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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1 - 엘리트 북스 ㅣ 홍신 엘리트 북스 81
토마스 만 지음 / 홍신문화사 / 1994년 8월
평점 :
품절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때로는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좋다.
도가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아는 것을 혹은 잘 하는 것을 밝히고, 그것을 알려주는,
그러니까 결국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잘난 사람을 좋아하는 거겠지, 나는.
반대로 어수룩한 척 하면서,
아니면 정말 잘 모르는 주제에,
겸손을 떤답시고,
'외람되지만' ,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건 아니지만' 이라는 토를 서두에 달고 남을 훈계하려 드는 사람과 대하자면,
그의 겸허함에 감화되기보다는 그저 답답할 뿐이다.
토마스 만은 잘난 사람이고, 잘난 척도 곧잘 할 뿐더러, 수위는 넘지 않는다.
주로 잘난 사람들이 하는 실수인, 이 세상에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만 있을 거라는 편견 하에 사설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그 점에서 이 작가가 일단 마음에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런 호감만을 가지고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호락함을 펼쳐주진 않는다.
무릇 배우려면, 아니 적어도 생각하려면, 책을 손에 쥔 동안만이라도, 아주 진지한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는 것만 같다.
더불어 과장하자면,
책 읽기 뿐 아니라 이 세상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그런 호락호락함은
언젠가 무섭고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가
되어버린다는,
슬픈 암시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그래서 ,
단순함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 거추장스러운 기질이 된다.
단순함과 편리함을 동일시하는 많은 이들에게,
어쩌면 나같은 사람에게,
곤혹스러움 때문에 얼굴을 종종 붉히게 하는 것.
인스턴트 푸드를 먹고 잠시 말초적 맛에 현혹되었다가도 다시 그 음식을 떠올리면 별로 우수하게 쳐줄 수 없는 허탈감 대신에,
오래 공들인 음식을 먹는데 약간 소화불량이 되어 고생하다가
이윽고 소화를 잘 시키고난 뿌듯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장장 9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 권의 책을 건드려도 좋겠다고 감히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