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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견디는 것만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선자 이모가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이 없고, 무엇도 잘 표현하지 않던 선자 이모가 사람들마다 붙잡고 진지한 얼굴로 부탁을 해 대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 서명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어. 선자가 그런 서명을 받기 시작한 건 아마 말자 언니 영향이었을 테고, 나는 말자 언니가 하는 운동들을 조금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땐 나도 어렸고, 말자 언니같이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무서웠거든. 나중에 말자 언니에게 들은 거지만 독일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서명 받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 시절엔 대사관 같은 데서도 이런 운동조차 이념 갈등으로 규정해서분열을 조장하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에 따르면 한인 간호 노동자들이 벌인서명운동은 1978년 3월, 체류권 보장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여는토대가 된다. 한인 여성들과 독일 연방 내무성, 노동청 담당자가참석한 그 토론회가 뮌스터에서 열리고 약칠 개월 뒤, 오년 이상체류자에게 무기한 체류권을, 팔년 이상 체류자에게는 영주권을 주는 새로운 행정법이 통과된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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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 이모는 그 밑에 독일어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두었다. "Wie lange noch sollen Menschen wie Waren hin- undhergeschoben werdent 동안이나 사람들이 물건처럼 이리저리 보내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아래 이모는 다시 생의 한가운데의 그 구절을 적었다.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man will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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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내가 독일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할 때부터 나를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게 했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도록 시켰다.
이모가 오래전 내게 잔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약도를 그려주었듯, 나는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이모의 스마트폰에 서울 지하철 앱과 택시 앱 같은 거들을 깔아주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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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이모의 일기장에서 언제나 이인칭으로 호명되는 사람, K. H. 라는이니셜이 보이지 않는 순간조차 마치 이 일기장을 언제고 읽게 될가상의 독자처럼 거기에 한결같이 존재하는 사람은 선자 이모의첫사랑인 K.H.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만약 이 "우리"가 선자이모와 K.H.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오기로 되어 있던 사람은 물론 K.H. 일 수밖에 없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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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한두 줄을 끼적여놓았을 뿐인 그 시기의일기를 읽어보면 당시 선자 이모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밥을먹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괴로워했던 걸까? 일기장에서 생략된 날짜들은 짤막한 일기마저 쓸 수 없었을 선자 이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나는 일기가 쓰인 날부터 그다음 일기까지의 비어 있는날들을 헤아려보았고, 그 간격이 유독 길어진 시기엔 깊은 우울에빠져 있었을 선자 이모를 상상하며 마음이 아팠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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