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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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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하면 왠지 프랑스 사람 같았는데,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대학교를 나왔단다. 결국 보통 프랑스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데 프랑스에서는 보통이 넘는 인정을 받았나 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알랭 드 보통은 보통이 넘는 인기를 구가하는 듯하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보통이 넘게 시중에 나와 있고, 나도 이 보통의 이름을 보통이 넘게 들어봤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보통 이런 인기 작가의 책을 찾아 있지만, 베르베르 같은 이들의 책을 꺼리는 경향이 나에게는 있어 이 보통의 책도 그닥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통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의 이름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제목 같았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 건축, 종교, 사랑, 미술 등등의 소재들을 다뤘다는데, 검색해보면 소설가로 되어 있는데, 뉴스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미심쩍었다. 그런데 웬걸? 보통이 아니었다. 역시나 알랭 드 보통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었나 보다. 이 책 <뉴스의 시대>에서 내가 얻고 깨달은 바가 크다.

 

정치 뉴스가 따분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뉴스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할 때, 사회는 자신의 딜레마를 붙들고 고심하는 일에 위험할 정도로 무능해지고,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대중적 의지도 결집될 수 없기 때문이다. (37쪽)

우리 사회에서 뉴스는 오늘날 따분하고 지겹고 재미없을 뿐이다. 어떤 음모가 숨어있다고 선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로인해 현대 사회의 수많은 대중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끊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우리는 정치가들의 잘못으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겠된다고 말하는 데,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보통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뉴스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보통의 지적은 결코 틀리지 않다. 보통의 제시하는 오늘날 뉴스의 문제들, 우리가 뉴스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조언들, 나아가 앞으로의 뉴스가 어떤 모습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보통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없다.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33쪽)

 

언론이 칭찬받을 만한 지점은, 사실을 모으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그 사실들의 타당성을 알아내는 (지적 편향을 통해 갈고닦은) 기술이다. (34쪽)

오늘날 뉴스는 '사실보도'를 무지하게 강조한다. 객관성, 공정성 등의 대한 강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들만을 나열할 때 뉴스는 단순한 찌라시가 될 뿐이다. 또한 우리는 그 사실 속에 감춰진 진술을 읽어낼 만한 능력이 없다. 능력이 없다고 자신을 탓할 일은 또한 전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간혹, 뉴스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들의 편향성을 지적한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편향적이라고 욕을 먹는 뉴스들은 편향의 문제라기보다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는 질의 문제인 경우가 대다수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그렇지 않은 뉴스에 대한 공격으로도 사용된다. 조금만 뉴스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편향이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과연 편향이 문제일까? 뉴스는 편향적이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보통에 따르면 뉴스는 기본적으로 편향적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일관된 시각에서 사실을 해석하고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대중은 그 편향의 시각이 타당한가를 알아내는 것. 이것은 뉴스의 보도하고 이해하는 자들의 기본 행위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얼마나 합당한 이이기인가?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 데 검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36쪽)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늘날의 뉴스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망쳐버리는 데 강력히 기여하고 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뉴스는 나름의 편향적 시각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사회가 조금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뉴스가 성숙해져야만 한다고 본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뉴스의 시대>는 아마도 이런 뉴스의 성숙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의 정치 뉴스 뿐만 아니라 해외 뉴스, 연예 뉴스, 재난 뉴스 등의 문제들도 분석하면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통의 넘는 솜씨의 필치로 따분하지 않고 흥미롭게 진행한다. 하지만 약간의 가벼움과 통찰의 깊지 않음이 걸리적 거리긴 하다. 마지막에는 깊이 새길만한 뉴스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명언스러운 말을 남기면서 리뷰를 줄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수많은 희망을 단호하게 묻어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155쪽)


 

뉴스라는 렌즈를 통해 보게 되는 경제 '논쟁'은, 대중의 기대와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대중의 감각 모두를 엄격한 통제선 안에 가두고 그 밖으로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 그런 의제에서 벗어나려 하면(예를 들어 주주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거나 성장과 복지의 상관관계에 의문을 품는다거나 하면) 갑작스레 '급진적'이라 간주되고 따라서 우습게 여겨지고 만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히 여기는 것들 대부분(최저임금, 아동 보호, 환경 정책)이 처음에는 미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돼 '합리적인' 의견으로 정착된 것인데도 말이다. (159~60쪽)


 

기자들은 숫자 뒤에 감춰진 세상을 보아야 하고, 자본주의를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으로 인식해야 하며, 오싹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사무실과 제조 시설의 살균된 아름다움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169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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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긴 이야기 속 아무데나 빠뜨렸다가 다시 재빨리 꺼내면서도 사건이 전개돼온 더 넓은 맥락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기사화할 때 상습적으로 벌이는 일이다. (25~6쪽)

이 '사실'이 지닌 문제는 오늘날 신뢰할 만한 사실 보도를 찾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쇄도한다. 우리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국가신용등급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법안이 가결됐다는 사실, 투표권 행사 제한이 위원회에 회부되었으며 천연가스 수송관 계획이 입안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 이 사실들은 정치적 삶의 핵심적 질문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 뉴스들은 우리가 뭘 이해하도록 돕는 걸까? (32쪽)

우리는 어쩌면 편향에 대해 좀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33쪽)

언론이 칭찬받을 만한 지점은, 사실을 모으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그 사실들의 타당성을 알아내는 (지적 편향을 통해 갈고닦은) 기술이다. (34쪽)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 데 검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36쪽)

정치 뉴스가 따분하다는 대중적 인식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뉴스가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통해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할 때, 사회는 자신의 딜레마를 붙들고 고심하는 일에 위험할 정도로 무능해지고,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대중적 의지도 결집될 수 없기 때문이다. (37쪽)

수없이 많은 버전의 '현실'이 존재한다. 결단력 있는 언론기관들이 포착할 수 있는 현실이란 매일 딱 한 가지밖에 없는 것처럼 굴면서 국가를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 뉴스는 스스로를 현실을 그려내는 권위 있는 초상화가라고 제시할지도 모른다. 뉴스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대단히 난감한 질문에 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는 빼어난 능력은 없다. 뉴스는 어떤 이야기를 조명하고 어떤 이야기를 빼버릴지 선택하면서 단지 현실을 선택적으로 빚어낼 뿐이다. (50~1쪽)

뉴스가 제공하는 국가에 대한 소식들이 국가 그 자체는 아니다. (52쪽)

탐사 저널리즘은 집단과 개인을 파괴하는 모든 요인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에서 시작해야 한다. 뉴스는 무엇보다 정신 건강, 건축, 여가, 가족 구조, 연애, 회사 경영 방식, 교육과정과 신분질서 등을 취재해야 한다. 이런 영역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의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보다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는 국가가 겪는 문제의 뿌리가 상류층의 범죄행위에 근본적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상상하도록 부추긴다. 물론 언론은 개개의 썩은 사과를 겨냥할 임무를 분명 지니고 있지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합의 내부에 은폐된, 눈에는 띄지 않지만 훨씬 큰 제도적 실패에도 주의를 돌리도록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책무 또한 지니고 있다. (74~5쪽)

뉴스의 가장 고귀한 약속은 무지를 줄이고 편견을 극복하게 하여 개인과 국가의 지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79쪽)

플로베르는 신문을 증오했다. 신문이 독자로 하여금 정직한 사람이라면 결코 타인에게 떠넘기는 데 동의하면 안 되는 어떤 임무를 그렇게 떠넘기도록 부추긴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임무란 바로 생각하기이다. 언론은 이제 중요한 문제에 대한 복잡하면서도 지적인 논평을 생산해내는 일을 자기네 직원들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고, 독자들의 정신은 각자의 특별한 여정, 탐구, 성찰을 멈추고 그 일들을

개개의 뉴스들 역시 뉴스 브랜드의 비호 아래 전달됨으로써 힘을 얻는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제기했다면 우리가 보다 철저하게 검토하려 들었을 의견들이 특정한 언론사 이름 아래 있기만 하면 거의 신화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
전쟁을 벌이는 이유에 대한 기사가 신고딕풍 첼트넘 서체의

좀 지나칠 정도로 고르게 합의된 듯 보이는 관점과 맞닥뜨릴 경우, 플로베르의 마음속에서 경종이 울렸듯 우리 마음속에도 경종이 울려야 한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서체와 가장 권위적이며 믿음직한 헤드라인 아래 숨어 있을지 모를, 잠재적으로 심각한 바보짓에 대해 항상 회의적인 태도로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플로베르가 문학적 상투어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미디어의 상투어에 눈을 부릅뜨고 대해야 한다. 전자는 소설을 파멸시키고, 후자는 국가를 파멸시킬 수 있다. (89쪽)

우리가 다른 곳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를 모두 잃은 건 아니다. 우리는 아주 예전에는 이른바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줄까지 섰던 생명체들이다. 문제는 현대의 뉴스 매체가 발전시킨 보도 방법론(다른 방법은 거의 모두 배제한 채, 정확하고 기술적으로 신속하지만 비인간적인데다 위기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 방침)이 일조의 세계화된 배타적 편협함 속으로 잘못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알지만 실제로 그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고, 잘못된 종류의 얕은 지식이 우리 호기심의 범위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좁혀버렸다. (108쪽)

이카로스를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가, 그리고 이제 시인이 주못했다. 이를 통해 오든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예술가가 하는 일이다. 예술가들은 하찮은 것에 주목한다.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쟁기질하는 사람과 목동, 여러분과 나, 그리고 바쁜 저널리스트)이 놓치고 지나가지만 우리의 무관심과 냉담함을 거두도록 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것 말이다. (129쪽)

우리를 침묵시키는 건 경제의 규모만은 아니다. 그것이 가진 복잡성도 우리를 입다물게 할 수 있다. 선진 경제지역 인구의 극소수만이 자신들이 속한 경제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차익거래, 바젤1과 바젤2, 주기적으로 조정된 경상예산, 주가수익률이나 양적완화 같은 핵심적 경제 용어들 속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려면 꽤나 골치 아플 것이다. (151쪽)

어른이 된다는 건 수많은 희망을 단호하게 묻어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155쪽)

뉴스라는 렌즈를 통해 보게 되는 경제 '논쟁'은, 대중의 기대와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대중의 감각 모두를 엄격한 통제선 안에 가두고 그 밖으로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 그런 의제에서 벗어나려 하면(예를 들어 주주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거나 성장과 복지의 상관관계에 의문을 품는다거나 하면) 갑작스레 '급진적'이라 간주되고 따라서 우습게 여겨지고 만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히 여기는 것들 대부분(최저임금, 아동 보호, 환경 정책)이 처음에는 미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돼 '합리적인' 의견으로 정착된 것인데도 말이다. (159~60쪽)

경제 뉴스는 덜 불안하고 덜 파괴적이면서 더 안전하고 의미 있는 노동이 가능한 세상을 향한 큰 꿈에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60~1쪽)

기자들은 숫자 뒤에 감춰진 세상을 보아야 하고, 자본주의를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으로 인식해야 하며, 오싹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사무실과 제조 시설의 살균된 아름다움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169쪽)

기억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이 제품들은 (당연히) 무척 싸지만, 그건 찬쿤 실업이 엄청 대단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고, 또한 현대 기술이 굉장히 기발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제품 가격이 싼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학자들이 '가격결정권 결여'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절망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더 솔직하게 느껴지는, 샤먼 시 노동자들을 처절한 고통 속에 몰아넣은 노동 조건에 있다. (173쪽)

우리가 선망하는 대상에서 정확히 어떤 점이 흥미로운지 좀더 분명하게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187쪽)



 
 
 

* 내가 사는 원룸엔 여닫이 문이 있다. 삐걱대다가 얼마전에 잘 열리지가 않았다. 기름칠을 해야하나 싶었다.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 이상, <가정>(『가톨릭 청년』34호, 1936.2)
 

* 제웅 : 짚으로 만든 모조 인형.
* 식구 : 여기서는 아내의 호칭.

이상의 가정이란 시다. 나에겐 생활이 모자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늘어지듯 매어달렸다.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안 쓰던 힘을 써서였는지 종아리 근육에 통증이 왔다. 소싯적에는 그래도 하루 자고 나면 괜찮아졌는데, 며칠이 지나도 이게 괜찮아지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등산을 다녀왔으니, 원! 급기야는 어제 오늘 병원엘 다녀왔다. 주사도 맞고 약도 타 먹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그랬더니 괜찮아 지더라. 병원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병원에 가려고 외출을 허락맡으러 가니, "젊은 사람이!"라는 교감의 혀차는 소리가 가슴에 와 박힌다. 아! 아 아직 젊은데, 이제 늙는구나, 슬프다.

 

** 여기서 문제.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은? ① 마니산 ② 문학산 ③ 계양산. 마니산 아니고 계양산이다. 지난 일요일에 계양산엘 처음으로 올랐다. 정상 근처가 가팔라 힘이 들었다. 날이 그리 무덥지 않아 그나마 나았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친우들과 산에 오른 것은 이전의 약속이었기 때문이고, 내 늙음의 속내를 밝히기가 꺼려져 기를 쓰고 올랐다. 오르고 나니 개운한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정상에는 첨탑이 있다. 송전탑 같았다. 방송사들 로고가 박혀있으니 뭐 그런 종류의 것이리라. 거기를 몇 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군사시설이니 그렇겠지. 그런데 안타까웠다. 이들이 휴가를 가자면 먼저 몇 시간의 유격훈력을 하고 가야하니 말이다.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있던데, 이네들이 휴가갈 때 헬리콥터를 태워줄까? 아무렴! 군대가 그리 친절치는 않을 거다. 늙은 간부들이나 오갈 때 타고 말겠지.

 

*** 내가 돌아왔다. 2008년 서재의 달인에 빛나는, 3회 리뷰대회 우승에 빛나는, 멜기세덱이 장 시간의 칩거를 끝내고 돌아왔다.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한 달에 2권씩을 주고 리뷰를 쓰라는 숙제와 더불어 월초에 신간 브리핑 같은 걸 해야하는 숙제가 끼었다. 달랑 2권 주고 부려먹는 것이 참 많다. 한달 책 2권에 글 3편은 내가 손해같다. 나는 좀 원고료가 비싼데. 한 5권은 주어야지 수지가 맞지 않겠는가. 5권을 주고 그중에 정말 제대로 리뷰가 나올 수 있는 책 한 2권만 리뷰를 쓰게 하는 게 알라딘에도 좋지 싶다. 몇 편의 리뷰는 어쩔 수 없이 그지 같다. 미안하다. 그런데 서운하다. 내가 돌아왔는데, 내가 글을 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댓글을 달아주는 순오기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간혹 댓글을 달아주시던 그 맘 좋고 시간 많으신 알라디너들은 다 어디를 가셨는지, 어찌 댓글이 좀체 하나도 달리지 않는가? 너무들 하신다. 매정해지셨다. 이렇게 글을 쓰면 댓글이 하나 달릴까? 다는 사람 착한 사람.

 

**** 같이 근무하시는 선배 분이 소개팅을 제안했다. 39살의 일본어 여교사. 난 완곡히 거절했다. 아직 여유가 없다고. 그런데 속은 나보다 3살이 많은 여인을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던 것이었다. 내가 늙은 것이리라. 그러니 나이 같은 걸 따질 게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그 선배의 아내의 친구라던데, 부쩍 외로움을 타길래 소개팅을 주선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발탁이 된 것인데, 나는 거부했다. 아내의 후배가 28살이 있는데, 그 분은 너무 어려서 안 되겠다는 발언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왜 안 되나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니 말 하지 못 했다. 여유가 아직 없다했으니 말이다. 속은 젊은 여자를 만날 마음의 여유는 언제나 충분한데도 말이다. 이런 된장이다. 28살의 여인을 만나기에는 나의 나이가 걸리적 거릴 만큼 나는 늙었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이리 열심히 글을 쓰는데 알라디너들의 댓글은 하나도 안 달리면 섭하다. 섭해. 이 시각 이후로 두고 봅니다. 누가 먼저 댓글 다는가. 누가 멜기세덱 글에 댓글을 달 것인가? 이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닐게다. 그럴 게다.

 



 
 
다히 2014-09-04 00:03   댓글달기 | URL
ㅋㅋ재미있게 읽고갑니당~~^^ 더 좋은 분 만나실꺼에욥!!!
다음 리뷰도 기대할께여~~~ㅋㅋㅋㅋㅋ

멜기세덱 2014-09-04 11:13   URL
재미있으셨다니 '다히'앵 입니다. ㅎㅎ 근데 이건 리뷰가 아니고 기냥 잡설이에요.ㅎㅎ 잡섭을 잡잡할 때만 쓰는 거라, 언제 나올지 몰라요..ㅎㅎ

Forgettable. 2014-09-04 02:02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멜기님 오랜만이에요!! 인천의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인지 막걸리인지를 마셨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말이죠. ㅎㅎ 오겡끼 데스까????

멜기세덱 2014-09-04 11:15   URL
음...기억이 가물가물이네요. 제가 생생했다면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지 않은 거니 당연히 기억이 없고,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다면 쌩쌩하지 못하니 기억이 없을 테구. 기억 회복 차원에서 자주 좀 오셔요, ㅎㅎ

팜므느와르 2014-09-04 05:45   댓글달기 | URL
아, 글이 너무 진솔해서 댓글 안 달 수가 없어요.
누구나 댓글을 (속으로) 구걸하지만 안 달려도 초연한 척하잖아요.
아직 젊은데 늙는 것도 서러운데, 라니요!

맘 돌려 그 여교사 분은 만나보시는 게 어떨까요?
혹, 알아요, 젊은 28살 보다 그 분이 훠얼씬 나을 수도 있잖아요.
순진한 얘기지만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잖아요~~

멜기세덱 2014-09-04 11:16   URL
역시나 진솔해야 반응이 오는 군요.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떠들기 시작하면 나이든 거에요...ㅎㅎㅎ 나이 안 든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죠...ㅎㅎ

chika 2014-09-04 09:28   댓글달기 | URL
저도 착한사람이니까... ^^
오랫만에 다시 서평단 활동을 시작으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거 봤습니다만.... 덧글 한번 안 쓴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 ^^;;
나이 상관없이, 외로워하는 사람 말고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보시길. 앞으로 좋은 소식들이 올라오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근데 늙었다는 걸 실감할 나이는 아직 안된거 아닌거 아닌가,가 아닌가...요? ㅎㅎㅎ
(근데 왠지 투정어린 페이퍼를 보니 나이 먹기 시작한건가 싶기도 하고말이죠. ㅎㅎㅎ)

멜기세덱 2014-09-04 11:16   URL
치카 차카!! 오랜 만이에요. ㅎㅎ 전 아직 어립니다. 그래서 부끄럼을 많이 타죠. 부끄럼 안탈 세월이 아직 4년 남았네요.

세실 2014-09-04 12:22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저도 왔어요~~~
아직 어리시니(?) 더 찾아보시어요^^
근데 세댁을 새댁으로 읽고는 자꾸 여자분으로 착각합니다. 쿄쿄쿄

표맥(漂麥) 2014-09-05 11:50   댓글달기 | URL
늙는 것도 서러운데, 댓글도 안 달리니, 우리 맘 좋은 알라디너들은 다 어디에?...
공감하면서 잠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메인대문 이미지의 여인... 경세황비의 주인공인가요?
 

알라딘 서평단 활동 중 참 피곤한 숙제, 달 초에 신간중에 눈길 가는 걸 댓권 뽑아 페이퍼를 작성하라는 숙제다. 전에 <새 책에 눈길주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신간들을 추리다가 중단했는데, 이 알라딘 서평단 덕이 강제로 다시 하게 됐다. 그리하여 그 목록에다가 몇 권 더 추가해서 리스트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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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20점(10% 적립)
*지금 주문하면 "오늘(17~21시) 사이" 택배 수령 가능
2014년 09월 03일에 저장

백석 평전이 새로 나와서 읽을 날만 기다렸는데, 이 참에 읽어야겠다. 아직 알라딘에 주문을 넣지는 못했는데, 장바구니에는 여전히 담겨 있다. 안도현이니까 믿고 봐도 되지 싶다. 얼마전에 산 백석 평전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자기 취향에 맞게 썼는지 영 부실하다 싶어서 책값만 날렸었는데 말이다. 이번엔 괜찮겠지. 나중에 대학원이라도 다니게 되어서 논문을 쓴다면 백석에 대해서 쓰고 싶다. 그의 시와 그의 여성 편력, 이들을 종합한 백석의 매력, 성적 취향, 마성 이런 것들을 이끌어 내어 논문을 쓰면 재밌겠다 싶다.
백석, 평전, 안도현
공산주의의 역사
리처드 파이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70점(10% 적립)
*지금 주문하면 "오늘(17~21시) 사이" 택배 수령 가능
2014년 09월 03일에 저장

가을엔 유령이 떠돌기 좋은 날이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불가능해보이는 꿈! 공산주의가 나쁜 건 아닐거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지 싶다.
공산주의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70점(10% 적립)
*지금 주문하면 "오늘(17~21시) 사이" 택배 수령 가능
2014년 09월 03일에 저장

진보는 진일보다. 싸가지 있으면서도 때론 없어야 할 때가 있는데, 과연 어느 때가 그러한가? 알고 진보하자!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진 일보 한다.
진보, 강준만, 진보주의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 역명에 담긴 한자, 그 스토리와 문화를 읽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70점(10% 적립)
*지금 주문하면 "오늘(17~21시) 사이" 택배 수령 가능
2014년 09월 03일에 저장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는 지하철 탈 일이 부쩍 줄었다. 기름값도 아낄 겸 대중교통 이용하자. 이왕이면 이 책을 끼고서 일부러라도 지하철을 탈까 싶다. 신도림에서 신도림 편을 읽어보면 좋지 않겠나?
한자, 지하철, 한문, 지하철역, 어원, 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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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추분이 지났고 처서가 떠났다. 가을이란 얘기다. 더워서 잘 모르시나본데, 분명 가을이다.

파란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 내 얼굴과 몸동 푸르딩딩, 말은 살찐다는데, 나도 살이 붙는다, 그것도 배에만. 하루하루 늙어가는 계절임에 분명하다.

더운 여름, 책 읽는 사람도 책 쓰는 사람도 지치긴 마찬가지, 8월 시간을 뒤적이는데 그닥!

쓸만한 책들이 없다. 아무래도 8월에는 책을 덜 내나 보다.(알라딘에서 통계 좀 내보시라.)

더운 여름, 책 읽기란 삐질삐질 땀내가 책에 배니 책도 찝찝 읽기도 찝찝! 휴가가서 책을 꺼내 읽는 건 휴가에 대한 모독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간 이들에 대한 실례이지 않을까?

책을 꺼내 읽으면 요즘 세상 욕들어 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가을에 책을 읽으라고 하나 보다. 천고하고 마비하니 우리도 높이고 살찌우자 정신을? 그리하여 독서의 계절 되시겠다.

언어적 유희 차원에서 독서로 우리 정신을 마비(麻痺)시켜 보자.

 

 

사회과학>정치비평

강준만, <싸가지 없는 진보>

옳은 지적이다.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 특유의 성격 '싸가지 없음'. 혹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 일쑤다. 진중권이나 노회찬 같은 사람들 말하는 걸 보면 싸가지 있게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잘못된 문제 현실을 지적하다보면 기득권 가친 노인네들에게는 싸가지 없는 자식으로 보일 터. 좋게 말해서는 씨알도 안 멕히는 말이다. 강준만의 책은 불편하다. 주가 많아서, 각주로 달아도 뭐하고 미주로 달면 불편하고. 이 책은 어떨지 모르겠다. 집권 전략이니 하는 부제도 거창하기만 한데, 싸가지 없음, 혹은 없어 보이는 진보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좋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예전에 손석희의 백분토론에서 진중권과 주성영의 토론 장면이 재미있더랬다. 쏘아대는 진중권을 주성영은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을 터. 정신이 마비의 지경에 이르렀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사회에 그런 마비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수술 전에 마취를 해야하는 것처럼.

 

 

사회과학>사회사상>공산주의

리처드 파이프스, <공산주의의 역사>

이 책을 읽으면 잡혀가지는 않나? 나중에 내란음보니 뭐니로 엮이는데 일조라도 하지 않나? 그 점에 대한 알라딘의 무사보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담에야 읽어야지. 공산주의! 그 놈의 유령임에 분명하다. 자유주의를 마비시킬 유령! 공산주의가 망했다는데, 왜 망했나? 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런데 망할 공산주의가 한번이라도 있었는가는 의문이다. 아직은 안 왔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공산이란 말이 가지는 부정적 함의를 제거하기 위해 모두주의 정도로 바꾸는 것은 또 어떨까? 하여간 왔든 안 왔든, 더 나은 주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과거를 반성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이 책이 우리 사회를 마비로 이끄는데 일조하기를 바라면서.

 

 

종교>세계의 종교

홍익희, <세 종교 이야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름만 들어도 마비되는 이 세 종교 이야기를 왜 들어야하지? 이들 세 종교의 본류는 같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들은 물과 기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화해까지는 모르되, 서로간에 그냥 내비두는 정도라도 되면 좋겠으니 말이다. 그러려면 서로를 인정해야 할 터. 세계의 보편 종교로서 존재하는 이들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이제는 그만 싸우지들 않을까? 믿거나 말거나! 여전히 이들은 우리 사회를 마비시킨다. 젠장!

 

 

 

 

인문학>책읽기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장서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비슷한 괴로움을 느낀바 있다. 좁은 원룸방에서 책을 덮고 자면서도 책을 사 모았던, 그래서 엄마한테 매일 잔소리를 들었던, 이사때면 책을 나르느라 고생한 후배들의 불쌍한 눈빛을 보면서. 그래도 책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한 4천권쯤 있어야지 싶다. 번듯한 서재를 만들고 사면을 책으로 쌓아두면 좋겠다. 몇 년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3분의 1 가량을 버렸다. 한 천권쯤 되지 싶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어디 기증도 못하고, 헌책방에도 못 팔았다. 헌책방에 팔았으면 수십만원은 벌었을 건데. 처치곤란에 고물상을 불렀다. 한찬 가득 실어가면서 1만원을 준다. 젠장! 장서의 괴로움은 이것 이상이겠지. 그런데 왜 부럽지! 이 책은 분명 자랑질임에 분명하다. 나도 그 괴로움을 느껴보고만 싶다. 책 속에 파묻혀 마비되고 싶다. 이 책이 장서 관리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책이라면 읽어봐야겠다. 진짜로 마비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인문학>언어학>한문

유광종,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인천 2호선 공사가 한창이다. 원래의 계획보다 늦은 16년 개통이라나. 어떤 현수막을 보니 역명 설문조사를 한다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순우리말 이름만 고집하는 것은 좋다고 보지 않는다. 하여간 잘 지어야지. 개인적으로 지명의 유래와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궁금하니 말이다. 인천의 작전동이 작전짜는 곳이 아니고, 계산동이 계산하는 곳이 아니니 말이다. 지하철 역명에 담긴 한자를 알아보는 책인데, 이 책을 보면 이런 지명들의 유래도 알아볼 수 있지 싶다. 이제 1호선이니 책을 좀 사봐야 2호선 3호선 나오지 싶다. 이참에 한자 공부도 같이 하면 일석이조다. 일석이조는 한자로 이렇게 쓴다. 一石二鳥. 돌 하나가 이조짜리. 얼마전에 운석이 떨어졌는데, 그 값을 쎄게 부른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이조까진 아니겠지만 어마어마하던데 어케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 많이 떠들었더니 마비가 왔나봐! ㅎㅎ

 

9월 아무튼지간에 책으로 마비 좀 되시라. 이제 가을이니 말이다.

이런 젠장! 남자의 계절! 또 외로움에 사묻혀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