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절판


목숨을 걸지 않는 한 결단은 없다.
한 인간이 아무리 고양된 감정으로, 아무리 절절한 언어로 투쟁을 결의한다 해도 그가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라고 말하지 아니하는 한 그것은 이미 완전한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가혹한 현실의 벽, 생사의 벽에 부딪혀 힘없이 허물어지고야 말 헛맹세이다.
목숨을 걸지 않는 '투쟁'은 거짓이다. 그것은 소리치는 양심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자기 위안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죽음의 문제이며, 죽음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이다. 비인간의 삶에 미련을 갖는 자는 결코 인간으로서 죽을 수 없고, 따라서 결코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전태일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인간의 삶에 대한 온갖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242쪽

그가 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겪고 보아온 비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것이었다. 그것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을 때 그는 그것을 철저하게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비인간적인 현실의 '덩어리에 뭉쳐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그는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 전에 (비인간의) 삶 그 자체에 환멸을 느낀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는 아주 단순하게, 아주 분명하게 "나를 버리고, 날르 죽이고 가마"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러기에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릴 수가 있었다. 그가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끝내 버려서는 안된다고 확인하였던 것은 그의 마음의 고향, 저 인간시장의 현장에서 학대받고 수모당하고 짓밟혀 파괴되고 있는 인간성을 위한 투쟁의 길뿐이었다.
이제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오직 거짓이 없는 그 순간을 위하여 아무 두려움도 남지 않는 그 완전한 순간을 위하여, 그는 이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전태일 사상은 완결되었다.
남은 것은 오직 행동뿐. 불꽃같은 행동뿐. 한 병약한 인간이 어떠한 굴종의 성채도 파괴해버리는 저 처절한 분노와 사랑의 불길을 여러분은 곧 보게 될 것이다.-242-243쪽

전태일 열사. 분신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태워버림으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려 했던 그. 점차 큰 목소리로 울려퍼졌던.
그가 분신한 1970년, 그리고 1980년만의 문제일까. 노동운동이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지고, 현재 FTA 협상으로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목숨과 발언권을 맞바꾸는 사태는 10년, 20년 전에 있었던 '과거 사건'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발언권과 맞바꾸었지만, 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묻혀지고 말았다.
자신의 생을 바쳐가면서까지, 말하고자 했던 그. 세상의 무심함을 깨뜨리고 돌격하고 싶어했던 그. 36년전 전태일 열사, 그리고 오늘날의 열사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