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아, 방금 책을 다 읽었다. 백원담의 역자 후기를 읽기도 전에 냉큼 적어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찔끔찔끔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다. 벽제에서 광화문으로 오는 703번 버스 안에서 몇번이고 눈시울을 붉히다가 냉정을 되찾고 지금까지 쭈욱 다 읽어내려갔다. 아, 한스러운 인생이여.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나서 그 개운했던 기분. 가난이 일구어낸 애절한 아픔과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않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토록 개운했을리가 없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정말 위화에게 한번에 반해버렸었던 책이 바로 허삼관 매혈기였다.

살아간다는 것, 영화 인생으로 제작됐던 작품이다. 인생은 보지 않았지만 안보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책으로는 그저 상상일 따름이지만 직접 봤을때의 그 처절함은 쉬이 감당할 수 없는 그것이리라.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가난, 배고픔, 굶주림, 그리고 죽음. 역사의 뒤웅박에 흔들린 인생. 그래도, 살아있다, 살아간다, 살아진다. 내 생각에 원제목인 活著는 살아진다, 가 아닐까 한다. 내 의지로 살고 있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살아지니까 살아지는거다. 죽을 수 없어서 살아지니까.

그래도 사람의 훈훈함이 있다. 중국어로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명쾌한 문체에 딱딱 떨어지는 문장들. 경쾌하기까지 하다. 어긋나지 않는 비유들, 문학적인 아름다움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가슴이 메인다. 아주 짤막하게 가슴이 메인다.

"나는 안다. 황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는 것을. 나는 광활한 대지가 바야흐로 결실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모습이다. 여인이 자기 아이들을 부르듯, 대지가 어두운 밤이 내리도록 부르고 있는 것이다."

-294p <살아간다는 것> 위화.

좋은책, 고맙습니다. 소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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