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 회사 밖에서 다시 시작
곽새미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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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년 8월까지 근무 후 퇴사를 했다. 이전 같았다면 이직할 회사와 날짜를 결정한 후에 퇴사를 했을 텐데, 수술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쉬기로 결정한 상태이기도 했다. 한동안 내 월급이 없을 예정인데도 불구하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계약만료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컸고, 또 회사라는 조직에, 당분간 밥벌이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질려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려서 수술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땐 제일 바쁠 땐데.”라는 말과 이후 급기야, “수술 날짜를 미루면 안 되냐"라는 말에 나는 정이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책임감과 기타 다른 이유로 수술 전 한두 달은 쉬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수술 일주일 전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J는 21년에 근무지 변경을 신청하기에 앞서 자문을 구하면서 그는 근무지 변경이 변경한 시점이었고 또한 ‘가족이 다녀야 하는 병원의 근접성’을 제일 먼저 이야기했음에도 그건 회사와 상관없는 일이니까,라는 태도로 근무지 변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타직원들이 근무지 변경을 하면 믿고 맡길, 그러니까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참담한 심정까지는 아니었지만 잇새로 실소가 터지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나는 수술을 무사히 잘 받을 수 있었고, 당분간의 휴식을 누릴 겸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했다. 도예, 프랑스자수, 음악회 가기, 평일에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기, 평일 카페 탐방, 한낮에 산책하기_ (하고 싶던 우드 카빙은 끝끝내 기회가 닿지 않아 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품고 있어야지) 나는 하기 전까지도 할까 말까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도예와 프랑스자수를 시작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프랑스자수를 하면서, 또 도예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림을 하나 그리려고 해도 지우개 먼저 다 쓰고 결국 지우개로 해진 스케치북을 노려보며 울던 나였다. 당연히 도예도 하다가 망치면 다시 시작할 줄 알았고 완성본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말씀하신다. “지금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게 되고 있는 거예요. 잘 하고 있어요.” 그 말에 힘입어 나는 한 번도, 하던 도중에 갈아엎은 적이 없다. 선생님 덕분이었다. 흙을 만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예를 하면서 처음이 망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도 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매만지면 매만질수록 더 매끈해진다는 것을, 내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으로 하는 것들은 재주가 없다고 생각해온 삼십몇 년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자수를 하며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흙을 만지는 그 모든 순간들은 할까 말까 할 땐 해보고 안 맞으면 멈추면 되지,라는 마음을 새로 만들어냈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게 되었다. 부부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으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그에 따른 생각들, 세계여행을 하는 도중에 든 생각과 세계여행을 다녀와서의 생각, 그리고 지금의 삶을 써 내려갔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생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J의 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한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게 되었달까. 또 여행을 좋아하지만 세계일주에 대한 로망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에 응원한다, 많이.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했다. 왜 자꾸 뭐가 불편하지? 싶었는데, 잘 쓰인 합리화를 보는 기분이라는 것을 중후반을 읽을 때에야 알았다.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름이 없는 부분이라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읽으려고 했는데 불쑥불쑥 나오는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2년 전, 만우절 특가로 나온 35만 원으로 페루로 가는 항공권을 반신반의로 구매하며 “남편, 혹시나 이 표가 진자라면 이만큼이나 휴가를 낼 수 있어?” “안되면 퇴사하지 뭐. 질러버려!”라는 말을 하고, 출발일이 되어도 표가 취소되지 않자 뭐라 하면 어차피 그만둘 거니까 알 게 뭐냐며 호기로웠지만 조심스러웠다는 말에 책임감 결여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주식은 어떻게 하며, 지금 어디가 집값이 올랐다더라. 쉽게 끓는 냄비근성이 재테크로 갈아탄 느낌이다.(186) 자꾸 재테크 광풍에 반감이 생긴다. 돈 많은 투기 세력과 몇 채씩 보유하는 집주인과 건물주들이 밉다.(188) 라며 몇 페이지를 꼬박 써놓고 그의 남편은 현재 주식으로 유튜브를 하며 소득을 내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서, 남편의 관심사를 알았더라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장 핫한 주제를 관심사로 올림으로써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건가 싶기도 했으니까.




퇴사를 고민할 때 우리는 우리를 찾아온 많은 불안을 수시로, 새로운 다른 일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혹은 퇴사를 한 이후에도 마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 불안을 잘 배웅하는 것은 플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재미있는 것이겠지만 (여기서 재미는 fun이 아니라 various에 더 가깝다) 여러 플랜이 있을 때 마음에 여유가 더 생기는 건 사실이니까.

저자의 경우엔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1년 동안 부모님 슬하에서 안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크고 작게 누군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돈이라는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돈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읽는다면 그뿐이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이 불편함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곳곳에 공감을 표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한 회사의 직장인이었고 앞으로 직장인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질리는 내 성격 탓에 내가 지금 아무리 좋아서 못 놓을 것 같은 것들도 짧기에 좋다는 것도 알아버렸고, 일이 아니기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며, 언젠가 그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릴 것도 안다. 내게 어떤 것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새삼스럽지 않고 설레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새삼스러웠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잘 가던 길을 탈선할 계획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일 대로 꾸준히 하면서 불로소득을 얻고, 잘 하는 일을 주수입원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풍요롭고 아늑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하여, cheers!






오탈자 34. 잘 모르는 지인들의 수근거림수군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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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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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그 새로운 비움과 채움의 끝에 구분과 분류로 나뉘는 우리와 저들이 아닌, 각각 다른 나(I)들이 가깝게 뒤엉켜 살아갈 미래를 얘기한다.

 

나무, 새, 호랑이, 돌, 이야기, 돼지, 원숭이, 사자, 청각, 풍경화, 아파트, 시, 사물, 나무

나무에서 손을 잡아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나무에서 손을 잡았다. 상관관계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들은 관계에 쉼표를 찍으며 공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름이 없는, 이름이 있지만 부르지 않던, 결국 우리가 잊고 있었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고, 또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 박보나 작가는 썼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이 책을 다 읽은 직후에 했던, 최초의 생각이었다. 인류가 언어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입장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몇 구절을 읽어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인간은 결국 행복하지 않다.의 결론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매듭이 지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해졌는가,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어 회피하고 만다.

 

 

 

 

조용한 미술관에서 귓속에 큐레이터의 음성이 파고드는 듯했다. 34. 다른 생명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은 파괴와 멸망의 나락 반대편에 선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외로울 리 없다.는 말을 지반에 두고 나는 천천히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없는, 내가 되지 못한 생명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내가 산 세월은 삼십 년 남짓뿐이지만 내가 살던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조차 생소한 내가, 내 생김새와 내 피부의 변화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가, 주변 환경의 변화라고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가, 나의 조부가, 나의 증조부가, 누군가로부터 귀로 전달받고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본 나의 조상들이 증인이 되어주었다. 그 역시도 명료하지 않기에 어렴풋 짐작해 볼 뿐이다. 67. 과거를 더듬으며 현재를 걷는 심정으로 잘 마련된 전시관의 사진들을 바라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미래 도서관>이었다.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 기획자인 케이티 패터슨은 해마다 한 명의 작가를 초청해 원고를 받지만 그 원고를 지금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볼 수 없다. 나무가 다 자라는 시기에 맞춰 출판일을 내놓기 때문이라는데, 100년 뒤인 2114년이라고 하니까. 한 세기 동안 패터슨은 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숲을 키우고, 백 명의 문필가들은 글을 쓴다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매력 있고 아름다운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이 책이 단순하게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예술이라는 비단 한 필로 감싼 책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환경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태도를 바로 보는 것에서 공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이 책을 끝낸다. (물론 읽는 이마다 이 책을 정의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덧1) 134. 지낼 때는 미처 몰랐는데 정다운 집이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 것 중 하나지만, 기억은 미화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 7년 전에 살던, 쥐가 파이프를 갉아먹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밤마다 쥐가 찍찍거리며 천장을 뛰어다니는 것을 감내해야 했던, 그 이후로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볼 때면 우당탕탕거리던 그 쥐들을 생각하게 된, 네모네모 시트지가 마지막까지 적응되지 않던 그 15평의 집이 추억이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날들을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다. (물론 단연코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불안정했던 과거가 미화라도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에 기꺼이 눈을 크게 뜨자-가 여전한 모토다. 미화라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현재의 불만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 깊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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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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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만 8년, 햇수로는 9년이 되었다.

내가 너를 입양해왔잖아. 너는 나랑 결혼 안 했으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아마 엄마님한테 어이고 이제 그만 시집 좀 가~ 하면 안 가!! 하며 승질내고 있을 무직미혼서른몇살벨라야.

나는 아마 그가 상상하는 것처럼 무직도, 미혼도 아닐 것 같지만,

나와 결혼해서 나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있다는 것에 반발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물음표로 반발 중)

가끔은 “내가 너를 입양해왔는데 이렇게 고생만 시키네.” 라고 말하기도 한다.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J가 나를 입양해왔다고 말하는 것이나 햄햄님이 데리고 왔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은 의미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이 우리 집에서 데려오다, 데리고 온다, 데리고 왔다.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J는 내게 꼭 모시러 갈까? 모시러 갈게. 라는 문장을, 나는 내가 갈까? 어디로 갈까? 라는 문장을 구사해왔었다. 대부분 J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집에 들였다, 집에 데리고 왔다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을, 서평을 쓰며 처음 알게 되었다. 오, 낯서네...

아무튼.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 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라는 웹툰을 보게 되었다.

사람 사는 거 비슷비슷해서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각자의 방식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최근 일주일 새에 타인의 삶을 보는 것에 흥미를 잃었었다.

내가 행복해서 타인의 삶이 시시해 보인다거나 내가 불행해서 타인의 삶을 보면서 시기나 질투를 느낀다거나 내 감정에 어떤 변화가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내 삶에 조금 더 집중하는 시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유추해 보는 것뿐이다. 삶의 권태도 약간 가미되어 있는 것 같고... (이게 얼마 가지 않겠지만 사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상태라 이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웹툰이니까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슬렁슬렁 읽어내려갔다.

아무래도 웹툰이다 보니 글줄이 짧아 책장은 빠르게 넘어갔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은 직후에 J와 다투고 집을 나가 혼자 길지 않은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집을 나갈 때는 씩씩거리면서, 그래 한 번 해보라지!라는 심정이었는데,

오히려 여행지에서 비로소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그를 수면 위로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가 내게 보여주고 행동해 준 사랑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을 체감하게 되었다.

무 가까워서 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는 감사한 일들뿐이었다.

사랑하는, 다시 사랑하게 된 당신에게. 라는 한 줄의 편지를 시작으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내비쳤다.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 사랑들에 고마움을 전하고 보답하기 위해서였지,

결단코 어쩌겠어, 같이 살아야지...라는 심정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내 일탈은 무척 유의미했다.

(J는 그렇게 말하는 내게, 그래? 그럼 또 나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뭬야?)

하, 부부 관계라는 건 참 오묘하다.

하, 라는 한숨을 무작정 쉴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부부라는 관계망은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하고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 고리타분한 강제성이나 억압성이 부여되지 않는데도 이런 관계 구축이 가능하다니 말이다. 신사임당의 포도화를 닮은 곰팡이와 같은 부부의 세계에 들어온 시바와 판다의 행보를 응원한다.

“결혼하면 좋아요?”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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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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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마음이 복작거렸던 한글날이었다. 특유 한국인의 조급성에서 비롯되었을 법한 ‘말줄임’을 알지 못해서 그게 무엇이냐고 묻기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나는 여전히 말줄임을 알지 못하고 싶다는 소망이 충돌해 마음이 어지러웠다. 분명히 내가 아는 국어인데, 자꾸 다른 나라 국어를 듣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의사소통마저 힘들 지경이 오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했다.

작은 땅덩어리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다양한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또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대한민국이 그리 작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경상남도 진주에서 길을 묻던 내게 친절하게 알려주던 아주머니의 사투리를 대면하던 때, 태어나서 경상도 사투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울고 싶기도 했고 얼른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택시 기사님의 조그마한 입이 열릴까 두려웠다. 누군가 나를 빼놓고 몰래카메라라도 하는듯했던 그날.

이제는 경상도의 사투리가 영 낯설지는 않지만, 경상도에 8년째 살다 보니 본래의 고향 사투리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 나에게서 경상도의 억양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올 때면 헉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기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대부분 이곳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내 억양이 조금 바뀐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과 융화되고자 했던 결과물이 아닐까 하지만, 입안의 까슬거림이 좀처럼 뱉어지지가 않는다. 이러다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억양이 입에서 흘러나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몇 년 전에 만난 J의 지인을 만나고서였다.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억양이 이상하게 바뀌었다고 그의 아내가 한탄했다. 단편적으로 그것만 경험해봐도 나를 온전하게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했다. 무언가를 가지고 버리는 일보다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품이 든다는 걸 이제야 안다. 그래서 제주어를 지키고자 이 제주에세이를 출판했을 저자의 마음을 조금 헤아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책의 제목인 <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를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우리 사는 동안에 화나고 기뻐도>라고 번역해 볼 수 있다. 책 제목만 봐도 물음표가 떠다니는데, 책 안은 더욱 복잡하다. 도대체 우리가 같은 한국어를 쓰는 한 민족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결집해있는데, 유추할 수 있는 단어보다 유추할 수 없는 단어들이 더 많았다. 한 챕터에 가득 제주어만 있는 경우에는 두어 줄까지 읽고 실패 실패,를 외치며 뒷장을 넘겨 해석을 읽고 다시 돌아와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제주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다보니 억양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고민하다가 혼저옵서예가 떠올랐고 그 억양과 비슷하게 속으로 읽어내려갔는데 이건 아무래도 경상도 억양 같고? 혼자 이게 맞는지에 대해 사뭇 진지해지고 말았다. 결국 유튜브를 틀어 다시 제주어를 들어보았다. 같은가? 다른가? 아, 잘 모르겠다...

제주어는 2010년에 유네스코에서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일상 언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언어가 존재할 수 없기에 제주어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무엇보다 제주어가 사라지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고어들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제주에서는 아직 상호를 제주어로 지어 사용하고, 제주어 생활수기 공모나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열어 학계와 일반 십시일반 힘을 합쳐 제주어를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다.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이 책 속에 녹아있다. 저자의 따듯한 마음과 소중한 염원들이 나풀나풀 날아와 손바닥에 앉는다.

책에서 제주에서 가장 큰 사건인 4.3이 거론되었다. 내가 힘들어했던 일과 관련하여 내 뒤에서 어떤 말을 발설한 이와 내게 전해주었던 이 모두 차단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풀리지 않아 흐느낌을 자처했던 빼곡하게 지난했던 밤들을 기억한다. 물론 타인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고통에 대해 무심하게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에는 사라지거나 소멸되거나 없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는 마음을, 우리는 더불어 소중하게 생각해줄줄 알아야 한다. 제주어가 망울망울 허공을 유영하고 나는 그것들을 손으로 잡아본다. 같은 한국어지만, 낯선 단어들이 손안에 있다.

ㅈ.(아래아)들지 맙서.

살당 보민 조은 날 이실거우다.

늬영 나영 손 심엉 벵삭이 웃으멍

조은 시절 잊어불지 말게

걱정하지 마세요.

살다 보면 좋은 날 있겠지요.

너와 나 손잡고 웃으며

좋은 시절 잊지 말자





_책 속의 문장

43. 지나간 것들은 모두 그리운 풍경입니다. 희미해질 때도 되었으련만 해가 갈수록 그 시절이 여름날 빨래처럼 마음속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85.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지나고 나면 모든 날들은 좋게만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분쉬어신(철없던) 그 시절처럼 우리들 삶 전체가 ‘참 좋은 하루’이길 바라는 마음이 되곤 합니다.

97. 태풍은 인간들의 오만한 태도를 응징하는 신의 입김쯤으로 여겼습니다. 재해가 오면 삶을 돌아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딛고 다시 삶을 이어갔습니다.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거두고, 멜라진(무너진) 담을 다시 쌓았습니다. 새봄이 돌아오면 여전히 씨를 뿌리고 태풍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141. “난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밤에는 당신과 함게 잠들고요.”

142. 외로운 순간에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삶고 그렇게 작은 것들로 위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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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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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단어집을 만든 적이 있다. 나를 선명하게 하기 위한 글이 아닌, ‘있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었던 때였다. 동의어 사전, 유의어 사전, 반의어 사전들을 즐비하게 늘어놓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만의 단어집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조금 더 어렵고, 조금 더 낯선 단어들을 그러모아 작은 수첩에 꽉꽉 채워 넣었다. 그 언젠가 볼 때마다 내가 이 단어를 쓸 일이 있을까, 싶어 무용한 얼굴로 그 수첩을 바라봤고 그 이후에 나는 단어집을 만드는 일을 자연스레 그만두었다. 지금은 그 욕심이 없어졌느냐 물어오면,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마음을 다할 만큼의 시간을 들여 글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라고까지 쓰다가, 시간을 어디에 그렇게 쓰길래 글을 쓸 시간도 없는 걸까 싶어서 공허한 마음을 내려둘 곳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어 하나에도 인생의 주요점들을 하나씩 찍을 수는 있지만, 그것들을 풀어내는 것이 성가시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온 탓인가, 아니면 게을러진 탓인가. 타인에게 건넨 나의 이야기들이 흩어지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면 입을 다물게 되고 결국 반쯤 귀를 열어두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안락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과한 몰입감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편하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게 된 책, <단어의 집>

단어생활자 안희연 시인은 단어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파편들을 조심스레 꺼내놓는다. 그 파편에는 파닥임과 반짝임, 그 마주침의 순간들을 가장 내밀한 방식으로 조각되어 있다. 나는 책의 중반쯤 이르자 시인의 이야기는, 아픔을 꾸역꾸역 눌러가며 쓴 글이구나 싶었다. 인생의 크고 작은 힘든 일을 안고 살다보니 언젠가부터 마음의 눈물 호수에 잔잔한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는데, 시인의 글들은 그저 읽어달라고 내게 정중하게 기대어옴을 느꼈다. 그랬기 때문에 단어와 나를 연관을 지으며 책을 읽기보다 오롯하게 시인의 단어들을 읽었다.

11월 11일, “가을도 없이 겨울이 왔네.”라고 말하던 S선생님의 말에 화가 불끈 난 적이 있다.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이냐는 J의 말에, 본인이 알아채지 못한 걸 가을 탓을 하잖아. 지금도 밖은 가을이라고.라고 대답했다. 나는 잊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를 선생님의 상황을. 내 안에 가을이 있어야 바깥의 가을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올해(2021) 가을은 길었고 넓었고 깊었다. 크게 힘든 일이 없었는데도 어쩐지 과분한 보상을 받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발코니에서 커피를 마실 때, 햇볕을 받으며 걸을 때, 벤치에 앉아있을 때 가을이 살금살금 곁에 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윽고 비가 내렸다. 올해는 가을이 자기 이제 갈 거라며 인사도 하고 가네. 하며 빙긋 웃었다. 겨울이 온 지금, 가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역시 그토록 다정한 가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단 가을만 그런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단어들은 까꿍 하며 튀어나오고, 어떤 단어들은 토라져있고, 어떤 단어들은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고, 어떤 단어들은 숨죽여 울고 있다. 그 단어들 역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일 테니까.

우리 모두는 있었거나 지금 있거나 있어야 하거나 있을 삶들을 늘 지나친다.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 되고 삶이 된다지만 그 하루들이 바쁜 이들에게는 한가로이 나에 대해 사유할 시간조차 부담으로 다가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단어들에 나를 개입하면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위로하고, 다독여줄 수도 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비로소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으로 박제된 어떤 단어에 충분한 위로를 한 뒤 그 자리에 시간을 주어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넣을 수도 있다.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단어에서 단어로 미끄러지는 도미노 놀이는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고 비김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해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보면 비록 내 손에 독일의 블라이기센 키트가 없더라도 82. 그 순간 무형의 삶은 깜빡, 하고 빛난다. 얘야, 삶이란 흘러가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손에 잡히기도 한단다. 지금 여기 네 손안에 분명하게 들려 있잖니, 하고.

_책 속의 문장

72.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 우주의 섭리와 질서를 인정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인간 종에 대한 환멸이 커져갈수록 내가 미지라 여겼던 세상에 더욱더 관심을 쏟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고민하게 된다. 얼굴을 가진, 무엇보다 두 ‘눈’을 가진 존재들과 눈 맞추는 일. 그건 나를 흔들고 부수는 과정이다. 확고부동하게 여겨졌던 나,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나를 텅 비우는 과정이다.

89. 썩게 하는 힘. 감정이든 시간이든 썩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마음들은 바로 그 순간에만 말이 된다.

119. 기억이란, 시간이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홀로였던 순간의 추위는 영원에 가까운 상흔이다. 가시처럼 박힌 기억은 수시로 따끔거리며 제 존재를 증명하려 들 것이다.

126. 그곳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있다. 당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고 생각될 때에도 당신과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 끝끝내 반짝이는 세계, 당신의 빈야드가.

135. 그 어떤 타인의 삶도 함부로 측량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세상에 없다.

151. 변해서 슬픈 이유는 다름아닌 그것이다. 응전할 힘이, 무기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

168. 존재가 깃털 같아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럴 때 인간은 아주 작은 입김에도 날아갈 수 있다.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가버린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당신의 누름돌, 당신의 한 점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178. “그건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겠지요. 하던 걸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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