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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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이른바 [고전]'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야냥을 받는다. 분명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고전이 전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시대에 맞는 구체성보다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쓰인 책이 이른바 고전으로 전해지게 되어 오늘날 이렇게 고전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야냥을 받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은 이런 고전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고전에 '칼집'을 넣은 책이다. 사실 되도록 원전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아무도 고전을 찾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칼집'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씁씁함을 감출 수 없다. 또한 그나마 제대로 '칼집'이 된 책을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청소년 용으로 나오는 책들은 이리 저리 난잡한 '칼집'으로 본래의 뜻을 찾기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 만큼은 제대로 '칼집'을 넣은 책으로 고전에 담긴 의미는 잘 살리면서도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게 잘 버무려 놓았다. 하지만 원전을 읽지 않는다면 수박 겉 햝기에 불과하므로 다음에 [논어] 원전을 찾아 읽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형 서점에서 동양 철학의 [논어]를 찾으면 너무도 많은 책이 있어 놀라게 된다.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의 경우 원문 보다는 이를 해설한 '주석'이 중요한데 사람마다 논어 원문을 해설하는 주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책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정통적인 논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배병삼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김학주의 [논어], 유교경전번역총서 편찬위원회의 [논어], 도올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세트]가 좋은 논어 책이라고 생각된다. 배병삼 교수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는 한글 세대를 위해 쉬운 우리말로 풀다보니 의역이 좀 심한 느낌이 있지만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쓰면서도 원문에 비교적 충실하였고 김학주의 [논어]는 딱딱하긴 하지만 원문에 충실한 직역이 돋보이며 유교경전번역총서 편찬위원회의 [논어]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번역한 것으로 가장 정통적인 논어 번역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도올의 [논어한글역주세트]는 도올 김용옥의 엄청난 노력이 담긴 역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각설하고 이제 이 책 내용을 살펴볼까 한다. 3번째 챕터인 문명을 숨을 쉰다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팔일 편에서는 글쓴이는 공자는 사회를 버리고 자기 몸의 안전만 취하는 이기주의와 국가가 개인을 위협하는 폭력인 전체주의 사이에서 이른바 중용을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말한다.(p.71) 일단 [논어] 속에서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에 대한 공자의 부정적 시각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글쓴이가 지적하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찾기는 힘든 일 같다. 공자의 비판은 전체주의에 대한 것보다는 민생과 상관없이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전쟁을 거듭하는 잘못된 정치에 대한 비판이지 이를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것은 '전체주의'란 단어에 대해 글쓴이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공'이라는 제자-공야장 편에서는 [논어] 9장 12편의 아래 내용을 단순히 돈에 밝은 자공의 재능과 그를 둘러싼 상업적 환경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p.86) 이렇게 단순히 볼 것이 아니라 공자는 자신의 재능을 썩힐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뜻을 펼쳐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옳은 해설이라고 보인다. 이런 해석이 은둔자와 이기주의에 대한 공자의 일관된 부정적 시각에 알맞는 해설로 보여진다.

 

 자공이 여주었다. "아름다운 구슬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궤짝 속에다 감춰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값에 팔아야 할까요?"

 공자 말씀하시다. "팔아야지. 팔아야 하고 말고! 다만 난 제값에 팔리길 기다릴 뿐이다."(p.80)

 

 이어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국가에 대한 충성' 사이에 등호를 그리는 이른바 충효 사상은 [논어]와 상관없는 후대 천하통일 시대의 논리라는 지적은 놀랍다. 즉, [논어]에서의 충(忠)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성실성'을 뜻하는 말인데 비해 이것이 임금에 대한 충성의 뜻으로 쓰인 것은 전국 시대의 [순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p.110) 나는 국민 의례나 애국가 제창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국민 의례 할 때도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고 애국자 제창할 때도 그냥 가만히 있곤 한다. 이렇게 국가에 대해 충성심은 이런 요식행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개인을 위해줄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어서 공자 당대에도 공자의 가르침이 먹고 사는 현실적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p.206) [논어] 13장 4절에서는 번지가 농사 기술에 대해 공자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는 자신은 농사 기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번지 보고 소인배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시대 정신이 요구하는 바는 농사 기술이 아니라 농사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데 있다는 점을 공자는 지적한 것이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자의 사상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곤 하는데 당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런 전문 기술보다는 전문 기술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정치/사회적 안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다만 곳곳에서 글쓴이의 현 시대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는데 글쓴이는 이와 같이 비판한다. "결국 바른 색깔을 흩트리는 간색(間色), 노래 중에서도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럽히는 사태, 그리고 겉치레 말로 여론을 오도하여 끝내 공동체를 망치는 언어와 실천 간의 괴를 증오한다는 것이다."(p.256) 여기서 앞에서 말하는 간색(間色)은 비유니까 그렇다 쳐도 두번째 구절인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럽힌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글쓴이의 주장 속에는 클래식이 대중가요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숨겨져 있다. 클래식이 최고의 음악이라고 믿는가? 새로운 해석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악보 중심주의, 관객과 연주자를 완전히 분리시켜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클래식 음악회의 풍경, 어느 누구도 길 가며 MP3를 통해 클래식을 듣지 않아 대중에서 외면받고 새로운 클래식 작곡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은 클래식은 이미 '죽은' 음악이자 박제된 음악이다. 그런데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렵힌다니…. 글쓴이의 클래식 중심주의, 좀 더 나아가 서양중심주의에는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른바 동양 철학을 했다는 분이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이 책은 [논어]라는 고전에 잘 '칼집'을 내어 청소년이 먹기 좋게 만들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논어]를 접하고 이후 원전을 통해 논어를 이해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인(仁)을 추구하여 군자(君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은 철학보다는 윤리 혹은 사상으로 보아야 하는바 [논어]를 읽어도 이를 실천할 수 없다면 [논어]를 읽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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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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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인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다 읽게 되었다. 왠만하면 앞서  <일리아스> 서평에 썼었던 중복된 내용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도 혹시라도 수많은 <오뒷세이아> 혹은 <오딧세이아> 번역본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나라 번역 현실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번역본의 가장 큰 명제는 언제나 가장 좋은 번역본은 해당 언어에 능통하면서 해당 분야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사람이 직접 번역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인문/사회 분야 책은 많은 옮긴이의 노력 끝에 좋은 번역서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대표적으로 나는 김만수 교수가 번역한 <전쟁론>의 번역본을 보고 이건 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했었다. 최초로 독일어→한국어로 번역한 완역본인데다가 거의 책의 1/3을 차지하는 옮긴이의 주석은 옮긴이의 정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너무 많은 주석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긴 한다.)

 

 하지만 자연과학 책의 번역 현실은 굉장히 취약하다. 대표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 최악의 번역본으로 꼽는 책이 바로 도올 김용옥의 형님인 김용준 선생이 번역한 <부분과 전체>이다. 이건 진짜 번역도 책도 아니다!! 대체 왜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별점을 높게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김용준 교수의 다른 '한글' 책들은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한 챕터는 구어체를 쓰고 다른 챕터는 문어체를 쓰는 등 딱 봐도 각 챕터마다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줘서 번역한 것이 눈에 띄는데 왜 사람들은 별점을 높게 주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책이 <서울대 100권 추천 도서>에 포함된 것을 보고 내가 멍청해서 이해 못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높은 평점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좋은 번역본과 옮긴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을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기 위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감히 나는 그리스/라틴 고전 번역에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좋은 옮긴이는 <천병희> 교수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가장 깔끔하다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YES24에 올라온 천병희 교수의 번역관을 아래 그대로 옮겨 왔다.

 

"다른 고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 라틴 고전들도 원전으로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작가 또는 저자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정확히 알아야 우리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자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입학하자마자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계속해서 배우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라틴 고전을 편역하는 수준을 넘어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잘된 우리말 번역이 잘된 영역이나 독역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원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어를 배운 지가 벌써 50년이 훨씬 넘었고 번역할 때면 영역 몇 가지와 독역 몇 가지를 참고하니까 계속해서 독일어와 함께하는데도,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잘된 독역이라도 읽어 보면 알쏭달쏭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빗대어 말하자면, 외국어 번역을 읽는 것이 달밤에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면, 우리말 번역을 읽는 것은 대낮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일 경우 말입니다."

 

 결국 가장 좋은 길은 해당 언어를 배워 원전을 읽는 것이고 차선책으로는 한글 완역본을 읽는 것이고 그조차 안 되면 영역본이나 중역본을 읽으라는 말이다. 그 만큼 자신의 번역본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지만 이 책에서도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2006년에 주석을 첨가하면서 증가된 주석 번호를 그대로 두어 잘못된 주석을 찾아가게 하는 잘못은 여전하다. 또한 왠만하면 지도 하나 정도는 첨부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단순히 어떤 지명이 어디에 있다고 주석에서 설명하면 그냥 읽고 넘어가지만 지도가 같이 있다면 좀 더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일리아스>와 비교해보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뒷세이아>는 일종의 모험담에 가까워서 단순히 영웅담에 그쳤던 <일리아스> 보다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나는 이 두 개의 서사시가 같은 인물이 썼다는 점에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했고 이 책 뒷편에 있는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라는 글에서도 말하듯이 이상화된 자연이 있는 <일리아스>와 달리 <오뒷세이아>에서는 자연의 힘 앞에 주인공은 무력하며 비유 역시 <오뒷세이아>에서 훨씬 적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일리아스>에서는 사납고 자제력 없고 굽힐 줄 모르고 오직 불멸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아킬레우스가 이상적 인물로 그려져 있는 데 반해 <오뒷세이아>에서는 참을성 많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오뒷세우스가 이상적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일리아스>가 쓰여질 당시에는 용감한 군인이 필요했던 사회적 배경에 비해 <오뒷세이아>가 쓰여질 당시에는 참을성과 임기응변에 능하고 모험심이 강한 바다 사나이가 필요했던 사회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토(Mentor)가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로 떠나며 자기의 재산을 관리해 줄 것을 부탁한 친구로 후에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훌륭한 조언도 해준 맨토르(Mentor)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만큼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미치는 영향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 번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와 함께 호메로스가 안내하는 세계로 탐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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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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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라틴 고전을 읽으려고 큰 서점에 가서 살펴보면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떤 번역본이 가장 좋은 번역본인지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라틴 고전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번역본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번역자가 <천병희> 선생님인 것을 찾는 것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끊임없이 그리스/라틴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 분의 번역이 가장 깔끔하다는 것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여기서도 깔끔한 번역과 편집은 빛을 발한다. 특히 행을 표시하고 우리나라와 원문 사이의 행을 최대한 맞출려고 노력한 점이나 현존하는 그리스 문헌이 아티케 방언을 따르고 있으므로 번역본에서도 아티케 방언을 사용한 점이나 자음이 중복되는 경우 둘 다 읽어주는 것은 최대한 원어와 비슷하게 음절 표기를 하려는 노력이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즉 오디세이아→오뒷세이아 이렇게 표시하여 낯설게 느껴지지만 라틴어어 그리스어는 모든 자음을 있는 그대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다만 2006년에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주석을 추가한 것 같은데 제 19권의 4번째 주석은 제 8권의 9번 주석을 참고해야 하는데 제 8권의 8번 주석을 참고하라고 적혀 있어 추가한 주석 증가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깔끔하게 번역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자그마한 오탈자나 잘못된 표시가 있는 경우 그 책에 대한 인상이 바뀌기 쉽다. 개정판에서는 이를 수정하기를 바란다.

 

 각설하고 먼저 글쓴이인 호메로스(Homeros)에 대해 살펴보면 이른바 <호메로스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른바 호메로스가 과연 한 명이냐 다수냐 하는 문제인데 처음에는 다수라는 의견이 힘을 받다가 근래 한 명이라는 의견이 대두되어 현재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어찌되었건 다수의 학자는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 말경에 활동하였으며 활동 장소는 이오니아 지방이라는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그가 남긴 서사시 두 편이 바로 <일리아스><오뒷세이아>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은 이른바 [트로이아 서사시권]에 속해있다. 즉, 우리가 아는 '가장 예쁜 여신에게'라고 쓰여진 황금 사과로부터 트로이 전쟁,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여행 등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포함하는 총 8개의 서사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일리아스>를 읽을 때 황당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부터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부터 <일리아스>는 시작되어 헥토르의 장례로 끝나는 것이다. 미리 신화나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난감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트로이의 별명인 'Ilios'부터 유래된 <Ilias>는 15000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쳐 호메로스는 최고(最古)의 시인으로 숭상 받고 있는 것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비판한 점도 있지만… 이 서사시가 대략 기원전 8세기 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플롯이나 구성 등에 대한 비판은 부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우연히 물리적으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꾸준히 인용되고 읽혀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서사시이다. 현재 우리 나라 글 중에 기원전 8세기의 것이 남아 있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남아 있는 고전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에 중심을 두고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철학자 플라톤은 비교육적이라고 호메로스를 비판했지만 <일리아스>가 주는 교훈에 집중해서 읽는다면 기존 문학과 다른 서사시가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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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1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으로 암향부동님의 서재에 와서 모든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부동님이 읽으신 책들 중에 고전 몇 권 보이네요ㅎㅎ
저도 사실 고전을 좋아하거든요^^ 부동님의 <일리아드> 리뷰를 읽으니깐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읽고 싶어지네요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암향부동 2010-10-12 14:14   좋아요 0 | URL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 고전이라고 어떤 철학자는 이야기했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고전이라면 시대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전을 좋아해서 꾸준히 읽고 사 모으고 있습니다만… 대학생인지라 돈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네요. 특히 천병희 선생님의 책은 출판 후 1년 6개월이 지나도 급격히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책인지라 부담이 좀 되더군요.
그래도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은 천병희 선생님이 첫 손가락에 꼽히시는 만큼 꾸준히 책을 읽고 모아갈 생각입니다.^^ Cyrus님의 서재에서도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하신 <명상록>에 대한 서평이 있더군요.

cyrus 2010-10-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리아드와 오디세우스 두 권을 예전에 천병희 교수의 저작 할인 이벤트 때 지를려라다가,,, 적지 않은 가격 때문에 잠시 접었답니다^^;;ㅎㅎ
하지만 여유만 된다면 한 권씩 사두려고 합니다. 그만큼 오래 읽을 수 있는 고전이고,
소장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갈리아 전쟁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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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반드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혹은 갈리아 전기)를 읽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힘들게 라틴어도 배웠지만 막상 라틴어 원전을 고르려고 하니 국내에서 구입하기도 쉽지 않고 아직 짧은 라틴어 실력으로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면서 보기엔 요원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번역본을 찾아보게 되었다. 대표적인 갈리아 전쟁기 번역본으로는 김한영씨가 번역한 것과 박광순씨가 번역한 2권이 존재한다.  

 

 만약 완역본(라틴→한글)이 존재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완역본을 골랐겠지만 아쉽게도 두 권 모두 완역본은 아니고 라틴→영어→한글 이렇게 번역된 중역본이다. 중역이란 필연적으로 오역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좋은 번역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해당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번역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라틴어에 능통하면서도 군사 전문가가 없는 듯 하다. 결국 두 권 중에 한 권을 고를 수 밖에 없었는데 나의 선택은 김한영이 번역하고 사이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었다.

 

 그 이유는 번역자인 김한영에 대한 신뢰였다. 김한영으로 책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책이 나오는데 그 중에 <빈 서판>과 <언어 본능>, <본성과 양육> 같은 명저를 번역해 왔으며 특히 <빈 서판>으로 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 번역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옮긴이의 글을 보니 영어 번역본 4권과 함께 라틴어 책도 함께 고려했다는 점 역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였다. 또한 카이사르의 두 번째 단행본인 <내전기> 역시 김한영이 번역한 것만 있고 박광순이 번역한 책이 없다는 점도 일관성을 위해 이 책을 고르게 하였다.

 

 다만 범우사에서 나온 책도 장점이 있었다. 일단 출판사인 범우사는 꾸준히 좋은 역사책과 철학책을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였고 박광순 역시 많은 좋은 책을 번역했으며 약 20년 전에 국내에 최초로 <갈리아 전쟁기>를 소개한 것도 범우사였다. 게다가 2006년에 나온 개정판에는 국방과학대학원 교수인 김헌영 대령의 도움으로 당시 로마 군의 편제와 전술 및 무기 등에 대해 추가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매력이었다. 만약 <내전기>도 범우사에서 출판했었다면 범우사의 책을 선택했을련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둘 다 단/장점이 있으므로 어느 책을 고르더라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 내용을 살펴보면 기원전 58년부터 51년까지 약 8년 간의 갈리아 전쟁을 1년마다 1권씩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마지막 8권만은 카이사르가 직접 쓰지 못하고 친구이자 참모였던 아울루스 히르티우스가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점은 카이사르의 정치 선전을 위해 이 책이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일기와 달리 회고록 형태인 이 책은(기원전 52년 경 카이사르는 이 책을 썼다.) 아무래도 자신의 잘못은 가리되 치적은 과장하는 형태를 필연적으로 취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당시 카이사르는 삼두 정치가 끝난 후 폼페이우스와 정치적 대립 중이었으므로 단순히 후대에 기록을 남기겠다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위치 강화를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는 것이 일치된 학자의 견해이다. 하지만 자신을 '카이사르'라고 3인칭으로 지칭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갈리아 전쟁을 바라보려고 한 것 같다.

 

 비록 서술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유일한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그리고 게르마니아를 서술한 책이라는 점과 카이사르의 '간결함, 고상함, 명료함'을 느낄 수 있는 문체와 카이사르의 전투기술과 리더쉽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현재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다만 나는 카이사르의 문체가 간결하고 명료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고상하다는 점은 느낄 수 없었으며 이 책은 전투기술에 대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이 명확하다. 만약 병법서라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의 기록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카이사르는 8년 간의 전투 과정에서 5년째에 당한 1번의 패배(그것도 자신이 직접 당한 것이 아니고 카이사르 부재시 부하 장수가 당한 패배이다.)를 제외하고는 전승하였다. 이는 무슨 전략과 전술의 승리는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물리쳤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군대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승리로 보인다. 즉, 상비군 체제가 아닌 갈리아 인에 비해 많은 훈련을 받고 조직화된 군대 조직과 뛰어난 공성 능력을 가진 로마군의 차이가 전쟁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갈리아 인들은 공격할 때는 두려움을 모르고 공격하지만 한 번 공포를 느껴 전열이 무너지면 도망치기에 바빠 로마 군대의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상비군 형태를 이룬 로마군대는 언제나 전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지시가 있으면 행군을 통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적군을 급습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전쟁사 연구자들은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하게 된 원인은 이런 기동력에 있다고 본다. 이처럼 전투 준비가 완비된 상비군은 전투력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이라고 보여진다.

 

 이어서 로마인의 기술력은 당대 최고라고 보인다. 특히 알레시아 공성전에서 보여준 로마인의 진지 구축 능력은 오늘날 봐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와 같은 진지 앞에서 당시 기술력으로는 단순히 몸으로 돌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런 진지 구축 능력은 그 중요도가 퇴색하였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탱크가 개발되어 전격전 형태로 이루어진 2차 세계대전 이후 진지 구축보다는 전격전 수행 능력이 더 중요한 전쟁 수행 능력이 되었다.

 

 다만 갈리아 인들의 저항 역시 인상 깊었다. 물론 이 책이 카이사르가 썼기 때문에 로마 중심적이기는 하나 7년째에 갈리아 인들이 자유를 위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점은 인간이 얼마나 자유를 소망하는지 잘 보여준다. 과거로부터 군대를 통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점령하는 것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인간은 언제나 자유를 소망하는바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수의 성공 사례는 정복자가 직접 그 땅에 정착하는 경우에만 이루어 졌는데 이와 다른 로마의 이런 점령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끊임없는 반란으로 갈리아는 오히려 로마 제국의 재정을 악화시켰으며 결국 서로마 제국은 갈리아 용병 대장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갈리아 전쟁기>는 카이사르 특유의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를 통해 오늘날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쓰여진 책이다. 다만 좀 더 주석과 그림과 지도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 아쉽고 특히 수록된 지도가 가독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개정판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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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완역본(라틴→한글)이 존재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완역본을 골랐겠지만 아쉽게도 두 권 모두 완역본은 아니고 라틴→영어→한글 이렇게 번역된 중역본이다. 중역이란 필연적으로 오역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좋은 번역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해당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번역하는 것인데 아쉽게도 라틴어에 능통하면서도 군사 전문가가 없는 듯 하다. 결국 두 권 중에 한 권을 고를 수 밖에 없었는데 나의 선택은 김한영이 번역하고 사이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었다.

 

 그 이유는 번역자인 김한영에 대한 신뢰였다. 김한영으로 책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책이 나오는데 그 중에 <빈 서판>과 <언어 본능>, <본성과 양육> 같은 명저를 번역해 왔으며 특히 <빈 서판>으로 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 번역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옮긴이의 글을 보니 영어 번역본 4권과 함께 라틴어 책도 함께 고려했다는 점 역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였다. 또한 카이사르의 두 번째 단행본인 <내전기> 역시 김한영이 번역한 것만 있고 박광순이 번역한 책이 없다는 점도 일관성을 위해 이 책을 고르게 하였다.

 

 다만 범우사에서 나온 책도 장점이 있었다. 일단 출판사인 범우사는 꾸준히 좋은 역사책과 철학책을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였고 박광순 역시 많은 좋은 책을 번역했으며 약 20년 전에 국내에 최초로 <갈리아 전쟁기>를 소개한 것도 범우사였다. 게다가 2006년에 나온 개정판에는 국방과학대학원 교수인 김헌영 대령의 도움으로 당시 로마 군의 편제와 전술 및 무기 등에 대해 추가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매력이었다. 만약 <내전기>도 범우사에서 출판했었다면 범우사의 책을 선택했을련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둘 다 단/장점이 있으므로 어느 책을 고르더라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 내용을 살펴보면 기원전 58년부터 51년까지 약 8년 간의 갈리아 전쟁을 1년마다 1권씩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마지막 8권만은 카이사르가 직접 쓰지 못하고 친구이자 참모였던 아울루스 히르티우스가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점은 카이사르의 정치 선전을 위해 이 책이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일기와 달리 회고록 형태인 이 책은(기원전 52년 경 카이사르는 이 책을 썼다.) 아무래도 자신의 잘못은 가리되 치적은 과장하는 형태를 필연적으로 취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당시 카이사르는 삼두 정치가 끝난 후 폼페이우스와 정치적 대립 중이었으므로 단순히 후대에 기록을 남기겠다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위치 강화를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는 것이 일치된 학자의 견해이다. 하지만 자신을 '카이사르'라고 3인칭으로 지칭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갈리아 전쟁을 바라보려고 한 것 같다.

 

 비록 서술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유일한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그리고 게르마니아를 서술한 책이라는 점과 카이사르의 '간결함, 고상함, 명료함'을 느낄 수 있는 문체와 카이사르의 전투기술과 리더쉽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현재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다만 나는 카이사르의 문체가 간결하고 명료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고상하다는 점은 느낄 수 없었으며 이 책은 전투기술에 대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이 명확하다. 만약 병법서라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의 기록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카이사르는 8년 간의 전투 과정에서 5년째에 당한 1번의 패배(그것도 자신이 직접 당한 것이 아니고 카이사르 부재시 부하 장수가 당한 패배이다.)를 제외하고는 전승하였다. 이는 무슨 전략과 전술의 승리는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물리쳤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군대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승리로 보인다. 즉, 상비군 체제가 아닌 갈리아 인에 비해 많은 훈련을 받고 조직화된 군대 조직과 뛰어난 공성 능력을 가진 로마군의 차이가 전쟁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갈리아 인들은 공격할 때는 두려움을 모르고 공격하지만 한 번 공포를 느껴 전열이 무너지면 도망치기에 바빠 로마 군대의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상비군 형태를 이룬 로마군대는 언제나 전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지시가 있으면 행군을 통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적군을 급습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전쟁사 연구자들은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하게 된 원인은 이런 기동력에 있다고 본다. 이처럼 전투 준비가 완비된 상비군은 전투력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이라고 보여진다.

 

 이어서 로마인의 기술력은 당대 최고라고 보인다. 특히 알레시아 공성전에서 보여준 로마인의 진지 구축 능력은 오늘날 봐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와 같은 진지 앞에서 당시 기술력으로는 단순히 몸으로 돌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런 진지 구축 능력은 그 중요도가 퇴색하였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탱크가 개발되어 전격전 형태로 이루어진 2차 세계대전 이후 진지 구축보다는 전격전 수행 능력이 더 중요한 전쟁 수행 능력이 되었다.

 

 다만 갈리아 인들의 저항 역시 인상 깊었다. 물론 이 책이 카이사르가 썼기 때문에 로마 중심적이기는 하나 7년째에 갈리아 인들이 자유를 위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점은 인간이 얼마나 자유를 소망하는지 잘 보여준다. 과거로부터 군대를 통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점령하는 것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인간은 언제나 자유를 소망하는바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수의 성공 사례는 정복자가 직접 그 땅에 정착하는 경우에만 이루어 졌는데 이와 다른 로마의 이런 점령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끊임없는 반란으로 갈리아는 오히려 로마 제국의 재정을 악화시켰으며 결국 서로마 제국은 갈리아 용병 대장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갈리아 전쟁기>는 카이사르 특유의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를 통해 오늘날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쓰여진 책이다. 다만 좀 더 주석과 그림과 지도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 아쉽고 특히 수록된 지도가 가독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개정판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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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임응식 - 카메라로 진실을 말하다 예술가 이야기 3
권태균 지음 / 나무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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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책에 대한 리뷰를 쓸 때면 책에 대한 내용에 한정해서 쓰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번에는 이른바 대한민국'뽀샵'대전이라고 불리는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사진대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대한민국사진대전은 한국사진작가협회 주최로 매년 실시하는 국내 최대의 사진 대전인데 과거 대한민국사진대전의 입상작들이 거액의 사례비를 받은 한국사진작가협회 임원에 의해 부당하게 선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사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아래의 사진을 보고 합성이라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제28회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정담(情談)'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밝게 웃는 할아버지와 세 어린이의 모습을 찍은 이 작품에 대해 "가족과 인간애를 잘 파악해 부각시킨 수작"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아주 말은 잘한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라도 아래 표시된 3번을 보면 아이 밑에 보리밭이 보인다. 그런데 배경은 전부 까만색이다…. 딱 봐도 합성 아닌가? 이 외에도 어설프게 합성하여 그림자가 없는 작품, 구도가 전혀 안 맞는 작품, 인물의 좌우가 축소된 작품 등이 이른바 국내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 입상하였다.



 

 대상을 받으려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임원에게 3000만원을 건내주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임원은 심사위원을 모텔에 집결시켜 미리 정해진 수상작을 외우게 하는 등 완전 복마전이 따로 없고 대한민국사진대전은 대한민국'뽀샵'대전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합성사진을 골라내기 힘들다면 이를 어느정도 규제할 규정이 필요한데도 규정을 손질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사진대전을 통해 돈을 받아 처 먹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사진대전의 권위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일찍이 임응식 선생님께서 현실에 바탕을 둔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은 기록과 진실을 담은 예술이어야 한다. 사진은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참혹한 것이든"이라고 말씀하셨는바 한국의 사진 장르를 기록물의 차원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창설하신 임응식 선생님께서는 과연 오늘날 한국사진작가협회를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실까? 그리고 앞으로 임응식 선생님의 대표작인 <구직>과 같은 작품을 오늘날 다시 보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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