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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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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이런 식의 '강의'라는 제목이 붙은 책,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사 읽지는 않았을 거라고, 학교 다닐 때 억지로 공부해야만 했던 것도 싫은데 강의라니 오우 노, 그런 마음이었다고 지금 말하자. 그래야 무식이 덜 쪽 팔리다. 

어느 정도 무식하냐면, 이 책을 읽고보니 미술사는 관두고 그냥 역사조차도, 우리의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가 막 처음 보는 얘기 같았고 한 줄 한 줄 모르는 이야기 투성이더라는, 냐하하하, 그런 고백부터 일단 하자.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허투루라도 들은 말이 있을텐데 다 까먹은 건지, 제대로 가르쳐주질 않은 건지, 둘 다인지, 아무튼 내게는 역사라는 게 그랬다. 아우, 창피하다. 

그런데 유홍준 저자 왈, 미술사학과 학생들도 길잡이 책 한 권 없이 공부하려니 맨 땅을 헤집고 다닌 기분이라며, 제발 개념서 하나 내달라고 했단다. 통사와 입문서를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는, 꼭 그 분야에 있지 않아도 쉽게 가늠이 되고, 좁은 분야를 깊게 탐구하는 작업이 널리 두루, 치우치지 않게 가닥을 잡는 것보다 일견 쉬운 작업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스런 고공비행'을 작심하게 된 계기가 내 맘에도 꼭 와닿는다. 이렇게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에 깊이 공감한 후 마음을 가다듬고 (삐딱이로 강의고 자시고 모르겠다 배째라 딴 생각만 하던 교실의 기억을 떨치고) 첫 장을 펼쳐 읽는다. 오, 우선 말에 군더더기가 없어 단어가 조금 생경해도 귀에 쏙쏙(아니, 눈에 쏙쏙이지 ㅎ) 잘 들어오고 칼라 사진이 시원시원하게 적재적소에 배치된 구성이 지루할 만 하면 등장, 공부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게다가 보너스 같은 야사(로 내겐 여겨지지만 야사가 아닐 지도)를 살짝 내밀어 주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 옛날이 지금보다 덜 개방적일 거라는, 문화예술적으로 뭔가 좀 뒤졌을 거라는, 내 평범하고도 오해 가득한 생각은 자연스럽게(또 기분좋게) 묵살되었다. 

   
 

 현무라는 짐승은 거북의 몸을 뱀이 휘감고 있는 자웅합체로 음양의 조화를 암수의 사랑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뱀과 거북의 두 꼬리가 여러 겹으로 꼬인 것은 격정적인 포옹을 상징하고, 머리는 마주하고, 혀를 내민 것은 입맞춤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더 이상 뜨거울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였다.

 
   

 * 위 묘사는 고구려 6세기 무덤의 벽화에 대한 묘사다. 그림은 여기 올리지 않으니, 과연 그림이 어떤가 보고 싶은 분들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한 가지만 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이 그림을 보고 놀라기 시작해서, 벌떡 일어나 곧추세운 자세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헤헤. 

뿐인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미학을 가진 백제 미술을 차근차근 둘러보면서 그저 달달 외우던 백제=우아함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미적 우아함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심미안이 내게 생긴 듯(착각이겠지만), 책의 마지막에 이르자 척 봐도 이건 백제 거야 정도는 되더라. 책 한 권으로 이럴 수 있는데, 십년을 공부해도 그 미를 몰라봤으니 원, 참으로 한심스러웠네 싶다. (이 부분에서 개인적인 결심도 했다. 나도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내 미적 기준으로 삼고 자신을 가꿔야겠다는. 냐하하하, 포부도 당찹니다요)  

한편, 평소 왜색이니 문화사대주의니 하는 것들에 약간은 반발심을 갖고 있던 (애국심 부족한) 나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눈에 쏘옥, 역시 문화란 자유로운 교류가 중요하다는 내 생각이 지지를 받는 것 같아서 든든한(?) 기분도 들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이런 수입 공예품들은 신라의 대외 접촉과 문화 교류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었음을 알려주며, 그런 다양한 문명과 접촉하면서 신라의 문화는 더욱 발전하고 세련되었음을 말해준다. 한 시대 한 나라의 문화 역량이란 자체에서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외 교섭 능력까지 포함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일일히 다 인용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조각 조각 떼어놓고 보면,  

문화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인문학적, 철학적 사고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그저 감탄만 거듭하게 되는 멋진 그림이 펼쳐진 도록이 되기도 하고 

미술작품을 봐도 그저 멍 때리고, 제대로 된 심미안을 갖추지 못한 (나 같은)사람에게는 작품에 대한 저자의 묘사 자체가 하나의 시와 같이 보이기도 하는 감상을 얻을 수도 있는, 문학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약 400쪽의 책 한 권 읽으면서, '나도 뭘 좀 알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그야말로 아무런 바탕 지식 없이 맨 땅에 헤딩한 나같은 문외한도 이러니, 조금 사전지식을 가진 분들이 읽으면 또 다른 감회가 나올 것 같다. 저자 뿐 아니라 '정말 성의있게 만들어 봤습니다'라고 자랑해도 충분할 출판사 편집진에도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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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11-2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검이불루 화이사치 들었을 때 (강연 때) 같은 결심을 했다지요
우리는 뭡니까 하하하하 ㅋㅋㅋㅋㅋ 그렇게 살아보아요 치니님~~

치니 2010-11-21 10:14   좋아요 0 | URL
그....그러니까 포부야 좀 크게 가질 수 있는 거 아니겠슴까. 에헤헤헤.
강연 들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글투와 말투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 같아요. 재미났을 듯.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의 하느님> 리뷰를 수정하다 글을 삭제해 버렸네요. 제게 주신 댓글도 함께 삭제해 버렸구요^^;

2010-11-21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2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11-2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무라는 짐승, 에로틱 아우라의 진수를 보여주는군요. 오호~~~~ 옆에 있던 커피잔 쓰러질뻔 했습니다 --;
오호~ 더 이상 뜨거울 수 없는 사랑이라니....
유선생님 짱이예요!!!!! 이 책은 꼭 볼래요^^

치니 2010-11-23 11:30   좋아요 0 | URL
으흐흐, 역시 굿바이님은 에로틱한 저 문장의 가치를 알아주시는군요. 그림과 같이 봐야 그 맛이 더 납니다. 네, 그러니까 이 책 보셔요. 그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어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