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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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겨레 북 섹션에 실린 서평에 의하면 듀나는 우리나라 장르문학의 대표주자라고 한다. 듀나의 단편소설집『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제 국내작가의 SF소설은 다 읽었군, 이었다.
한마디로 책 본문의 문장을 빌려(p.341,「디북」), '듀나의 상상력엔 내가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세계관 따위는 없어' 라고나 할까.
배경이 미래이고, 첨단 과학에, 사이버, 돌연변이, 유전공학 등등 관련 용어만 늘어놓으면 SF인가?
관련 장르가 활성화되고 이미 오래전에 정점에 오른 서양 SF로부터 빌려온 듀나의 SF 상상력은 새로운 세계로 확장은커녕 작가의 독자적인 세계관 구축에 실패하여 매트릭스 키드에 머물고 만다. 당연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열세 개의 단편은 읽는 내내 남의 꿈 얘기를 듣는 것마냥 지루하고 따분하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회의와 씨름하게 한다. 하긴 책 말미에 '꿈보다 해석'인 모평론가의 작품해설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읽으면 이 책에 저런 해설이 가능한지, 작품해설이야말로 이 단편집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SF였다.
사족 하나 더. SF인데 굳이 등장인물이 서양인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외계인 우주선은 미국 상공에만 나타난다더니 SF문학 너마저도!
나아가 브루스 윌리스 주연 영화 <써로게이트>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하는「디북」은 등장인물들이 온통 서양인인 건 물론이고 에너지 혹은 신경망(계)인 화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인간적(humanity)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단편 전반이 다 그렇다. 기껏 진화와 변이를 통해 출몰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종족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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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3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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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희곡,  시집 한 권을 남긴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은 어렵기로 유명한데 이유는 '열린 텍스트 구조가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기 때문'(진선주.『더블린 사람들』문학동네)이라고 한다.

원제가 'Dubliners'인『더블린 사람들』은『젊은 예술가의 초상』『율리시스』와 함께 '더블린 3부작'으로 불리우는 단편소설집.
열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많은 화자들과 그 주변인들은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로 읽는 내내 인물들의 일관된 정서가 느껴진다. 그런데 단편집이라 가볍게 선택한 이 소설은 독서 시작 직후, 그러니까 열다섯 편의 단편 중 첫번째 단편「자매」를 읽은 직후부터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간단하게 말해 왜 이 단편의 제목이 '자매'인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편에서 제목이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자매'는 본문 내용과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 뿐더러 이게 제목이어야 할 의미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결국 의문은 책 말미 해설을 통해서 풀렸는데, 순서상 마지막 단편인「죽은 이들」과 첫번째인「자매」의 제목을 맞바꾸어도 무리가 없는 열린 구조 즉, 각각의 이야기가 순환되면서 하나의 연작으로 읽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마지막 단편「죽은 이들」은 '자매'가 제목으로 딱 제격이다.

『더블린 사람들』은 시기적으로 조이스의 첫번째 소설이어서인지 이후의 장편소설에 비하면 소설 자체는 그닥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한 예로, 몸 전체가 갈색인 저도 있는 걸요, 라고 대꾸하는 '브라운 씨'(아마도 Mr. Browne일)의 농담은 '영어몰입교육'을 정책으로 미는 것이 전혀 안 이상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조이스式 언어 유희인 것. -「죽은 이들」중

문제는 이러한 언어의 내밀한 차이를 비영어권 독자들이 어디까지 수용 가능한가 하는 것인데, 조이스 스스로 '굉장히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추어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붙인, 20세기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율리시스(Ulysses)』나『피네간의 경야(혹은 밤샘)』 에 이르면 거의 난공불락의 성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경상도 사투리에 '가가 가가 가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이해 못하는 타지 사람들에겐 부연 명이 필요하다. 이렇게...
"경상도에서는요,그 아이'를 줄여서 '가-'라고 해요. 그리고 의문형 어미로 '가'를 써요. 그러니까 '가가 가가 가가'는 '그 애가 가(씨 성을 가진) 가(집안)의 그 애냐?'라는 뜻인 거죠."
이걸 같은 나라 타지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 발 더 나아가 이걸 문학에 집어 넣는다고 상상해 보자. 이쯤 되면 '그냥 널리고 널린 다른 수많은 고전이나 읽을래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듯 조이스 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그의 언어 사용에 있는데 획일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열린 텍스트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영어권 독자들에겐 그의 독창적인 언어 유희로 가득한 문학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우리나라가 비영어권 국가 중 조이스의 장편을 번역한 네번째 국가라고 하니 더 말해 뭘할까.

움베르토 에코 정도면 가능하겠군, 싶었는데 책 말미 해설에 짤막하게 에코가 조이스 학회장이라는 얘기가 있어 웃었다. (국내에 에코는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듯 하지만 실제로 그는 매우 저명한 기호학자다.)

단편 중「가슴 아픈 사고」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강박적이다 싶게 인물의 성격에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조이스의 문체 특징이 잘 나타난 이 단편은 한때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던 여인과의 만남 전후를 시니컬하고 냉정하게 응시하는 남자의 내면이 돋보인다.

조이스 문학의 또다른 특징은 '의식의 흐름'이다. 나는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면 과장해서 경기 비슷한 걸 느끼는데 그러니까 마르셀 프루스트나 울프 여사의 책은 펼치기만 하면 5분내 수면 상태가 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최근 읽으려고 펼친 책들이 죄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문학 속 '의식의 흐름' 기법은 아무래도 넘을 수 밖에 없는 산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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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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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만남」-  '그 날'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하는 이 장은 비극적인 그 날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노통과 처음 만났던 30년 전(1982')으로 간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인연이 그토록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처음 본 건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MBC에서 방영한 '대한민국 대통령'에서였다. 내가 그토록 정치에 관심이 없었거나, 그의 행보가 그토록 화려함과는 멀었거나, 였을 것이다.

2장「인생」- '인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장은 한국전쟁 통에 함경 흥남에서 피난온 부모님의 내력에서부터 시작해 저자의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청년시절까지 진행된다.
2장은 저자를 이해하는 몇 가지 단서들이 등장한다. 우선, 문학적인 한편 간결하고 명료하게 떨어지는 그의 문장이 장르를 가리지 않는 활자중독에 가까운 독서량과 수없이 많은 법조문을 써야했던 인권변호사 경력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그가 공수부대 출신이라거나 사법고시 2차 시험 합격을 (반독재민주화시위 중 수감된)유치장에서 듣는 대목에선 노통이 정치 무대에서 이상주의자였다면 저자인 문재인은 보다 현실주의자인 배경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장「동행」- 17대 대통령에 취임한 노통을 보좌하며 민정수석으로 보냈던 청와대 시절이 펼쳐지는 3장은 4장과 다른 의미에서 읽는 동안 참 가슴 아픈 장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했는가 보여주는 대목들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참 외로웠으리라 헤아리게 한다.

4장「운명」- 읽는 내내 여러 종류의 감정이 엇갈렸던 장이다. 독서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고개를 들던, 이 책은 진보 진영을 향한 목소리가 아닐까, 라던 짐작은 이 장을 읽으면서 확신이 되었다. 어떤 형태로든 현실정치에 발을 담갔던 경험으로 그는 진보 진영이 나아갈 방향에 진지한 고민을 던진다.
 

* 다음은 소박해서 오히려 짠했던 대목.

   
 

(…전략)지금은 개 세마리, 고양이 두 마리, 닭 여덟 마리로 식구가 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놈들 먹이주고, 똥 치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개는 부산에서 살 때부터 키워왔고, 고양이는 딸이 키우다 취직을 해서 돌보기 어렵게 되자 우리에게 맡겼다.
닭은 걸핏하면 방안으로 들어오는 지네 퇴치용으로 키우고 있다. 유기농 달걀을 얻는 보람도 있고, 또 때로는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부화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마당에 뱀이 들어올 때도 있어서 공업용 백반을 사서 마당 주변에 뿌리기도 한다. 채소도 가꾸고 있다.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밭인데도 둘이서 다 못 먹을 정도로 거둔다. -p.387
 

봉하에 자리를 잡은 대통령도 농군으로 잘 지내고 계셨다.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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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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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읽은 책은『7번 국도』, 처음 구입한 책은 같은 작가의『우리가 보낸 순간 시/소설(세트)』이다. 물론 다른 책도 함께 구입했지만 어쨌든, 작가를 향한 호불호과 상관없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소설을 읽은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네가 누구든...』『밤은 노래한다』의 '연장선, 혹은 출발선에 있는 소설' 이랄까. 시기적으로는 출간이 앞서지만 이번에 전면 개정했다고 하니 소설의 위치가 애매하다. '나'는 타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계는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부에 존재하는가... 라는 이젠 꽤 익숙해진 작가의 내러티브가 펼쳐진다.
이번 소설이 낯설지 않은 건 위에 언급한 두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 구도, 사건, 서사의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인데, 익숙하다는 건 모든 현상이 그렇듯 일장일단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냄새가 살짝 풍기는 게 기억에 남는데,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등장하기 때문에 책장은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다만 현대 일본 사소설의 특징적인 1인칭 정서가 등장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린다. 뭐,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오히려 취향일 수도 있겠다 싶다.  
궁금한 건, 이번 소설은 절판된 초판본을 전면 개정했다고 하는데 그럼 이러한 부분은 개정 전의 것인지 개정 후의 것인지 하는 거다.
혹 개정 후의 것이라면 아마 이후에 나오는 작가의 소설은 구입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덧.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늘 그렇지만 '골이 난 일곱 살짜리 우등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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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시리즈 - 전16권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레이 몽크 외 지음, 김병화.안인희.고병권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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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첫 관문으로 삼아도 좋은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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