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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송병헌 외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1. 로자와 레닌

일주일 전에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책세상, 2002)를 읽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꺼운 『레닌』(시학사, 2001)을 집어들었고 일주일만에 완독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에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두 혁명가의 삶과 사상을 연달아 살피다보니 잠시 나의 감각도 백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하다. 그때의 사상가들은 지금 우리보다 불행했을까. 그들이 싸워야했던 적들과 배신자들은 지금의 우리의 경쟁자들보다 상대하기가 수월했을까. 훨씬 세련되어보이고 숫적으로도 늘어난 베른슈타인의 후예들이 맑스와 맑스주의를 조롱하는 이 시대에도 로자나 레닌같은 열정과 확신을 지닌 투사들은 여전히 생겨나고 조직하고 반란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던 로자와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레닌에게 그것은 타도와 획득의 대상이며 시기와 방법의 문제였지만, 우리에게도 그러한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로자가 레닌에 비해서 정치적 수완이 부족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혁명적 순수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레닌처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당파의 권력을 성장시키는 것을 로자가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기에 그들의 명암이 갈렸다고 생각한다. 레닌의 시신은 통치이데올로기의 상징물로 전시되었지만 로자의 시신은 강물 속에서 썩어갔다.  

2. 로자와 베른슈타인 

1871년에 태어나 1919년에 살해된 Rosa Luxemburg는 『Sozialreform oder Revolution?』(1899)로 Eduard Bernstein의 주장들을 비판한다. 이 책의 1부는 <사회주의의 여러 문제(베른슈타인, 1896-97)>에 대한 비판을, 2부는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베른슈타인, 1899)>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1908년에 재판을 찍었고 로자는 몇몇 구절들을 고쳤다.  

로자는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10쪽)”를 갖고 있으며,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폐기함으로써 사회주의적으로 분배하고자 한다”(84쪽)라고 주장하고 “자본주의의 종양을 제거”하여 그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제거하는 것”(95쪽)을 목적으로 한다. 로자의 생각은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전체적으로 해체해야 한다”(99쪽)는 주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로자가 파악한 베른슈타인의 소망은 “자본과 노동의 적대 완화(23쪽)”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 사회개혁으로 대체하는 것(101쪽)”이다. 둘 다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던 당원동지(?)였지만 로자와 베른슈타인은 전혀 다른 목적, 그에 따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무장된 사상가들이다.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판은 가능한 것일까. 그리하여 비판은 상대를 설득하여 우리 편으로 만들려는 차원이 아니라 독일사회민주당 내에서 비판 대상을 추방하기 위하여 진행된다.  

베른슈타인의 고민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과 로자의 비판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너무 먼 거리가 있다. 하여간 로자처럼 명민하고 날카로운 비판자를 맞이한 베른슈타인이 가엾게 느껴지지만, 그 후로 로자가 아닌 베른슈타인의 후예들이 더욱 번성했다는 것이 그들의 위안일 것이다.  

3. 인용 노트 

이론적 논쟁이 결국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 … 현대 노동운동의 전체 힘은 이론적 인식에 근거한다. - 13쪽 

노동조합은 임금 법칙을 철폐시킬 수 없다. 노동조합은 최선의 경우에라도, 특정 시점의 ‘정상적’ 한계를 자본주의적 착취에 부과할 수 있을 뿐이며, 결코 그 착취 자체를 점진적으로라도 철폐할 수 없다. - 39쪽 

분명 민주주의의 형식은 전체 사회의 이해관계를 국가 조직 속에 표현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반면에, 그것은 여전히 단지 자본주의 사회, 즉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으로 지배하고, 그 이해를 표현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형태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적인 제도일지라도, 내용에서는 지배계급의 도구가 된다. - 51쪽 

팔랑스테르Phalanstere 체제를 건설함으로써 지구상의 바닷물을 모두 레모네이드로 바꾸겠다는 푸리에Charles Fourier의 생각은 매우 공상적이다. 그러나 쓰디쓴 자본주의의 바다에 사회개량주의의 레모네이드 몇 병을 넣어 자본주의의 바다를 사회주의의 단물로 바꾸겠다는 베른슈타인의 생각은, 더욱 어리석은 것이며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덜 공상적이지 않다. - 53쪽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제껏 사회 개혁은 어떤 전술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 결실은 공허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질 논리적인 결과는 사회 개혁에 대한 환멸이다. - 57쪽

한마디로 베른슈타인의 적응 이론은 개별 자본가의 사고방식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표현할 때 이 이론은 부르주아 속류 경제학의 본질이고 특징적인 표현일 뿐이지 않은가? 이 학파의 모든 경제적 오류의 근거는 바로 개별 자본가의 눈을 통해 본 경쟁이라는 현상을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 63쪽

 마르크스가 발견한 추상적-인간 노동은 결국 그것이 발전하면 화폐라는 형태를 띨 뿐이다. - 75쪽

 … 이러한 종류의 사회주의를 바이틀링이 이미 지난 50년 전에 얼마나 더 많은 힘과 정신과 명예를 가지고 대변했던가! 그러나 그 천재적인 재단사는 아직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오늘날 {누군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조각처럼 조각난 생각을 운 좋게도 다시 기워 맞춰서 독일 프롤레타리아에게 과학의 마지막 단어로 제공할지라도, 그는 기껏해야 그저 재단사에 불과할 뿐, 천재적인 재단사는 아니다. - 86쪽

사회주의 운동의 운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주주의 발전의 운명이 사회주의 운동에 연결되어 있다. - 91쪽

마르크스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평화롭게 실행하는 것이지,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 사회 개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 101쪽

4. 그밖에

로자와 껄끄러웠던 레닌은 1922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독수리는 때로는 닭보다 낮게 날지만, 닭은 결코 독수리의 높이에 이를 수 없다. 그녀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독수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150쪽) 이미 『국가와 혁명』을 통해 맑스의 생각에 더욱 근접한 레닌은 카우츠키의 “배신”보다 로자의 “결함”을 더 소중하게 평가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의 결함”은 무엇이었을까? 

스파르쿠스단은 반란에 실패하고 그 지도자들은 살해당했다. 반면에 볼셰비키는 권력을 장악했다. 니콜라스 황제와 그 가족들은 이파테프 하우스에서 갇혀 지내다가 1918년 7월 18일 지하실로 끌려 내려가 모조리 총살당했다. 부부와 네 명의 딸과 아들과 여러 하인들까지. - 『레닌』(648쪽, 시학사) 그 일이 있기 30여년 전, 레닌의 형 알렉상드르 울리야노프는 1887년 5월 8일 교수형을 당했다. 테러에 반대하고 폭력혁명에 찬성한 사람들은 테러에 의해 죽었고, 폭력혁명을 위해 테러도 불사한 이들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했다.  

책세상문고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꼼꼼한 번역과 적절한 <해제>를 갖추고 있다. 『대중파업론』과 마찬가지로 로자의 글이 재미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논쟁과 비판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통쾌한 느낌은 들지만 레닌의 대부분의 저작이 그러하듯이 특정 상대를 공격하고 정치적 효과를 얻기 위해 쓰여진 글들은 지나치게 논쟁적이고 호전적인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기 마련이다. 물론 로자의 비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품위가 있다. 

지난날과 더불어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주의의 실천과 수정주의의 이론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시대의 유행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난다. 그럴수록 우리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비판을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지속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 설 것인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의 원칙들은 무엇이고 핵심적인 정신들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지혜가 꼭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맑스, 레닌, 로자가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그들 역시 앞선 선배들의 비판과 투쟁을 책을 통해 배웠다.  

2002년 4월 1일

오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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