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 길고양이와 함께한 1년 반의 기록 안녕 고양이 시리즈 1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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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도 우리집 창문가에서는 고양이들이 울었다. 아기 울음 소리 같았다. 가끔 혼자 있을 때 고양이들이 창가에서 이렇게 아기 울음 소리를 내면 무섭기까지 하다. 아마도 그 울음 소리가 사람 소리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아기가 어디서 우는 줄 알았다. 너무 가까워서 집앞에 누가 아기를 버렸나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고양이임을 확인하고서 소름이 끼쳤다.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 이런 고양이들이 많다. 저자에 의하면 고양이가 아기 울음 소리를 내는 건 발정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정기가 되면 이들은 이성 고양이를 꼬시려고(?) 크게 소리를 내는데, 그게 아기 울음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분명 집앞에서 매일 마주치는 그 녀석들일 것이다. 매일 마주친다고 해도, 나는 고양이들과 매일 마주치지만 내가 마주치는 고양이가 매일 같은 고양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놈이 그놈 같이 생겼고, 날카로운 눈빛을 빤히 쳐다보는 것도 무섭고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언제나 녀석들은 음식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주차된 승용차 아래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도망가곤 한다. 우리집 주변에는 몇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있을까. 저자는 동네에서 1년 4개월 동안 20여 마리의 고양이와 만났다고 한다. 그 중 자신이 일일히 이름을 붙인 일부 고양이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길고양이들은 자기들의 영역을 설정해놓고 해당 구역에서만 논다고 한다. 다른 고양이가 영역을 침범해도 너그럽게 봐주는 고양이도 가끔 있는 반면, 제 영역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저자와 동네 세탁소 주인처럼 정기적으로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길고양이는 적어도 생존을 위해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책을 읽고 시간을 내어 고양이 밥을 한번 챙겨봐줄까도 생각했지만, 아침 일찍 나가 늦은 저녁이나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나로서는, 그들에게 시간을 내어 밥을 주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단순히 주변의 길고양이를 관찰한 글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왔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길고양이와 만나고 부대낀 과정을 글로 묘사하고, 그들을 동네 주민으로 인정한다. 사람들은 마땅한 이유없이 고양이를 싫어하고, 고양이의 수가 늘어나면 인간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마녀나 악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길고양이를 '도둑 고양이'라 부르는 것도 억울하다. 기껏해야 사람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것이 다인데, 도둑 고양이란다. 아무 것도 훔친 적이 없고, 훔칠 줄도 모른다. 그들은 누군가 먹다버린 음식물을 찾아 배를 채우며 생을 연명한다.  

  "고양이도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생명체로 태어나 같은 지층 연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는 외계의 생명도 마녀의 동물도 아닌 존재로 그저 우리 곁에 살아갈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필 전 세계에서 길고양이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 한국이란 곳에서 길고양이는 늘 두려움과 불안, 배고픔으로 떨고 있다. 사실 길고양이의 세계를 알기 전까지 나 또한 고양이가 두려움에 떨고 있든 말든 그냥 무관심했었다. 녀석들을 적으로 여기지도, 친구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녀석들이 한국이란 곳에서, 더구나 도심이란 공간에서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며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길에서 아무렇게나 퍼질러 있어도 마냥 좋던 계절이 갔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곧 추운 겨울이 온다. 고양이도 추위를 탄다. 털이 있는 동물이라고 추위를 타지 않는 건 아니다. 많은 고양이들이 길거리에서 로드킬을 당하지만, 추워서 덜덜 떨다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해 죽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을 통해 동네 길고양이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매일 그들을 만나지만 길고양이의 세계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그들의 생김새를 좀더 자세히 관찰하고, 눈을 마주치고 있다. 저자처럼 오랜 시간 고양이와 함께 놀아주지는 못해도, 길고양이 한 마리 데려다 키우지는 못해도, 통조림 하나, 소세지 하나 사다주면서 만남을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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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9-09-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는데..
밀린 책들이 많아서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ㅎ

가끔 아프님 올리는 글, 눈팅만 하다가 오늘은 안부겸 짧은 인사 겸해 남기고 갑니다.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

마늘빵 2009-09-14 09:18   좋아요 0 | URL
^^ 저도 밀려있는 책들도 많고, 리뷰 안 쓴 책들도 많고... 이 책,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카스피 2009-09-1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들이 주인한테 버림받아서 길 고양이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요놈들 스스로가 발정기떄 집을 나가 안돌아오면 길 고양이가 됩니다.흔히들 고양이는 주인 얼굴 3일만 안보면 주인 얼굴을 잃어버린다고 하니까요.
저도 요렇게 몇놈 잃어버렷지요 ㅜ.ㅜ

마늘빵 2009-09-14 22:19   좋아요 0 | URL
네, 주인한테 버림받은 길고양이는 더 살기 힘들대요. 야생을 겪어보지 않아서, 알아서 쓰레기통 뒤지거나 먹을거 구하는 방법도 모르고, 영역다툼에서도 밀리고. 어쿠. 카스피님도 고양이를 잃어버리셨군요. 그냥 그 놈들이 나가버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