캄한 땅 위의 공포도 잠깐, 봄 여름 동안 함께 지냈던 나뭇잎들이 도토리의 곁을 지켜 주지요.
나뭇가지에서는 비바람을, 땅 위에서는 인간과 쥐의 먹이로부터 몸을 가려주고, 숨어 사는 것이 갑갑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도토리가 있어야만 나뭇잎도 존재할 수 있다는, 도토리와 나뭇잎이 또다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나뭇잎 모두의 꿈이라고 견뎌내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요.
이 말은 도토리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용기의 메시지가 되어 도토리를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준답니다.

나뭇잎들은 도토리에게 존재하는 갈참나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세상 속에 한 그루의 나무로, 동물들에게는 겨우내 먹이로 키워낸답니다. 도토리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꿈꾸고, 도토리는 나뭇잎으로 하여금 갈참나무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나가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관계이며, 서로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겠지요.

작은 도토리의 가슴 속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은 분명한 갈참나무 한 그루.
우리는 도토리 한 알에서 자라나는 갈참나무의 존재를 믿듯, 우리들 가슴 속에 잠재되어 있는 희망과 새로운 용기를 믿고 그것을 세상에 펼치기까지 닥쳐올 어려움을 겪어내야만 합니다.
도토리가 잘 해 나가고 있음을 우리의 식탁을 사계절 내내 장식해 주고, 시골 뒷산에는 여전히 다람쥐들이 오독오독 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맑은 소리로 알 수 있잖아요.
이제 조금은 덜 두렵지 않나요?
보이지 않는 희망의 길이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연어'라는 동화를 통해 안도현 시인의 문체와 사고에 매력을 느낀 저에게 '관계'는 또 한번의 행복함을 안겨주기에 너무나 충분한 동화였어요.
우리 인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생명들에게서 인간들이 배워야 하는, 누구나 알고 있기에 쉽게 지나쳐 버리는 의미를 전달하지요.
나뭇잎과 도토리.
엄마와 아이.
아이의 가슴 속에서 날마다 자라고 있을 새싹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나뭇잎과 열매를 키워낼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주고, 행복함으로 껴안을 수 있는 따스한 가슴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내 몸이 먼저가 아닌, 세상에 나올 모두의 꿈을 위해 내 몸을 낮추렵니다. 도토리와 나뭇잎이 서로 관계를 맺어 한 그루의 갈참나무를 키워내었듯이 '나와 너'가 아닌 '우리'의 관계로,세상에 아름다운 미소 하나 떨구고 가는 내가 되고픈 바람이 욕심처럼 저를 찾아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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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
토니 험프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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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터인가, 나를 위한 온전히 나만을 위해 무언가 하는 것이 시간이나 정신적으로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을 버러고 살게 되었다.

'내 일을 하면 살아야지' '내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지' 하던 마음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하는 마음으로 바뀐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엄마의 자리만, 아내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마음을 헤어려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준 것이 바로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 이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나의 실체를 모두 보여준 듯한 느낌이다.

시중에 나온 많은 책들 중 한권인 육아서라고 생각하고 펼친 책은 그 동안 꽤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했던 내 자신을 자존감이 무척 낮은 사람이며, 엄마로 추락시키고 말았다.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상대를 위한다고 상대에게 져준다고 했던 나의 말과 행동은 정작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 뿐 아니라 갈등의 요소를 뒤로 감추게 하여 정작 풀어내야 하는 것이 무언지 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뒤로 물러난 갈등은 언제고 다시 고개를 들고, 그것은 항상 우리 부부 사이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 동안 알지 못했다. 내가 모르고 살았던 내면의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도 아주 당연하게 너무나 뻔하다는 듯이 써 내려가는 작가의 말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난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를 만났다.

그리고 희망을 만났다.너무나 모자라고 낮은 자존감을 가진 내가 '내가 좋은 엄마,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워가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났다.

자존감은 유전이 아니며,부모의 자존감에 영향은 받지만,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하면, 그렇게 해 본다면 자존감이 높은 엄마가 부보가 되어,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실페을 드러나고도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던 보상이랄까, 작은 선물처럼 너무나 큰 기쁨을 만난 듯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 삶 속에 들어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신랑과 딸                                                                                                  그 두 사람에게 난 늘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조금은 어설픈 완벽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내 자신이 가족을 힘들어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하여 맺어진 가족이라는 이름표 아래 나는 너무나 많은, 모든 것을 얻으려고 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말 안해도 알아주겠자, 이렇게 하면 나머지는 해 주겠지, 나의 속마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하는 지레짐작이 상대뿐만 아니라 나에게 얼만 많은 생채기를 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                                                                                                                                  믿고 의지하려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나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말로 상대의 마음을 받아주며,        솔직하고 자신있게 나를 내보이는 또 다른 나를 자신있게 표현하며 살고 싶다.                                                  어색하고 쑥스러워 가슴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표현하면서 나로 인해 신랑과 딸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노력해야겠다는 아주 큰, 아주 행복한 실천을 해 보려한다.

자존감.

나 스스로를 사랑해야지 하면서 붙인 나의 닉네임 '이쁜 은재'

앞으로 나의 닉네임이 더욱 빛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하고 가슴 깊이 사랑하는

아내이고,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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