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개월의 새 황석영 중단편전집 3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이것 저것 재어보고 비교해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은 행복하다. 사람에게 선택이 남아 있다는 것은 기대를 가지고서 해야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며 아직까지 절망은 아니라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이라는 인간이 비통해하며 내뱉었던 말이런가?  고로 햄릿은 행복한 인간이다.  왜? 그는 그래도 양자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만큼 여유로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 햄릿은 세익스피어의 비극에 절대로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에 양자간의 결단으로 고민하지 않는 인간이 또 어디 있으랴! 햄릿이 비극이라면 세상은 온통 비극뿐이고 또 사람들은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다자간의 아주 복잡한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며 그 어떤 선택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햄릿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

 

한병장과 미자는 둘 다 인생의 종착역에 서 있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한병장은 월남전으로 파견되어 자기 목숨을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한상병은 곧 죽어도 월남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미자는 딴거 없다. 뭇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고 몸을 팔지만 그녀가 그러한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는 그녀를 선택하는 남자와 함꼐 그 세계를 떠나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 창녀로서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창녀 생활은 역설적이게도 창녀 생활을 탈피하는 기회를 엿볼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절망이라 부른다. 한상병과 미자는 바로 그 막다른 골목에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절망이라는 늪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뽀족한 수가 있는가? 절망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여지는 널려있는 것인가? 희망조차 꿈꾸지 못하는 삶속에서 한상병과 미자는 그저 순간적인 생명을 연명해갈 뿐이다. 희망없는 사람끼리 만나고 정을 나누는 일상! 같이 밥먹고 같이 한이불을 덮으며 의미없는 안부를 물어보지 않으면 그대로 죽음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은 그것으로 희망이 생긴다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상병은 월남전에서 살아오면 그 다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미자는 한상병을 떠내보내면 그걸로 끝이다. 따라서 미자의 선물을 무심코 남지나해에 던져버린 한상병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백, 두보를 만나다
다카시마 도시오 지음, 이원규 옮김 / 심산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이백과 두보! 우리는 그들을 라이벌이라 부른다. 또한 뛰어난 시인이라 부른다. 동시대에 살면서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그들의 성취를 서로 비교했을 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용호상박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훗날 사람들은 서로의 취향과 입장에 따라 이백이나 두보를 서로 치켜세우기도 하는데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들은 우열을 가리는 일을 쓸테없는 일이라 치부한다. 비록 문학이라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 추구하는 이상이 엄연히 달랐고 그 이상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라는 형식도 상이하였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이백이나 두보의 성취에 감히 접근하지도 못한 부류들이 어디에 대고 함부로 입을 놀리며 누가 더 뛰어나다고 주절대는 것 자체가 도대체가 희극이다. 이백은 이백대로 두보는 두보대로 그들이 걸어온 족적 그 자체로써 스스로들 이미 충분히 뛰어날 뿐이다. 우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입을 다물라!


그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달랐다. 이백은 보잘것없는 집안의 태생이다. 조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가까이는 아버지마저 도재체 뭐하는 인물이었는지 속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다. 이는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 출신들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두보는 대대로 선비집안의 출신이다. 먼 조상들 중에는 중국역사에 제법 이름을 올릴 만한 인물들도 더러 있었다. 집안으로만 따지자면 어디에 내놓아도 위축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런 점에서 이백과는 뼈대가 다른 집안이다. 문학적 성향면에서 이백은 낭만적이며 도교적인 기풍을 가지는 데 비해 두보는 현실적이고 유교적이다. 이백이 호방하며 당당한 자의식을 거리낌없이 표출하는 남성적이라며 두보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왜소한 자신을 하염없이 자책하는 여성적이다.  이백은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독불장군식 스타일이어서 사람이 붙지 않았고 그래서 항상 외로웠음에 비해 두보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와 타인에 대한 배려로 그를 보살펴주는 이가 꽤 많았다


하지만 또 많은 점에서 그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생의 많은 세월을 무위도식으로 보냈다. 기본적으로 가진 재산이 바닥을 드러내면 알음알음 아는 지인들의 원조를 받아가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면서도 밥을 굶는 일도 없었고 또 술은 언제나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천자의 부름을 받지 못해서 그리고 국왕의 신임을 얻지 못해서 유랑하고 방랑하면서도 스스로 일을 하며 얻은 댓가로 의식주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태어난 글재주를 팔아가며 연명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날품팔이 문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이게 전부다. 그들의 타고난 글재주는 천자의 영광을 노래하고 개인의 신세를 한탄하는 도구로만 씌였을 뿐 그들이 살고 있던 당나라의 국란과 왕조의 전횡으로 인하여 신음하며  고통받는 백성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회를 개선코자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문학이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재주가 기껏 지배자의 평안을 염원하고 불안한 체제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에 제공된다면 그들은 타고난 기재에 바탕을 둔 뛰어난 테크니션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진실로 참다운 위인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은 기본적으로 일어나면 안된다. 너무나 반인간적이고 철저히 반도덕적이다. 전쟁 후에 벌어지는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반인륜적인 행태를 직접 보고 겪고 들으면서 뒤늦게 전쟁 발발을 후회한 들 이미 소용이 없다. 이건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쟁은  역사의 시작과 아울러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덩달아 우리 인간들의 후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 하필이면 피해야 할 역사마저 답습하는 우리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느낀 점 한가지는 이거다. 국란 중에 전쟁터에서 싸우고 기꺼이 목숨을 바쳐야 할 군인들이 그 전쟁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무리가 왜 이다지도 많은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생명 본능에 그  원인을 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해봐야 질 것은 뻔하니 개죽음은 피하자는 지극히 이해타산적 심리에서만 찾을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의 군인들은 전쟁 중임에도 그렇게 부지기수로 도망다녔던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전투에 기꺼이 참여할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한가롭게 무슨 명분이냐고 따질 분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거는 일에 이를 무시하면서 원인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라가 나라꼴을 하고 지도자가 정당성을 가지고 백성을 위하는 통치를 하였다면 그 나라와 지도자 밑에 있는 백성들은 기꺼이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또 지도자를 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과 선조는 백성들로 하여금 이런 명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선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흔들림없는 사실이다


역으로 선종과 조선이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였다면 전쟁은 애시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혹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하였더라도 백성은 제 나라 제 임금을 팽개쳐 두고 줄행랑 치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일반 백성이 그대로 군인이 되는 그 당시에 승리의 가망없는 전쟁, 목숨 바쳐 당당히 싸울 사명감을 가질 수 없는 전쟁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선조와 관료들은 무슨 수로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불현듯 두렵다. 이 시대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 군인들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전쟁터로 달려갈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장비만 - 내장비만의 권위자 이왕림 박사의 인생역전 프로젝트
이왕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여태까지 나는 건강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건강만큼은 타고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실제 그렇다. 간혹 감기 몸살 정도는 일시적으로 앓었을 수도 있었지만 다른 것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한가지 고민되는 것은 있었으니 바로 뱃살이다. 혹자는 인격의 상징이니 하며 미화하기도 하지만 다 부질없는 기만이다. 모양상으로도 혐오스러운 것이 사실이며 상식적으로도 건강에 해가 되면 되었지 유리한 요소는 아닌 것이다. 나는 한때는 도대체 게으르지 않는 나에게 찾아온 뱃살 현상에 대해 기막혀하며 의구심을 가졌고 곧 원상회복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악화되기만 하였다


나는 비로소 그 원인을 대충 알아버렸다. 내가 과식을 해서 아니면 전적으로 심하게 운동 부족상태에 있어서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내장에 지방이 쌓이고 이렇게 쌓인 지방과 이 지방으로 장소가 협소해진 장기들이 제 공간을 찾지 못해 밖으로 밀려나게 되어 신체 외관적으로 볼 때 배가 튀어나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근원적인 문제점은 내 뱃속에 자리잡고 있는 내장에 끼인 지방성분이다. 그런데 이 지방성분은 세월이 흘러감으로써 신진대사가 자연스럽게 쇠퇴해짐에 따라 비례적으로 저절로 쌓이게 된 부분에다가 육고기와 패스트푸드 위주의 잘못된 식생활에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안일하게 방치해 둔 자기애 결여가 겹쳐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특히 오늘날 대장과 소장에 병이 생겨 생명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는 환자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나로서는 새삼 내장에 끼인 지방을 제거하여 뱃살을 없애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뱃살이 건강에 미치는 심각성을 경고하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그 처방이 너무 빈약하다. 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치료과정에서 획득한 노하우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소개하고는 있으나 적어도 나로서는 전혀 실감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처방이 너무나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선뜻 행동으로 옮길 자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면에다 그 처방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이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저자가 얘기하는 것은 시중에서 우리가 어렵지 않게 흔히 들을 수 있는 것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정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데 있어 그런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형주 - Silver Rain
임형주 노래 / 신나라뮤직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임형주가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스타일일수 있고 그가 몸담고 있는 팝페라가 가지는 속성일 수가 있다. 어쨌든 임형주는 맑다. 이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임형주 본인이 혹시라도 내 색깔은 맑음이 아니라 탁함, 흐림, 또는 무거움이라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의 맑음은 그의 음악을 접한 대중들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맑음으로 정체화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작업이 아니며 임형주와 대중의 교감이 이루어 진 그 찰라적인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고 앞으로 임형주를 접하게 될 대중들에 의해서도 예외없이 거듭 확인될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확언한다


임형주의 맑음은 그냥 맑음이 아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긴다고 하였던가? 나는 임형주의 맑음속에서 그 어떤 격한 말과 가눌 수 없는 몸부림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애절함을 포착하였으니 그의 맑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게 표현되어진 애절함이었던 것이다. 잔잔한 표정이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단아하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열정적인 몸짓을 보았으며, 은근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에서는 두발로 멀쩡히 마냥 서 있을수 없도록 하는 떨림의 호소를 느꼈던 것이다. 그의 맑음은 창과 화살이 되어 나의 심장을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맑음과 그 맑음을 통해 전해지는 애절함! 우리는 흔히 어린 사람이 기량은 뛰어날 수 있을 지언정 삶의 원숙미를 전달할 수 있을려면 연륜이 필요하다고 쉽게 얘기하곤 하는데 임형주 앞에서는 이게 모두 다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임형주의 맑음과 애절함! 나는 그의 출현 이전에 결코 경험한 적이 없었고 장차 어느 누구라도 임형주만큼의 감흥을 만들지 못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