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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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마음이 복작거렸던 한글날이었다. 특유 한국인의 조급성에서 비롯되었을 법한 ‘말줄임’을 알지 못해서 그게 무엇이냐고 묻기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나는 여전히 말줄임을 알지 못하고 싶다는 소망이 충돌해 마음이 어지러웠다. 분명히 내가 아는 국어인데, 자꾸 다른 나라 국어를 듣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의사소통마저 힘들 지경이 오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했다.

작은 땅덩어리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다양한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또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대한민국이 그리 작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경상남도 진주에서 길을 묻던 내게 친절하게 알려주던 아주머니의 사투리를 대면하던 때, 태어나서 경상도 사투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울고 싶기도 했고 얼른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택시 기사님의 조그마한 입이 열릴까 두려웠다. 누군가 나를 빼놓고 몰래카메라라도 하는듯했던 그날.

이제는 경상도의 사투리가 영 낯설지는 않지만, 경상도에 8년째 살다 보니 본래의 고향 사투리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 나에게서 경상도의 억양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올 때면 헉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기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대부분 이곳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내 억양이 조금 바뀐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과 융화되고자 했던 결과물이 아닐까 하지만, 입안의 까슬거림이 좀처럼 뱉어지지가 않는다. 이러다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억양이 입에서 흘러나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몇 년 전에 만난 J의 지인을 만나고서였다.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억양이 이상하게 바뀌었다고 그의 아내가 한탄했다. 단편적으로 그것만 경험해봐도 나를 온전하게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했다. 무언가를 가지고 버리는 일보다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품이 든다는 걸 이제야 안다. 그래서 제주어를 지키고자 이 제주에세이를 출판했을 저자의 마음을 조금 헤아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책의 제목인 <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를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우리 사는 동안에 화나고 기뻐도>라고 번역해 볼 수 있다. 책 제목만 봐도 물음표가 떠다니는데, 책 안은 더욱 복잡하다. 도대체 우리가 같은 한국어를 쓰는 한 민족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결집해있는데, 유추할 수 있는 단어보다 유추할 수 없는 단어들이 더 많았다. 한 챕터에 가득 제주어만 있는 경우에는 두어 줄까지 읽고 실패 실패,를 외치며 뒷장을 넘겨 해석을 읽고 다시 돌아와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제주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다보니 억양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고민하다가 혼저옵서예가 떠올랐고 그 억양과 비슷하게 속으로 읽어내려갔는데 이건 아무래도 경상도 억양 같고? 혼자 이게 맞는지에 대해 사뭇 진지해지고 말았다. 결국 유튜브를 틀어 다시 제주어를 들어보았다. 같은가? 다른가? 아, 잘 모르겠다...

제주어는 2010년에 유네스코에서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일상 언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언어가 존재할 수 없기에 제주어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무엇보다 제주어가 사라지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고어들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제주에서는 아직 상호를 제주어로 지어 사용하고, 제주어 생활수기 공모나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열어 학계와 일반 십시일반 힘을 합쳐 제주어를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다.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이 책 속에 녹아있다. 저자의 따듯한 마음과 소중한 염원들이 나풀나풀 날아와 손바닥에 앉는다.

책에서 제주에서 가장 큰 사건인 4.3이 거론되었다. 내가 힘들어했던 일과 관련하여 내 뒤에서 어떤 말을 발설한 이와 내게 전해주었던 이 모두 차단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풀리지 않아 흐느낌을 자처했던 빼곡하게 지난했던 밤들을 기억한다. 물론 타인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고통에 대해 무심하게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에는 사라지거나 소멸되거나 없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는 마음을, 우리는 더불어 소중하게 생각해줄줄 알아야 한다. 제주어가 망울망울 허공을 유영하고 나는 그것들을 손으로 잡아본다. 같은 한국어지만, 낯선 단어들이 손안에 있다.

ㅈ.(아래아)들지 맙서.

살당 보민 조은 날 이실거우다.

늬영 나영 손 심엉 벵삭이 웃으멍

조은 시절 잊어불지 말게

걱정하지 마세요.

살다 보면 좋은 날 있겠지요.

너와 나 손잡고 웃으며

좋은 시절 잊지 말자





_책 속의 문장

43. 지나간 것들은 모두 그리운 풍경입니다. 희미해질 때도 되었으련만 해가 갈수록 그 시절이 여름날 빨래처럼 마음속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85.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지나고 나면 모든 날들은 좋게만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분쉬어신(철없던) 그 시절처럼 우리들 삶 전체가 ‘참 좋은 하루’이길 바라는 마음이 되곤 합니다.

97. 태풍은 인간들의 오만한 태도를 응징하는 신의 입김쯤으로 여겼습니다. 재해가 오면 삶을 돌아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을 딛고 다시 삶을 이어갔습니다.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거두고, 멜라진(무너진) 담을 다시 쌓았습니다. 새봄이 돌아오면 여전히 씨를 뿌리고 태풍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141. “난 그냥 하루하루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밤에는 당신과 함게 잠들고요.”

142. 외로운 순간에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삶고 그렇게 작은 것들로 위로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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