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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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만 8년, 햇수로는 9년이 되었다.

내가 너를 입양해왔잖아. 너는 나랑 결혼 안 했으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아마 엄마님한테 어이고 이제 그만 시집 좀 가~ 하면 안 가!! 하며 승질내고 있을 무직미혼서른몇살벨라야.

나는 아마 그가 상상하는 것처럼 무직도, 미혼도 아닐 것 같지만,

나와 결혼해서 나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있다는 것에 반발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물음표로 반발 중)

가끔은 “내가 너를 입양해왔는데 이렇게 고생만 시키네.” 라고 말하기도 한다.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J가 나를 입양해왔다고 말하는 것이나 햄햄님이 데리고 왔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은 의미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이 우리 집에서 데려오다, 데리고 온다, 데리고 왔다.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J는 내게 꼭 모시러 갈까? 모시러 갈게. 라는 문장을, 나는 내가 갈까? 어디로 갈까? 라는 문장을 구사해왔었다. 대부분 J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집에 들였다, 집에 데리고 왔다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을, 서평을 쓰며 처음 알게 되었다. 오, 낯서네...

아무튼.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 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라는 웹툰을 보게 되었다.

사람 사는 거 비슷비슷해서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각자의 방식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최근 일주일 새에 타인의 삶을 보는 것에 흥미를 잃었었다.

내가 행복해서 타인의 삶이 시시해 보인다거나 내가 불행해서 타인의 삶을 보면서 시기나 질투를 느낀다거나 내 감정에 어떤 변화가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내 삶에 조금 더 집중하는 시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유추해 보는 것뿐이다. 삶의 권태도 약간 가미되어 있는 것 같고... (이게 얼마 가지 않겠지만 사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상태라 이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웹툰이니까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슬렁슬렁 읽어내려갔다.

아무래도 웹툰이다 보니 글줄이 짧아 책장은 빠르게 넘어갔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은 직후에 J와 다투고 집을 나가 혼자 길지 않은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집을 나갈 때는 씩씩거리면서, 그래 한 번 해보라지!라는 심정이었는데,

오히려 여행지에서 비로소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그를 수면 위로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가 내게 보여주고 행동해 준 사랑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을 체감하게 되었다.

무 가까워서 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는 감사한 일들뿐이었다.

사랑하는, 다시 사랑하게 된 당신에게. 라는 한 줄의 편지를 시작으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내비쳤다.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 사랑들에 고마움을 전하고 보답하기 위해서였지,

결단코 어쩌겠어, 같이 살아야지...라는 심정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내 일탈은 무척 유의미했다.

(J는 그렇게 말하는 내게, 그래? 그럼 또 나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뭬야?)

하, 부부 관계라는 건 참 오묘하다.

하, 라는 한숨을 무작정 쉴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부부라는 관계망은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하고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 고리타분한 강제성이나 억압성이 부여되지 않는데도 이런 관계 구축이 가능하다니 말이다. 신사임당의 포도화를 닮은 곰팡이와 같은 부부의 세계에 들어온 시바와 판다의 행보를 응원한다.

“결혼하면 좋아요?”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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