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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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여섯 살 딸아이의 콧물 감기는 좀처럼 낫지 않고 열과 기침까지 동반하게 되었다. 열이 잘 나지 않는 편이었는데 해열제 약효가 떨어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바로 39도와 40도를 넘나들기를 계속했다. 아무래도 단순 감기로 보이지 않아 평소 다니던 대학 병원에 가서 다시 딸아이의 증상을 얘기하자 폐사진을 찍어보자 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전문가가 보지 않아도 사진에 하얗게 전면을 뒤덮은 무언가가 좋은 것이 아님을 예견하게 했다. 당장 입원하라는 권고가 떨어졌고 그때까지만 해도 걸어다니며 떼도 부릴 수 있었던 터라 아이는 입원하지 않겠다고 울었다. 사실 유치원 친구들도 폐렴으로 종종 입원하는 터라 그때까지만 해도 딸아이의 입원을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틀, 사흘이 되어도 호전되지 않고 아이는 밥도 먹지 않고 놀지도 않고 육인실 병상에 누워 기침만 했다. 어린이 병동의 육인실은 대부분 아주 심각한 질환을 가진 아이가 장기로 입원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유독 딸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휠체어를 타고 어린이 방송을 보고 복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형제와 놀기도 했는데 나의 아이만 불덩이 같은 몸으로 누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재차 아이의 폐사진을 찍어보고 의료진은 더 악화되고 있다고 판단했고 항생제가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 더 독한 항생제 투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폐렴은 점점 악화되었다. 아이는 일반 병동에서 더 이상 안전하게 치료받는 상태가 아니라 점점 경과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연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 하나 나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각종 상황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코감기에 걸렸을 때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고 외출하고 평상시 생활을 계속 했던 것,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아이를 무리하게 한 것, 빨리 입원시키지 않은 것 등 온갖 죄책감의 요소들은 난무했다. 그리고 든 생각, 하필 왜 우리 아이가 이런 위중한 폐렴에 걸렸는가, 왜 내가 아니고 내 아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반문하게 되기 시작했다. 나는 신을 믿었지만 이런 각종 의구심과 반문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 사실 기도도 잘 되지 않았다. 엄마로서 결국 내 아이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 불운은 나를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정면으로 나를 가격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송두리째 날아간 기분이었다.

 

필립 로스가 절필을 선언한 지 몰랐다. 찾아 보니 2010년 그가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네메시스>는 자신의 선언 아닌 선언을 번복하지 않는다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해 여름 첫 폴리오는..."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현재의 상황과도 겹친다. 1944년 위퀘이크 유대인 구역에서의 폴리오 대유행으로 촉발되는 이 비극은 철저하게 정제된 경제적인 문장으로 농밀하게 전달된다. 치료 약도 백신도 없던 당시에 소아마비로도 알려져 있는 폴리오의 창궐은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쓰러뜨렸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이 지역의 놀이터 감독이라는 조금은 낯선 일을 맡았던 스물세 살의 버키 캔터라는 다감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청년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조부모의 손에서 가난한 지역에서 성장한 그였지만 강인하고 생활력 강한 조부의 가르침과 다정하고 섬세한 할머니의 배려로 버키는 여러 좋은 자질을 갖춘 지도자로 성장하여 소년들의 친밀한 형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만 나쁜 시력 때문에 참전하지 못한 터라 그는 자연스럽게 놀이터 감독의 일을 맡게 된다. 폴리오의 창궐로 놀이터에 나와 놀던 소년들도 하나씩 감염되어 죽음을 맞게 되자 그는 무고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 그들이 꾸던 꿈과 그들의 미래를 한꺼번에 탈취해가는 잔인한 그 무엇으로 생각되어 신에 대한 분노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랬다. 내가 그때 아이의 폐렴이 악화일로로 치달았을 때 느낀 감정도 어쩌면 버키가 자신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의 필연적인 설명이나 정당성을 어딘가에서 얻고 싶었던 그 무력한 느낌과도 닿아 있어 낯설지 않았다. 그의 연인 마사가 폴리오 창궐 구역에서 70마일이나 떨어진 지역의 인디언 힐 유대인 소년 소녀 캠프의 물놀이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 망설임 끝에 그가 거기에 간 것은 결국 그의 양심을 괴롭히는 도피이기도 했다. 슬프게도 이것은 이 선량한 청년의 이야기의 마지막이 아니다.

 

그리고 삼십칠 년이 흐른 뒤. 이야기의 서술자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해 여름, 폴리오로 친구들이 죽어 나갔던 그  지역에서 버키의 감독으로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던 소년들 중의 하나. 그 자신도 폴리오에 감염되어 다리가 마비되었지만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비극을 개인적 비극으로까지 심화하지는 않아도 되었던 비교적 운좋은 무리에 속해 직업도 갖고 어엿한 가정도 꾸릴 수 있었던, 그래서 이제는 삼십 대 후반이 되어 쉰이 된 소년 시절의 놀이터 영웅 버키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게 되어 그의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청자가 된 것이었다. 버키가 놀이터를 뒤로 하고 떠난 곳에서 당면하게 된 더 큰 비극은 버키에게는 하나의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운명의 가혹한 힘이자 잔인한 신의 횡포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훑고 간 자리에서 버키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굴복한다.

 

1944년, 미국 뉴어크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과 그리고 내게도 일어났던 일과 닮았다. 누구도 왜, 무엇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해명하기 어려워 원인과 죄과는 여러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를 둔 엄마들은 모든 것들에서 아이들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두려움에 전염되어 놀이터에 마음껏 아이를 내보낼 수 없고 학교나 기관 같이 여러 아이들이 한데 모이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 숨이 막힌다. 1944년의 보건국과 2015년의 질병관리본부에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 한낱 놀이터 감독인 어린 청년에게 아이의 엄마들은 대체 누가 책임자냐고 책임자가 어디 있느냐고 절규하며 물어본다. 대답할 수 없는 버키는 그 질문의 화살들을 신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 책임론은 결국 그에게 죄의식으로 또 실제적인 비극으로 수렴된다.

 

필립 로스는 절필을 선언하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이제 쓰는 것과 관련된 사투는 끝이 났다.",는 포스트잇을 붙였다고 뉴욕타임즈와 인터뷰했다. 그는 더 이상 쓰는 것과 관련된 좌절을 견뎌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는 쓰는 것을 좌절과 연결한다. 그러니 그것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다,는 그의 겸손한 고백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말하는 삶과 그것을 포박하는 거대한 운명의 힘, 우연의 힘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은 공교롭게도 절망이 아니다. 이 비극적 서사시의 엔딩은 필립 로스의 마침표가 웅변한다. 다시 소년 시절로 돌아온 서술자인 '나'는 쇠락하고 무너진 버키가 아니라 한없이 아름다웠고 찬란했던 버키가 아이들 앞에서 창던지기 시범을 보이던 그 날을 묘사한다. 그 찰나 안에 가두어진 그 아름다움, 그 생생함, 생명력은 눈물겹다. 소년들의 영웅. 미래의 꿈을 간직했던 미래가 창창했던 젊은이.

 

있었으나 사라진 것도 결국 있었던 거다. 필립 로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기자와의 인터뷰의 말미에 어두워진 실내를 밝히기 위해 그가 불을 켰던 것처럼. 그는 단순히 운명에 굴복하는 무력한 인간의 패배를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가 아무리 비극적이어도 아름다운 공명음을 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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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6-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아픈 모습을 지켜보기도 힘들지만,
어버이가 아플 적에 아이가 지켜보는 눈길을 받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더군요.
아이도 어버이도 우리 누구도 아프지 않으면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하고 비는 마음입니다..

blanca 2015-06-09 08:47   좋아요 0 | URL
병세가 호전된다,는 확신만 있으면 시간과만 싸우면 되니 견디기가 쉽지만 그런 전망이 불투명하면 여러 모로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고 참 힘들더라고요. 네, 다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로 2015-06-0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네메시스는 아직 못 읽었어요. 근데 내용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선뜻 손이 인 가네요. ^^;;
근데 분홍 공주가 그런 일이 있었군요!! 블랑카님 많이 힘드셨겠어요. 저도 해든이 가와사키 병에 갈려서 열이 40도가 넘는데 원인을 모르고 물에 애를 담기놓고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엔 병명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입원시키고,,,, 암튼 그때 일이 어제 생긴 일처럼 생생하네요~~~ㅠㅠ 엄마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죠. 블랑카님의 표현처럼 저도 제 탓만 하게되고,,,, 그런 게 시험 일까요???

blanca 2015-06-09 11:21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니 해든이가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가와사키도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병인데 아주 잘 이겨내서 다행이에요. 자식을 키운다는 게 나날이 더한 도전에 당면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더 성장하는 거겠지만 참 쉽지가 않네요. 그 이후로 트라우마가 남아서 아이들이 조금만 아프면 최악의 상황이 자꾸 상상이 되서 힘들어요.

세실 2015-06-0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라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그저 아이 아프지않고 씩씩하게 커주는 기쁨이 제일인데 클수록 욕심이 생깁니다.
좀 더 겸손해야겠어요.

blanca 2015-06-09 11:22   좋아요 0 | URL
세실님, 당시는 자꾸 극단적인 상황이 자꾸 가정이 되서 너무 괴롭더라고요. 참, 건강이라는 게 잃으면 전부 같은데 유지되면 금세 잊어버리게 되니 또 다른 것들에 끄달리고 아이를 혼내게 되고 저도 그렇더라고요.

Nussbaum 2015-06-0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긋는 한 줄. 멋진 리뷰 감사히 읽고 갑니다.

blanca 2015-06-10 13:40   좋아요 0 | URL
읽고 댓글 주시니 감사하지요...

2015-06-14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4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5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