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뻐?
도리스 되리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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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물 스타킹을 신은 여자와  
중남미 여류 작가들의 단편을 묶은 책이 떠오르는 여성 필독서.  

소설의 도입부는 반드시 흥미로워야 한다, 라는 소설작법의 예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서두. 그리고 흘러가는 감정선. 화자는 여성. 등장인물은 남성. 여성의 마음을 끊임없이 뒤흔들어놓는 남성은 마치 적처럼 느껴지고 어떤 관계든 만나게 되는 여성은 동지처럼 느껴진다.  

바꾸고 싶고 달라지고 싶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그러기 쉽지 않고 ㅁ차마 포맷할 수 없는 인생 때문에 괴롭고, 그러나 동지를 만나고 ... 또 의외로 쉽게 버릴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만난 그 사람은 또 반대의 입장에 서기도 하고 ...

남성/여성의 정치적인 우위, 관계, 같은 여성과의 우위... 모두가 알고 있고 모르고 싶은 일들을 세심하게 파내어 하나하나 읊어준다. 인종문제까지도. 그리고 이것은 현실.  

내가 살아온 30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아주 어릴적부터 하나하나. 내가 훔쳤던 친구의 바비인형 신발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다. 인종도 나라도 대륙도 다른 도리스 되리와 나는, 그녀가 그리는 주인공들과 나는 어쩌면 이렇게 닮아있는지. 각 단편들의 주인공 심리가 전부 이해되고 전부 겪었던 것 같고, 겪게 될 것 같고,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는 리스트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니핑크의 따뜻한 색감을 잊을 수가 없는데.  도리스 되리는 천재.

초파우에서 온 착한 카르마   
아니타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아니타 옆에는 창백한 금발의 남자가 서있었다. 사진이 찢겨나가, 남자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아니타는 샤를로테의 배에 얼굴을 묻고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그리고 잠시 후 아니타는 고개를 들어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트리니다드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지금 죽어서 누워있다. 나는 아직 젊고 예쁘다. 벌거벗은 몸 역시 아직 날씬하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의 직원처럼 생긴 두 여자가 내 몸에 붕대를 감는다. 숨도 못 쉴만큼 단단히.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겉으로는 사람 좋고 소탈해 보이려고 꽤나 애를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전의 우리 엄마보다 더 까탈스러워.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만족하지 않아. 내가 부엌을 치우고 나면 나중에  그녀가 다시 한번 치워. 내가 식탁을 차리면 그녀가 포크와 칼을 다시 가지런히 정리해. 빵을사오면 또 잘못 사왔다고 투덜거리지. " 
p39

오른쪽 위에는 해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세 가지 물건을 훔쳤다. 여덟살 때 바비인형의 분홍색 하이힐 한 켤레를 훔쳤고, 열 여덟살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만든 특이한 공예품 하나를 훔쳤다. 그리고 스물세 살 때, 나는 한 남자를 훔쳤다.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였다.

홍 부인에게 새 신을  
그날 밤 우린 둘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등을 돌린 채 거리를 두고 누워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한다. 나는 가만히 두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방 안은 조용하고 어둡다. 도시에 있을 때면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이 적막함이 늘 그리웠다.

누구세요? 
스물다섯번째 생일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나는 란츠베르크 오스트 인터체인지 뒤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옆 수풀에서 다시 나오면서 나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몸을 축 늘어드린 채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주름진 손등 위로 파리가 기어다녓다. 나는 그때까지 한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죽은 사람이 두려웠다. 그들의 냄새가 두려웠다.

쉭세 
데이브는 옆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올렸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저 머리칼, 윤기가 흐르는 숱 많은 검은 머리칼,... 남자의 머리칼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 머리칼, 그 머리칼만 보고 잇어도 우나는 무릎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흔들렸다. "나의 아름다운 데이브... 내 곁에 남아있을 거지, 언제까지나?  
... 모르겠어 ...

월요일의 호밀빵  
내가 뉴욕을 떠난 것은 이십년  전이었다. 친구 베스의 장례를 치르고 난 직후였다. 베스는 정확히 새천년이 되는 바로 그 시각,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날 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우리는 동갑이었다.

캐시미어 
처음 서로 알게 되었을 때 우린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곤 했다. 나는 그 사랑에 취해버렸고 나 스스로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토록 나를 좋아하는거지? 이 무지막짛한 비곗덩어리인 나를? 그는 뚱뚱한 내 몸을 정말로 좋아했다. 그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은, 오직 그 동안만은 나는 내 몸에 대해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그와 사랑을 나눌 때면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 나로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감각의 제국  
호텔 방값 역시 내가 지불할 것이다. 그는 빈털터리니까. 그는 아직 학생이다. 이 어리고 미숙한 남자아이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절망스럽다. 그리고 행복하다. 나는 얼굴 가득 환하게 웃는다. 동시에 나는 흐느낀다. 정말 끔찍한 상태이다. 온갖 상반된 감정들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러다가 미치치나 않을까 두렵다.


"부부간의 증오... 그게 어떤 건지 알아요? 그건 아주 특별한 종류의 증오에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죠. 난 부부사이에서 왜 살인이 일어나는지, 충분히 이해해요. 오히려 더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게 신기할 뿐이에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상대방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 따위가 아니에요. 가장 끔찍한 건 그런 살해욕을 느끼고 나서, 또 금세 새로 구입할 자동차의 색깔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다투고, 함께 잠을 자고, 뭐 먹고 싶냐고 묻고 하는 ... 그런 상황이에요. 그런 일관성없는 생각과 행동, 그건 정말 못 참겠어요. 정말 끔찍해요."    

"사람들이 화해를 하는 건 더 이상 그 사람이 밉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 피곤해서죠. 그렇지 않다곤 말하지 마세요."

신부 
나는 혼자 고메라의 해변에 앉아있었어요. 그는 수영을 하고 있었구요. 사실 그는 물 속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는데 ... 물이 너무 차가웠거든요. 하지만 그런 그를 내가 놀렸어요. 그리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요. 가끔 난 정말 미쳐버리곤 해요. 집에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앤서링 머신 테이프를 가지고 있어요.

원더나이프  
그날은 5월 5일이었다.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여 가만가만 그의 방으로 들어갔ㄷ다. 그의 사무실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에 하이힐이 푹푹 박혔다. 갑자기 완전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는 옷을 모두 벗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를 사랑해줘..." 그가 말했다.

저 세상
나를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는다. 금세 기억의 고통,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고통이 녹색의 금속성 액체처럼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 사람의 혀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의 혀에서 어렴풋이 피냄새가 난다.  

내 친구 
친구는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나느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유리창이 모두 검게 칠해져 있었다. 한참 동안 벨이 울린 후에야 친구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집 안은 폐허나 다름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모든 물건에 검은 색 레커를 칠해놓았다. 그의 양복, 텔레비전, 그의 책들, 심지어 자신이 사다놓은 요구르트까지 검게 칠해져 있었다. 카를이 가장 좋아하는 요구르트였다.

금붕어 
그녀는 엎드린 채 어항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앞에서 기묘한 기하학적 형상의 빨간 두 생명체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움직였다. 불룩 튀어나온 금붕어의 눈이 갑자기 그녀에게 바싹 다가왔다 멀어졌다. 흔들리는 물 속에서 햇빛이 춤을 추고 따스한 바람이 창가의 커튼을 펄럭였다.

나 이뻐?  
그가 내 몸을 만지는 동안 내 눈은 날아가는 새들을 좆는다. 그의 손이 점점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의 손이 갑자기 팬티 안으로 쑥 들어온다. 나는 물고기라도 잡듯 빠른 동작으로  그의 손을 잡는다'.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Please, please, you're so beatiful. you're driving me crazy ... " "forty eight dollars" 그가 콘솔박스 위에 지폐 몇장을 올려놓으며 낄낄거린다. "네 마음은 얼마지?"

만나
짐의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진다. 그가 내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나는 남편의 셔츠 단추를 풀고 눈을 감은 채 그의 가슴에 잎을 맞춘다. 내 몸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 내 머리칼 사이로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내 옷 속으로 들어온 짐의 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몸은 긴장하고 있다. 그의 살갗 냄새가 난다 .그 냄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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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3 - 비밀의 화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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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왕국3' 
 
"전화는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물체로 바뀌어, 깜짝 놀랐다. 역시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마법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조금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p102

(아주 평범한 말일지도 모르는데, 앞뒤 문맥과 어우러져 마음 깊이 공감하는 구절이 되었다.) 

 "저 말이지. 사람이 만났을 때는 어쩌다 왜 만나게 되었는지 다 의미가 있어. 숨겨져 있던 만남의 약속이 다 끝나 버리면, 무슨 수를 써도 다시는 같이 있을 수 없는거야."

-p112

(오늘, 사람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라는 것에 대한 질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답) 

 "나는 피해자다, 속았다, 상대가 너무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거짓이라도 잠시는 편하지만 사실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무거워진다.

살을 찢어발기는 듯해도 진실이 늘, 한결 낫다. "


-p115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듣고 있어도 적당히 얼버무리기라는 건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면 도저히 사실을 얘기할 용기가 안 생긴다. 그리고 내가 그 상대방을 이해할수록 더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신이치로 씨의 상황에 따라 여행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인연의 끈을 놓은 만큼 공간이 확실하게 넓어진다. 그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미 거기에는 좋은 향내가 풍기는 것이 찾아와 있다. "

p123
 
 

암리타에 이어, 요시모토 바나나는 정말이지.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경험을 쌓았을까.
책에서 빠져 나와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
꼭 한번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등장인물들. 
 
쫀쫀하게 탄력있는 스토리, 파고드는 감정선.
이해하는 것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공감 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그럴수록 바나나가 좋다. 

내가 살지 못한 삶, 살지 못할 것 같은 삶, 파고 들지 못할 것 같은 삶을  파고 들어 가장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 자신의 아우라가 너무 커서 어울릴 수 있는 부류들이 정해져있는 주인공들. 그런 삶, 자신에게 오롯이 올인할 수 있는 삶. 아프고 괴로워도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믿는 삶.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맞아 보이는 삶.  

그런 삶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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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2 - 아픔, 잃어버린 것의 그림자 그리고 마법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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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왕국 2,3 을 3분 만에 보이는 데로 집어왔다.
아니, 왜 8시에 닫는 도서관인가.
8시에 도착했는데 ㅠㅠ 

요시모토 바나나는 접신을 해본게 아닐까.
사람을 꿰뚫고 있는 시선들에 전율.
얼마만큼 특별한 경험을 해본 것일까에 전율.

못난이 3개 1000원
카스 맥주 1350원
진로 포도주 1890원 

뇌를 마비시키며 감성만 남게 하는 것이,
아리까리 한 것이 아주 책을 읽기 좋은 상태에 돌입.
내일은 왜 월요일인가. @#$$%%^

"안 그래도 우리는 아주 소박하게 사귀고 있었다.

우리 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거의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언제든 아메바처럼 형태를 바꾸니까. 둘이서 연애라는 식물을 키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쪽이 웃자라면 저쪽을 살짝 자르고  비가 오래 오면 화창한 날에 햇볕을 듬뿍 쪼여 주고, 어느 쪽이 물 주는 것을 깜짝 잊으면 한동안은 꼼꼼히 물을 주고, 그렇게 서로가 힘을 합해 조금씩, 커다랗게 키워 가는.

 
P41 왕국. 2

"왜 이렇게 좋아지는 것일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그는 사소하지만 늘 의외로움을 보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표정, 생각지도 못한 몸짓. 나르시시트는 아니지만 자신의 내면만 보고 생확해서인지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과 얼굴이 청결하기는 해도 그것은 바깥을 향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청결함이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각별했다. 눈이 가늘어지면서 덧니가 살짝 보이면, 아, 지금 그렇게 다시 한번 웃어봐, 하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의 허망함을 되새겼다.

그와 함께 있으면 무엇이 떠오를 듯 하다. 멀고 먼 옛날의 소중하고 그리운 무언가가.
...
지금이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연애라는, 아주 당연한 것을 나는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p44 왕국 2 

"이 도시에는 지금의 나 같은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 일은 바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엇에선가 동떨어져 있는 듯 어중간하게,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 모를 기분에 갇혀 지낸다.

밤을 어슴푸레 뒤덮고 있는 이 최면술 속에.

최면술 속에서 사람은 영원히 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는데 왠지 외롭고 왠지 부족하고 따분하고. 그러다 죽으면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최면술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눈을 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죽은 사람은 유령이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갖가지 절박함을 덜 느끼기 위해 유령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이 이 곳에는 많았다. 야생아인  나조차 이렇게 조금은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 "


P54

" 이 생활 속에는 그런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면도 있다. 마음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괴로움도 흐릿해진다. "

코렉트, 빙고!
나는 철저하게 자아와 세뇌의 힘을  믿는 편이다.
세뇌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어서 철저히 세뇌시킴으로서
괴로움을 흐릿하게 할 수 있다.
하고싶은가, 안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이게 일상을 공유하는 옆사람으로서는 꽤나 괴로운 모양이다.
뭘해도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니까 그렇지,
라는 대꾸를 듣는게 바람직하지는 않겠지.
나도 이걸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알아서
아무나에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어. 본인도 잘 생각해보면 그럴걸.

나도 잘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아의 힘은 의외로 대단하다.
안 느껴진다면 한번 테스트해보시길.
모든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모든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발생'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는  '지표'는 결국 내 안에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흑 술 다 떨어졌다.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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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기 5분 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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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중-고를 거치며 겪었던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학교가 삶의 전부였던, 학교와 친구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했던 고민들은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친구가 많은 아이가 되고 싶었고
후카처럼 존재 만으로도 사람들을 웃게 했던 그런 아이가 부럽기도 했었다.  

늘 100%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100%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생기는 순간 마음에 화르륵 불이 붙었었다.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주목받는,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 받는 아이가 미웠었다. 
남들이 왕따시키는 아이는 나도 왠지 싫었었다. 
무시당하는 느낌은 죽도록 받기 싫었었다.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어느 하루도 무난하게 지나간 날들이 없어 보였고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얼마나 괴로워하며 고민을 했었더랬는지.

다이어리는 쉽게 꽉꽉 차고 너무 괴로워서 일기장은 금새 폭주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신촌 엔젤리너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에미짱과 유카에게 나를 투영했고
스트레스성 안구질환도 오지 않았지만 받은 스트레스의 강도는 비슷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선물받으며 '이인칭'이라 처음엔 좀 어색한데 읽을수록 빠져든다고 해요,
나중엔 눈물도 난다던데요, 라는게 추천사였는데
꼭 그 말대로 내가 읽게 되었다.  

책의 화자는 나중에야 밝혀지고, 주인공 이름으로 글이 시작하지만 한 단락 뒤에 나타나는 "후미짱, 이제부터 네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라는, 다른 폰트로 씌여지는 글의 시작이 독특했다. 마지막 한 챕터는 나름대로 책의 반전이랄까.   

 책을 읽으며 이제 중 2학년인 내 동생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었다. 아무리 아이가 둔하다고 해도 친구 관계가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친구'로서의 '나'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누구든 한번은 하지 않을까.  

에미짱의 교통사고로부터 사건은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의 '학생'들이 하나씩 등장해 이야기를 펼쳐간다.
하나하나 친구를 소개받듯, 에미짱으로부터 유카, 후미짱, 니카니시, 호타, 미요시, 하나, 사토, 니시무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함께 나의 학교생활이 스쳐 지나간다.
꼭 한번에 읽어야 이야기에 잔뜩 몰입되어 마지막까지 에미짱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눈물 한 방울쯤 흘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담담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고민들이 꼭 내가 했던 고민들이라 너무너무 공감하게 된다.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아무도 초콜릿을 안 주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초콜릿을 못 받음 비참한 심정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잘 감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p202 사토의 독백.  

"너는 평화를 좋아한다. '전쟁'으로 이기는 것보다 '평화'를 유지한 채 적당히 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p92 호타 편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노, 땡스. 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관계는 지금도 어렵지만, 집단 속에서 '모두'와 함께 잘 지내야했던 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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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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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부분은 77페이지다. 물론 나는 술책을 동원하고 있다.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나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가 일단 발음되고 쓰이면, 출구와 비상구를 메워버리고 확실성이라 불리는 창살을 창에서 떼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라폴레트crapoleette'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그것은 사초 바네티 사건과 이민 문제의 중심 요소일 뿐 실제의 의미는 없다. 따라서 이 단어에는 희망이 있다. 익숙해진 일상적 의미가 없으므로 뭔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언어와 언어 사이의 공백이 그런 기회를 줄 것이므로 나는 이 책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

 

*사초 바네티 사건 : 1920년 미국 보스턴에서 강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이탈리아인 사초와 반체티가 가난하고 급진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사건.

 

p118-119

 

 

이따금 상당히 강렬한 고통이 찾아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크리스티안센 박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불안이었지만 그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알리에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탁자, 벽에게 다가가 그것들을 쓰다듬곤 했다. 그것ㄷ르이 일상적이고 익숙해진 착한 개들이라는 것, 내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한테 납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형태가 사람의 부재를 표상하는 듯 했기 때문에 의자들은 특히 나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p 131

 

나는 익명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익명의 시골 익명의 망ㄹ에서 익명의 여자와 익명의 사랑을 나누어 역시 익명의 가족을 이루고 익명의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익명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두렵다. 내무부 장관이 두렵다. 내무부 장관은 종국에는 사람의 내면까지 알아내는 법이니까.

 

p137

 

아자르, 다른 변호사를 찾다보시오.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떼겠소. 당신이 이미 나에게 말한 걸 살펴봅시다. 예의 약국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도 당신의 소행이고, 서른두 건의 노인 폭행 사건을 저지른 사람도 당신이오. 당신의 진짜 이름은 하밀 라자이고, 신원 미상의 신부를 낙태시켰으며, 포주이자 비밀경찰이오. 바로 당신이 벤 바르카이자 CIA 요원이자 KGB요원이오. 지금 말한 그 새끼 고양이 거늘 제외한다 해도 말이오. 혹시 원자폭탄도 당신 소행 아니오?

 

p138

 

할아버지는 자기 아내가 유태인이라서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코사크이이긴 했지만 반 유태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아내를 싫어한 것은 자신이 그녀를 학대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내에 대한 학대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원한도 심해졌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심리 아니겠는가.

 

p150

 

나는 비단뱀이 되었다가 그 다음에는 어딘가에 덜 소속되기 위해 책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장악하고 저작권을 챙겼다. 내 안에는 서로 싸우는 두 사람, 내가 아닌 인물과 내가 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죄의식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며 줄곧 나를 압박했고, 주위에서는 일상성과 익숙함이 계속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좀 더 멀어지기 위해 날마다 나 아닌 존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p 154

 

변호사는 네개가 된 내 눈 사이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게는 눈이 둘 뿐이다. 하나는 나를 감추기 위한 것이고 하나는 나를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상태가 좋지 앟을 때면 내 눈은 50쌍이 된다. 그래서 도처에 있는 익숙함과 일상을 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p186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해
에밀 아자르가 되어 쓴 자기앞의 생으로 큰 상도 받았다. 

왜 이렇게 했을까, 라는 질문으로 두 세명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전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낸 의견이 이미 굳혀진 자신의 네임밸류와 이미지를 깨고 자유롭게 쓰고 싶은 작품을 쓰기 위해, 였다.

아마도 소설가의 고민이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일반인의 상상이라고 생각된다.

 

가면의 생은 에밀 아자르 장편소설이라는 저자명과 장르를 달고 있으나 ... 로맹가리의 이야기이고 자전적인 수필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 책은 소설가의 각오나 빵굽는 타자기보다 가장 소설가의 고민이 제대로 담겨있다.

읽는 내내 우리는 숨기고 무시하고 감추고 살 뿐 로맹가리가 했던 고민들을 약소하게든 거대하게든 소유하고 있으며 애써 사회에 맞춰가려고 할 뿐이지 언제든 순식간에 정신병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초반에는 정말 미쳤구나, 정신병자의 독백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중반으로 갈수록 공감을, 결론으로 갈수록 로맹가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은, 그런 기분. 논리적으로 인간을 파헤쳐야 하는 소설가의 예민함이 필수가 아닌 직장인이라 멀쩡할 뿐이라는 그런 생각.

 

그리고 삶에 가장 위로와 치료가 되는 것은 정신병자들의 회고록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일관적인 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내 안의 수많은 모습들을 통일되게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쏟고 있는가에 대한 것들은.

 

나이가 들면 잠 대신 잡생각들이 덮쳐온다고 한다.

내 한 생애 동안 저지른 일들과

남에게 준 상처와

나답지 않게 행동했던 것들과

나이들며 변하는 가치관들과의 괴리와

기억하는 어린시절 등은

노인이 된 나를 얼마나 괴롭힐 것인가.

얼마나 반성을 요하며 괴롭힐 것인가.

 

일말의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추후 맞다고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면 좋겠지만

힘들어보인다.

 

자기 자신을 올곧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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