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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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약을 두번이나 걸어서 겨우겨우 빌린 책이라 그런지 독후감 쓰기도 쉽지 않네. 두번이나 날려버리고 다시 쓰는 글을 역시 쓰고싶지 않지만 분명이 지금 미루면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될 것 같아 겨우겨우 쓰고 있다. 자꾸 잊어버리는 기억력 덕분에 독서 노트는 반드시 써야한다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일본소설은 지겨워, 라고 친구와 말했던 게 불과 얼마전. 그래도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네임밸류때문에 신간이 나오면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엔 또 무슨 얘기를 펼쳐놓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요시다의 악인이 그려낸 인간의 밑바닥. 오쿠다 히데오나 이시다 이라 같은 작가들이 연이어 내놓는 인간의 밑바닥, 그 어두운 심연은 정말 우울했는데, 책 띠가 말해주듯, 이제 다시 연애다! 라는 것도 궁금했다.

역자인 이영미씨의 역자 후기가 없었더라면 나는 또 그냥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소재가 독특한 것도 아니고, 분명한 흐름은 있지만 뚜렷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 또 여전히 소소한 인간사를 그려낸 이 책은 그냥 또 기억 속 저 먼곳으로 스쳐갔으리라. 이영미씨의 분석에 감사드린다.

이영미씨가 지적했듯 이 책은 두가지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다큐멘터리 pd, 혹은 작가, 기자인 듯한 남자 주인공과 배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여자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 그리고 하나는 바미안 대불 폭파 사건을 취재하는 이야기의 흐름이다. 문득 기억나는 대만 드라마 심정 밀마. 주유민과 박은혜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중국어를 못하는 박은혜를 아예 벙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어색한 더빙보다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말 못하는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극히 평면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말과 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나, 감정이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소재로 말이다.

상상해보자. 내가 말을 하고 그가 말을 못한다. 말이면 블라블라 잔뜩 싸울 수도 있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면 우선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그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있는 동안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부터 막막해진다. 맘에 쌓인 일이 있을때 해소의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다보면 자꾸자꾸 퇴고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정도 맘이 풀리게 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결국 글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 냉정해짐을 알 수 있으리라. 잘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도 한데, 아무튼 이 커뮤니케이션은 장단점이 있어 보인다. 오해를 불러일으킬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말이나 글이나 거기서 거기일지도. 또한 침묵의 세계는 오히려 훨씬 냉정할지도.

말을 할 줄 아는 첫번째 여자친구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주인공 화자가 느끼는 것은 다음과 같다.



히로미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뭐야, 뭐라고 말 좀 해! 할말 있으면 해보란 말이야!" 라고 소리치며 침대를 걷어찼다.
시끄러워.
나는 또다시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끄러워.
삐걱거리는 스프링도, 자기가 승자라는 걸 아는 주제에 패자에게 패배를 인정시키려 하는 그 목소리도.
시끄러워.

p22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교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에 교코를 남겨두고 의미 없이 떠들어대고 온 것이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솔직히 시끄러운 가게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옛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한 덕분에 해방감을 느낀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떠들면 떠들수록 뭔가가 가벼워졌다. 그런 마음을 왠지 교코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교코의 고요함에 무엇으로 저항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 같다.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큰소리를 들은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누군가 큰소리를 치면 나도 큰 소리를 쳐주면 끝났다.

그렇다, 너무나 단순명료한 일이었는데, 소리치지 않는 교코의 마음을, 좀 더 말하면 너무나 고요한 교코의 마음에 어떻게 하면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서 답을 찾고 망설이고 초조해하고, 그리고 왠지 모르게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교코에게 전한다 해도, '지나친 생각이야'라는 메모만 건네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납득해버리는 건 왠지 비겁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왜 비겁한지는 모르지만, 단념하는 것은 늘 강한 입장에 선 자의 특권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p67-68



이 다음 벚꽃놀이 에피소드에서 들을 수 있는 세계와 들을 수 없는 세계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취재 과정이 있었을까. 철저히 들을 수 있는 세계의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어느게 진실이고 어느게 거짓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현실세계의 이야기, 세계 문화 유적의 폭파 사건에 대해 써 둔 구절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마음에 남아 페이지 끝을 접어두었다. 내용인 즉슨,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아는 채로 놔두었다.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뿐이고, 그 괴로움을 상상하지 않았다.

p176
우리는 늘 이렇게 무심하게 중요한 일들을 넘기곤 한다. 그리고 계속 그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또 한구절, 주인공의 세심함. 이런 세심한 남자가 진짜 있을까? 




천천히 대답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교코의 귀가 불편하다는 얘기를 부모님에게 전화로 전할 자신이 없었다. 단순한 순서 차이이긴 하지만, 귀가 안 들리는 애인으로 교코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교코라는 애인의 귀가 불편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중략....

'요즘 세상에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직설적인 사람이 없으니까 불쾌한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은 거야.'

교코가 써내려가는 글씨를 바라보면서도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것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교코가 거기까지 쓴 메모장을 찢어서 둥글게 말더니 새 종이에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당신은 귀가 들리지만, 그런건 신경쓰지 않아요'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그렇게 쓴 메모를 보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늘 그런 소릴 들어. 당신은 귀가 불편하지만, 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라고들 하지.'

p125


일련의 에피소드, 각각의 소재에서 드러나는 차이들, 문제점들, 그리고 전해지지 않는 마음들. 엇갈리는 생각들. 배려가 불편이 되는 순간들이 속속 발생한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다 이겨냈을까. 어찌, 잘 되었을까.

말과 말이 부딪히는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운데, 말과 글이 어우러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오죽 어려울까. 그렇지만 또 같은 것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은 성의인 것이다. 얼마나 전달하고 싶은가, 그 메세지는 분명한가, 전달하는 방식은 어떤가. 말과 글은 도구일 뿐, 결국은 마음이 아닐까.



아까 탈의실에서 100엔 동전을 준 젊은 호스트 얘기를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교코에게 하고 싶었지만, 메모장은 그녀의 가방 속에 있었고, 젖은 손으로 펜을 쥐는 것도 번거로웠다.

p126

아직도 내게는 너무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성의와 진심, 전하고자 하는 마음만 우선 갖추고 전달하는 방법은 살아가면서 배우기로 한다. 차츰 차츰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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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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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중그네와 인더풀로 유쾌한 작가, 이미지를 고수해온 오쿠다 히데오. 방해자를 시작으로 몇가지 최근작을 읽다보니 이럴수가, 유쾌한 작가가 아니었다. 이시다 이라와 버금갈 정도로 날카롭고 잔인하게 사람 심리를 파고 들어 아프게 콕콕 찌르고 있었다.  

이미 나에게 유쾌한 작가, 라는 인식은 떠난지 오래.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라는 제목을 보면서도 다소 불안한 채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존이 그 존인줄도 모르고, 읽어내려가다 어랍쇼, 하고 깜짝 놀랐다. 존은 비틀즈의 그 존이었던 것이었다. 오노 요코에 대한 다른 멤버들의 악감정도 얼핏 비쳐지고 다만, 그 오노 요코보다 예술가적인 기질은 훨씬 드문 여성이 아내였다는 게 좀 다를까. 아들에 대한 사랑도 그대로였다.  

작가 후기에 보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존의 은둔 생활은 시작됐고 그 사이의 행적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아내의 고향인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어 매년 여름은 가루이자와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 가루이자와에서의 휴가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존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씌여진 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젊어서 내가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은 당사자나는 잃어버릴 망정 가해자는 잊을 수 었게 된다. 젊어서, 철이 없어서 그랬다고 했을지언정 그건 내게 면죄부가 되지 않고 오로지 맘을 아프게하는 상채기가 될 뿐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존도,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아사다 지로의 스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떠오르게 했다. 팝스타 존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을 만나고 쓰바키야마 과장은 저 세상에 갔다가 현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다를 뿐.  현세든 저 세상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사함을 바란다.  

 공중그네와 인더풀의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 샘과는 조금 다르지만 왠지 그 쌤을 떠올리게 하는 의사 쌤도 등장하고 일본말과 영어로 대화하는 가정부도 재밌다. 게다가, 변비로 고생하는 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이 책을 읽는 이 삼일 간, 신기하게도 같이 변비에 걸려 고생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희극적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지저분하기도 하고. 크크. 오쿠다 히데오 답기도 하고.  

"전 진실이 최고라고 믿진 않습니다. 거짓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p328  의사 쌤의 말.  

맞습니다, 맞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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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3 - 비밀의 화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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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왕국3' 
 
"전화는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물체로 바뀌어, 깜짝 놀랐다. 역시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마법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조금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p102

(아주 평범한 말일지도 모르는데, 앞뒤 문맥과 어우러져 마음 깊이 공감하는 구절이 되었다.) 

 "저 말이지. 사람이 만났을 때는 어쩌다 왜 만나게 되었는지 다 의미가 있어. 숨겨져 있던 만남의 약속이 다 끝나 버리면, 무슨 수를 써도 다시는 같이 있을 수 없는거야."

-p112

(오늘, 사람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라는 것에 대한 질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답) 

 "나는 피해자다, 속았다, 상대가 너무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거짓이라도 잠시는 편하지만 사실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무거워진다.

살을 찢어발기는 듯해도 진실이 늘, 한결 낫다. "


-p115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듣고 있어도 적당히 얼버무리기라는 건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면 도저히 사실을 얘기할 용기가 안 생긴다. 그리고 내가 그 상대방을 이해할수록 더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신이치로 씨의 상황에 따라 여행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인연의 끈을 놓은 만큼 공간이 확실하게 넓어진다. 그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미 거기에는 좋은 향내가 풍기는 것이 찾아와 있다. "

p123
 
 

암리타에 이어, 요시모토 바나나는 정말이지.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경험을 쌓았을까.
책에서 빠져 나와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
꼭 한번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등장인물들. 
 
쫀쫀하게 탄력있는 스토리, 파고드는 감정선.
이해하는 것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공감 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그럴수록 바나나가 좋다. 

내가 살지 못한 삶, 살지 못할 것 같은 삶, 파고 들지 못할 것 같은 삶을  파고 들어 가장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 자신의 아우라가 너무 커서 어울릴 수 있는 부류들이 정해져있는 주인공들. 그런 삶, 자신에게 오롯이 올인할 수 있는 삶. 아프고 괴로워도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믿는 삶.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맞아 보이는 삶.  

그런 삶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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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2 - 아픔, 잃어버린 것의 그림자 그리고 마법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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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왕국 2,3 을 3분 만에 보이는 데로 집어왔다.
아니, 왜 8시에 닫는 도서관인가.
8시에 도착했는데 ㅠㅠ 

요시모토 바나나는 접신을 해본게 아닐까.
사람을 꿰뚫고 있는 시선들에 전율.
얼마만큼 특별한 경험을 해본 것일까에 전율.

못난이 3개 1000원
카스 맥주 1350원
진로 포도주 1890원 

뇌를 마비시키며 감성만 남게 하는 것이,
아리까리 한 것이 아주 책을 읽기 좋은 상태에 돌입.
내일은 왜 월요일인가. @#$$%%^

"안 그래도 우리는 아주 소박하게 사귀고 있었다.

우리 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거의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언제든 아메바처럼 형태를 바꾸니까. 둘이서 연애라는 식물을 키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쪽이 웃자라면 저쪽을 살짝 자르고  비가 오래 오면 화창한 날에 햇볕을 듬뿍 쪼여 주고, 어느 쪽이 물 주는 것을 깜짝 잊으면 한동안은 꼼꼼히 물을 주고, 그렇게 서로가 힘을 합해 조금씩, 커다랗게 키워 가는.

 
P41 왕국. 2

"왜 이렇게 좋아지는 것일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그는 사소하지만 늘 의외로움을 보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표정, 생각지도 못한 몸짓. 나르시시트는 아니지만 자신의 내면만 보고 생확해서인지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과 얼굴이 청결하기는 해도 그것은 바깥을 향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청결함이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각별했다. 눈이 가늘어지면서 덧니가 살짝 보이면, 아, 지금 그렇게 다시 한번 웃어봐, 하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의 허망함을 되새겼다.

그와 함께 있으면 무엇이 떠오를 듯 하다. 멀고 먼 옛날의 소중하고 그리운 무언가가.
...
지금이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연애라는, 아주 당연한 것을 나는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p44 왕국 2 

"이 도시에는 지금의 나 같은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 일은 바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엇에선가 동떨어져 있는 듯 어중간하게,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 모를 기분에 갇혀 지낸다.

밤을 어슴푸레 뒤덮고 있는 이 최면술 속에.

최면술 속에서 사람은 영원히 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는데 왠지 외롭고 왠지 부족하고 따분하고. 그러다 죽으면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최면술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눈을 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죽은 사람은 유령이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갖가지 절박함을 덜 느끼기 위해 유령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이 이 곳에는 많았다. 야생아인  나조차 이렇게 조금은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 "


P54

" 이 생활 속에는 그런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면도 있다. 마음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괴로움도 흐릿해진다. "

코렉트, 빙고!
나는 철저하게 자아와 세뇌의 힘을  믿는 편이다.
세뇌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어서 철저히 세뇌시킴으로서
괴로움을 흐릿하게 할 수 있다.
하고싶은가, 안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이게 일상을 공유하는 옆사람으로서는 꽤나 괴로운 모양이다.
뭘해도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니까 그렇지,
라는 대꾸를 듣는게 바람직하지는 않겠지.
나도 이걸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알아서
아무나에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어. 본인도 잘 생각해보면 그럴걸.

나도 잘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아의 힘은 의외로 대단하다.
안 느껴진다면 한번 테스트해보시길.
모든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모든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발생'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는  '지표'는 결국 내 안에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흑 술 다 떨어졌다.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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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기 5분 전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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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중-고를 거치며 겪었던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학교가 삶의 전부였던, 학교와 친구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했던 고민들은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친구가 많은 아이가 되고 싶었고
후카처럼 존재 만으로도 사람들을 웃게 했던 그런 아이가 부럽기도 했었다.  

늘 100%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100%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생기는 순간 마음에 화르륵 불이 붙었었다.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주목받는, 선생님과 농담을 주고 받는 아이가 미웠었다. 
남들이 왕따시키는 아이는 나도 왠지 싫었었다. 
무시당하는 느낌은 죽도록 받기 싫었었다.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어느 하루도 무난하게 지나간 날들이 없어 보였고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얼마나 괴로워하며 고민을 했었더랬는지.

다이어리는 쉽게 꽉꽉 차고 너무 괴로워서 일기장은 금새 폭주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신촌 엔젤리너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에미짱과 유카에게 나를 투영했고
스트레스성 안구질환도 오지 않았지만 받은 스트레스의 강도는 비슷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선물받으며 '이인칭'이라 처음엔 좀 어색한데 읽을수록 빠져든다고 해요,
나중엔 눈물도 난다던데요, 라는게 추천사였는데
꼭 그 말대로 내가 읽게 되었다.  

책의 화자는 나중에야 밝혀지고, 주인공 이름으로 글이 시작하지만 한 단락 뒤에 나타나는 "후미짱, 이제부터 네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라는, 다른 폰트로 씌여지는 글의 시작이 독특했다. 마지막 한 챕터는 나름대로 책의 반전이랄까.   

 책을 읽으며 이제 중 2학년인 내 동생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었다. 아무리 아이가 둔하다고 해도 친구 관계가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친구'로서의 '나'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누구든 한번은 하지 않을까.  

에미짱의 교통사고로부터 사건은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의 '학생'들이 하나씩 등장해 이야기를 펼쳐간다.
하나하나 친구를 소개받듯, 에미짱으로부터 유카, 후미짱, 니카니시, 호타, 미요시, 하나, 사토, 니시무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함께 나의 학교생활이 스쳐 지나간다.
꼭 한번에 읽어야 이야기에 잔뜩 몰입되어 마지막까지 에미짱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눈물 한 방울쯤 흘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담담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고민들이 꼭 내가 했던 고민들이라 너무너무 공감하게 된다.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아무도 초콜릿을 안 주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초콜릿을 못 받음 비참한 심정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잘 감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p202 사토의 독백.  

"너는 평화를 좋아한다. '전쟁'으로 이기는 것보다 '평화'를 유지한 채 적당히 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p92 호타 편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노, 땡스. 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관계는 지금도 어렵지만, 집단 속에서 '모두'와 함께 잘 지내야했던 그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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