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화 -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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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산화를 읽었다.
그의 산문은 전부 그 같다.

여성이 주인공이어도 다자이가 주인공 같고
소년이 주인공이어도 다자이의 소년 시절 같다. 

다자이의 명문들만 모았다고 하는 단편집으로 그의 예민한 성격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글이다.
1909년에 태어나 1948년에 죽기까지 파란만장의 극치를 달린 것 같은 그의 인생은 결국 4번째 자살시도의 성공으로 끝을 맺는다.
(꼭 여자랑 같이 뛰어내린다. 언젠가는 여자만 죽었는데 죽은 여자는 무슨 죄람 -_- ;;) 

예술가 답게 순수하고 순수를 지향하며 전혀 성숙하지 않은 마음과 아픔은 바늘로 콕콕 찔러 덧나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 것 같다.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 쓰는 덮어주는 글과 예민하게 긁어대는 사람이 쓰는 캐내는 글 중에 어느게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예민하게 긁어대는 사람이 쓰는 글이 더 매력적일 것도 같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부끄러워서 인간 실격이라고, 아버지가 되는 것도 부끄러워서 놀러다니고 도통 사회에서 말하는 잘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매력적인 소설가다.   
같이 자살하고 싶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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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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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 Rent.

사람의 마음을 세밀하게 읽고 묘사한다. 묘사에 능한 작가라고 평가되어지는만큼 심정묘사가 세밀하다는 느낌. 소재가 독특하고 전개가 평범하지 않아 흡입력을 가지고 슥슥 읽게 된다.

도서관에서 늘 눈에 띄던 제목이라 들고 와 봤는데 남창이라는 주제로 베드신이 내용의 절반쯤 된다. 중학생 때 몰래 몰래 돌던 소설 중에 섹스의 질과 감정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소설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지만 왠지 그 책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사람의, 특히 여성의 욕망과 각종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며 남창의 세계에 발을 들인 대학생 청년의 이야기.
 
덜 정리된 느낌으로 왠지 속편이 나올 것 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얼굴, 진지한 얼굴, 두려움이나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 그녀들의 얼굴은 제각각이었지만, 욕망을 노골적으로 내 앞에 드러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구에게든 자신의 스타일이나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표면적인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욕망의 진실은 어딘지 모를 좀 더 깊은 곳에 있다고.

하지만 나는 진실도 깊은 곳도 보고 싶지 않았다. 표면을 꾸미려고 하는 마음만으로도 그 여성은 나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악취미에 언밸런스한 차림새라고 남을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가 자신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옷을 걸치고 있다. 황금 같은 마음을 가진 올바른 사람만 벗고 돌아다니면 된다. 나는 알몸은 싫으니 누더기라도 걸친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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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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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다 슈이치.

한번 해보고 싶었다. 거짓말하기.
이건 정말 부부사이에서나 가능하다고 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만큼, 뒤돌아 잠을 못 이룰만큼.

요시다가 왜 인기가 많을까 했는데 굉장히 짧은 글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렇게 적어 내려가는 게 물 흐르듯 의식의 흐름을 따라 논리적으로 맞춰간다는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너무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게. 

역자의 후기가 너무 심심해서 실망했다.
내가 이 소설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는 동안 역자는 굉장히 평범해보이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적어도 하나의 언어로 번역해나가는 동안 보다 특별한 것을, 발견해줄 수는 없었나. 

남자 주인공은 평범한 남자, 남편, 아저씨 같지만 젊은 시절 여장을 한 게이와 살면서 용돈도 받았고 이혼녀와 결혼해 그녀의 아이를 꼭 내 아이처럼 예뻐하고 있다. 집착도 없고 후회도 없고 고집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살다 보니 급 일탈이 그리웠을까.

그는 그냥 별 생각없이 의식의 가벼운 흐름만을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내면은 보지 못한채, 그냥 가벼운 윗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잠실에서 이대역으로 오는 동안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책인데 잘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아직도 요시다 슈이치의 진가는 잘 모르겠다.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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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틀라이트 크루즈
아사쿠라 다쿠야 지음, 김소영 옮김 / 미디어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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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틀라이트 크루즈

"질투나 증오가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잘 소화해서 자신의 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것인지, 때로는 그것을 무기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죠.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상냥함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고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상냥함이라고, 사람들이 곧잘 말하잖아요.

마지막 이유라면 조금은 좋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만.

...

미워하고 질투하는 감정이 부끄럽다는 것은 말이죠, 그런 감정에 시달리다가 빠져나왔을 때, 그러니까 과거의 감정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눈앞에는 고통스러운 현실밖에 없다고, 구미코씨는 지금 그 새각만으로 가득하겠죠.

하지만 있죠, 현실은 하나뿐이더라도 해석은 무한히 많을 수 있어요. 고통은 변함없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 있는 장소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어딘가 높은 곳으로 이어져있는 사다리의 첫 번째 계단이라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기 전에. "

- 본문 중에서.

크루즈와 위성에 이끌려 고른 이책은 아사쿠라 다쿠야라는 처음 본 작가의 책.
어릴적 부모를 잃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큰 한 자매의 이야기다.
동생과 언니는 자매인데도 참 다르고 달라서 적이기도 하고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고 그런것같다.


읽으면서 계속 어린 동생이 생각나서, 동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나 떨어져 있으면 우리는 대체 언제 친해져서 언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게 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그 애가 나를 어려워 하고 멀리하게 되면은 난 무척이나 속상하고 슬플 것 같다. 문득 문득 전화해서 니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있다.

퇴근 길 어두컴컴해진 회사 앞을 나서며
유독 신호 변경 시간이 긴 횡단보도 앞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허전한 마음이 들때도
종종 그애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진다.

 
한때는 그 애가 나의 삶에 짐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그런 아이가 된 것 같다. 이건 마치 아이를 임신한 미혼모의 말 같지만. 좀 그렇다. 

이 책은 어느 것 하나도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고 흡입력도 잘 모르겠고 아 재밌다도 잘 모르겠지만 등장인물의 매력에 대한 설득력도 잘 모르겠지만 건조한 것 같은 꾸밈없음이 매력적이랄까. 

담담하고 건조하게 두 자매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그려내는 게 좋더라. 

우리는 늘 그렇게 싸우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또 가장 좋은 친구였다가, 그러지 않나. 
 
폐관시간  바로 전까지도 빼곡한 도서관에는 피곤한 담당 사서 언니와 지쳐보이는 사람들이 노란 불빛 속 책들과 함께 공간을 채우고 있다. 돌아오는 길 서강대 뒷길의 한적함 사람없는 길가에 들려오는 유희열의 목소리. 지쳐있는 정신에도 그 타박타박 내 걸음소리와 돼지바 하나 먹으면서 걸어오는 길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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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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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후일담 소설만 보면 형상기억 브래지어가 생각나. 세탁기에 돌리면 일반 브래지어가 좀 상하듯이 사회에 나가면 적당히 망가져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거든. 졸라리 많아. 망가지는 게 정상인데, 자꾸 옛날의 기억으로 돌아가니까 이거 문제가 많은 거지. 자기 젖은 AA컵이 됐는데, 브래지어는 아직도 D컵 뿐이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허전하겠냐? 그러니까 자꾸만 돈에 미치거나 과대망상에 빠지거나 잃어버린 세월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거지. 그 문제 해결하는 건 간단하거든. 새로 AA컵 사면 돼. "

-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 

 ' 그러나 김연수의 세대는 달랐다. 김종광은 오래된 충남 보령산 형상기억 브래지어를 21세기형 신모델로 바꾸어 착용했고, 백민석은 꽹과리와 징 모양의 얇고 넓은 형상기억 브래지어를 온갖 하위문화 기호로 콜라주 된 활동성 브라탑으로 교체했다. 몇몇 이름들을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도상학자 김경욱, 시장통 페미니스트 이명랑, 뒤늦은 세대의 대변자 류소영 등. 물론 그들의 시도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간 우리 소설이 자주 잊어버렸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좋은 낡은 것 위에 세우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세워라" 라고 하는 브레히트의 경구였기 때문이다. 

  - p181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형상기억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다" 작품 해설 중. 

 김연수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소품같은 책이라고 말했듯, 중편정도의 길이를 가지고서 펼쳐진다. 길지 않고 속도가 빠르며 사건 중심으로 휙휙 지나가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고 빨리 읽힌다. 몇가지 장면과 배경이 영화처럼 지나가고 나면 주인공들의 독백같은 대사가 몇마디 기억이 나고, 또 잠시 우리의 사랑이 언저리를 지나간다. 

냉소로 가득차 있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슬프고 저마다 이유가 있다. 엇갈리고 질투하고 못 믿으며 사실을 그 사람에게 확인하지 못하고 돌려돌려 확인하고, 지레 상처받으며 나도 모르는 새 나는 망가지고. 어떤 우유를 골라야 할 지 알 수 없었다고 한탄하고, 그 속에 담긴 메세지를 상대방은 얼핏이라도 감지하지 못하고, 또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이가 탄생한다. 젊었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흰머리에 잡담할 시간들이 되었다. 

몇가지 문화적 코드와 광고의 이미지들을 삽입해 세태소설에 가까워보이며 평론글이 이렇게 잘 읽히는 책도 간만이었고 하도 띄엄띄엄 읽어 감정 몰입이 잘 안됐어도 평론글이 이해가 잘 됐다. 평론가의 글에서 집어낸 부분들이 내가 마침 눈여겨보고 있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일까.

김연수의 새로운 장편은 두껍고 시대물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우선 패스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 얼마나 조사를 많이 했을까. 

김연수의 첫 초기작을 보고, 스무살 어쩌구 하는 책을 보고난 이후 김연수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으나 그간 나왔던 소설들을 한개도 챙겨보지 못했었는데, 역시 그의 따뜻한 냉소는 여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책의 맨 뒷 표지에 적혀있는 글이 참 괜찮았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 뿐이다.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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