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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소년이 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놀랍고도 도전적인 시기라는 생각을 만들어낸 것이다. 널리 받아들여진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되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청소년기"를 좋게 말해도 문제적 시기라고 한다. 청소년들은 골칫거리다. 막 청소년이 되려 하는 아이들도 이런 일반적 시각을 잘 알아서, 자기가 어떻게 되어가는가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한다.
대중문화에서 보여주는 상은 주로 "나는 10대 때 늑대인간이었다"는 식이라서, 현실도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말 잘 듣고 다정하던 어린아이가 갑자기 동물적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으르렁대는 짐승도 변신한다. 호르몬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괴물이 된다. 매끈하고 부드럽던 자리에 털이 돋기 시작하는 것이(털이 아주 중요하다) 공포가 시작되었다는 신체적 신호다. 10대 아이는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고 그게 분노로 바뀌니, 다들 알아서 피하는 게 좋다. 좋게 봐야 골칫거리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런 뿌리 깊은 "상식"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식은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교조적이고 쉽게 사라지지 않곤 한다.

다리를 만들려면 누군가가 첫 번째 널판을 놓아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첫 번째, 두 번째 널판은 물론 모든 널판을 다 스스로 놓아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좌절을 안겨주는 일일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교사가 설계자이자 건설업자가 되어 다리 쌓기를 시작해야 한다. 첫 번째 널판을 어디에 놓을지 알려면 교사가 먼저 아이를 알아야 한다. 또 세상을 알아야 하고, 다리가 어디를 향해 가는가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지녀야 하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또 다리가 만들어지는 동안 아이와 교감을 유지해야 한다. 버나딘과 제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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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일을 벌이면서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가 좌절하면 다른 사람을 탓하면서 자신에게 있는 힘을 없애 버리곤 한다. 그 어떤 사람도, 어떤 장소도,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균형이 잡힐 때 우리의 인생도 조화롭고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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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버리지 못하는 원인은 두 가지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만일 물건을 구분할 때 설레지 않지만 버릴 수 없다면 다음과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버리지 못하는 물건 하나하나에 대해 어느 쪽이 원인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과거 집착형‘인지 ‘미래 불안형‘인지, 아니면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지 물건을 소유하는 경향에 대해 알 수 있다.
자신이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지 그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물건의 소유 방식이 삶의 가치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갖고 있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같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물건의 소유 방식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귀고 일을 선택하는 등 생활 속의 모든 선택에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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