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에는 우리 파트의 회식이 있었다. 1차로 양재 '영동회관'에서 족발을 먹고 2차로 생맥주를 마셨다.

25일에는 알라딘에 주문한 책과 음반이 도착했다. 스피노자의 <국가론>,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3권 세트, 그리고 리카르도 샤이의 말러 교향곡 5번.

스피노자의 <국가론>. 수유+너머의 세미나에서 다음주부터 읽을 책이다. 어쩌다보니 계속 스피노자를 읽게 되는데, 내친김에 스피노자라는 거대한 산을 가장 쉬운 산보코스로라도 한 번 돌아볼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국가론>은 스피노자의 정치학적 관점이 집약되어 있는 책으로, 아쉽게도 민주주의 부분에서 미완성으로 끝난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가 꺼림칙한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번역된 연도. 1978년에 초판이 간행되었다.(30년 전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고리타분체 번역이 아닐까 염려되는 부분이다. 이 책과 함께 참고용으로 보기 위해 Shirley의 영문 번역판 <Political Treatise>도 주문했었는데, 주문한 지 두 달이 되어도 배송될 기미도 보이지 않아 주문 취소해 버린 바 있다. (참고로, 주문한 곳은 인터파크. 알라딘에는 <Political Treatise> 영문판이 아예 없다.) 참고용 영문 번역본은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구해야겠다. (여기있다! http://sd-1.archive-host.com/membres/up/4084230603969292/PoliticalTreatiseBenedictSpinoza.pdf)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대충 제본한 책의 허접스러운 느낌은 구입한 책의 탄탄한 손맛에 한참 미치지 못하므로 웬만해서는 구입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으로 떠도는 번역본에 대한 신뢰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미학 오디세이> 3권 세트. '논객 진중권'의 글은 아주 많이 접했고 상당히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저자 진중권'으로서의 그를 만나본 적은 없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대한 통쾌한 풍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제목(만!)을 통해 진중권이란 이름을 신선한 충격으로 처음 접했던 나로서, 그의 책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사실은 게으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제 그의 가장 대중적인 저서를 구입했으니 '저자 진중권'의 세계는 얼마나 전복적이고 유쾌한지, 그리고 그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미학'에서는 얼마나 큰 포스를 뿜어 내는지 숨죽이며 지켜 볼 것이다. 일단 겉보기에도 책은 굉장히 미학적이며,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에셔와 마그리트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는 사실에 기대 가득이다. 하지만 1권의 초반부 몇 십 페이지를 읽는 동안 '논객 진중권'의 유쾌 통쾌의 이미지가 별로 발견되지 않아, 적쟎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리카르도 샤이의 말러 교향곡 5번. 솔직히 1, 2번이나 4번, 6번 등에 비해 말러 교향곡 5번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드팀전님의 칭찬에 혹하여 혹시라도 내가 말러 5번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구입했다. 그런데, 말러는 구입해 놓아도 들을 수가 없다. 마눌님과 아이가 있을 때 틀어 놓으면 그들의 경기섞인 불평을 감수해야 하고, 평일 퇴근 후에는 70분을 훌쩍 넘는 시간을 음악에 집중할 만한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은데다가, 설령 정신력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 최소 여덟시가 넘기 마련인 퇴근 이후는 집안 전체를 울렁거리게 만드는 파워풀한 금관소리가 감당되지 않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앰프 볼륨을 10시 방향으로 맞춰놓고 소파에 정좌를 하고 앉아 눈 지긋이 감고서 이 놈을 끝까지 들어보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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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인지 저도 주문했던 미학오디세이가 그제 왔어요.
세 권과 노트가 비닐에 싸여 함께 있더군요.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지요.

전자인간 2008-07-29 07:58   좋아요 0 | URL
거짓말같은 우연이네요. 받은 날까지도 똑같다니...
설마, <국가론>하고 말러 교향곡 5번도 주문하신 것은 아니시죠? ㅎㅎㅎ
<미학 오디세이>의 3권 세트의 아름다운 외모와 비단결같은 손맛은 근래 최고였습니다.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지요' - 동감 100%

2008-07-28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9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7-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그리트를 좋아하시는 군요~.(이말만 남기고 3줄이나 되었던 긴 댓글을 지움,,ㅎㅎ)

전자인간 2008-07-29 08:02   좋아요 0 | URL
나비님도? (이말만 남기고 300줄이나 되었던 긴 댓글을 지운 것은 아님.. ㅋㅋ)
 

스피노자의 <Theological-Political Treatise, 라틴어로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줄여서 TTP>를 끝까지 읽었다. 영어 번역본이고 역자는 Samuel Shirley. 우리나라에는 책세상문고에서 <신학-정치론>으로 발췌 번역되었지만, 총 20장 중에서 7장 12장 15장 만을 번역한 것이어서,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원문은 1장에서 15장까지는 주로 신학적인 내용을, 16장부터 20장까지는 주로 정치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16장 이후는 잘라버린 국문 발췌 번역판의 <신학-정치론>이란 제목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수유+너머 세미나에서 사용한 교재는 출간되지 않은 국문 번역본인데, 제본을 하려고 벼르기만 하다가 결국 보조 교재로 구입한 영문 번역본을 끝까지 읽게 되었다.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완역이라 생각했던 세미나 교재가 상당한 부분을 누락했다는 점이다. 단, 번역했던 부분만큼은, 그리 부드럽게 읽히지는 않지만, 오역이라 의심되는 구석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성실한 번역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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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TP를 TTB로 보았어요.
알라딘의 무슨 체계를 또 바꾸었나보다..생각했지요.

전자인간 2008-07-25 07:41   좋아요 0 | URL
제 의도하지 않았던 낚시에 걸려든 분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어제 방문자 수가 갑자기 늘어났어요. ㅋㅋㅋ

승주나무 2008-07-2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티카를 두어 번 읽고 완전 스피노자 팬이 되었습니다. 참 논쟁적인 철학자라 그의 영향을 받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신학정치학은 완역되면 꼭 읽고 싶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전자인간 2008-07-25 07:45   좋아요 0 | URL
그 어려운 에티카를 두어 번이나 읽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하긴, 두어 번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책이겠지만요. 저는 국문판, 영문판 모두를 사 놓기만 하고 여태 1장 초반부만을 훑어 보았을 뿐입니다. 쉬운 책으로부터 접근해 가려고요.
그런데, <신학정치론>은 성서를 잘 모르시면 그리 권할 만하지 않습니다. 3/4는 성서에 관한 얘기거든요. 그리고 그의 정치론 중에는 상당히 반동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시대적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긴 하지만요.
 

지난 일주일 동안 나에게는 아래와 같은 일이 있었다.

1. 회사 PC 교체 ... 256M RAM으로 5년을 버텼다. 이제 나의 서재 로딩에 0.5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건 거의 예전의 십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2. 평창 교육청 갔다 옴 ... 마눌님이 일요일 당직이라 세 식구가 평창 교육청에 갔다. 퍼붓는 비를 맞으며 3번 국도를 모터보트를 타고 파도를 뒤집어 쓰며 달렸다. 다행히도 영동고속도로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3. 수유+너머 세미나, <신학정치론> 끝냄 ... 스피노자가 싹틔운 두 가지 맹아, '성서 고등비평' 그리고 '근대적 정치철학'. 그리고 스피노자에 대한 약간의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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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3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제 컴퓨터는 님의 예전 서재 로딩 시간이 지금 해당됩니다.
2.국도를 모터보트를 타고 달릴 수 있나요? 궁금-
3.세미나 끝내고 서재에 오실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어요.스피노자와 실망이란 단어가 합쳐져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자인간 2008-07-23 22:34   좋아요 0 | URL
1. 메모리가 얼마나 되세요? 제 집 컴퓨터는 6년이 넘은 것인데도 인터넷 로딩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메모리를 2기가로 확장한 것이 비결이죠. 2기가 메모리라고 해봤자 얼마 하지 않으므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죠. 사진 후보정의 필요성만 없으면 앞으로 5년은 더 써도 될 것 같습니다. ^^
2. 바퀴가 지면에 닿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거든요.
3. 조만간 서평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기다리지는 마세요.) 그 때 제 실망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님의 쾌감의 정체는 저로서는 알쏭달쏭하지만요.

비로그인 2008-07-2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저는 그런것 모릅니다. 살 때 카드에 서명하고 설치하러 올 때 문열어 주고...그게 다예요.3년전에 샀고, 기분좋게 부팅을 했는데 이상하게 전에 쓰던 것과 속도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저와 남편은 둘 다 컴맹이어서 직원이 손대거나 남이 와서 손대도 어딜 만졌는지 모릅니다. 그냥 쓰는거죠. 좀 알았으면 좋겠구만.
그런데 사진 후보정이 뭔가요?
2.그럼 속도가 빨랐다는건가요?
3.기다리지는 않고 쓰시면 보도록 할게요.쾌감이란....뭐라고 말하기 곤란한 제 나쁜 맘의 한 단면이에요.

전자인간 2008-07-25 07:50   좋아요 0 | URL
1. 사진 후보정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를 이용해서 밝기, 화이트 밸런스 등등을 보정하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빨리 해 내려면 컴퓨터, 특히 CPU가 상당히 빨라야 하지요.
2. 우리집 차가 개울로 변한 국도 위를 미끄러지며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
3. 쾌감이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 이해되네요.
 

어제와 그제는 미국 협력업체의 임원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에 찾아왔었고, 나는 하루종일 그들과 회의를 해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영어 교육때문이겠지만, 나는 영문으로 된 글을 읽는 것에는 거부감이 별로 없으나 영어로 듣고 말하기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게다가 어제는 영어로 프리젠테이션까지 했으니... 이틀을 그렇게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더니, 집에 돌아갈 때 쯤이면 머리속은 하얀 백지상태가 되었다. 책이고 뭐고 음악이나 좀 듣다가 잠이나 자자... 모드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점은 내가 다니는 회사와 그들간의 관계가 소위 '갑-을'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갑'이므로, 영어 몇 마디 놓쳤다고, 내가 구사한 영어가 조금 썰렁하더라도, 별로 자괴감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을'이므로, 자기들이 말한 영어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못 알아들으면 몇 번이고 또박또박 알기 쉽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잠시 그들과 우리 사이에 깔려 있는 묘한 역학관계의 층위를 들여다 보자. 가장 낮은 단계에서 인종이 다른 까닭에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미묘한 열등감/우월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 둘, 인도인 둘, 멕시칸 하나, 중국인 하나, 인종을 구분하기 어려운 싱가폴 사람 하나 등으로 구성된 다인종 집단이었으므로, 인종에 따른 열등/우월감은 제로섬으로 상쇄되었다. (오해없길,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사회적인 편견의 학습에 따른 것이겠지만, 백인과 인도인을 보는 눈높이가 무의식중에 서로 다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단계에서 언어적 역학관계가 있다. 내가 다섯 마디를 말하면 그는 오십 마디를 말하고, 내가 문장 하나를 말하는 데 10초가 걸리지만 그는 2초가 걸린다면, 이 대화의 강자가 누군지는 뻔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던지는 'Sorry?'와 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던지는 'Sorry?'의 의미 차이는 대단히 크다. 즉, 전자는 당신이 말한 것을 내가 알아 듣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이지만, 후자는 당신이 내가 알아 듣지 못하게 말해서 유감스럽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저께와 어제의 회의가 바로 그런 식이어서, 비유컨대 나의 영어가 돌도끼라면 그들의 영어는 스마트 폭탄이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단계이자 가장 높은 층위의 역학관계가 바로 갑과 을의 관계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갑'이고 그들의 회사는 '을'이다. 낮은 층위의 두 역학관계에서 그들이 제아무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이 결정적인 층위에서 모든 게임은 뒤집힌다. 노란 피부색이나 왜소한 체구, 어버버거리는 영어 등은 그들 중 몇몇 덩치 좋은 백인들에게는 최소한 무시의 대상이거나 심하게 이야기하면 경멸 거리일 뿐이겠지만, 그것들이 자신의 밥그릇 크기를 결정짓는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라면 그들은 지구를 반바퀴도는 수고를 감수하고 김치냄새 가득한 나라로 달려와서는 유치원다니는 자신의 자녀들이 구사하는 것보다도 유치해서 코웃음이 절로 나는 한심한 영어를 진지하고도 공손한 표정으로 경청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말 한마디가 상대편 직원 몇 명의 모가지를 좌우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 관점에서는 자신의 언어가 공손한지 아니면 상스러운지, 자신의 말이 어법에 맞는지 혹은 개판에 가까운지, 이런 것들에 대해 그리 신경쓸 필요가 없어진다. 내 말에 그들 모두는 감동했다는 듯 안습에 가까운 눈빛으로 열렬한 동감을 표하므로, 나의 영어 능력을 실제 이상으로 스스로 과대평가하여 비현실적인 자만심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내 영어 실력이 짧으면 짧을수록 타제석기와 같은 내 영어는 더 거칠게 그들 가슴에 야만적인 비수처럼 꽂히기도 한다.

긴 얘기를 썼지만, 미국의 그 협력업체와 일하면서 나 역시 권력의 달콤함에 익숙해지는 것같아 씁쓸하다. 그들의 오류를 성토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한편으론 후진 영어로 쪽팔리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의 성토에 아파하는 그들의 침울한 표정을 보면서 얄궂은 쾌감을 느끼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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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번째 문단 마지막부분을 읽으면서는 저도 같이 뿌듯해졌어요.

전자인간 2008-07-18 08:03   좋아요 0 | URL
그게.. '갑'의 파워로 인한 것이라, 적쟎게 찜찜하네요.
 

내 일기를 어느 정도 읽었던 분들은 이제 어느 정도 짐작하겠지만(일기에 이런 얘기를 쓰려니 굉장히 어색하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까지는 전자인간 가족 상봉의 시간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원주로 달려가서는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

나나 마눌님이나 일주일동안 재미없게 살아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합쳐지는 주말에는 나름대로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있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주로 맛있는 것 먹기와 음주로 나타나고, 마눌님의 경우에는 주로 쇼핑으로 나타난다. 이번주말의 특별한 먹거리는 토요일 저녁 집에서 만든 돼지고기 김치찜과 와인(1865 까르미네르 리제르바 2005). 돼지고기 김치찜이 맛있어서 그랬는지, 와인 한 병을 마눌님과 둘이서 앉은 자리에서 다 비워버렸다.

마눌님의 쇼핑 품목은 테니스 의류와 전동 커피 분쇄기. 커피 분쇄기는 고풍스러운 수동형을 이미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빨이 조금 나가서 가끔 헛도는데다가 회사에 가져갈 일주일치 커피를 분쇄하려면 웬만한 음반 한 장을 다 들어야 할 정도로 시간과 노력이 적쟎게 들어간다. 그런 이유로 큰 맘 먹고 자동을 구입한 것이다. 그동안 수동 커피 분쇄기로 진땀 흘리며 커피를 갈면서도 나름대로 환경친화적인 커피질을 한다는 위안이 있었으나, 전동 분쇄기의 편리함에 굴복된 지금은 페어 트레이드 커피 - 현재 마시고 있는 커피는 '안데스의 선물'이다 - 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만이 '착한 커피질'의 마지노선으로 남아 있다.

어제는 분당 교보문고에 가서 음반을 두 장 샀다.

하나는 자우림 7집, 또 하나는 필립스 듀오 시리즈 중 알프레드 브렌델의 모차르트 피아노 작품집이다. 자우림은 김윤아의 팬으로서 자연스레 살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6집은 왜 건너 뛰었는지 모르겠다.), 브렌델의 모차르트는 그의 단조 피아노 협주곡 앨범 연주가 의외로 꽤 괜찮았기에, 모차르트와는 그리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음에도 집어 들었다. 더군다나 듀오시리즈에,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피아노 소나타 KV 310 이 담겨 있기도 했고... 집에 돌아와서 씨디피에 걸고 한 번을 들었는데, 자우림이나 브렌델이나 좀 경쾌함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모차르트 KV 310 의 비극성은 경쾌함에 숨겨져 있을 때 더 극적으로 드러나고 자우림의 최고치는 '랄랄라 송'등에서 엿보이는 꿋꿋한 경쾌함에 있는데 말이다. 물론, 조금 더 들어 보아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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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7-15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일주일을 자우림과 모짜르트로 기다리시면 조금의 위로가 되긴 하겠어요,,,ㅠㅠ
저는 어제 아니 그제구나 무터의 모짜르트를 샀는데요~.
전 바이올린 협주곡, 님은 피아노 협주곡,,ㅎㅎ
암튼 어거지로 찌찌뽕입니다~.(아 유치해...ㅎ)

전자인간 2008-07-16 22:23   좋아요 0 | URL
흠 무터의 모차르트 작품집인가요? 그 다섯장인가 들어 있고 두꺼운...
무터하고 모차르트도 그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어거지로 당한 찌찌뽕이긴 하지만 '땡'입니다. (저도 되게 유치해요.. ㅎㅎ)

비로그인 2008-07-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부터 음악은 엠피3에 넣어두고 운동할 때만 듣습니다.
최근 6개월간 운동을 쉬었더니 음악도 쉬는 시간을 맞았어요.

김윤아는 오래전 이비에스에서 에니매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처음 알았습니다.
자우림의 음악을 찾아들을 정도는 아니어도 듣는 족족 귀에 걸렸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좋던걸요.

전자인간 2008-07-16 22:30   좋아요 0 | URL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음악을 거의 5년 정도 쉬는 것과 다름없이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좀 개기기도 하면서 여유를 찾아 보려구요... (얼마나 가려나..?)
김윤아는 참 복도 많습니다. 외모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우림 음악 대부분을 그가 만들고 있고, 또 그가 만든 곡들이 특히 좋더군요. 요즘에는 잘나가는 남편 만나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