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8월이니 더운 게 이상할 것은 없다.

그래도 더워서 죽으면 조금은 이상할 터인데,

정말이지 더워서 죽을 것만 같으니, 이느무 8월은 좀 이상하다.

 

더워서 죽겠는데, 책은 좀 치워두어도 좋다.

어찌 매달 책을 읽겠는가?

여름에는 피서를 가야한다. 책을 피하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ㅎㅎ

 

사회과학>교육학

인문학>철학>한국철학

 

도올하면 정말 돌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다. 내가 돌+I여서인지 정이가는 이가 도올이다. 독특한 철학자. 그가 독특한 점은 아마도 스스로의 철학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이번에는 교육이다. 그냥 '교육론'이면 좋았을 것을 '입국'이 거슬린다. 그동안 '교육'을 통해 '입국'을 하려니 교육이 자꾸 딴 길로 간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어보면 좋겠다. 얼마 전 선거에는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도올은 이들을 혁신교육감이라하는데, 무엇을 혁신하고 어떻게 혁식해야 할지 그 주춧돌을 놓아보려는 도올의 근자감의 발로일까?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리자. 8월이면 방학인데, 2학기를 준비하는 노력은 소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노력의 일환이로 이 책은 피서를 면했다.

 

역사>조선사

고전>우리나라 옛글

 

나이를 쳐먹어서 요즘은 늦잠이 줄었다. 괴롭지만 아침에도 일찍일찍 일어나고 있다.(지금 이 페이퍼를 쓰는 시간을 보시라.) 그래서 아침시간이 많아졌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그 시간에 가끔 조조를 본다. 얼마 전에 <군도>를 보았는데 기대이하였다. 이번엔 <명량>을 볼 생각이다. '이순신'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동전쪼가리에 계시지만(동전이 맞나?)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영웅이다. 영웅은 전쟁을 통해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순신이 영웅은 영웅인게, 그 전쟁통에서도 일기를 썼다는 점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나? 일기를 쓰지 않는다.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습관도 없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읽어야 하리라. 문제는? <명량>을 보고 읽느냐, 이 책을 먼저 읽고 보느냐? 아마도 영화가 먼저가 되지 싶다. 피서를 당할 처지에 이 책이 놓였다. 9월 혹은 마비가 오는 가을에 보아도 충분하리라.

 

 

 

역사>이슬람/중동/이스라엘>근현대사

 

이스라엘, 유대인, 유대교, 팔레스타인, 이슬람, 중동. 요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은 정의 이슬람 혹 중동은 악으로 구분짓는 사람들이 많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 아녀자들은 절대 약자일뿐 악자는 아니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아니 가자지구 밖의 세계대중은 그곳에 대해 좀더 정확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 전쟁, 아니 학살에는 왜 세계가 이리도 조용히 침묵할까? 이 책에서 그들의 역사와 실체를 알려주고 있으려나? 전쟁은 피서를 못하게 하는구만.

 

 

 만화>교양만화>인문/교양

 

맛집 찾아 산만리다. 얼마 전에 인천 중구 백반집을 찾았다. 인터넷에는 맛집으로... 평범의 언저리에서 그냥 백반집스럽다. 인터넷의 맛집을 찾아가서 만족의 맛을 얻은 적이 별로 없다. 더위에 입맛을 잃어 무엇보다 맛을 찾아 산만리다. 그런데, 철학이 나의 입맛을 살려줄까? 터무니없는 소리. 철학이 어찌 맛있다는 말인가? 철학과 요리의 조화? 이게 만화책이다. 철학을 어찌 요리하는지 궁금이 나를 간지럽힌다. 이 책도 피서를 면할 길은 없다. 보관함에 담아 두어야할까? 아니다 이 책은 냉장 혹은 냉동 보관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더위에 맛이 상할지 모르니 말이다. 알라딘은 냉장보관함을 마련하라.

 



 
 
 
[철학자와 하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이 일상의 삶과 무관하게 저 하늘의 별만을 보는 것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적하듯 철학은 한가한 일이나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떠받드는 현실 감각 역시 그들 자신을 빈민으로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추인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노예의 자기 위안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대립하는 곳에서는 철학도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도 불행하다. 철학은 기껏해야 현학적 유희이거나 비현실적 몽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현실 논리를 재빨리 추인함으로써 영리한 노예, 성공한 노예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서로 조롱하고 적대하면서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불행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구원은 서로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삶의 절실함과 대면하면서 철학자는 새로 철학을 배우고, 앎의 각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새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위대한 탈레스를 재치 있게 조롱했던 총명한 하녀가 어느 밤 다락방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 거창한 물음에 역시나 거창하게 혹은 선문답처럼 대답을 내어놓을 이들은 역시나 철학자들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혹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처럼 분위기 잡고 썰을 풀어나가면 뭔가 있어보이는 듯한 이 물음. 소크라테스가 어쩌고, 플라톤이 어쩌고, 공자, 맹자, 노자 타령을 늘어놓아야 왠지 있어보이는 듯한 느낌. 어느 순간에 우리는 '철학하고 앉아 있네'란 욕 아닌 욕을 듣게 마련이다. '철학하고 앉아 있네' 이것은 과연 욕인가? 역시나 여기에 담긴 의미는 쓸데없는 헛소리를 짓거리는 이들에 대한 비하를 담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철학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나름 문학에 종사하는 나에게 문학 또한 이 철학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가 어쩌고 소설이 어쩌고, 시를 쓰고 자빠졌고, 소설쓰고 자빠졌네는 욕에 다름 아닌 현실. 결국 여기에는 '불필요함'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철학이라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이 일상과는 저멀리 떨어져있어 하등의 쓸모를 갖지 못하는 현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미개하고 무식하여 그 쓸모를 알지 못하고 멀리하고 있다고 탓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렇다고만 할 수 있을까? 무식한 우리들의 탓일까?

 

고병권은 이 책에서 이런 물음에 답하려 한 듯 하다. 무식의 하녀만의 탓이 아니라는 다정한 대답이 나온다. 일종의 양비론을 펴고 있다. 일상을 저버리 철학과 철학자도 나쁘고, 철학을 버리고 사는 일상의 하녀도 나쁘다. 일상과 철학의 조화를 바라고 추구하는 듯하다. 그래! 좋게 보면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다. 일상의 철학, 이름하여 실용철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고병권의 의견에 일부분 반대한다. 어찌 하녀를 탓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철학자를 탓해야 옳다. 그들이 남겨놓은, 고병권의 말대로 일상을 저버린 철학을 탓해야한다. 그들의 철학이 우리의 일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기에 그것은 쓸모 없음으로 우리 하녀와 같은 이들에게 인식되었고, 괜한 소리를 짓거리면 '철학하고 앉아 있네'란 수모를 당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일상을 포용한 철학, 일상을 변화시키는 철학을 철학자들이 먼저 내어놓는다면, 우리 하녀와 같은 이들은 어느 순간에 모두다 이 철학을 하고 앉아 있을 것이다. 왜? 이 철학이 우리 삶에 이렇게 필요하니 말이다.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이러한 일상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일상과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삶의 장소에서 발견한 철학, 저 높은 곳에서의 고담준론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짧게나마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짧막한 글에서 느끼는 바가 많다. 내 머리속에 명쾌함을 심어주는 표현도, 금과옥조같인 메모해두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글귀도 많다.

 

그러나 고병권의 이 글은 우리 일상에 복무하는 철학일까? 과연 실용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무지의 하녀들이 이 글을 읽고 철학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가 보는 일상은, 그가 겪은 경험은, 그가 돌아본 세계는 아마도 대다수의 하녀들이 보지 못한 곳, 가지 못한 곳, 겪지 못한 경험일 뿐이다. 더 낮은 세계로 임해야 하지 싶다. 별은 3개 반 정도만 주고 싶었다. 그러나 반개는 없어서 인심쓰고 4개를 준다. 그가 낮은 세계의 철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별 반개를 더한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히틀러의 철학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져야 할 것은 따져 물어야 한다. 따져야 할 것을 제대로 따져 묻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불신과 반목과 거짓의 병폐가 넘치지 않은가? 흔히 우리에게 독일은 달랐다. 독일은 아무래도 따져야 할 것을 제대로 따져 물었다고 알았다. 하지만 이본 셰라트의 이 책을 보면 여전히 제대로 묻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단호히 따져 묻기 어려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철학이라는 것이 그런 종류의 문제다.

 

이본 셰라트는 히틀러의 범죄에 부역한 철학자들을 추적하여 아직 그들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따져 묻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 중점에 하이데거와 슈미트가 있다. 이본 셰라트는 이들을 주 타깃으로 하는 듯 하다. 하이데거가 히틀러 정권에 부역했다는 의심은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혐의가 어느 정도이고 그것으로 인해 하이데거가 어떠한 처벌을 받았는지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본 셰라트는 하이데거의 과오가 큰데 반해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부제는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철학이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었는가를 따져야 하지 않았을까? 이본 셰라트가 들고 있는 하이데거의 부역의 증거들은 그의 편지들, 그의 글들, 그의 침묵들(히틀러의 반인권적 반학문적 반철학적 박해들에 대한)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이 어떻게 히틀러 정권에 이용되었는지를 묻고 따져야 하지 않았을까?

 

하이데거의 과오에 대한 처벌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부관참시라도 해야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본 셰라트가 오늘날 이 히틀러의 부역자 하이데거가 얻은 철학적 지성으로서의 전세계적 명성이 못마땅해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하이데거가 남긴 그의 철학사상을 폐기해야 할까?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적해야 하는 걸까? 그것은 또한 히틀러의 방법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이본 셰라트가 더 정확히 따져 물어야 했다고 본다. 이 책의 부제처럼 말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이 히틀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고, 이용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서 밝혀야 했다고 본다. 그것이 인정되었을 때 그의 철학은 자연스레 폐기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의 철학은 철학대로 두어야만 했다. 이본 셰라트가 지적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오점은 그의 철학이 아니라 처세에 있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의 슈퍼맨'이란 칭호가 하이데거에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해켈은 범유럽 차원의 '일원론자 동맹(Monist League)을 결성하고 인간이 생물학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강연했다. 인종의 순수성에 대한 해켈의 집착은 갈수록 커졌으며 아리안 인종의 힘을 보호하기 우해 우생학을 제시했다. 생물학을 따르지 않는 사회는 약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해켈은 역설했다. 그는 아픈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약을 쓰는 것은 자연선택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층민, 병자, 장애인, 걸인, 부랑자, 범죄자에게는 현대의학과 번식할 권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들 약자는 인간을 오염시키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 따라서 해켈은 대량 안락사를 주장했다.

"악으로부터의 구원은 고통 없고 효과 빠른 독약에 의해 완수되어야 한다."(96~7쪽)

 

해켈의 이 말도 안되는 우생학은 "훗날 국가사회주의의 핵심 전제"가 되었다. 오늘날 이 우생학은 폐기되었다. 해켈의 사상은 히틀러의 인종청소, 유대인 박해에 핵심 전제가 되고 그것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사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켈과 그의 사상의 히틀러와 함께 종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가의 사상 또한 그러한가? 그것에 대한, 즉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한 문제점을 이본 셰라트의 이 책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이 책에서 읽은 만한 대목은 차라리 제2부에 묶인 '히틀러의 적들'이다.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등 오늘날 그 이름도 찬란한 이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오히려 더 빠져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앞부분을 제외하고 '히틀러의 적들'이란 제목으로 이 철학자들에 대한 자료를 보강하여 펴내는 것이 더욱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이들이 '히틀러의 철학자들'이 아닐까? 반어적, 역설적 의미에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강만준이 생각났다. 강만준의 책만큼이나 주가 많이 달려있다. 다양한 자료를 찾았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달리말하면 이본 셰라트가 하이데가 등의 철학적 문제, 즉 그의 철학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논박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능력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하기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히틀러의 적들이 어떻게 고통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 돋보이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다큐로서 의미가 있다. TV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지면 더욱 좋았을 뻔 했다. 소설적 묘사도 제1부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못했다. 오히려 제2부와 어울려 보다 감동적으로 읽히게 만들 뿐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더욱 아쉬운 것은, 아니 부러운 것은 독일의 문제에서 아직 제대로 따져 묻지 못한 것이 철학의 문제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한심해 보이기만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앗! 7월이다. 더워 죽는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번 여름에는 어딘가로 꼭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마음이 무뎌졌는지, '누구와'를 크게 고려치 않는다. 고려하다 못 가느니, 혼자라도 가자! 혼자가 점점 체질이 되어가는가 보다. 심각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올 여름 무더위 또한 혼자 보내야 할 터이니, 준비를 해야지!

 

7월의 관심 꾸러미를 챙겨보자. 6월 출간 책들을 살펴보니, 날이 더워 그런지 새로 나오는 책들도 좀 줄어든 듯 하다.

 

인문>에세이

우에노 지즈코, <독신의 오후>

 

이제 나도 그 오후를 준비해야할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한낮이라고 믿는다. 독신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까? 괜찮을 수도 있고, 안 괜찮을 수도 있다. 결국엔 돈이 중요하게 작용할지 모른다. 이 책은 어차저차 독신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들이 찌질하지 않게 살려면 어케해야 하는지를 조언하는 책인가보다. 미리미리 읽어 두어야 할까?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여자라는 점이다. 독신 남성의 체험담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일 줄 알았는데, 감히 여자라니? 생각해보면, 여성의 조언이 더욱 절실한 때가 독신의 오후쯤이 아닐까 싶다. 정말! 미리미리 준비해야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확 들기도 한다.

 

 

과학>생명과학

서민 외, <기생>

 

우리시대 기생충의 대가! 서민 교수. 이분 덕이 이제 이 더럽기만한 기생충의 공론의 장에 당당히 나서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다! 이 기생충만도 못한 인간들아! 독신남이란 정말이지 기생충 취급을 받기 일수였는데, 기생충의 참모습처럼 멋진 독신남이 되어야지! 서민 교수는 그간 기생충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쏟아냈는데, 이 책에도 참여한 듯 싶다. 이래저래 알게된 분이라 티비에서 볼 수록 정감이 가고, 기생충에 관심도 늘고, 워낙에 평소 이 사회에 기생하는 편이라, 제대로 기생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도 있겠다.

 

 

 

역사>문화사

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축구의 세계사>

 

월드컵이 한창이다. 1무 2패의 치욕적인 성적 탓에 엿사탕 세계를 받은 우리 국가대표팀이 안쓰럽다.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포르투갈도 잉글랜드도 떨어진 마당이 우리가 떨어진게 그닥 이상할 게 없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이 이상한 거? 근데, 역시나 우리팀은 실력이 모자랐다. 그래도 요새 수준 높은 16강전을 보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독신이라 가능한거? 불가능할 건 없지만 독신이 아니라면 그리 자유롭게 보고싶은 축구경기를 본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독신을 위한 스포츠! 축구! 그래서 축구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알고본다면 더욱 재밌지 않겠나? 축구의 역사를 파헤쳐봄이 어떠한가? 근데! 가격이 ㅎㄷㄷ하다.

 

과학>과학사

에드워드 J. 라슨, <신들을 위한 여름>

 

남자는 결혼을 위해 진화해 왔는지 모른다. 사회적 진화가 성립한다면 일단 사회적으로는 완벽히 진화했다. 그러나 난 아직 진화가 안 되었는지 모르겠다. 독신의 오후로 들어가기 전에 완벽한 독신남으로 진화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책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법정 논쟁을 소설처럼 들려주고 있다. 오늘날에는 진화론이 자명하게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여전히 똘아이들은 있는 법이다. 어찌하였든, 난 진화를 믿는다. 그래서 오늘부터 독신남으로 진화해볼까나? 흠흠! 일단 더위 안타는 인간동물로 먼저 진화좀 해보자...아구 더위!!! 

 



 
 
 
[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 왠지 이 이름은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의 직업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을 얼핏얼핏보면서 이 이름을 들어서일 수도 있고, 고생물학자들은 아무래도 어느 굴들을 찾아다녀야 할 것만 같아서 일수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그의 책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그 제목만큼이나 거대한 저작이다. 무려 800쪽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다.(이쯤되면 양장이 어울릴 것 같다는 편견을 난 가지고 있다.) 내용도 나로서는 참 거대하게 느껴진다. 어느 작은 생물에서부터 공룡, 저 멀리 우주에까지 이른다.(고백하건대, 나는 이책을 다 읽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시간도 없긴 했지만 그리 열심히 읽지도 않았다. 중반 이후부터는 선별적으로 읽긴 했지만, 그래도 3/4은 읽은 듯 하다. 점 하나까지 다 읽어야 리뷰를 쓸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이러한 사실에 그다지 불편해 하시지들은 않길...) 그러나 굴드는 이 책을 대중적이라고 역설한다.(내가 분명 대중 가운데 하나라면 이 책은 그다지 대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굴드의 대중에는 아마도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 영광스러운 지적 전통인 알기 쉬운 과학을 되살리는 작업에 매진할 것을 맹세해야 한다. 그 규칙은 간단하다. 절대 개념적 풍부함을 손상기키지 않을 것. 모호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건너뛰지 않을 것. 물론 전문용어를 쓰지 않되, 그렇다고 필요한 개념을 생략하지 않을 것(개념적 복잡성이 일상 언어로 전달될 수 있도록). 현재 미국에서 이런 양식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일차적인 임무는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고 누가 아닌지 식별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프란체스코와 갈릴레이의 인문학적 전통을 꿋꿋이 주장해나가야 하며, 핵심 요약이나 연출 사진과 같은 작금의 설득 이데올로기에, 즉 미국의 또 하나의 낡은 전통(반지성주의의 어두운 면, 파시즘의 전조가 될 수 있는 사려 없는 감성주의에 대한 호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12~!#쪽)

 

이렇게 과학을 대상으로한 대중적 글쓰기를 천명한 저자는 책을 읽고야 알게 되었지만, 십수년간을 그것을 실천하고 실행해 왔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그는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스스로 제시한 규칙을 이 책이 준수하고 있다고 판단할 능력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이 일차적으로는 미국의 대중을 대상으로한 대중적 글이라고 보여지는데, 미국의 대중에 해당하지 않는 나에게는 그의 규칙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준수되었는지를 가늠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그 규칙들이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와 비슷한 분야에 관해 읽은, 나에게 있어 가장 대중적인 책은 전중환이 쓴 <오래된 연장통>이란 책이라고 생각한다.(절대 굴드보다 전중환이 위대하다는 얘기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좀더 확장하면 굴드의 책보다 전중환의 책이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는 더욱 대중적일 터이다. 나에게 굴드의 책(한국어 본역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이 대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해서 굴드를 탓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한, 번역자와 출판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 원서를 읽을 능력도 시간도 없는 나이지만, 이 책이 정확한 번역일 수는 있어도 한국어로써의 잘된 번역은 아닐 듯 싶다.(내 생각일 뿐이다.)

 

무작위로 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다시 말해서, 키위의 알은 결코 비정상적으로 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몸집이 줄어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주장은 전혀 같지 않다. 오래된 농담과 달리, 우리는 뚱뚱한 사람이 몸무게 때문에 키가 작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162쪽)

 

여기서 '오래된 농담'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오래된 농담을 공유하지 못했기에 이 대목에서 조금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과학적 지식의 부족함도 원인이겠지만, 굴드의 대중적 글쓰기가 나에게는 공유하지 못한 문화적 한계 때문에 전혀 대중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간극을 번역자 또는 편집자가 채워넣어야 하지 않았을까? 번역에 있어서 대부분 직역한 부분이 많은 것 같고, 비문에 해당되는 문장들도 있는 듯 해서 가독성이 많이 떨어졌다. 첫 에세이부터 읽어가면서 나는 굴드의 비유와 예들을 거의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나에게는 이 책이 담고있는 진화생물학적, 고생물학적 지식의 설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겠지만, 그렇다는 얘기다.

 

굴드의 논법은 미국인들에게 꽤나 대중적이었을 듯 싶다. 흥미로운 것은 골드가 이야기를 시작해나가는 방법들이다. 잡다한 이야기,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가져와 이런저런,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가며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내가 공유하지 못하는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골드는 꽤나 출중한 작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N. S. 셰일러와 윌리엄 제임스에 대한 21번 에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21번 에세이를 읽어야 햇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이 에세이가 도입부분 만큼은 아주 탁월하다고 느꼈다. 아이들 문화에서 오는 어휘의 변천을 탐구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그로부터 한참을 흘러 본연의 주제로 들어가는 굴드식 어법이 흥미있었다. 거기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많은 부분 중에서도 <7부 지적 전기 - 생물학자>에 실린 21~23번 에세이와 <8부 진화와 창조>에 담긴 에세이들, 그리고 <9부 숫자와 확률>에서 야구와 연관된 엣세이를 나름 재미 있게 읽었다. 창조과학과 진화론의 논쟁은 승리자가 뻔한 싸움임에도 논쟁의 과정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 오래된 역사를 전해주는 굴드의 이야기에 빠져 단숨에 읽어나갔다.(위에서 언급했던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책에서 굴드는 일관되게 필연이 아니라 우연을 강조하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자신들의 역할만을 다 하면 된다는 점, 진화론이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런 점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의의가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내 능력의 부족함일터이다. 브론토사우루스를 응원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와 더불어 브론토사우루스가 제 이름을 수성 혹은 되찾기를 바란다. 내가 이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 첵임만은 아니니, 힘내자 메르키세데크스!!(내 아이디 멜기세덱을 펼쳐읽으면 비슷해질 듯 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