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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뇌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며, 둘째는 남이 그 이치를 설명했을 때 깨우치고, 셋째는 전혀 그 이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첫째 부류가 가장 탁월하며, 둘째는 뛰어나고, 셋째는 무용지물입니다. - P159

대신의 윤리와 군주의 시혜
군주가 한 대신의 사람됨을 평가하는 데에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당신의 일보다 자신의 일에 마음을 더 쓰고 그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그는 결코 좋은 대신이 될 수 없고, 당신은 결코 그를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과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항상 군주에 관해서 생각해야 하고 군주의 일에만 관심을 집중해야 됩니다. 한편 군주는 대신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를 우대하고, 재부를 누리게 하며, 그를 가까이 두고 명예와 관직을 수여하는 등 그를 잘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군주는 대신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오직 군주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이미 얻은 많은 명예와 재부로 인해서 더 많은 명예와 재부를 원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자신이 맡은 많은 관직들을 잃을까 염려하여 변화를 두려워하도록 대우해야만 합니다. 만약 대신과 군주가 그러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들은 서로를 계속 신뢰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둘 중의 어느 한 쪽은 항상 불행한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 P160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제3의 방도를 따라야 하는데, 자신의 나라에서 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임하여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것도 군주가 요구할 때만 허용해야지 아무 때나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군주는 그들에게 모든 일에 관해서 묻고, 주의 깊게 그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그 뒤에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나아가서 군주는 그의 조언자들의 말이 솔직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들의 말이 잘 받아들여진다고 믿게끔 처신해야 합니다. 군주는 그가 선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되고, 그의 목표를 확고하게 추구하며, 그가 내린 결정에 관해서 동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처신하지 않는 군주는 아첨꾼들 사이에서 몰락하거나 아니면 그에게 주어지는 상반된 조언 때문에 결정을 자주 바꾸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 P163

군주는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오랫동안 다스리던 국가들을 잃게 된 우리 시대의 군주들은 운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시대에 그들은 사태가 변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날씨가 좋을 때 폭풍을 예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입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뀌어 역경에 처하면, 그들은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도망갈 궁리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복자의 오만무례한 횡포에 분노한 인민이 그들에게 권력을 되찾아주리라고 희망했습니다. 이 책략은 다른 모든 책략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온당할 수 있지만, 다른 해결책들을 등한시하고 이 책략에만 기대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건 일어나지 않건 이러한 책략은 당신의 안전을 도모해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방어책은 당신의 능력 밖에 있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취약하고 비겁한 것입니다. 당신의 주도하에 있고 당신의 역량에 기초한 방어책만이 효과적이고 확실하며 영구적입니다. - P168

제25장 운명은 인간사에 얼마나 많은 힘을 행사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운명에 대처해야 하는가

운명은 우리의 행동의 반 이상을 통제한다
저는 본래 세상일이란 운명의 신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신중함으로써는 이를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런 사태에 대해서 인간이 어떠한 해결책도 강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땀을 흘리며 애써 노력해보았자 소용이 없으며, 운명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인간의 예측을 넘어선 대격변 때문에 우리 시대에 더욱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생각할 때, 저 자신도 간혹 어느 정도까지는 이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서 저는 운명이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이 진실이라고 판단합니다.

운명의 범람은 통제될 수 있다
저는 운명의 여신을 험난한 강에 비유합니다. 이 강은 노하면 평야를 덮치고, 나무나 집을 파괴하며, 이쪽 땅을 들어 저쪽으로 옮겨놓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격류 앞에서는 도망가며, 어떤 방법으로도 제지하지 못하고 굴복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온한 시기에 인간이 제방과 둑을 쌓아 예방조치를 취함으로써, 나중에 강물이 불더라도 수로로 물줄기를 돌려 제방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제방을 넘어왔을 때 그 힘을 통제할 수 없다거나 덜 피해가 가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자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아무런 역량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아무런 제방이나 둑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을 덮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러한 격변의 근원이자 무대인 이탈리아를 살펴보면, 당신은 이 나라가 바로 제방이나 둑이 없는 들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나라가 독일, 스페인, 프랑스처럼 적절한 역량에 의해서 제방을 쌓았더라면, 홍수가 그렇게 커다란 격변을 초래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예 홍수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대체로 이 정도면 일반적인 차원에서 운명에 대처하는 일에 관해서 충분히 말한 셈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잘 적응시키는 사람들은 행운을 누린다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군주가 성격이나 능력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흥했다가 내일은 망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우선 이미 상세하게 논한 원인, 즉 전적으로 운명에 의존한 군주가 그 운명이 변할 때 몰락하게 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저는 군주의 대처방식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할 때 성공하고, 그렇지 못할 때 실패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곧 영광과 부에 대해서 상이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한 사람은 신중하게 다른 한 사람은 과감하게, 한 사람은 난폭하게 다른 한 사람은 교활하게, 한 사람은 참을성 있게 다른 한 사람은 그 반대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처럼 각각의 상이한 행동방식은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중한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합니다. 또한 상이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신중하게 다른 한 사람은 과감하게 행동하는데, 모두 성공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이한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양식이 그들이 행동하는 상황에 부합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말한 것처럼, 상이하게 행동하는 두 사람은 동일한 결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행동했지만, 한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흥망성쇠가 거듭됩니다. 어떤 사람이 신중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고 시대와 상황이 그의 처신에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하면, 그는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다시 변화하면, 그는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이런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 만큼 지혜로운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이 그러한 변화를 용납하지 않거나, 아니면 일정한 방법으로 행동함으로써 항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우리의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중한 사람이 신속하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지를 못할 것이고, 이로 인해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운명은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명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선호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항상 과감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는데, 일처리 방식이 시대와 상황에 적절하게 알맞았기 때문에 항상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조반니 벤티볼리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율리우스가 볼로냐에 대해서 감행했던 첫 원정을 생각해봅시다. 베네치아인들은 그 계획에 반대했고, 스페인 왕 역시 반대했습니다. 그 작전에 관해서 율리우스는 프랑스 왕과 아직 협상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특유의 기개와 과감성을 과시하면서 교황은 친히 그 원정을 지휘했습니다. 이러한 진격은 스페인 왕과 베네치아인들의 허를 찔렀고 이로써 그들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자는 두려워서, 전자는 나폴리 왕국 전체를 재탈환하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서 수수방관했던 것입니다.
한편 교황 율리우스는 프랑스 왕을 끌어들였습니다. 프랑스 왕은 베네치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고 교황과의 친선관계를 확립하고 싶어하던 참인데, 교황이 이미 작전을 개시한 이상 공공연하게 교황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서는 군대 파견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같은 신속한 진격으로 율리우스는 사려 깊은 어떤 다른 교황도 불가능했던 업적을 성취했습니다. 그가 만약, 다른 교황이 그렇게 할 법했던 것처럼, 모든 조건을 합의하고 해결한 후에 비로소 로마를 떠나려고 했더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왕은 군대 파견을 거절할 수 있는 수많은 핑계를 어떻게 해서든지 꾸며댈 수 있었을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교황이 두려움을 느끼고 신중하게 처신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를 내놓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황의 이와 비슷한 다른 행동을 여기에서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모든 행동들은 비슷했으며, 그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생애가 짧았기 때문에 그는 실패를 맛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중한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는 몰락했을 것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타고난 성질과는 다른 행동을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은 대담한 자들과 벗한다
따라서 저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해서 행복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해서 불행하게 된다고 결론짓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운명은 여성이므로 그녀는 항상 청년들에게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덜 신중하고, 보다 공격적이며,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다루고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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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삶을 갈망하였다. 그런데 당신은 삶의 문제들을 혼동된 논리로 해결하고 있다. 당신의 외침은 얼마나 불쾌하고, 얼마나 뻔뻔스러운 것이며 동시에 당신은 얼마나 놀라고 있는가! 당신은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에 당신은 만족하고 있다. 당신은 무례한 말을 하면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있으며 용서를 빌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당신에 관한 우리들의 의견을 걱정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이를 갈고 있다고, 동시에 우리를 웃기려고 농담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신은 당신의 농담들에 재치가 없음을 깨닫고 있지만 당신은 확실히 그것들의 문학적 가치를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 아마도 당신은, 사실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조금도 존경하고 있지 않다. 당신 안에는 진실도 있다. 그러나 순수함은 없다. 가장 하찮은 허영에 차서 당신은 당신의 진실을 자랑하려 하고 있지만 수치스런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당신은 무엇인가를 말하기를 정말 원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마지막 말을 숨기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그 말을 할 용기는 없고 소심함과 무례함만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의식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망설임이다. 왜냐하면 비록 당신의 정신이 작용하고 있더라도, 당신의 마음은 악행에 의해 더러워졌고, 순수한 마음 없이 완전하고 건전한 의식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얼마나 불쾌한 존재이며, 주제넘고 가식에 차 있는가! 거짓말들, 거짓말들, 거짓말들!」 - P484

모든 사람들의 추억 속에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그런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밝히지 않고, 은밀하게 자신에게만 밝히고 싶은 일들도 있다. 그러나 급기야는 자기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점잖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상당수 축적하고 있다. 나는 이런 말까지 해보겠다. 사람이 점잖을수록 그 같은 것을 더 많이 갖고 있다. - P486

그때 나는 겨우 스물넷이었다. 그때에도 내 삶은 우울하고 혼란하고 거칠 정도로 고독한 것이었다. 나는 아무와도 사귀지 않았고 심지어 말하는 것도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방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심지어 직장에서도 나를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동료들이 나를 괴상한 놈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ㅡ 이것 또한 내가 끊임없이 갖고 있던 인상이었다 ㅡ 혐오스러운 것을 대하듯이 쳐다본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때때로 의문을 가졌다. 왜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혐오스럽게 쳐다본다고 느끼지 않는 것일까? 우리 부서에 근무하는 이들 중에 한 친구는 불쾌하고 곰보자국이 덕지덕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얼굴에는 심지어 범죄자 같은 무언가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 무례한 얼굴로는 나 같으면 감히 다른 이들을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다른 친구는 너무 낡은 제복을 입고 있어서 이미 그에게서는 심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신사들 중 어느 하나도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둘 다 옷 때문에도, 얼굴 때문에도, 어떤 도덕적인 면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혐오스럽게 쳐다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관이 아니어서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끝없는 허영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면서, 자주 나 자신을 화가 나도록 불만스럽게 쳐다보았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음속으로 내 모습이 이렇게 보이는 것을 모든 사람들의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 지금 명백해졌다. 나는 내 얼굴을 싫어했다. 나는 내 얼굴이 소름끼치게 생겼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얼굴에 비굴한 표정 같은 것이 있다고까지 의심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직장에 도착할 때마다, 아무도 내게서 노예 같은 표정을 감지할 수 없도록 가능한 한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으며, 할 수 있는 한 고상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못생긴 대신에.> 나는 생각했다. <고상하고 인상적이며, 무엇보다도 대단히 지적인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ㅡ 그리고 고통스럽게 ㅡ 이런 모든 완벽함들은 내 얼굴에 결코 나타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끔찍스러웠던 것은 내 얼굴이 정말 바보처럼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얼굴이 지적으로 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만일 내 얼굴이 대단히 지적이기만 하다면 나는 비굴한 표정까지도 감수했을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당연히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모든 동료들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경멸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때떄로 나는 갑자기 그들을 나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일도 있었다. 웬일인지 이런 변화들은 그때마다 갑자기 찾아오곤 했다. 이렇듯 나는 그들을 경멸하기도 했고, 그들을 나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예의 바르고 진보적인 인간은 허영을 부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끝없는 요구를 해야 하며 자신을 증오할 정도로까지 자신을 경멸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경멸했건, 혹은 나보다 더 높이 평가했건, 나는 내가 만났던 모든 이들 앞에서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심지어 내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실험까지 했다. 하지만 항상 먼저 내 눈을 내리깔았다. 이것은 나를 미칠 정도로 괴롭혔다. 또한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내 두려움은 병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외모와 관련된 모든 관습적인 것을 비열할 정도로 흠모했다. 나는 평범한 틀에 열정적으로 합류했고 진심으로 내 안의 어떤 기이함까지도 두려워했다. (중략) 우리 시대의 모든 예의 바른 사람은 겁쟁이이고 노예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나는 이 사실을 확고히 믿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렇게 자라 왔다. 어떤 우연에 의해서, 현재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항상 예의 바른 인간은 겁쟁이이고 노예였다. 그것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예의 바른 인간들을 위해 마련된 자연의 법칙이다. - P492

그때에 또 다른 상황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즉, 아무도 나를 닮지 않았으며 나 또한 누구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오직 혼자이고, 그들은 모두 같아>라고 생각했고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로 보면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다는 것이 명백하다. - P494

나는 나의 관청 일을 아주 경멸했다. 그러나 이 일에 내가 종사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돈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동을 일으키진 않았다. 끝까지 나는 소동을 부리지 않았다. 우리 낭만주의자들은 소동을 부리기보다는 차라리 미쳐 버릴 것이다(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만일 그가 어떤 다른 경력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쫓겨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최악의 경우에 그는 스페인 국왕의 모습으로 정신 병원에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완전히 정신이 나갔을 때에만 그렇다. 그러나 미치게 되는 이들은 오직 수척하고 금발인 사람들 뿐이다. 반면 셀 수 없이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고위직 관리들이 된다. 다방면의 놀랄 만한 재주꾼들이다! 그들이 모순되는 감각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 사실은 그때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나는 지금도 그에 관해 똑같이 느끼고 있다. 그것이 왜 우리가, 가장 비굴한 타락 후에도 자신의 이상을 결코 잃지 않는 <관대한 성격>들을 그토록 많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이유이다. 비록 그들이 그런 이상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는 악명 높은 산적들이고 도둑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자신들의 고유한 이상을 존경하며 보통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 -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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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신사 양반, 일들이 도표들과 수학에 따라 진행되고, 오직 2X2=4만이 주위에 있을 때, 인간 자신의 의지라는 것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의지가 되겠는가? 내 의지에 관계 없이 2X2=4이다. 자신의 의지도 이와 같은 것이 되는가! - P477

나를 위해 이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바란다. 당신은, 예를 들면, 인간이 구습을 떨쳐 버리고 과학과 상식이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의지를 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인간이 이렇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떻게 당신은 인간의 욕구가 절대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와 같은 개선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 되리라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얘기하기로 한다면, 어째서 당신은 이성과 산술의 논쟁에 의해 보장된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며 모든 인류를 위한 법칙이라고 그토록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는가? 결국 당분간은 이 모든 것이 단지 당신의 가정들일 뿐이다. - P477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2X2=4만을 찾고 있다. 대양들을 횡단하고, 이러한 탐색에 그의 인생을 바친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고, 정말로 그것을 찾아내고는…… 그는 웬일인지 그것을 두려워한다. 하느님 맙소사. 결국 그는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그에게는 찾기 위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각한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일이 끝났을 때, 돈을 받고 술집으로 가서는,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주일 내내 그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로 갈 수 있는가? 어쨌든 그가 그와 같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에게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어떤 불안한 것이 매번 있다. 그는 달성하려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나 달성하는 것 그 자체는 전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대단히 우스운 일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희극적으로 만들어졌다. - P479

반면에, 의식을 가지고도 당신은 역시 같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즉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은 때때로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약간의 생기를 북돋아 준다. 아마도 그것은 퇴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것이다. - P481

이런 모든 것의 결론은 신사 양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의식적인 무기력을 가지는 것이 더 낫다! 그러니 지하실이여 영원하라! 나는 울화통이 터질 정도로 정상적인 인간을 질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을 보는 나로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비록 나는 그를 계속 질투하겠지만. 아니다,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지하실이 더 유익하다!) 그곳에서 적어도 당신은 할 수가…… 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단지 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이 2X2처럼 더 좋은 것은 결코 지하실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다른 내가 열망하는 그러나 단지 발견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실이여 꺼져 버려라! -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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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경멸을 받는 것은 변덕이 심하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한 인물로 생각되는 경우입니다. 군주는 마치 암초를 피하듯이 경멸받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서 위엄, 용기, 진지함, 강건함을 과시해야 하며, 신민들과의 사사로운 관계에서 그가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이러한 평판을 유지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그를 기만하려고 술책을 꾸밀 엄두를 못 내게 해야 합니다. - P129

군인들의 환심을 사도록 강요당한 로마 황제들
첫째로 지적할 사실은 다른 군주국에서는 귀족의 야심과 인민의 무례함만을 염두에 두면 되었지만, 로마 황제들은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했다는 점입니다. 곧 그들은 군인들의 잔인함과 탐욕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이는 매우 힘든 문제로서 많은 황제들을 몰락시켰습니다. 군인과 인민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인민은 평화로운 삶을 좋아하고, 그 결과 온건한 군주를 원하는 데 반해, 군인은 호전적인, 곧 오만하고 잔인하며 탐욕스러운 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군인들은 군주가 인민을 거칠게 다루어서, 그 결과 그들의 보수가 올라가고 그들의 탐욕성과 잔인성을 만족시킬 배출구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천부적인 재질이나 경험이 부족하여) 군인과 인민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평판을 확보하지 못한 황제들은 항상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황제들은 (특히 새로 제위에 오른 황제들은) 상반되는 욕구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군인들을 만족시키려고 애썼을 뿐, 인민이 박해를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군주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다수 집단의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는 일만큼은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 P134

중립은 적을 만든다
군주는 자신이 진정한 동맹인지 공공연한 적인지를 명확히 하면, 곧 그가 주저하지 않고 다른 군주에 반대하여 한 군주를 지지하면, 대단한 존경을 받습니다. 이 정책은 중립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항상 더 낫습니다. 만약 인접한 두 명의 강력한 군주가 전쟁을 하게 되면 궁극적인 승자는 당신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입장을 선언하고 당당하게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항상 보다 더 현명한 정책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선 서로 싸우는 군주들이 당신에게 위협적인 존재인 경우, 만약 당신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당신은 승자에 의해서 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는 패자를 만족시키고 기쁘게 할 것입니다). 이 경우 당신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우방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승자는 자기가 곤경에 처했을 때 자기를 돕지 않았던 신뢰하기 어려운 자를 동맹으로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패자는 당신이 그를 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공동 운명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 P154

적극적인 동맹은 친선을 획득한다
당신의 우방이 아닌 군주는 당신이 항상 중립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반면에 당신의 우방인 군주는 당신이 항상 무기를 들고 지원하기를 원합니다. 우유부단한 군주는 현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대부분 중립으로 남아 있고 싶어하는데, 이는 빈번히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강력하게 지원한 쪽이 승리했다고 가정합시다. 비록 그가 강력해졌고 당신은 그의 처분에 맡겨졌지만, 그는 당신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고 둘 사이에는 우호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그러한 상황에서 그토록 배은망덕하게 당신을 공격할 만큼 파렴치한 인간은 없습니다. 게다가 승자가 제멋대로 행동해도 무방할 정도로, 특히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렇게 결정적인 승리는 없습니다. 반면에 당신이 도운 군주가 패배한 경우라도 그는 당신을 보호하려고 할 것이며, 당신에게 감사를 표할 것이고 가급적 당신을 도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다시 도래할 수 있는 행운의 동반자가 됩니다. - P155

차악을 선으로 받아들여라
어떤 국가도 안전한 정책을 따르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안전한 정책을 모호하고 미심쩍은 것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물의 도리상 하나의 위험을 피하려고 하면 으레 다른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란, 다양한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을 알고, 따라야 할 올바른 대안으로 가장 해악이 작은 대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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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유령들은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인터넷, 이메일,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글래스를 발명했다. 신세대 유령들, 즉 디지털 유령들은ㅡ카프카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ㅡ더욱 탐욕스럽고, 더 뻔뻔하며, 더 시끄럽다. 디지털 매체는 실제로 "인간의 힘을 벗어나" 있지 않은가? 디지털 매체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광적인 속도로 유령을 증식시켜가지 않겠는가? 우리는 디지털 매체로 인해 실제로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만지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 P189

정보피로증후군(IFS: Information Fatigue Syndrome)은 정보의 과다에서 오는 심리 질환이다. 환자들은 분석적 능력의 저하, 주의산만증, 전반적인 불안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호소한다. 1996년에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가 이 개념을 만들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IFS는 직업상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정보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의 질병이었다. 오늘날은 모두가 IFS의 희생자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미친 듯이 늘어나는 정보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IFS의 주요 증상은 분석적 능력의 마비다. 분석적 능력이야말로 사유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이다. 따라서 정보의 과다는 사유의 위축으로 귀결된다. 분석적 능력이란 곧 지각 자료에서 본질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걷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결국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는 능력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사물을 본질적인 부분으로 축소하는 능력에 손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다. 사유를 위해서는 구분과 선별의 부정성이 필수적이다. 사유는 언제나 배제하는 작용이다. - P196

정보피로증후군에서는 우울증에 특징적인 증상도 나타난다. 우울증은 무엇보다도 나르시시즘적인 질병이다. 우울증을 낳는 것은 병적일 정도로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태도다. 나르시시즘적 우울증의 주체는 자기 목소리의 반향밖에는 듣지 못한다. 그러한 주체는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서밖에는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에게 세게는 자아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에 의해 소진되고, 녹초가 되어, 자기 속에서 익사하고 만다. 오늘날 사회는 점점 나르시시즘적으로 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소셜미디어는 나르시시즘적 매체다. - P198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지시체의 발산"으로 정의한다. 재현은 사진의 본질이다. 한때 존재했던 진짜 대상에서 빛줄기가 나와 필름에 자취를 남긴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실재했던 지시체의 준-물질적 흔적을 보존하며, 언제나 자신의 지시체에 "순응한다." 사진과 지시체는 동적인 세계의 한가운데서 사랑이나 죽음에 어울릴 법한 부동성의 숙명을 함께 짊어진다." 사진과 지시체는 "팔다리가 서로 묶여 있다. 시체에 묶여 고문받는 죄수처럼, 또는 영원한 교미 속에 하나가 된 양 늘 함께 헤엄치는 한 쌍의 물고기처럼." - P200

『와이어드』지의 수석 편집위원인 크리스 앤더슨은 「이론의 종말」이라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글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이론적 모델을 완전히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마어마한 데이터의 시대에 성장한 구글 같은 기업들은 오늘날 잘못된 모델을 채택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어떤 모델을 채택할 필요 자체가 없다." 빅데이터의 분석은 행동 패턴을 알려주며, 이로써 미래의 예측까지 가능해진다. 가설적인 이론 모델은 직접적인 데이터 비교로 대체된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밀어낸다. 왜 그런가라는 질문은 그냥 그런 것이라는 확언 앞에서 의미를 잃어버린다. "언어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든 이론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분류법, 존재론을 잊어버려라. 심리학도 잊어버려라.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대체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그냥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밀함으로 그것을 탐지하고 측정할 수 있다.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숫자가 스스로 말하기 마련이다." 이론은 하나의 구성물이며, 데이터의 결핍을 보완하는 보조 수단이다. 따라서 데이터가 충분하기만 하다면 이론은 쓸모없어진다. 빅데이터에서 대중의 행동 패턴을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디지털 심리정치는 출발한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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