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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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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어디에서나 말하는 것에 대해 나도 말하려면 웬만큼 잘 하지 않고서야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된다. 하지만 누구도, 어디서도 쉽사리 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생긴다.

 

그 옛날 입에 담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것이 있다. 지금은 그때만큼 심하진 않지만 여전히 공적인 영역에서보다는 사적인 영역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sex)’이다.

 

입에 쉽게 담기 힘들지만 너무나 본능적이고 일상생활과 밀접해 무시할 수 없다면 그것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아마 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춘화(春畵)’는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이연식의 [아트파탈]은 바로 은밀한 성()이 그림을 통해 어떻게 표현됐고 어떻게 유통됐으며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책이다.

 

공식적인 영역에서 통용되려면 앞서 확립된 예술의 형식을 따르는 단계가 필요하다. P.192

 

누드라는 상태가 누드화누드사진과 같은 작품의 영역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많은 진통이 있었다. 저자는 그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이라는 가장 사적인 영역공적인 영역으로 불러오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진통으로 해석했다.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이 나체로 미술학도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몸을 가렸는데, 그 이유는 교실 밖에서 교실 안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미술학도 앞에 몸을 드러내는 것은 합의된 공적인 영역이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 그 공간(교실)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 앞에 알몸을 내놓는 것은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사적인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로부터 수많은 화가들이 나체를 그리고자 한 데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 나체, 누드가 가진 아름다움과 마땅히 가려져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더해지는 신비함이나 흥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나체인 사람은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것은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미셸 투르니에의 이야기에서 너무 잘 드러나며 그 덕에 미술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기도 했다.

 

어느 날 열아홉 살 소녀가 문학에 관한 자문을 구하러 투르니에를 찾아왔다. 그녀는 투르니에의 집에 있는 여러 카메라와 사진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투르니에는 그녀의 모습을 찍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승낙했다. 그리고 여기서 오해가 생겼다. 촬영을 준비하던 투르니에의 앞에 그녀가 알몸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투르니에는 잠깐 당황했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그녀의 어깨 위쪽만을 찍었다.

투르니에는 자신이 찍은 그녀의 사진들을 펼쳐놓고 보다가 나체 초상이라는 영역을 새로이 발견했다. 알몸을 찍지 않았음에도 화면 속 얼굴에는 화면 바깥에 있는 알몸의 광휘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P.32

 

성문화는 말 그대로 문화의 영역이라서 다른 문화의 영역들처럼 과거와 현재가 다르고 또 지역마다 다르다. 태초에 ()’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없고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던 시절에는 그것이 별스러운 것도 아니었지만, 숨겨야 할 것, 은밀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널리 퍼져나간 후에 이것은 가진 자혹은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중국 고대사회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데 주인의 성생활을 하인들이 보조하기도 하고 넓디 넓은 집 안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부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반면 일본의 춘화에서는 좁은 장소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며 그 표현은 더욱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도 나체화를 둘러싼 분란은 여느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발생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나체화를 둘러싼 분란을 가라앉히고 결국 나체화를 예술계 안에서 수용하게 한 건 엉뚱한 쪽에서 작용한 힘이었다. 서구에서 고상한 예술 형식으로 취급되는 나체화를 일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는 일본이 서구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증거이고 서구인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P.187

 

그리고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더욱 보수적인 시각이 나타나는데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과부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교미하는 개를 그려 넣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일이 많았다. 또 유독 키스하는 그림이 적다는 것도 재미있는 특징이다.

 

중국, 일본의 춘화와 대별되는 한국 춘화의 결정적인 특징은 키스가 없다는 것이다. P.178

 

누드화와 그에 대한 인식은 그 시대, 그 사회의 성문화와도 직결된다. 하지만 아래 저자의 의견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도 똑같이 통용되어야 할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성문화를 건강한 것건강하지 않은 것’, ‘변태적인 것정상적인 것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패착이다. 이런 구분은 문화와 예술 영역에서 성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던 관료와 보수 세력이 가장 쉽게 휘두르던 구실이다. P.176

 

저자는 또한 다음과 같은 케네스 클라크의 관점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진작가들이 누드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의 진짜 목적은, 벌거벗은 육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은 육체는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하는, 예술가의 견해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케네스 클라크, <누드의 미술사>에서 p.194

 

개인적으로는 시대에 따라 단순히 벌거벗은 육체를 재현하는 것또한 진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일은 재현된 육체를 보는 감상자의 몫이다. 그것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든 말이다.

 

이연식의 [아트파탈], 특별히 새로운 시각이나 독창적인 해석 없이 그저 내숭 부리지 않는 것만으로 이렇게 책이 되어 나올 수 있는 게 이 땅의 미술이자 에로티시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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