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1시간이 나를 바꾼다 -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아침 습관
이케다 지에 지음, 안혜은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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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아침형 인간이 못 된다. 이건 너무 확실한 사실이어서 어쩌면 단언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시간을 활용하기보다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낑낑대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한 뒤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시계를 보곤 “헉!!!”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스프링을 튕기듯 일어나 부리나케 출근 준비를 한 적도 있었고, ‘아... 10분만 더 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적지 않다. 그런 내가 출근 시간이 일렀던 회사를 1년을 좀 넘게 다녔고, 이직하며 지금의 직장의 출근 시간이 그보다는 좀 늦어지며 나에게는 1시간 내지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공짜로 생겼다. 그 시간 동안 잠을 더 자는 문항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격상 계획을 짜서 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실행하는 것에 거침이 없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이 그랬다. 무작정 시작하기.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이지만 퇴근 후 녹초가 되어버려서 못하던 것들. 필사, 독서노트, 영어공부, 자격증 공부, 독서를 적절히 섞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 페이스대로 조절하기로 했다.

 

 

이전 직장이나, 지금 직장이나 내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1.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

2.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

 

사실 2번 선택지가 훨씬 더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는 ‘정시’라는 출근 시각이 내게는 충분히 이른 시각이었으므로 더 빨리 출근을 하기는 무리여서 실행하기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직장은 거리도 가깝고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에 2번 선택지를 고려해볼 수도 있었지만, 퇴근 후 나의 생활 반경은 2번 선택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집까지 들어오지 못하는 택배를 택배보관소에서 찾아서 집으로 귀가하여 가장 먼저 세탁기를 돌리고 택배를 정리한 후 샤워를 하고 나와서 아침에 먹은 설거지를 해두고, 그 사이에 남편의 도시락 반찬을 대충 한다. 그리고 저녁으로는 간단하게 호빵을 하나 먹고 캐모마일을 타서 지금 컴퓨터에 앉은 거다. 그런 일련의 시간들을 보내고 나는 이미 지쳤다. 오늘 같은 날은 남편의 야근이 있지만, 다른 날에는 남편과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 추가가 된다. 그렇다면 고요한 내 시간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장받는다고 하여도 최소 8시 30분에서 9시 사이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세상에... 그러다 보니, 나는 차라리 정시 출근을 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시간이 얼마나 여유로운데, 그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심지어 그때는 집중력도 얼마나 곧은 방향인데!

 

 

그러던 중에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아침 습관인 <매일 아침 1시간이 나를 바꾼다>라는 제목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침 1시간으로 나를 바꾼다거나 하는 거창한 다짐보다는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 좀 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훨씬 더 긍정적인 방향이지 않을까 내심 설레기도 했다.

 

 

책에서는 일어나는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업무 시작 1시간 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면 된다.(30)고 말하며, 업무 시간 1시간 중 전반 30분은 일정을 분류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후반 30분은 씨앗 심기(긴급도와 중요도를 4단계로 분리하는 일)였다. 결국은 1시간을 온통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어떤 것을 먼저 할지를 결정하는 것, 그러니까 계획을 짜는 것에 소비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원하던 내용과 달라서 많이 놀랐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업무가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건 출근하는 시간이나 짬이 나는 시간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수정해야 하는데 그걸 시간을 내어 일일이 솎아낼 수는 없다. 그때그때 일이 생기면 기한을 명확히 하고 그때까지 처리하는 방법밖에.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에 1시간을 투자한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는 일일 계획, 주간 계획, 월간 계획, 연간 계획을 따로 나누어 관리를 하고 있기도 하고, 일일 계획은 5분 내지 10분에 끝내버리고 필요할 때마다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미래도 아닌 일일 계획을 위해 1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 아리송하기도 하다. 하지만 계획적으로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있어서 고민이라거나 일이 자꾸 밀려 일이 잔뜩 쌓여있다거나 꼭 해야 하는데 미루기만 한다거나 게을러서 고민이라거나 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책인 것 같다.

 

결국 나, 잘 하고 있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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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 - 2000개의 집을 바꾼 정희숙의 정리 노하우북
정희숙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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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어 짧은 시간 동안 거시적으로는 미니멀, 미시적으로는 정리에 관한 책을 두 권을 읽었다. 처음에 읽었던 책인, <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를 읽고 분명 여러 개를 정리하기도 했고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눈에 확 띄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 짧은 사이에 다시 몸집을 키워내고 있는 잡다한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46. 어느 때 정리를 하고 싶어지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큰 변화나 사건이 있을 때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렇지는 않지만, 요즘 따라 마인드컨트롤이 잘되지 않기도 한데, 이게 약간의 무기력이 찾아온 것 같기도 하고 권태가 온 것 같기도 하여 의심을 하고 있다. 이게 불편하지만 않으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라며 의기양양하게 결투를 받아들일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이전보다 더 연약해져 많이 흔들림을 당하기에 그런 무기력함이 반갑지가 않다. 이럴 땐 뭔가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밖에서 구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 안에서 변화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안’이라고 한다면 ‘나 자신’일 수도 있을 텐데, 그게 혹여나 자책감으로 이어지는 것이 두려워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결국은 내가 앉아있는 자리, 그 주변. 아, 정돈해야겠구나.

 

 

 

저자는 마흔에 정리 컨설턴트를 시작하며 이제까지 총 2000여 가구를 도왔던 경험을 이 책에 녹여냈다. 여담으로, 본인이 잘하기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마흔에 시작하다니! 너무 부럽다!

 

 

 

정리 3단계

1단계 : 밖에서 안으로

2단계 :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3단계 : 공간보다 물건별로

 

우리는 대개 청소를 한다고 하면 집안을 구석구석 보기 마련인데, 저자는 발코니부터 보라고 한다. 발코니가 바로 정리가 시작되는 부분이자 가장 먼저 꺼내서 봐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아차 싶었던 것 중 하나는 나는 항상 ‘오늘은 여기(ex.침실) 청소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공간을 정해두고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정해두고 정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나 역시 책이 책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장만 정리해야지. 하면 반만 정리한 것과 진배없다. 또한 정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죽은 공간을 살리는 일, 그러니까 물건에게 내어준 자리를 사람의 자리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살려낸다, 라. 참 멋있다.

 

 

책에는 니트 옷걸이에 거는 법, 이불 개는 법, 냉장고 천연식초를 만드는 것 같은 깨알 팁들이 숨어있는데, 나도 해보고 싶어 사진을 찍어두었다.

 

 

 

챕터 4에 [삶이 괴로운 당신에게 정리를 추천합니다.]에는 육아 때문에 집 정리를 못하는, 다이어트 실패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아내와의 불화로 이혼 위기에 처한, 남편과 사별 후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쇼핑 중독으로 물건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객들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읽으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어떤 것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돼지 우릿간 같은데(...)라며 반성을 해보기도 했다.

 

 

33.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아가지만, 정리를 안 하는 사람은 과거에 중점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공감했던 문장이기는 하지만, 정작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현재이고, 수납장에 꽁꽁 숨겨둔 것들은 과거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수납장을 열면 쿵_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기도, 설렘이 일기도 한다.

 

35.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물건은 과거로 보내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현재라는 시간을 입혀주자. 그러면 과거, 언젠가 올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름대로의 추억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할지를. 하지만 적어도 얻는 것은 과거이고 잃는 것은 현재(106)가 될 일은 없어야겠다. 정리의 기준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걸 기억(113) 한다면 화장대 위에 내가 써둔 ‘간결한 삶, 정돈된 삶 찾기’가 결코 아득하거나 막연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아, 지금 베란다에 커다란 김치통이 굴러다닌다. 한 달에 한 번씩 김치통에 아빠한테 필요한 것들을 담아 대전으로 보내야지...

 

 

 

 

오탈자 219. 이러다 결혼이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혹은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책 속의 글

31. 살아온 시간만큼 물건은 쌓이게 마련이다. 새로운 물건에 밀려 수납장이나 창고 안으로 들어간 물건들은 쓰이지 못한 채 점점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간다. 계절이 바뀌듯 인생의 흐름에 따라 지나간 시절의 물건은 그때그때 정리하자. 그래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버려지는 물건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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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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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님.



책을 소개를 중간까지만 읽고 덜컥 구매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야 책을 펼쳐들었어요. 서평을 쓰려고 하얀 창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는 대상을 제누에서 작가님으로 변경했어요. 책에 관한한 여러 서평이 있고, 그 서평들을 다 읽어보진 않으실 테니 이 편지가 닿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겠지만요. 거창한 이유랄 것은 없고, 그저 감사의 표현의 일종입니다. 회사 점심시간마다 책을 들고 산책을 나가서 책을 대여섯 장씩 읽고 오곤 하며 점심시간을 보냈지요. 그 점심시간이 작가님 덕분에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눈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뻐근해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껌뻑껌뻑거리기도 했어요. 책을 다 읽은 날에 배우자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기도 했어요. 저희 부부는 이제까지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해왔으니 아마 무리가 없다면 거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게 될 것도 같지만, 저희가 이제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를 선택한다.

아이를 선택한다.


선택을 받는다.

선택을 받지 못한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살다 보니 여러 선택지가 있더라고요.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하나의 선택지를 제 것으로 선택하고 삶을 살았어요. 선택을 하지 않는다.가 제 선택이었지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게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하나와의 생각과 같았지요. 나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인간일 뿐인데, 그런 내가 어떤 한 인간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내 가치관 대로 길러내어 그것이 성격이 된다는 게, 그러니까 동물을 사람으로 길러내는 과정이 무섭고 두려웠어요. 그 때문에 이미 성격과 가치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갈 ‘초등학생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아이라면, 내가 방향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두려움을 타인에게 말했을 때 제대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손에 온기가 피어올랐어요.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내가 누군가를 만든다고만 생각해 봤지,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며 살지는 못했는데, 덕분에 아주 어릴 때의 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답니다. 나를 만든 것은 결국, 특정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던 세상의 전부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냈어요. 모자라고 부족한 것들이 더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이, 내 단점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까닭이겠죠.




사랑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마음씨 예쁜 아키가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너는 네 삶을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던 가디에게 “저만큼 제 삶에 신중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대답하던 제누가 자꾸만 떠올라요. 저는 제누가 ‘에드거(Edgar)’였으면 해요. 제누라면 가능할 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새끼 원숭이.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요.

세상에는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이 참 많아요. 지금 현 상황은 더욱 그렇네요. 하지만 ‘부모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애매해요. 그들의 ‘부모 자격’이나 ‘부모다움’을 감히 어느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예단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요. 다른 분들이 아이가 건강할까, 성별은 무엇일까, 자연분만을 하고 싶은데, 산후조리원은 어디로 하지, 같은 걱정이나 선택에서 조금 벗어나 ‘아이게에 어떤 부모가 되어줄 수 있는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아주 깊이 몇 번이고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부모 자격은 그때 부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에 슬픈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저는 종종 생각해요. 그 어떤 것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지난날들을. 그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질문이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할 상황이 필연적으로 생길 것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제가 생각보다 너무 엉망인 인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아니면, 어떤 우스운 핑계를 대고, 가설을 만들며 합리화를 하기도 하지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갑니다. 어떤 날은 진흙 구덩이를 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부러 들어가서 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저도 모르게 빠져있기도 하고요.


이후에 전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말로는 어떤 방향이든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로 우리 부부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저는 제가 사는 지금을 또다시 깨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들지가 않아요. 이미 결정은 잠정적으로 도출되었지만, 그 결정을 결정하는 것을 유예시키고 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네요. 나는 “기다릴게, 친구.”라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 그럼에도,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너는 내가 마음에 드니?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


부모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며 삶을 정돈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해주어서,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며 보이지 않는 손의 온기를 나눠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 책 속의 글



13. “NC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게 더 어렵죠.”



29.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였다. 정부는 사람들이 NC의 아이들을 입양하도록 독려했다.



76. “아이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들 같아요.”



91. “세상의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111.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3.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146.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160.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속 거리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거리 말이다.



167.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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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 - ‘하기’보다 ‘하지 않는’ 심플한 정리 규칙 46 스타일리시 리빙 Stylish Living 22
스도 마사코 지음, 백운숙 옮김 / 싸이프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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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 “집에 뭐가 너무 많아.”이다.


그래서 나는 해가 바뀌기 전부터 하루 1개의 물건을 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며 그것들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있는데, 그에 따른 장점 및 단점은 압박감 같은 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릴 것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얼마 안 남은 화장품을 꾹꾹 끝까지 눌러쓰며 버리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있는 것들을 낭비하며 쓰는 것이 아니라 안 쓰던 것들을 그렇게나마 쓰는 것들도 생기니, 버려지는 입장에서도 쓸모를 다하고 버려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 구석에 박혀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에 하나씩 버릴 것이 꾸준히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했다. 버리기 시작하면서 물건을 사는 것에 한층 더 신중해지는 내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먹어서 없애는 것뿐만이 아니라, 물건으로 남는 것은 특히나.


그러면서 올해는 두 주제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중 하나가 미니멀리즘에 관한 것이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품고 있는 내용 역시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겠지만, 읽을 때만큼이라도 좀 더 열정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실질적인 바람이었다.


난 미니멀리즘은 아니지만 간결하고 정돈된 삶을 지향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지만 나는 어지름의 대명사에 가깝다. 내가 앉아 있고, 내가 누워 있는 곳에는 특정한 것들이 난잡하게 있는데,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책 2권, 이면지, 볼펜 세 자루, 가계부, 각종 영수증, 일기장, 핸드폰과 충전기가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으니, 그 정도면 말 다 했지. 여담으로, 나의 배우자는 책 제목만 보고 “이건 너랑 반대네.”하고 웃었다. 우쉬이...


책을 손에 들고 한번 휘리릭 빠르게 넘겨보았는데, 책의 주제만큼이나 책의 구성이 정갈하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하다는 느낌은, 아마 거기서 왔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덤이고.


책의 첫 장에서는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트러지고 어지러워진다’는 엔트로피 법칙을 말하며, 중요한 것은 ‘하기’ 규칙이 아니라 ‘하지 않기’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을 바닥에 두지 않는 것’이다. 37. 바닥에 물건이 없으면 정리와 청소가 눈에 띄게 편해지기 때문,이라는데 문장만 읽어도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닥에 물건만 없어도 청소하기 전에 어질러진 것들을 청소하지 않을 시간이 확보되니까.


48. 충동적으로 정리를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날 일에 두 번, 세 번 손이 간다. 또 어느 선까지 정리할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리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시간이 모자라면 어중간한 상태로 정리를 마무리하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딱 그렇다. 다른 곳들은 그렇지 않고 끝까지 정리를 하는 편인데, 내 공간인 화장대 정리가 가장 안 된다. 아마 책에서 말하는 ‘정리수납’이 실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수납’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고 편히 사용할 수 있게끔 물건을 수납하는 일’인데, 나는 버리기는 하나 애매한 것들은 또다시 화장대에 놔두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물건을 꽤 잘 버린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나? 하며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재발견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왔다.


아무래도 매일 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청소를 매일매일 하진 못하고 혹은 않고, 평소엔 대충대충 하다가 쉬는 날 하루를 잡아놓고 청소를 할 때가 더 많다. 평소에 조금씩 한다고 주말에 할 일이 덜한 것도 아닌데, 책에서는 매일의 청소와 특별 청소로 구분해서 하라고 한다. 특히 화장실이나 주방의 경우는 물때가 끼기 쉽기 때문에 한 번에 하려면 더 힘드니까. 맞는 말이다. 화장실 청소를 한 번 하고 나면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잠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니까. 그런데 이번에 안 사실은, 156. 화장실은 건강운과 관련 있는 것이어서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왜 하필 화장실이지... 나는 화장실 청소가 제일 싫어...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을 읽자마자 책을 덮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왔다... 원래 화장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만 하면 충분(?)한데(??) 한 달에 두세 번 하게 생겼네. 크흡.


139.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심플하고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157. 청소가 싫다면 오히려 매일 청소를 해보자. 매일 잠깐씩 청소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 더러워지는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때가 찌들기 전에 손을 쓸 수 있다.

집안일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하루에 매일매일 해야 하는 청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결국 내 화장대(...)로 옮겨갔다. 화장품을 쓰고 화장대 바로 옆에 있는 서랍장 위에 두지 않기만 실천해도 질이 향상될 것 같으니까 그걸 실천해봐야겠다고, 또 작심삼일식의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세면대를 매일 닦...는 것도... 해봐야...(휴)


163. 물건은 적을수록 좋다. 최소한의 물건 소중히 쓰기.

165. 집과 공간의 크기를 고려해 물건을 고르고 최소한의 물건들로 만족감을 느낀다면 가진 물건을 충분히 활용하며 알뜰한 매일을 보낼 수 있다.

책에서 저자의 자녀(딸)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있다. 본인이 아니라 물건을 실제로 사용하는 이의 입장에서 수납 장소를 선택해야 하기에 아이의 생활 패턴을 유심히 봐두었다가 “여기에 이거 두면 어때? 편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본인의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딸이 자기 생활을 잘 챙길 수 있는 환경을 우선시하기로 했다며 그 기간은 ‘특별 기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신발장의 두 칸 정도는 딸의 학용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기도 하고, 거실에서 공부를 하는 딸을 위해 거실에도 딸의 학용품을 보관할 수납공간을 마련했으며, 거실에서 옷을 벗는 습관이 있는 아이를 위해 거실과 가까운 세면대에 옷을 벗어두는 수납공간을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정리와 수납에 관해 본인만의 고집이나 욕심이 있을 텐데, 함께 사는 배우자와 아직 어린 자녀의 기호에 맞게 욕심을 무를 줄도 아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여서 슬몃 웃음이 났다.


난 책을 읽는 중간에 책을 덮어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몸을 일으켜 싱크대 서랍을 정리하고, 가스레인지를 닦아내고, 안 쓰는 볼펜들과 포스트잇, 문구류를 한곳에 모아두고, 화장대를 정리했으며, 화장실 청소도 했다. 한번 청소를 할 때 완벽하게 하려는 성향 때문에 금세 피곤해지기도 했지만, 청소할 거리를 쌓아두는 대신 손쉬운 청소와 품이 드는 청소를 나누어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라고 하는 이 부분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런 건 평소에도 머리로는 아는 부분이지만 실천이 어렵지.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아, 물론 다른 곳은 몰라도 내 화장대는 드라마틱하게 깔끔하거나 반짝반짝 빛이 나지는 않지만, 전보다는 여유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성격상 깔끔하지 않은 인간이, 깔끔해지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이렇게나 험난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난 깔끔한 사람으로 사는 일을 노력으로라도 얻고 싶으니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또, 하나씩 버림으로써 간결해지는 내 삶과 조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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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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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을 느낄 때 무작정 마시는 물이 해갈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깨달았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만이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다며 꿀꺽꿀꺽 마시다가 급체를 하고 만다. 몸이 고장 나고 먹지도 못하고 앓아누워야 아, 내가 미련했구나 새삼 깨달으며, 정신을 차릴 즈음에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목구멍으로 음식을 넣기 시작한다. 음식물이 통과되는 지점들을 톡톡, 느낀다. 나, 이제 괜찮겠구나. 안도의 숨이 폐에서부터 깊숙이 자연히 나온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 선생이 남긴 660여 편의 산문집 중 35편을 엄선하여 엮은 책으로, 그의 산문집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도 책이 나오기 전부터 달뜬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어느 여성의, 어느 자식의, 어느 엄마의, 어느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잔잔한 호수에 떠 있다. 그 호수에 내 손이 작게라도 동그란 파장을 일으킬까 여간 조심조심한 것이 아니다.



 


 

13.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145. 매일 봐도 즐거운 것은 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생기지는 않지만, 곁에 있는 매일의 즐거움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삶을 산다. 그 즐거움으로 인해 하루가 반짝거린다. 그게 사소하고 시시한 일일지라도. 한동안은 이 책을 읽으며 순간의 정갈한 행복을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평화로운 시간, 평온한 시간, 나의 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지독하게 매섭던 추위에 마음을 녹이고 데우는데 충분했다. 온기로 가득 찬 마음은 어떤 추위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글들을, 정확히는 그의 마음의 생각의 선하고 고운 것들을 손으로 꾹꾹 짚어가며 곁에 두고 싶었다. 타인이 바라본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소박한 웃음을 짓게 하는 낯설지만 낯익은 그리움을 자아냈다.


 


 


 

24. 우리가 믿음에 대해 쉬 잊고 배신을 오래 기억하며 타인에게 풍기지 못해 하는 것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바탕이 결코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움으로 점철되었지만 믿음이 일상의 바탕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내가 미워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힘들게, 애써, 그들의 안녕을 바랐다. 정말로 그들의 안녕을 바라서라기보다는 나의 안녕을 바라는 일의 첫걸음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 미워했던 마음을 철회하거나 반성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 미움을 종결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으므로. 그들을 믿었기에 그 믿음만큼 미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생각해 보기도 하며.


 


 


 

128.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마음을 내내 품고 살았는데, 이 문장을 보고 조금은 욱했다가 수그러졌다.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의 일일뿐이라던 모 씨의 말도 이제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좋은 일에 축하해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기보다 내가 알 수 없는 타인의 아픔과 슬픔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지, 오늘도 생각한다.


 


 


 

256.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어쩐지, 마음속 깊은 골짜기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환청에 마음을 빼앗겨 한 문장만을 읽고 시간을 보낸 날이 있었다. 주위의 자잘한 소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의 이유가 당시 내가 하고 있던 귀마개가 두꺼워서가 아니라 얼어서 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 언젠가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가고 있는가 보다, 했던 때가 있었다.


 


 


 

221.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그렇다, 그랬지. 이전에 그의 글들을 읽고 참 소녀 같다, 생각했었지.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찾아봤더니 당시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었네. 집에 있는 다른 책들을 뒤적여봐야지.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그의 글을 자주 찾고 싶다.

...아니, 그래서 남영역에서 지인분을 만났는지, 아니면 댁에 가셨는지, 댁으로 가셨다면 어떻게 가셨는지(p123), 나는 그게 궁금하단 말이지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버리면 나는 궁금해서 어쩌지요, 선생님.


 


 


 

27.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올겨울은 지난겨울보다는 더 추울 것 같다. 따듯한 봄이 올 거라고 기대했으나, 기대처럼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따듯하지 않은 봄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계절을 살아갈 테고, 우리는 그 안에서 그 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계절을 담뿍 느꼈으면 한다. 또다시 오는 계절일지라도, 우리가 통과하는 계절은 지금 이 순간뿐이기에.


 


 


 


 


 


 


 

책 속 밑줄


 

26.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32. 나이를 먹고 세상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문득 생각하니 잃어버린 청춘보다 더 아깝고 서글프다. 자신이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92. ‘넉넉하다’는 후덕한 우리말이 사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부자가 늘어나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110. 새벽의 잔디를 깎고 있으면 기막히게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건 향기가 아니다. 대기에 인간의 숨결이 섞이기 전, 아니면 미처 미치지 못한 그 오지의 순결한 냄새다.


 

139.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 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247.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 아닐까.


 

264.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약 인간이 안 죽게 창조됐다고 가정하면 생명의 존엄성은 물론 인간으로 하여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창조적인 노력도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자식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면 사랑의 기쁨인들 있었으랴. 추醜가 없으면 미美도 없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기쁨이 있듯이,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때로는 나에게 죽음도 희망이 되는 것은 희망이 없이는 살아 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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