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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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그 새로운 비움과 채움의 끝에 구분과 분류로 나뉘는 우리와 저들이 아닌, 각각 다른 나(I)들이 가깝게 뒤엉켜 살아갈 미래를 얘기한다.

 

나무, 새, 호랑이, 돌, 이야기, 돼지, 원숭이, 사자, 청각, 풍경화, 아파트, 시, 사물, 나무

나무에서 손을 잡아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나무에서 손을 잡았다. 상관관계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들은 관계에 쉼표를 찍으며 공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름이 없는, 이름이 있지만 부르지 않던, 결국 우리가 잊고 있었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고, 또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 박보나 작가는 썼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이 책을 다 읽은 직후에 했던, 최초의 생각이었다. 인류가 언어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입장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몇 구절을 읽어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인간은 결국 행복하지 않다.의 결론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매듭이 지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해졌는가,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어 회피하고 만다.

 

 

 

 

조용한 미술관에서 귓속에 큐레이터의 음성이 파고드는 듯했다. 34. 다른 생명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은 파괴와 멸망의 나락 반대편에 선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외로울 리 없다.는 말을 지반에 두고 나는 천천히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없는, 내가 되지 못한 생명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내가 산 세월은 삼십 년 남짓뿐이지만 내가 살던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조차 생소한 내가, 내 생김새와 내 피부의 변화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가, 주변 환경의 변화라고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가, 나의 조부가, 나의 증조부가, 누군가로부터 귀로 전달받고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본 나의 조상들이 증인이 되어주었다. 그 역시도 명료하지 않기에 어렴풋 짐작해 볼 뿐이다. 67. 과거를 더듬으며 현재를 걷는 심정으로 잘 마련된 전시관의 사진들을 바라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미래 도서관>이었다.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 기획자인 케이티 패터슨은 해마다 한 명의 작가를 초청해 원고를 받지만 그 원고를 지금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볼 수 없다. 나무가 다 자라는 시기에 맞춰 출판일을 내놓기 때문이라는데, 100년 뒤인 2114년이라고 하니까. 한 세기 동안 패터슨은 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숲을 키우고, 백 명의 문필가들은 글을 쓴다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매력 있고 아름다운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이 책이 단순하게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예술이라는 비단 한 필로 감싼 책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환경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태도를 바로 보는 것에서 공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이 책을 끝낸다. (물론 읽는 이마다 이 책을 정의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덧1) 134. 지낼 때는 미처 몰랐는데 정다운 집이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 것 중 하나지만, 기억은 미화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 7년 전에 살던, 쥐가 파이프를 갉아먹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밤마다 쥐가 찍찍거리며 천장을 뛰어다니는 것을 감내해야 했던, 그 이후로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볼 때면 우당탕탕거리던 그 쥐들을 생각하게 된, 네모네모 시트지가 마지막까지 적응되지 않던 그 15평의 집이 추억이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날들을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다. (물론 단연코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불안정했던 과거가 미화라도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에 기꺼이 눈을 크게 뜨자-가 여전한 모토다. 미화라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현재의 불만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 깊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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