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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새로웠다. 감각적이었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의 이름들이 입에 착착 감겨서 마음에 들었고 인물들에 대한 외모 묘사가 전혀 없는 점이, 심지어 일영같은 인물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정확히 그려져 있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인데.. 보통은 이럴 경우 여자인 나는 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은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했다. 신통했다. 성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버린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상수'는 '언니'였고, 나중에는 '언니'라는 사실이 대중에게도 지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경애에게도 완전히 공개된다. 상수는 '언니'인 척 연애 상담을 하는 인물로 설정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요구되었던 '남자'의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짐으로써,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뭐가 중요하니, 그냥 상수는 상수고, 언니야. 라고 작가가 말해주는 것 같다.
경애도 소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성스러운 여주인공이 아니다. 경애의 외모에 대한 묘사도 거의 없다. 경애는 힘이 셌고, 자신의 일상을 이겨냈고, 점점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상 속의 영웅처럼 그려진다. 파업에 참여하고, 삭발을 하고, 노조 안에서 일어난 성희롱을 고발하고, 같이 파업을 한 사람들이 해고되고 그 원인제공자가 자신인 것처럼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버텨낸다. 불합리한 발령을 받고 나서는 일인시위를 하면서 꿋꿋이 버텨내고 이겨낸다. 경애와 상수는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중요한 인물들이 아니고, 경애는 경애고 피조고 상수는 상수고 언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인정해 주지 않고 멸시하고, 오해하고, 배척하려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사회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자질 -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든가, 돈이 많다든가, 예쁜 여자라든가 - 을 갖추고 있어도 지금의 사회는 언제라도 우리들에게 손톱을 내밀어 할퀴고 벼랑 너머로 밀어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곳 같다. 우리들은 다들 그렇게 언제라도 벼랑에서 떨어질 수 있을 것 같고, 언제라도 일상에서 떠밀려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경애나 상수는 바위에 계란을 던지듯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무서워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그냥 살아간다. 그렇지만 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인간의 마음 - 경애의 마음을 '폐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켜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마음을 지킨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살아가는 일의, 사랑하는 일의 전부일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