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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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최초의 거장 조각가인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요구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었다.그 안에는 부정한 아들인 반인반수 미노타우루스가 갇혔다. 인신공양의 신화는 영웅 테세우스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다.테세우스는 실뭉치의 지혜를 빌어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이후 미궁에 갖힌 사람은 미로를 만들었던 다이달로스였다.아이러니이자 순환하는 역사의 또 한가지 모습이다.다이달로스는 인간의 의지로 탈출한다.그의 재능은 그에게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나는 기회를 주지만 결국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한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버린 아들, 이카루스의 죽음이다.

<바람의 그림자>의 구조는 다이달로스의 미궁과 같다.소설의 형식은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파편적인 기억의 몽타주가 책장을 넘기며 강렬하게 충돌한다. 불빛 하나에 몸을 의존한 테세우스처럼 벽을 더듬으며 미노타우루스에게 다가간다.가끔 발뒤꿈치를 따라오며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실꾸러미의 존재도 잊곤한다.때는 1940년대.바르셀로나의 이국적 풍경들이 미로를 둘러싼 벽화들 처럼 소설의 벽들을 장식한다. 책 표지의 사진처럼 소년 다니엘과 그의 아버지는 '잊혀진 책들의 도시'로 향한다.수십년이 흐른 후 아버지 다니엘은 똑같은 모습으로 그의 아들을 데리고 그곳을 향한다.테세우스가 미궁 앞에 묶어 놓았던 실의 첫묶음이 다시 돌아오는 길의 최종목적지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형식과 내용,그리고 인물은 반복적인 순환의 관계성을 갖는다.<바람의 그림자>는 책의 저자 사폰의 작품이자 다니엘이 '잊혀진 책들의 도시'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한 소설속 훌리안 카락스의 작품이다.훌리안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주인공 다니엘은 또한 훌리안 카락스의 또다른 이름이다.훌리안은 또한 다니엘의 가족이기도 하다.소설 속 인물들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즉 시간과 공간의 배치를 달리하지만 인물들이 대칭적으로 마주하고 있다.마주선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것은 시간이고 바르셀로나라는 낭만적인 도시이다.또한 스페인내전을 둘러싼 어수선한 시대의 분위기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대칭구조를 채우고 있다. 신비한 인물인 훌리안은 다니엘과 대를 이룬다.페렐로페는 배아,훌리안의 믿음직한 친구 미켈은 페르민... 훌리안의 손에서 다니엘에게 그리고 다시 훌리안에게 돌아간 몽블랑 만년필까지도 소설이 두개의 기둥을 가진 한 구조물임을 알게 한다.

아쉽게도 다니엘이 찾은 훌리안카락스의 <바람의 그림자>가 어떤 내용인지 소설 끝까지 봐도 알 수는 없다.하지만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는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이다. 형식은 훌리안의 흔적을 뒤적이는 취리소설의 형태를 띤다. 조각 조각난 인터뷰들을 재구성하며 훌리안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재미가 소설 전반부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가끔 누가 누구더라 하면서 앞장을 뒤적이는 경우도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이 살아있어서 이내 적응한다.소설 속에서 가장 매력적이며 모범적인 인물은 다니엘의 아버지이다.책을 읽으며 조금은 평면적이지만 현자와도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다고 책의 역자 역시 후기에서 자신 역시 다니엘 아버지의 단정한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악역을 맡은 이는 푸메로 경위이다.그는 마치 고문경찰 이근안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소설 전반부 부터 악의 축으로 모습을 천천히 드러낸다. 다니엘의 훌리안의 흔적에 대한 추적은 결국 푸메로의 어린 시절까지 닿아있다.소설속 갈등의 원인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고 이후 소설은 고속기어로 변환되어 속도를 높여간다.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푸메로 경위라는 캐릭터 역시 악의 축으로 전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조금만 더 인물의 내적인 악에 대해 집요함을 보여주었다면 푸메로라는 캐릭터가 훨씬 공포스럽고 입체화 되었을것이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의 형태를 띠며 갖는 한계가 주요 인물들의 서술에 대해 관찰자 또는 전달받은 형태로 서술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훌리안의 세계,페넬로페와의 사랑,푸메로의 악마적 내면,미켈의 자학적 헌신 등등 과거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들의 주변 인물의 입을 통해 그려진다.이러한 관찰자의 시선은 늘 그들이 가진 내면의 고통과 감정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닿기 어려운 벽을 만든다. 이 인물들의 캐릭터는 현재 인물들 이상으로 중요하며 매혹적이다.하지만 작가는 추리구조를 지키기 위해 이를 양보할 수 밖에 없었나 보다.그나마 현재 인물들-특히 페르민-의 경우에는 촌철살인의 문장과 현학적 대사등을 통해 인물들이 천연색의 옷을 입고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설의 구조상 줄거리와 관련된 많은 말을 할 수 없다. 누리아의 마지막 편지로 모든 사실들과 단절된 사건이 통합되어 지기 전까지 소설은 조금씩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더 많은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을 높인다.소설은 빠르게 읽힌다.후반부로 갈 수록 탄력을 받는다. 스토리 역시 영화화 하기 좋은 내용이고 또 어디선가 한번쯤 본 듯한 영화같기도 하다. 미궁은 조각조각 모습을 보이다 결국엔 전모를 드러낸다. 뒤에 오는 자는 앞선자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테세우스가 이미 미궁을 탈출하는 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휴가가는 동안 읽기 위해 골랐는데 좋은 선택이었다.휴가 갈 때 읽으면 좋다.너무 머리를 쓰지 않아도 너무 감정이입되지 않아도 너무 인생의 불가해성과 깊이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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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9-22 15:00   좋아요 0 | URL
관찰자의 시선은 늘 그들이 가진 내면의 고통과 감정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닿기 어려운 벽을 만든다.--> 전 언제쯤 이런 멋드러진 서평을 쓸 수 있을까요.
 
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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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빛에 알맞게 익은 남해의 바다는 여름철보다 더 파랗다.산녘의 단풍이 서로의 붉음을 질투한다면 바다의 단풍(?)은 푸름을 경쟁한다.나는 늘 관찰자로서만 그 바다를 바라본다.남해의 바다는 수많은 어촌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흰 점처럼 알알이 박혀 있는 양식장의 부표들,베를 가르듯 푸른 물결을 가르며 섬과 섬 사이를 달리는 통통배,어구를 손질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련하다.멀리 죽방렴도 보인다.사릿대를 얽은 죽방렴은 남해에만 있는 전통 멸치잡이 어구이다.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작은 섬처럼 석양을 받은 죽방렴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거제-통영-남해....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바다가 아름답다고 일컫어지는 곳이다.하지만 지금 바다는 수백년전 붉은 피의 기억을 우리에게 전해주진 않는다.그저 아름답고 아름다울 뿐이다.혹시 모른다.바닷가를 걸으며 들을 수 있는 썰물의 소리,자갈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오래전 그들의 울음을 바다밑에서 끌어올리고 있는지도...  현실의 우리에게 수백년전의 칼소리를 기억나게 해주는 것은 남해일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승첩비들이다.이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고속버스 휴게소 처럼 관광버스가 몇대 정차해 있는 곳들이 있다.대개 그곳이 이순신장군의 임진왜란 승전비가 있는 곳이다.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장군과 관련된 어떠한 흔적이라도 있는 곳이다.나는 대개 그런 곳들을 그냥 지나친다.그저 지나가면서 '아...이 곳이 노량이구나' '아...이 곳이 명량이구나' 한다.

<도모유키>를 읽었던 시점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막을 내린 때였다. 막대한 물량과 화려한 전투씬,예전 이순신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성웅의 인간적 고뇌등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제작 초기에 드라마의 역사성을 가지고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역사 드라마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가야하는 딜레마였다.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않고 역사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어처구니 없는 왜곡이고 분개할 일이었을 것이다.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 일뿐이다.굳이 드라마를 가지고 역사성에 깊이 천착하려들면 아마 대부분의 역사드라마는 TV정치 뉴스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그리고 역사성을 운운하며 비판하던 사람들 역시 지루하다며 고개를 돌려버릴 것이다.

<도모유키>의 배경은 드라마의 끝부분에 닿아 있다.조선 수군의 봉쇄와 육군의 선전으로 재침입한 일본군은 순천성에 고립된다.주인공 도모유키는 고립된 일본군의 군막장 중 하나이다.그는 침략군 군인이나 또한 하나의 개인이다. 우리는 대개 어떤 사건을 인식할 때  조직이나 국가 단위로 큰 범주화 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사실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또한 그 안에 오류가 있다 손 치더라고 범주의 광범위함이 가진 작은 예외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되기 때문에 빠져나가기도 좋다.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대범주가 가진 섬세함의 부족에 대해선 끝도 없는 예가 있다. '일본놈들은 하여간 약다니까' '미국 놈들은 지들이 제일 잘난지 알지''한국놈들은 하여간 맞아야돼'' 전라도 놈들은 으뭉해서 절대 믿으면 안돼'...등등등

이러한 일상언어의 개인에 대한 부정과 몰이해는 뜻밖의 편견을 가져다 준다.내가 아는 어떤 전라도 친구는 진짜 으뭉스럽다.또 어떤 전라도 친구는 오히려 쿨하다.내가 아는 어떤 일본인은 약다기보다 예의바르고 깔끔하고 어떤 미국인은 누구보다 부시에 반대하며 미국의 반성을 촉구한다. 일상 언어가 가진 폭력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소멸'이다.특히 전쟁이란 상황에 놓여 모든게 극과 극으로 구분된 때라며 이 개인을 향한 폭력은 물리적 형태를 동반하여 의식 기반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전쟁 상황이 되면 적 아니면 아군이다.그러다 보니까 묻혀버려야하는 기억들이 있다.개인의 역사이고 그들이 가진 모든 질곡들이다.

주인공 도모유키를 통해 나는 드라마 이순신을 보며 거북선에 부딪혀 바다로 떨어지는 일본군 스턴트맨을 생각했다.실제 스턴트맨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얼굴한번 보이지 않지만 위험천만한 연기를 묵묵히해내야 하는 스턴트맨들.그들은 거기서 받은 수당으로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또 작은 아들 자전거를 한대 사주었을 것이다.다음으로 그 스턴트맨이 연기한 수백년전 거북선에 받혀 떨어진 진짜 일본군에 대해 생각한다.주인공 도모유키처럼 여동생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소망을 가진 병사였을 수 도 있다.아니면 늙은 노모와 부인을 두고 끌려와서 어쨋든 살아돌아가고픈 마음 밖에 없는 병사였을 수도 있다.그보다 더 파란만장한 개인사의 질곡을 담고 있는 일본군 병사-왜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돌아가지 못했고 그들의 역사는 아무도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는다.성웅 이순신의 영웅적 행동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고 조선 침략 선봉장 가토기요마사와 고니시유키나가의 이름 역시 그 가문의 명예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조선 수군 돌이,봉이,먹쇠,일본 육군 도모유키,기요시,나가타 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번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지도자의 뛰어남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않된다.하지만 나와 같은 민중은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잡초들에게 더욱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고 당파적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박정희가 근대화에 어느정도 기여했고 그의 카리스마 역시 개발드라이브에 힘을 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하지만 나처럼 고위층에서 먼 사람은 그들의 공로보다 동일방직 여공과 YH여공과 동대문시장 피혁노조원들이 경제개발을 만들어 냈다고 믿어야 한다.그리고 그렇게 믿는다.

또한 집단 속에 묻혀버리는 개인의 삶에 대해 당파적 애정을 보낼 수 밖에 없다.대학 다닐때 많이 들었던 '더 큰 적과 싸우기 위해서 개인은 접어라' 라는 뉘앙스의 말이 비록 정치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나의 당파성은  개인들이 가진 수많은 사연들에 대한 배려쪽으로 기울수 밖에 없다.언젠가 지리산 산청에 가서 어느 촌로와 한참을 이야기한적이 있다.그 동네는 지리산 대원사 밑자락 동네로  한국전쟁당시 아침에 국군,저녁에 빨치산 하던 곳이다.그 촌로의 일가친척,친구들이 죽고 살고 당하고 모면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전부 다 소설이다.어떻게 살아서 나랑 이야기하나 싶은 정도다.그 촌로가 내가 싫어하는 '한나라당'에 투표했다고 그를 의식없는 노인네라고 할 수 있을까? 설령 그가 박정희 예찬론자라 하더라고 나는 쉽사리 그를 욕할 수 는 없었을 것이다.설령 정치적으로 그것이 옳지 않다고 믿을 지라도

도모유키는 국가와 민족을 떠난 개인이다.낭만적 개인이며 인간적인 개인이다.전쟁이란 상황에선 이런 가치가 자신의 목숨을 앞당길 수도 있다.어떤 맹목적인 개인은 그래서 위에서 시키면 명령이라고 다 한다.민간인 학살같은 것도 전쟁시 명령이었으므로 난 책임없다고 당당하다.일개 병사가 무슨 큰 죄가 있겠냐만은 개인에게 살아 있어야만 하는 인류의 양심이란 잣대에 기대어 보면 결코 당당할 수 없을 것이다.우리는 흔히들 '친일청산 식민잔재 청산'을 말한다. 비록 늦었지만 친일인사 명단도 공개돼었다.하자만 여전히 우리는 일본에 대해 '우월감'과 '피해의식'이라는 두가지 감정 상태에 혼란을 겪고 있다.매일 TV에서는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전파되었다고 떠벌이며 민족의식을 고취한다.또 한편에선 과격한 민족주의로 '피해의식'의 발로를 애국이라 믿고 있는 세력도 많다.일본어투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상품을 사용하지 않고 일본을 배워 이기는 것만이 친일청산일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이 우리사회에 남긴 '전체주의''집단주의'를 하나씩 걷어내는 것이 진정한 청산이 아닐까 한다.개인의 선택과 개인의 개성,역사가 말살되어 집단으로 귀속되는 한국사회의 특성 역시 그 근대적 시원은 일본 제국주의에 있다. 수많은 도모유키가 살아나야 한다.수많은 봉자,말숙이 살아나야 하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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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9-13 14:58   좋아요 0 | URL
잘 쓴 리뷰에 추천이 부족하면 화가 나요. 흐흐.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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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박민규...박민규...박민규..한다.한때 신해철이 교주로 나왔을때 신해철..신해철..해대더니....아무래도 프란체스카 시리즈 4쯤에는 박민규도 뱀파이어 가족으로 등장할 듯 하다.소설 별로 안보던 사람들도 박민규 소설 보면 재밌다고 난리다.<지구영웅전설><삼미슈퍼스타즈>...2타수 2홈런이다.조만간에 메이저리그뉴욕 양키즈팀에 스카웃되서 올드트래드포드 스타디움에서 레알마드리드의 앙리하고 스킨스게임을 할 것 같다.(어때 박민규 스럽지...ㅋㅋ )

박민규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이다.때론 그 즐거움이 약간의 황당함을 동반하기도 한다.하지만 이 황당함은 엽기라는 코드에 익숙한 인터넷 세대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기발한 상상력만 가지고 그가 교주노릇 하긴 힘들다.그에겐 그 스타일의 근저에 있는 무언가가 있다.그 컨텐츠가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박민규 소설을 안팎으로 단단하게 만든다.

단편집 <카스테라> 역시 전작 <삼미슈퍼스타즈>의 주제의식의 선상에 놓여있다.그의 주제의식은 단연코 "속도에의 저항"이라고 말 할 수 있다.'속도에의 저항'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며 근대화에 대한 반항이다.또한 남들의 시선에 대한 뿌리침이고 붕어빵같은 현대인들의 가치에 대한 돌팔매질이다.이를 형상화해내는 박민규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이다.세상은 그들을 '낙오자' 또는 '무능력자'라고 한다. <너구리>의 과장이 그렇고 <기린>의 아버지가 그렇다.<펠리컨>의 사장,<갑을 고시원>의 김검사 역시 마찬가지이다.박민규의 주인공은 스스로도 주눅들수 밖에 없는 멀쩡한 소외자들이다.단편집<카스테라>전반부는 소외자들의 변신에 힘입어 동물농장이 된다. <너구리>의 인턴사원은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기 위해 상사의 동성애를 눈딱감고 허용한다.눈물이 난다.뿌연 목욕탕 김 속에서 너구리가 '다 안다' '다 이해한다' 는 이해와 동병상련의 눈길을 보낸다.강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너구리의 세상에 주인공도 발을 내밀었는지 모른다.어느순간 주인공 역시 속도를 따라가는 인간이 되어보려고 하겠지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기린>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이다.온몸이 쪼개지는 아르바이트에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무능력한 아버지를 지하철안으로 푸시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인간이 짐짝처럼 변해버리는 지하철,조금이라도 늦지 않기 위해 늦어서 너구리로 변해버리기 전에 남들보다 빨리빨리 움직인다.그렇다고 인간세상에 답이 나올까는 의문이다.결국 모든 걸 버리고 잠적한 아버지는 너구리 대신 기린이 되었다.그게 기린이면 어떻고 너구리면 어떻고 대왕오징어면 어떻겠는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상황이고 또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동물과 인간 사이에 위치시키는 사회라면...

단편<카스테라>의 후반부는 변신의 황당함에서 조금 빠져나올 수 있다.<코리안 스텐더드>같은 경우는 박민규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기득권화된 진보세력에 침을 뱉는다. 지금은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잘나가던 운동권 선배들은 하나둘 정치권에 투신하여 성공을 거둔다.또 일부는 강남에서 최고의 학원강사로 룸살롱 매니아가 되어 있다. 그중 농촌 공동체를 운영하는 한 선배로 부터 연락을 받는다.그나마 지양해야할 것을 지양하면서 살아온 선배이다.뭔가 귀찮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는다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주인공은 그를 찾아간다.선배의 농촌은 다른 농촌마냥 망해가고 있다.특히 외계인들의 공격이 가장큰 문제였다.외계비행접시는 무엇인가? 냉전시대 미국헐리웃 영화는 외계시리즈로 돈을 많이 벌었다.어느 평온한 도시에 갑자기 외계인이 들이닥쳐 다 부수어댄다.항상 그렇듯 평화는 작은 소시민영웅의 활약으로 찾아온다.냉전시대 침략하는 외계인은 소련이었다.영화를 통해 소련의 존재가 늘 우리의 평화를 깰수있다고 프로파간다 했던 것이다.박민규는 이를 한번 쉽게 틀었다.이 단편에 등장하는 UFO는 그냥쉽게 생각해도 신자유주의 농업자유화 압력이다.옥수수도 털어가고 소도 배불려 터뜨린다.농촌은 그렇게 초토화된다. 특종을 위해 아무리 UFO를 찍어도 기록에 남지도 않는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같다.아무리 농민들이 죽는다 죽는다 해도 TV팔기 위해 자동차팔기 위해 라고 덮어버린다.업체야 그렇다 쳐도 일반 서민들까지 그런 프로파간다에 넘어간다.그리고 그냥 그런지 안다.아니면 아무생각 않고 살던가....

<헤드락> 역시 자본주의 폭력에 대한 부분이다.물론 소설이 헤드락이라는 물리적 폭력의 대상이 주체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하지만 꼭 물리적 폭력만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부르디외의 상징폭력으로 이해하는것이 맞을 것이다.헤드락 학원이란 것은 상징투쟁에서 권력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우리가 애들 윽박질러 공부시키고 학원보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들 이겨서 잘나가라는 뜻 아닌가.결국 상징투쟁의 승자가 되길바라며해 헤드락학원에 보내는 것이다.이러한 자본주의의 폭력은 대상이 곧이어 주체가 된다는 특징을 갖는다.지지리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졸부가 되면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다.개구리 올챙이적은 죽어도 생각하지 못하는게 자본주의의 속성이다.그 시스템 안에서는 세상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못난놈은 더 괴롭혀야 직성이 풀린다.헤드락의 쾌감이 손끝에 남아있다.돈 주고 라도 헤드락을 해야한다.또 누군가는 헤드락 당한자의 모멸감에 이를 갈며 근육을 키운다.야...좋다.자본주의 동물의 왕국.폭력의 끝없는 순환이다.

박민규의 세상에 대한 시니컬함,소외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또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한 연산을 자기식 '산수'로 돌리자는 주제의식...이런 것들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명쾌하다.그래서 즐겁게 읽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하지만 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있다.

우선 박민규의 말장난은 내개 전혀 신선하지 않다.그의 말장난을 이해하려면 최근의 대중문화를 좀 알아야한다.물론 몰라도 책읽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은...박민규는 자신에게 엄청난 세례를 내려준 미국 대중문화에 패러디를 통한 경의를 표한다.최소한 경의는 아니라도 그의 의식속엔 69년 우드스탁이 아마 최고의 락 공연이었을 것이다.(박민규는 68년 생이다.) 박민규의 세대가 미국 대중문화의 피폭세대이니 이해는 간다.독자는 지미 헨드릭스가 누군지 알아야한다.우드스탁에서 쌩쑈를 하던 것 까지 알면 더 좋겠지."너 경험했봤니" (원제를 이렇게 한국말로 쓰니 가볍게 신선할지 알지?) 이런거라면 나도 자신있다. 딱정벌레의 "네 손을 잡고 싶어" 무지개의 "어려운 치료"  라디오 머리통의 "탈출용 음악" ...슬레이와 패밀리 스톤도 알아야하고 마빈게이의 '브라더 브라더"라고 시작하는 "도대체 무슨일이야"도 알아야 한다. 이 세대는 어찌나 미국 음악들을 많이 들어댔는지 당시 라디오에선 외국팝이 다 미국 팝은 아니다..라고 알아서 걱정해주면서 가끔 아말리아로드리게스나 조르주 무스카키의 청승맞은 노래들도 틀어주었다.그럼에도 역시 주류는 미국 대중문화였다.21세기 히피를 지향하시는 박민규 옹께서도 완전히 폭격받으셨다.박민규 옹의 스타일도 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 시절 미국 대학생들 하신 스타일과 똑같다. 박민규의 말장난-이걸 패러디라고 하자-은 2천대로로 넘어오면서는 유럽축구쪽으로 넘어간다. <야쿠르트아줌마>에는 핀투,콘세이상,피구가 등장하고 <헤드락>에는 헐크호건이 등장한다.조금 지나면 효드르와 크로캅이 등장하리라.라디오책 뒤의 평론가는 '이종격투기 어쩌구' '정크'어쩌구 했다.... <이러한 말장난-패러디-가 포스트모던의 특징인가? 특징이던 아니던 상관없다.난 별로 흥미롭거나 재미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다.먼저 도연명과 고스톱을 치고 있던 네드베드에게 물어봤다. 네드베드 "박민규의 장난이 재미있니?" 그랬더니 옆에서 광팔고 죽었던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칸토나가 끼여든다. "우리이름 쓰는 것도 저작권 받아야되는 거 아니야?"  이미 두판을 내리꼴은 시꺼먼스 아베베가 맨발을 벅벅 긁으며 '나 이판 지면 일어날란다." 한다.그때 부엌에서 어기정 어기정 브라질에서 찾은 좋은 오렌지로 만든 쥬스를 들고 이번년도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 판타시아가 폴라압둘과 함께 들어온다. "따봉 드시고 하세요"  ...도연명이 눈쌀을 치뿌리며 "니네들 그렇게 떠들면 다 알카트라즈로 보내버린다"고 고함을 친다.그때 갑자기 알카트라즈가 눈앞에 나타났다.박민규가 친철하게 주까지 달아서 설명해준 잉베이 맘르스틴-영어명 잉위맘스틴-이 당시 보컬리스트 조린 터너를 데리고 기타를 철장으로 마구 던져버린다.

순간 논란 나는 조용한 성격의 에바케시디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지 조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라면 천천히 혼란을 정리하고 내개 답을 줄꺼야'  불행히도 케시디는 항암치료 받으로 병원에 갔다고 한다.대신 집에서 가정부로 있는 매염방이 뭐라 한마디 거들고 싶어한다.하지만 난 중국어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결국 다시 고스톱 판으로 돌아갔다.밤샘 고스톱에 다들 지친 모습이다.그때 막 도착한 젊은 친구가 있었다. 낯이 익다.180을 넘는 키에 작은눈.얼굴에는 아직 소년끼를 벗지 못한 여드름.동양인이었다.나는 옆에 있는 사라포바에게 그 친구 누군지 아냐고 물었다.그녀는 "제가 요즘 뜬다는 박주영이래요"한다.그래서 나는 말도 잘통할 것 같은 그 친구에게 "박민규 재밌나요?" 라고 물었다.한참 뭔 소린가 머뭇거리던 그가 .... 이렇게 말했다 ." 점점 할수록 자신감이 생기구요.이기는 법을 알것 같아요." 

1절)타잔이 10원짜리 빤스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 ..아아아...

2절)타잔이 10원짜리 빤스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아아아...

3절)타잔이 10원짜리 빤스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아아아..

박민규는 앞으로 잘해야된다.한국 축구가 맨날 4강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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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8-31 10:08   좋아요 0 | URL
푸하하....드팀전님의 재주가 날로 승하니.... 제가 무척이나 즐거워지는데요.
결론에 올인하면서 제 결론 슬쩍 비추자면...
박민규는 앞으로 잘 할 겁니다. 맨날 4강은 아닐지 몰라도...
추천하고 갑니다.

kimji 2005-08-31 10:35   좋아요 0 | URL
유쾌하고 즐거운 리뷰입니다. 잘 읽었어요. ^>^
(바람구두,님의 문장을 받아서 따라해보자면) 박민규는 잘 해야 합니다. 맨날 4강은 못하더라도...

2005-08-3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0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9-02 16:43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카스테라 리뷰 중 가장 박진감있고 쾌활한 리뷰였습니다.
박민규는 앞으로 잘 합니다. 맨날 4강만 할수는 없어도...

kleinsusun 2005-09-05 08:08   좋아요 0 | URL
오호......드팀전님, 갈수록 리뷰가 재미있어지네요.
이 리뷰 읽고 당장 주문했어요. 물론 thanks to도 잊지 않았죠. 칭찬해 주세요.ㅋㅋ

박민규의 열혈 지지자들이 정말 많네요.
박민규,김영하 다 68년생들이죠? 드팀전님은?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리송함...

urblue 2005-09-07 11:01   좋아요 0 | URL
아, 잘 읽었습니다.
갑자기 즐거워지는군요. 감사. ^^

글샘 2005-09-07 11:38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박민규의 재주가 승한 데 비해, 저런 낱말들이 독자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 싶었습니다. 역시 박민규는 삼미에서 제일 멋있었지요. 한국의 축구가 2002년에 제일 멋있었듯이 말입니다.
이주의 마이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2005-09-12 17:23   좋아요 0 | URL
다들 박민규에 거품을 무는군요..^^;;
 
독 짓는 늙은이 - 황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8
황순원 지음, 박혜경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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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형는 나의 직장상사였다.

첫만남 부터 그는 좀 만만해 보였다.친근감 가는 동그란근 얼굴,둥근 안경,하얀색 남방과 청바지...묵직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아직 어색한 몸짓의 신입사원에게 편안해보이는 그의 인상은 적지않게 안심이 되었다.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다.서로 부대끼며 그에 대해 점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그의 필체가 아주 독특하다는 것.보통사람들은 왠만해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고 그냥 돈을 꾸깃 꾸깃 넣어다닌다는 것,깜빡깜빡 잘하는 성격이라는 것.그리고 은근슬쩍 웃어넘긴다는 것.예를 들자면 이렇다.

"차장님,오늘까지 000서류 넘기라고 했는데 하셨어요? " "아...잊어먹었다.아휴..정말 난 왜 이러니..미안미안" ....  "오늘 00시에 000씨와 약속있는 거 아시죠?" "아..진짜...모르겠는데" "제가 어제 저녁에도 이야기 했었잖아요?" "아...그래 기억난다.미안 미안...아휴..."

그래서 난 그에게 제안했다."차장님 메모를 하세요 " ... "아!좋은 생각이다.진짜 그래야겟어"

며칠뒤..."차장님...그때 알려드린 전화 번호 좀 주세요" "어...여기있는데...어디다 적어 놓았더라.아 !찾았다.근데 이 메모지 안에도 뭐가 많이 적혀있다.이거니 ..아니야...이거...아휴..미안 미안"

그래도 S형은 결코 밉지 않았다.그에게는  권위적인 모습이  없었다.그는 스스로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또한 타인에게도 그러했다.나의 직장 생활 초반은 그래서 거의 대학생활 비슷했다.물론 더 높은 아저씨가 가끔 딴지를 걸었지만 신입사원에게 불똥이 떨어져 봤자다.대개 왠만한 일은 S형이 다했기때문에 상사에게 욕먹어도 그가 다 당했다.그러면서도 늘 "난 진짜 서류랑 회의랑은 안맞는 거 같아." 이러고 만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것은 그가 내가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나는 나이가 들어도 영혼이 자유롭고 생각이 유연한 '젊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그런데 불행히도 그를 만나기전까지 단 한번도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대학교의 복학생들만 해도 목에 힘주고 '야..내때는..'이런다.)내 교류의 폭이 좁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고 난 후에도 그를 제외하고 그런 사람을 만난적이 없다.

S형과 나는 잘 놀았다.

어떤 책을 보다가 "차장님..000 이거 봤어요" "아니" "이거 진짜 괜찮거든요." "그래..나두 봐야지" ... "차장님, 마음 답답한 가을에 들을만한 음악 뭐 없어요? " ..." 브람스 현악 6중주"...언젠가 S형과 술 먹다가 2차로 그가 좋아하는 화가 선생을 찾아 가기로 의기투합했다.그 화가는 부산 가까운 시골에서 비닐 하우스 화실을 쓰고 있었다.밤 11시에 전화해서 그가 막무가내로 보고싶으니 차 한 잔만 달라고 그랬다.그리고 출발.... 가다가 내가 뭐 하나 사가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우리는 꽃다발을 사기로 했다. " 무슨 꽃이 좋을까요?"  "뭐 대충..국화랑..." ..  "돈 주세요"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꼬깃 꼬깃해진 천원짜리 3장 꺼냈다. "야..미안한데..나 이거밖에 없다." ..."이그..차장쯤 되면 돈 좀 가지고 다녀야지 ..뭐에요" "그러게 말이다."..결국 내 돈 1만원 깨졌다. 그가 말했다."근데 꽃다발 포장말고 그냥 신문지에다 싸달라 그래.그걸 좋아할꺼야" .....결국 신문지에 싼 국화 한다발을 들고 시내에서 한 시간쯤 들어간 시골화실에 가서 화가선생이랑 잘 놀았다.나야 들러리였다.맘 속의 애인 만난 S형만 좋았다.

그는 '내츄럴 본 자유영혼'이다.아마 그가 정규교육을 받 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그는 중학교때 자퇴를 했다.(그의 자퇴이유는 언젠가 한 번 쓴 적이 있다)그리고 혼자서 책보고 껄렁거리며 놀았다.무전여행도 했다가 며칠 못 가서곧 포기하고 빈둥거리면 놀았단다.피아노 조율하는 것도 배우고 어깨너머 피아노도 배웠다.한 4-5년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책에서 본 사변적인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학구열이 생겼다고 한다.그래서 스물 넘긴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학을 배웠다.그리고 연애도 했다. 다른 학교 국문과 다니는 학생이었다.하도 그녀의 수업 도강을 많이해서 다른 학생들도 다 알았다고 한다.

어느날 교수가 '자네는 우리과 학생인가? 좀 나와보게' 그래서 S형은 교단까지 끌려나갔다.결국 이실직고를했다. "저기.. 이 과에 있는 00이 애인이라서 그냥 같이 몇 번 수업 들었습니다 ..교수가 웃더니 '그럼 이사람아. 수업료를 내야겠구만.노래 잘하나? 노래 하나 하고 들어가게"  S형은 결국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여학생들의 열광 어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물론 그녀와 결혼했다.그리고 이혼도..ㅋㅋ (원래 다 그런거다)

그의 첫번째 직장은 포항 바닷가 근처였다.그는 창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어느 초가집 방한칸을 얻었다고 한다.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었다.그의 말을 빌자면 밤에 눈을 감고 누우면 파도 소리가 방앞까지 와있는 듯 생생하게 들렸다고 한다.또 아침에 눈을 뜨고 방문을 밀면 푸른 바다가 눈앞으로 가득했다고 한다.몇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는 하던 일이 지겨워졌단다.왠지 머리로 하는 일말고 땀흘리며 몸으로 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그래서 사표를 내고 제주도로 갔다.제주에서 한 1-2년 살았다는데 아주 어려웠단다.난 농사를 짓다가 실패하고 영어 학원강사도 해보고 식당에서 일도 해봤단다.결국 제주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서 운 좋게도 원래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잡았다.그리고 몇년 후에 부산으로 내려와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S형과는 한 3년 정도 함께 일했다. 어느날인가 그가 잠깐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그러고 하는말.

" 야..나 인제 그만 둬야겠다.관리자가 내 적성에도 안맞는 것 같고..조직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사표 수리되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가 빠져나가고 난 다음부터 회사가 내겐 재미가 없고 진짜 회사가 되버렸다.다시 새로운 조직 인간들과 적응하는데 꽤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서울로 올라가고 1년 쯤 지난뒤 그를 만나러 갔다.저녁때 보기로 했지만 새로 시작한 일때문에 자꾸 미루어졌다. 그가 제안을 했다. " 야...우리집 경춘선타고 한 40분쯤 가면되는데 괜찮으면 같이 갔다가 내일 함께 나오자" 나는 그러마 했다. 우리는 10시 다 되어서 청량리 역에서 만났다.기차 밖은 캄캄했다.그래서 대학 시절의 경춘선 낭만을 느끼기 힘들었다.그와 함께 도착했던 역이 어느 역인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형수가 역 앞까지 남색 마티즈를 끌고 마중 나왔다. S형과 형수는 가는 동안 "집이 좀 후지고 불편해도 뭐라 하지마라" 라고 연신 이야기했다.

그가 사는 집은 논 사이에 있었다.개구리 소리에 귀가 아팠다.가로등 하나가 집 대문을 비추고 있었다.전형적인 촌집이었다.어떤 화가가 쓰던 집인데 몇 백만원에 샀다고 한다.집은 안채가 있고 대문옆에 광이랑 외양간이랑 사랑채가 있었다.마당에는 작은 평상이 하나 있었다.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 꽤 늦게 잠이 들었다.사랑채 방에는 피아노랑 책들이 가득했다.그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봤던 책 배열 보다 훨씬 운치가 있었다.한 사람 누우면 달리 남는 공간도 없는 작은 방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개구리 소리가 좋았고 방에서 나는 책 향기가 좋았다.공기는 너무도 달콤했다.안채에서 S형이 물었다. "야..안 불편하냐?"

나는 '아니요' 라고 답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아직 잠들지 않았던 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불편해서 못 주무시고 나오시는 거에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형...이집 너무 좋네요.별빛 보는게 얼마만인지..설레여서 잠이 안오네"  그가 말했다. "니가 그걸 좋게 봐주니까 좋은 거지....나두 여기가 나쁘진 않아" 나는 담배를 몇 개피 연달아 피우며 밤의 소리와 별빛을 감상했다.별빛이 따뜻했다.

 함께 놀던 시절, S형이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을 읽고 다녔다. 황순원 선생이 작고하신 즈음이었다.신문에 난 부고기사를 보고 책장에 박혀있던 옛날 책에 손이 닿았으리라..형은 그 때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다녔다.출근 길에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책을 봤을 것이다.그는 "황순원 단편 소설 정말 좋아.예전엔 미쳐몰랐는데..이렇게 좋은 소설인지 최근에 알았어.왠만한 단편소설의 원형은 다 들어 있는 것 같아.너두 언젠가 기회되면 봐라.좋더라."

나는 그와의 인연이 오래 가리라는 믿음이 있다.그는 내 전 직장상사이자 동료이며 또 형님이자 친구이다.

"S형...소설 좋았어요.형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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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8-24 13:48   좋아요 0 | URL
이야....리뷰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그 선배 정말 cool한데요. 시골집 묘사가 뛰어납니당. 보이는 것 같아요.ㅋㅋ

근데...드팀전님,드팀전님은 정말 넘 웃겨요.
어쩜 그렇게 웃길 수가 있는거죠..... 자유롭고 분방한 영혼,호홋.
제 서재에 다신 댓글 읽고 넘 웃겨서 10분은 키득거린 것 같아요.

어제 와인이 달아서 홀짝 홀짝 , 꿀떡 꿀떡 마셨더니 오늘...힘드네요.

바람구두 2005-08-24 17:38   좋아요 0 | URL
슬픈....

드팀전 2005-08-25 09:04   좋아요 0 | URL
수선님>ㅋㅋ 쿨한건가요.....웃으라고 쓴 글 아니었는데..즐거우셨다니 다행이군요.
구두님>뭐 어쩌라구요? 말을 하다 말어...슬픈 감자탕? 슬픈 아롱사태? 슬픈 붕어빵?... 즐거운 금자씨,불친철한 미자씨,뺀질거리는 순자씨...슬픈..뭐가 도대체 뭐가?

픽팍 2006-04-02 10:30   좋아요 0 | URL
이 리뷰 정말 괜찮네요;;지금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읽다가 감기몸살이라머리가 아파서 기분전화하려고 리뷰읽었는데 완전 감동입니다요;;;하나의 단편 소설을 본 기분이에요 아 부럽다 글 잘 쓰는 사람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덥썩 물었다.한입 삼키면서 부터 '이거 봐라.이거 계속 먹어도 되는거야' 라고 되뇌였다.하지만 내 소화기의 자존심은 이까잇 녀석에게 굴복할 수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췄다.그렇다면 가는 거지....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물에 빠지지 않는 묘기를 보여주셨다.이론상 아주 간명하다.한발 빠지기 전에 다른 발 딛으면 된다.영화 <동막골>에보면 바보 강혜정이 이런다 .'나 참 이상해요.팔이 이렇게 마...악 빨라지면,발도 마...악 빨라지고..." 예수님도 왼팔 오른팔 열나 빨리 움직여서 발이 따라오게 했을 것이다.그래서 물에 빠지지 않았겠지.나 역시 이까잇 <일본야구>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손에다가 침바르고 열나게 빨리 넘겼다.다 넘겼다.

패잔병처럼 마루 한편에 쭈그러져 있는 <일본야구>를 보고 찍..한소리 했다.

까잇거....니가..까잇거..나를 ..까잇거....가지고...까잇거...거시기 할려는것 같은데...까잇거.. 머리에 왠 파리가 윙윙 도냐?

덥썩 물었던 <일본야구>와 나와의 한판은 나의 일방적 승리(?)로 끝이났다.'까잇거'와 '산만한 정신'으로 무장한 나를 '우아나 떨고 감상이나 떠는'<일본야구>가 이길 수는 없는 것은 명약관화하다.하지만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다.22층 아파트를 다 내려와서 화장실 물안내리고 온게 생각날때 드는 기분이다.베이지색 변기 수영장에 동동 자유형에 배형까지 자제로 동동...에이 자꾸 눈 앞에 파리가 윙윙 돈다.

이 책을 덥썩 문것은 일부 알라디너들의 지대한(?)관심때문이다. 책 제목은 영화제목처럼 흔하다. 한번도 듣지 않았어도 어디선 가 들었던 것 같은 친숙함을 준다.그래서 이 책에 대한 알라디너들의 관심을 목격했을 때 나역시 부하뇌동했다.거기에 한동안 절판이었다는 것은 신비주의적 후광을 발휘하는 덕목이었다.내게 이 책을 클릭하게 만들었던 알라디너들은 단 한명도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았다.신중한 분들이라 말을 아끼고 있으리라.이런때는 돌쇠가 나서서 '까잇거...다 덤벼 보드라고....다 죽어불자..잉' 이렇게 나와야 한다.나는 트팀전에서 돌쇠로 서재명을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일본야구>의 스토리는 알 필요없다.그렇다고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단 스토리가 미친 언니 치맛자락 처럼 마구 날리고 있어서 촛점 맞추기 어려울 뿐이다.거기에 작가의 말장난과 독자를 향한 새디스트적 상상력은 줄거리를 '거시기' 하게 만든다. (주: '거시기'는 작가를 겨냥한 나의 복수다.) 줄거리를 애써 맞추려는 논리적인 사람들은 펜과 노트를 준비해서 앞뒤를 맞추어 볼 수 도 있다.다부지게 마음 먹고 달려들면 인물들의 관계와 줄거리의 맥락을 '거시기'해 버릴 수 있다.근데 '나의 게으름'은 그러길 거부했다.그러면서도 논리에 대한 교육받은 의식은 사건을 정리하고자 한다.준비없이 암산만으로 정리하려니 자꾸 눈앞에 파리가 윙윙돈다.앗..바로 이것이 <일본야구>가 나를 향해 준비한 공격패턴이군.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줄거리 따위는 대충 '거시기'해버린다.

소위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더냐?  나의 생활의식은 모더니즘에 극히 구속되어 있다.하지만 90년대를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포스트모던'은 내 의식의 범위를 약간 확대해놓았다.모든 영역에 그대로 대입하긴 어렵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포스트 모던은 모던의 극복이나 모던 이후의 무었이 아니였다.지배적 양식인 '모던'에 대한 비주류적 실험이요 반성적 성찰이었다.이러한 심플한 정리는 주로 사회학적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예술에서의 모던/포스트모던은 각 장르별 특성에 따라 소재의 변주에 따라 백화제방을 이룬다.소설의 포스트모던에 대해 내가 그다지 깊이있게 알지 못한다.하지만 대개 포스트모던 소설이라는 것들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소설 구조와 형식,문체를 휴지통에 처넣는다.전통적 소설에 익숙해져 있는 것에 대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성찰하게 한다.(이것 봐라 아는게 없으니 늘 모더니즘적 관점일 수 밖에 없다.괜찮다.내가 문학론 석사냐 박사냐...) 특히 언어에 직접적인 구속을 받는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언어해체와 커뮤니케이션 연속성에 대한 부정등이 빈번히 등장한다.언어해체라는 것은 결국 언어가 가지고 있는 자기완결성에 대해 '그까잇게 뭔데'라고 찔러보는 것이다.대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다.'말을 논리적으로 하란 말이야..뭔뜻인지 알겠어?....그렇게 말하면 잘모르겠잖아...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이 모든 것들은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목적에 두고 있다.하지만 언어/커뮤니케이션이 그러한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이 싫었나 보다.결국 언어/커뮤니케이션을 가지고 지랄발광을 한다. 비비꼬고 뱅뱅 돌린다.벽보고 이야기하고 때론 벽을 파고 이야기한다.문제는 이러한 놀이에 독자들이 '뭐 어쩌자고'이렇게 반응한다는 것이다.물론 평론가들은 신난다. 원고요청이 많아지고 술자리 안주 한판 늘어나니까.

이 책이  엄청난 철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라이프니치가 등장하고 뭐가 뭐가 패러디대고 하지만 '그까잇거'같고 포스트모던의 우화속에 담긴 심오한 철학 이라는 둥 하면 퇴니스의 '1차집단''2차집단'만 가지고도 심오한 소설 수백권은 써내려 갈 수도 있다.1차집단의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2차집단내의 부적응..엽기적 살인사건..... 

 열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구현하기 위해 한신타이거즈 팀원들은 뿔뿔히 흩어졌다.우승했다는 객관적 사실도 부정된다.일본 야구의 구현을 위해 도서관에 다니고 정신병원에서 열변을 토하고 코푼 화장지를 뒤적여 자료를 정리한다.<일본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우아하고 감상적이어야 하는 그 일본 야구가 의미하는 바가 아직 명료치않다.의미를 찾으려는 것 자체를 보면 작가가 또 비웃을 지 모른다.'그렇게 당하고도 의미와 해석의 망령속에 있냐?' 그냥 일본야구나 구현하라구!친구야' ...이렇게 잘난 척하는 작가에게 일년내 좋은 햇살과 좋은 땅의 양분을 먹고 자란 고구마를 만났을 때 쩌쪽..남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참 거시기 해부네"

'거시기'하나로 살아온 리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ㄳ....내 이 싸가지 없이 가벼운 이 책을 읽고 난후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집을 또 덥썩 또 집어들었다.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내가 중학교때 배운 그 <소나기>,TV문학관에서 재탕삼탕 하며 1시간여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던 그 <소나기> 그 불후의 명작이...고작 7장이었다.에이 까잇거....고작 7장이었나...7장이었다는 거 늘 알고 계셨던 분? 나만 몰랐군.까잇거...이래서 무식하면 하나씩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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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8-22 15:59   좋아요 1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리뷰 중 최고의 리뷰입니다. 이런 리뷰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저는 많은 간격이 있는 거구,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가 되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왜 저는 발전이 없는 걸까요...

드팀전 2005-08-23 07:36   좋아요 1 | URL
지나친 겸손은 삐리리에요.ㅋㅋ
이런 것도 리뷰인가? 별로 파악된게 없고 리뷰 한칸은 채우고 싶고...그 사이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죠.내가 어디 보고서 내는 것도 아닌데...리뷰에 페이퍼를 쓰던 페이퍼에 리뷰를 쓰던 자동차가 두바키(퀴의 오타..근데 바키도 괜찮은데..)로 가던 뱀이 땅꾼을 잡던...아무런 신경쓰지 않아서 좋은 알라딘 세상!! ㅋㅋㅋ 좋다.가는거야....

kleinsusun 2005-08-23 10:30   좋아요 1 | URL
드팀전님, 리뷰 넘 재미있어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절판되었을 때 사려고 웅진에 전화도 하고 그랬었는데 새로 나왔네요. 저도 주문했어요.ㅋㅋ
근데...소나기가 7장이었는지 저도 몰랐네요.
7장 텍스트로 그렇게 많은 TV 문학관 및 청소년 상영물을 만들었군요.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