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가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박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긇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지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신경림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내 마음이 팍팍하게 메말랐을 때
자비로운 소나기와 함께 오소서.
삶에서 자비가 사라졌을 때, 오소서,
터져나오는 노래를 들고.
소란스러운 일이 그 소리를 높여
사방에서 그리고 위에서도 나를 가둘 때
나에게 오소서, 내 침묵의 주여,
그대의 평화와 안식을 가지고 오소서.
내 가난한 마음이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구석에 갇혀 있을 때, 문을 부수어 여소서,
나의 왕이여, 왕답게 장엄하게 오소서.
욕망이 미망과 먼지로 내 마음을 더럽힐 때,
오 그대, 거룩한 이여, 늘 깨어 있는 이여,
그대의 빛, 그대의 천둥과 함께 오소서.
내 노래는 스스로의 장식을 벗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의상과 치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장식품들은 우리의 결합을 손상케 할 것이며,
나와 님 사이를 벌려 놓을 것입니다.
그 짤랑거림은 님의 속삭임을 지우고 말 겁니다.
님을 뵈올 때면 시인으로서의 허영은 부끄러워 꼬리를 감춥니다.
오, 최고의 시인이시여!
나는 님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오직 내 삶을 단순하고 똑바르게 가꾸도록 해주소서.
음악으로 님이 채울 갈피리처럼.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 통에 버려질 것이다.
'과연 우리들의 뿔은 무엇인가? 아니 나의 뿔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