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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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이 나온다. 행복을 극대화하고 자유를 존중하며 미덕을 기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중에서 자유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심리학자 김정운이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에 건너간 기사를 읽었다. ‘난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는 단호한 의사표현이 왠지 끌렸다.   

 

새해가 되면서 각종 모임을 정리하고 있다. 오랜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으로 모임이 제법 많다. 모임에 함께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나 모임 후 늦은 귀가 길에는 허무함과 상실감만 커져갔다.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에 투자하려고 한다.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고,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과 교류하며,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때로는 개인주의자라는 원망을 듣겠지만 나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를 선언하고 싶다.

 

현직 인천지방법원의 부장판사인 문유석의 저서개인주의자 선언(문학동네)’은 올해 내 결심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말한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이기주의나 고립주의의 의미는 아니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정해진 규칙을 준수한다. 다른 의견의 사람과 타협할 줄 알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추구한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사회,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저자는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임을 말한다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판사의 신분이지만 문학작품 읽기의 중요성도 이야기한다. 문학이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한 것만으로는 수많은 비상식의 세계를 이해하거나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문학 읽기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생각, 다양한 세상을 간접경험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할 힘을 얻는다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내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자신을 주어로 하여 털어놓기는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낸다. p.154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자유, 김정운의 단호한 의사 표현,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내용은 다르지만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개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불필요한 관심은 배제하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이 중요하다

   

지식기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산업 구조가 이행한 사회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던 계층은 잉여인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같은 저학력이라도 지역사회 기반이 탄탄한 백인들은 사정이 낫다. 슬럼가 출신 흑인들은? 계속 슬럼가에서 살 수밖에. 가정 환경, 교육 환경 모두 열악한 상태에서 고도화된 산업 구조에 걸맞은 고급 노동력을 갖추는 건 어려운 일이다. 주변에 온통 마약밀매자와 갱단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좋은 롤모델 자체도 없다.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다.

미국정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참 골칫거리일 거다. 사실, 정부 관료들이 휴머니스트들이어서 이들에게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지출해온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궁지에 몰리면 살기 위해, 또는 자포자기 상태로 범죄와 소요로 사회를 공격하는 위협이 될 것이고,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는 다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기에, 일종의 보험료에 해당하는 비용을 미리 지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다시 경제 구조 내에서 제 역할을 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기회, 노동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까지는 복잡한 난관을 거쳐야 해서 결코 쉽지 않다. p. 228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이 와 닿는다.‘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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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마지막 문장 참 좋았어요!
:)

세실 2016-01-27 22:23   좋아요 0 | URL
아마도 이책 다락방님 서재에서 보구 읽은듯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간단 명료한, 임팩트있는 마지막 문장^^

수퍼남매맘 2016-01-2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서 세월호 아이들이 떠올라 찡하네요.

세실 2016-01-27 22:24   좋아요 0 | URL
선장이나 선원들이 내 아이라는 생각만 했더라면... 여전히 원망스럽네요.

2016-01-28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9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9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30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30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31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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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0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 행복해지죠, 그런 의미에서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새해의 결심에 응원을 보냅니다.
저는 일찌감치 사그리 정리하고 원하는대로 살다보니 행복하기는 한데,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더군요. 그래서 어느정도는 사회생활을 위해
불필요한 관계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세실 2016-02-10 09:13   좋아요 0 | URL
관계를 정리하면 경제는 피지않나요?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니...ㅎ
가끔 가면속 제 웃음이 싫을때가 있어요. 그런 모임 과감히 정리하고(벌써 1개 정리^^), 그 시간에 운동 열심히 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