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 회사 밖에서 다시 시작
곽새미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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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년 8월까지 근무 후 퇴사를 했다. 이전 같았다면 이직할 회사와 날짜를 결정한 후에 퇴사를 했을 텐데, 수술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쉬기로 결정한 상태이기도 했다. 한동안 내 월급이 없을 예정인데도 불구하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계약만료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컸고, 또 회사라는 조직에, 당분간 밥벌이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질려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려서 수술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땐 제일 바쁠 땐데.”라는 말과 이후 급기야, “수술 날짜를 미루면 안 되냐"라는 말에 나는 정이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책임감과 기타 다른 이유로 수술 전 한두 달은 쉬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수술 일주일 전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J는 21년에 근무지 변경을 신청하기에 앞서 자문을 구하면서 그는 근무지 변경이 변경한 시점이었고 또한 ‘가족이 다녀야 하는 병원의 근접성’을 제일 먼저 이야기했음에도 그건 회사와 상관없는 일이니까,라는 태도로 근무지 변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타직원들이 근무지 변경을 하면 믿고 맡길, 그러니까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참담한 심정까지는 아니었지만 잇새로 실소가 터지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나는 수술을 무사히 잘 받을 수 있었고, 당분간의 휴식을 누릴 겸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했다. 도예, 프랑스자수, 음악회 가기, 평일에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기, 평일 카페 탐방, 한낮에 산책하기_ (하고 싶던 우드 카빙은 끝끝내 기회가 닿지 않아 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품고 있어야지) 나는 하기 전까지도 할까 말까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도예와 프랑스자수를 시작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프랑스자수를 하면서, 또 도예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림을 하나 그리려고 해도 지우개 먼저 다 쓰고 결국 지우개로 해진 스케치북을 노려보며 울던 나였다. 당연히 도예도 하다가 망치면 다시 시작할 줄 알았고 완성본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말씀하신다. “지금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게 되고 있는 거예요. 잘 하고 있어요.” 그 말에 힘입어 나는 한 번도, 하던 도중에 갈아엎은 적이 없다. 선생님 덕분이었다. 흙을 만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예를 하면서 처음이 망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도 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매만지면 매만질수록 더 매끈해진다는 것을, 내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으로 하는 것들은 재주가 없다고 생각해온 삼십몇 년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자수를 하며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흙을 만지는 그 모든 순간들은 할까 말까 할 땐 해보고 안 맞으면 멈추면 되지,라는 마음을 새로 만들어냈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게 되었다. 부부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으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그에 따른 생각들, 세계여행을 하는 도중에 든 생각과 세계여행을 다녀와서의 생각, 그리고 지금의 삶을 써 내려갔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생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J의 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한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게 되었달까. 또 여행을 좋아하지만 세계일주에 대한 로망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에 응원한다, 많이.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했다. 왜 자꾸 뭐가 불편하지? 싶었는데, 잘 쓰인 합리화를 보는 기분이라는 것을 중후반을 읽을 때에야 알았다.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름이 없는 부분이라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읽으려고 했는데 불쑥불쑥 나오는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2년 전, 만우절 특가로 나온 35만 원으로 페루로 가는 항공권을 반신반의로 구매하며 “남편, 혹시나 이 표가 진자라면 이만큼이나 휴가를 낼 수 있어?” “안되면 퇴사하지 뭐. 질러버려!”라는 말을 하고, 출발일이 되어도 표가 취소되지 않자 뭐라 하면 어차피 그만둘 거니까 알 게 뭐냐며 호기로웠지만 조심스러웠다는 말에 책임감 결여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주식은 어떻게 하며, 지금 어디가 집값이 올랐다더라. 쉽게 끓는 냄비근성이 재테크로 갈아탄 느낌이다.(186) 자꾸 재테크 광풍에 반감이 생긴다. 돈 많은 투기 세력과 몇 채씩 보유하는 집주인과 건물주들이 밉다.(188) 라며 몇 페이지를 꼬박 써놓고 그의 남편은 현재 주식으로 유튜브를 하며 소득을 내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서, 남편의 관심사를 알았더라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장 핫한 주제를 관심사로 올림으로써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건가 싶기도 했으니까.




퇴사를 고민할 때 우리는 우리를 찾아온 많은 불안을 수시로, 새로운 다른 일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혹은 퇴사를 한 이후에도 마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 불안을 잘 배웅하는 것은 플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재미있는 것이겠지만 (여기서 재미는 fun이 아니라 various에 더 가깝다) 여러 플랜이 있을 때 마음에 여유가 더 생기는 건 사실이니까.

저자의 경우엔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1년 동안 부모님 슬하에서 안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크고 작게 누군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돈이라는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돈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읽는다면 그뿐이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이 불편함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곳곳에 공감을 표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한 회사의 직장인이었고 앞으로 직장인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질리는 내 성격 탓에 내가 지금 아무리 좋아서 못 놓을 것 같은 것들도 짧기에 좋다는 것도 알아버렸고, 일이 아니기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며, 언젠가 그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릴 것도 안다. 내게 어떤 것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새삼스럽지 않고 설레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새삼스러웠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잘 가던 길을 탈선할 계획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일 대로 꾸준히 하면서 불로소득을 얻고, 잘 하는 일을 주수입원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풍요롭고 아늑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하여, cheers!






오탈자 34. 잘 모르는 지인들의 수근거림수군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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