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견디는 것만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선자 이모가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이 없고, 무엇도 잘 표현하지 않던 선자 이모가 사람들마다 붙잡고 진지한 얼굴로 부탁을 해 대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 서명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어. 선자가 그런 서명을 받기 시작한 건 아마 말자 언니 영향이었을 테고, 나는 말자 언니가 하는 운동들을 조금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땐 나도 어렸고, 말자 언니같이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무서웠거든. 나중에 말자 언니에게 들은 거지만 독일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서명 받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 시절엔 대사관 같은 데서도 이런 운동조차 이념 갈등으로 규정해서분열을 조장하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에 따르면 한인 간호 노동자들이 벌인서명운동은 1978년 3월, 체류권 보장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여는토대가 된다. 한인 여성들과 독일 연방 내무성, 노동청 담당자가참석한 그 토론회가 뮌스터에서 열리고 약칠 개월 뒤, 오년 이상체류자에게 무기한 체류권을, 팔년 이상 체류자에게는 영주권을 주는 새로운 행정법이 통과된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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