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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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
 
그의 저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어서인지 조금은 그를 알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손글씨로 원고를 쓴다는 그, 작가 황석영이 티브이에 나와서 그런 그를 꼬집기도 했지만,물론 친분이 두터우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름 나의 생각은 글을 아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오랜 기자생활로 다져진 그만의 무언가가 그를 단련시킨것 같기도 하지만 위 저서들에서도 그가 한문장을 완성하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이 에세이 집에서는 위의 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그가 나름 책에서 못한 이야기들도 있어 위 소설들의 연장선처럼 읽으니 괜찮았다.
 
책은 첫페이지부터 밑줄을 긋게 만들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몇 번을 다시 읽어보며 그 말들에는 '시간'이 존재하는가 생각해 본다. 그가 무엇을 그리려 하는지 약간은 난감함도 있지만 너무 어렵게 읽는다면 재미가 없을듯 하다.
 
그가 담아 놓은 <난중일기>에서 받은 느낌이 훗날 우리가 읽는 <칼의 노래>로 재탄생 하기까지 난중일기에 쓰인 문장처럼 간단하면서도 사실적이고 명료한 그러면서 극에 달하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문장의 힘을 표현하려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칼의 노래 서문에서도 말했지만 그 글을 쓰기전 작가는 <아산현충사>를 여러번 탐방했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현충사에 자주 갔지만 작가와는 생각이 많이 달랐기에 그속에서 <칼의 노래>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구사할 수 있는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칼의 노래>다 단순한 문장들의 주는 긴박함이나 사실적인 묘사라면 <현의 노래>는 책 속에 음악이 숨어 있듯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넘 좋았다. 그래서 <남한산성>까지 한달음에 달려 갈 수 있었다. 남한산성에도 고뇌하는 임금의 모습을 읽으며 작가의 본 모습이 들어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작가는 성안에 갇힌 사람들의 내면을 다 묘사하지 못해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너무 좋았다. 세 작품이 우연히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되었고 그 속에 고뇌하는 인간을 잘 표현한 듯 해 괜찮았다.
 
이 작품은 그가 지난날을 되돌아 보며 작품에서 다 하지 못한 아쉬움, 문장에 표현해 담아 내려던 자신만의 문장의 힘과 완전하게 그려내려던 '시간'이란 것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와 닿았다. '나는 내가 쓰는 언어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주 명석한 사실에 입각한 과학성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루어내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그가 손글씨를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는 것 같다. 좀더 깊게 사유하고 완전한 것을 해산하려는 산고가 느껴지는,요즘 너무 쉽게 글을 쓰고 넘쳐나는 '글의 홍수'속에서 좀더 잘 다듬어 내 놓으려는 작가의 고집같은 심혈이 보여 더 가까이서 작가를 만난듯 한 기분이 든다. 그러기에 <김훈>이라는 작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늪처럼 점점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바다의 기별과 같은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당신의 겨드랑 속으로 사라지는 당신의 정맥이 저녁 무렵의 강물처럼 닥쳐올 시간의 빛깔들을 실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기를 나는 그 강가에서 꿈꾸었던 것인데, 그때 내마음의 풍경은 멀어서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을 기다리고 또 받아 내는 곡릉천과도 같았을 것이다. 곡릉천은 살아서 작동되는 물줄기로 먼 바다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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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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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
 
 
 성석제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는데 느낌이 좋다. <지금 행복해>라는 제목때문에 정말 행복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 속은 있고 없음을 떠나서 정말 바닥이라고 생각할 그런 단계인데 작가가 선택한 '반전' 이 독자에게 행복감을 심어 주는것 같다. 9편의 단편들 속의 주인공들은 많이 가지지 못한 약자들이며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처럼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주인공이 겪었을 법한 아님 그시대를 겪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공감이 간다.한편을 읽고나니 '아하' 하는 작가를 이해할 수 있어 화자들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아니 마지막 반전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해'라는 단어를 쓰면서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을 법한 화자들의 이야기에서 반전에서의 통쾌함으로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전달자 같다. 처음 이야기 <여행>에서도 세 친구는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뭉치게 된 이야기도 기차를 타게 된 이야기도 어딘가 아슬아슬 하다. 반찬이 없어서 오이서리를 해 먹고 신발이 다 떨어져 승려의 신발을 슬쩍 해서 신기도 하고 그러다 만난 무리들, 나와는 별개의 세계에서 사는 것 같은 있는 자들의 여행과 그들은 너무 비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것을 깨닫은듯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 '너희가 위면 나는 아래, 너희가 아래면 나는 위로.' 그들이 만들었던 삼각형은 다시는 생겨나지 않았다.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여행이란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해> 두번째 이야기이며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야기다. 한량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학교다닐 시절에 사고를 쳐서 아들을 낳고 온갖 사고란 사고는 혼자 치고 다니듯 집안의 문전옥답이며 모든 것들을 없앤 일등공신. 감옥에까지 들랑달랑 아내는 새로운 삶을 헤쳐나가듯 남자라면 진저리를 치며 남자들로 인한 수입을 얻는 미용실을 운영하여 넉넉해지지만 아버지는 빈털털이다. 아내가 해준 아들의 집에서 기거하며 아들과 친구하자는 아버지,그런 아버지에게 엄마와 쿨하게 이혼을 하라는 아들. 비록 모든 재산을 말아 먹고 지금은 곁에 아들뿐이지만 그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는 행복하다. 스스로 알콜중독 치료를 위해 아들 곁을 떠나면서도 그 아들로 인해 다시 새로운 삶을 다짐할 수 있기에 그는 행복하다. 알콜중독자에서 눈물중독자가 된 아버지를 가슴에 담으며 뜨거운 무언가가 내게도 올라오는 듯 했다.행복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듯 하다.
 
<설악풍경>의 이야기도 생각하고 있던 결말을 완전히 바꾸며 작가는 웃음을,행복을 전달한다. 여자라고 생각하며 목욕하는 것을 훔쳐 보았는데 그것이 여자가 아닌... 난 혼자서 실실 웃었다. 작가의 반전에 이젠 나도 동참하듯 되버린 흡입력에 말려들고 말았다. <기적처럼> 똥물을 뒤집어 쓰고 오른 산에서 그는 길을 잃고 있다가 조난을 당하듯 한다.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나 아무일도 없었던듯 집에 들어서 그렇게 실어하던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웃다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린다.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와 비슷한 사고를 겪어봐서인지 가슴이 뭉클하다.
 
아홉편의 단편들은 웃다가 울다가 하게끔 독자를 그만의 블랙홀로 끌어 들인다. 책을 덮고 나니 소소한 내 일상이 '행복'이란 것을,나도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책 속에서 화자들과 하나가 되어 길을 잃고 헤매이다 내 일상에 돌아와 나의 지금이 행복이란 것을 새삼 깨닫고는 다시 제목을 보게 된다 <지금 행복해..?> 책은 내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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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발견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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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기에 더 많은 것을 발견했던 존 프랭클린...
 
두번의 북극탐험이 실패로 돌아가고 마지막 탐험에서 죽음을 맞이한 존 프랭클린, 그의 편지와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은 또 하나의 인간 존 프랭클린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실패를 거듭한 그가 실패를 한 후에 더 유명해진 프랭클린은 소설 처음 시작부터 이야기 하듯 열살까지 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어찌보면 바보 같은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북극탐험까지 했을까, 우리처럼 '빨리빨리'에 익숙한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느림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을 하며 책을 들게 되었다.
 
나 또한 내 성격은 급할기도 하고 다혈질이라 할 수 있어 느리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딸과 항상 부딪히며 말썽을 빚기도 한다. 조급함이 없는 딸은 항상 느긋하기에 늘 내 표적이 되곤 한다. 그런 딸과는 시험때라면 더욱 마찰을 빚어 집안에 큰소리가 떠나지 않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느림>에 대하여 좀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성경이나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연구하듯 이제 그는 '속도'를 연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자신보다 빠른 사람들을 추월할 날이 올 것이다.....21p
그는 열살까지 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였기에 <속도>에 대하여 배우려 한다. 그런 그는 배를 타고 바다고 나가고 싶어 집을 나가기도 하는데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그가 해군학교에 들어가고 배를 타면서 느림은 자신의 단점이었는데 장점이 되고 만다. 남보다 <신중,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빠르다는 다른 동료를 보아도 전쟁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안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발전시켜 항해에서 자신감을 갖는다.
 
'미스터 프랭클린은 눈이 밝아. 명령을 듣지 않고도 많은 명령을 눈으로 보지. 두꺼운 벽을 꿰뚫고서 말이야.' 149p
일상 생활보다는 바다에서 자신의 장점이 더 적용이 될 수 있어 해군생활이 끝나고 일상에 적응해 보려던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가게 된다.첫번째 북극탐험을 떠나게 되지만 식량이며 그외 장비들이 덜 구비된 상태이고 행운의 여신이 그의 편이 되지 못하였는지 많은 동료들을 잃고 겨우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이 실패담은 큰 화제가 되어 그를 평가하는 기준처럼 되었다.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첫번째 결혼에서 딸 엘라를 얻었지만 엘리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그에 맞는 상대라 할 수 있는 제인 그리핀과 재혼을 하여 호주 태즈메니아의 총독으로 가게 되지만 전총독과는 다르게 인간적이고 인격적으로 수감자들을 다루었던 그, 하지만 모함으로 인하여 다시 총독의 길에서 벗어나 그가 가야 할 길은 북극탐험이란 것을 깨달은 그는 동료들을 모집하여 다시 북극탐험에 나선다. 처음 실패를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식량과 장비를 구비하고 탐험길에 나서는 그에게 또 다른 복병처럼 나선 난관에 부딪혀 그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느리다고 했지만 실은 사물을 더 깊이있게 관찰하고 사고하고 인내하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던 듯 싶다. 빠르다고 하여 모두가 좋다는 것보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는 것을 말해주듯 그는 그의 속도에 맡게 인생을 재발견 한 듯 하다. 그가 느리지 않았다면 자신만의 영역에서 훌륭한 항해사가 될 수 있었을까. 남보다 더 도전정신이 뛰어나고 자신의 위치에서 남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했던 존 프랭클린, 스피드시대에 작가는 느림의 사상가인 프랭클린의 삶을 재조명하며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요즘은 빠른 것을 벗어나 먹거리외 많은 것들이 <느림>으로 돌아가고 있다. 빠르다고 결코 좋을 수만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에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가 소설속에 던져 놓은 묵직함에서 찾아내 본다.
 
 
아는 것하고 보는 것은 전혀 달라, 잘 안다는 것과 잘 보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무엇이 존재하는지 단정 짓는 건 더 나빠.화가는 잘 봐야 하는 사람이지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155(1권)
저는 정확성이 예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179(1권)
내가 시계처럼 늦게 간다면 완전히 멎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릴 거야. 그렇다면 난 갓 스물일지도 몰라..47(2권)
지난 세월 나는 내가 현명해질 때까지는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멍청하게 보일 때까지는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네. 멍청하게 보일지라도 말이지. 나를 믿게나.. 91(2권)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지요. 빨리 오는 건 다시 빨리 사라집니다. 마차에 앉아 창문을 볼 때처럼 아무것도, 아무도 남는 건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110(2권)
나쁜 사람이란 자기한테 맞는 속도를 모르는 사람이란다. 빨라야 할 때 느리고 느려야 할 땐 너무 빠른 거지. 22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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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비밀의 집회
줄리오 레오니 지음, 김효정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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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단테를 만나다..
 
단테, 무척 낯 익은 이름인데 너무 모르고 있다. 그의 소설을 다시 읽어본다 하고는 읽어보지 못한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하다. 학창시절 만났던 단테밖에 아는 것이 없는데 그를 소설속에서 만난다 하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한데 줄리오 레오니가 쓴 <단테 시리즈>를 읽지 않고 결정판이라 하는 이 소설을 집어 들어 처음엔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다른 소설을 접하지 않아서인지 앞 소설들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비밀의 집회>만으로도 그를 받아 들이고 알아갈 기회이니 다행이다.
 
1301년 10월 어느 날 밤, 뜻하지 않은 여인의 방문으로 그는 파피루스를 하나 전해받고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되었다. 무슨 의미로 자신이 로마에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로마에 밤을 틈타 입성하지만 피렌체 대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허름한 옷매무새 때문에 의심을 받지만 그런대로 잘 도착은 한다. 하지만 그는 내장이 비어진 채 버려진 여인의 시체를 만나면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숙소를 정하는데 그곳에서도 젊은 여인이 죽어 한참 비통함에 젖어 있다. 단테는 바닷가에서 만난 시체를 이상하게 여겨 숙소에서 만난 시체도 검사를 해 보니 내장이 비워진채 예리한 칼로 도려내어 졌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스스로 사건을 파헤져 들어간다.
 
그러다 만난 스파다의원, 파 내고 있는 무덤이 전무후무한 여교황의 무덤이라 하여 그도 흥미를 느끼며 보게 되는데 무덤의 목관에 그려진 관의 주인인 여제의 그림이 낯익은 여인의 얼굴이다.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고서도 접하게 되는데 뜻하지 않게 만난 스파다의원의 딸이 피렌체의 그의 집에 밤에 방문을 한 여인임을 알아체는데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그녀는 사냥을 즐기며 여염집 여인과는 다른 개방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에 무언가 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정말 중세 유럽의 가장 신비한 수수께끼인 여교황은 존재하였을까.. 베드로의 유물을 찾던 중 발견한 무덤에서 나온 미라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전혀 썩지도 않았고 관에 들어 있던 유리병은 어제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전설속의 여교황은 임신을 하여 사람들에게 맞아 죽어서 처참한 모습일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정말 여교황 요한나는 존재하였으며 전설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것은 아닌지...
 
잠시 읽다가 한눈을 팔면 어떤 내용인지 모를 정도로 사건은 급박하게 변하고 로마의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듯 젊은 탐정 단테의 뒤를 따라 함께 밤길을 걷기도 하고 피렌체를 생각하며 고뇌하기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소설은 전편들을 읽지 않아서인지 조금은 난해한 감도 들어 조금씩 읽어 나갔다. 하지만 점점 빠져들며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느껴 중반부터는 단숨에 읽어 나갔다. 여교황의 존재와 그 시대로의 복귀를 꿈꾸는 한사람으로 인한 연쇄살인, 그 살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다루지 않은면도 있지만 그나름대로 재미는 있는 소설이다.
 
젊은 단테가 소설속을 종횡무진하면서 범인을 잡기 위하여 자신의 임무가 끝났어도 로마를 떠나지 않고 물바다가 된 속에서 무언가 잘못되어 돌아가는 사건의 줄거리의 결말을 잡기 위하여 다니는 모습에서는 결말을 예견하면서도 젊은 단테를 그리기 위하여 로마를 속속들이 그려준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끝을 알고 나면 시시한 면도 있지만 그 시대상을 잘 그려준것 같아 괜찮게 읽었고 다른 단테 시리즈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소설속 단테는 시인이라기 보다는 탐정으로의 모습이 더 크게 각인되었지만  <신곡>의 형성사와 베르길리우스의 파피루스, 그리고 여교황까지 중세의 매력에 빠지기에 충분한 듯 하다.
 
'때로 모르는 문을 열게 되면 우리의 감각이 무뎌질 때가 있지요. 우리는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사람들도 진실을 접할 때면 충격을 받지요...' -3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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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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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특이한 작가,특이한 소설이라 해서 프랑스 소설이라 특이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편모아래에서 자란 작가의 삶이 소설속에 녹아 났다고 해야하나, 소설은 편부로 어린 아들을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하는 한 남자가 너무 엄마역할에 빠져 들다가 자신도 잃어버리고 자식도 잃어버리는 내용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 과하여 화를 불어온 것이라 해야할까..
 
<문하우젠증후군>인가 하고 소설을 처음 읽으며 궁금증이 생겼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펠릭스는 그룬바크라는 가입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화제 현장에 가서 그곳에서 살았던 여자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화제현장은 참혹한데 그 현장에서 사라진 아이와 엄마인 여자,그들의 행복했던 한때가 담긴 불타다 남은 사진 조각을 들고 나오는 펠릭스. 그는 3개월전에 아들 콜랭을 뺑소니차에 치여 잃고 말았다.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은 사건이었고 아들을 잃은 악몽이 다 가시기도 전에 이런 사건을 접하게된 그를 보고는 동료들은 쉴 것을 강요한다.
 
마리는 아들 콜랭을 낳은 후 그에게 아들만 남겨놓고 떠났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아들앞에 나타나고 그들은 일주일에 몇 일씩 나누어 아들을 돌보게 된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 아빠와 함께 살았던 콜랭, '엄마가 보고 싶어..엄마가 보고 싶어' 라고 아들이 말할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주기 위하여 여장을 하여 완벽한 마리로 재탄생한 펠랙스는 잠자는 시간에 엄마가 되어준다. 마리를 대변할 수 있는 노란머리의 가발과 스펀지공으로 채운 가슴과 털을 가리기 위한 긴 팔옷과 다리에 털을 밀고 원피스를 입고는 여자로 다시 태어나 아들 콜랭에게 엄마를 선사했던 펠릭스는 점점 자신이 그 역할에 빠져들어 간다.
 
자신과 옷장과 자신의 엄마의 옷도 아닌 콜랭의 엄마로 거듭나기 위한 여장에 필요한 옷장이 나란히 놓이게 되고 그는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게 된다. 아버지도 아니면서 엄마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는 펠릭스에게 유아원 원장은 ' 너무 큰 사랑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아세요..' 라며 따끔한 충고를 해준다. '나는 실추한 어머니, 두께 없는 아버지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또한 아버지의 아들로 지낸 경험이 없기에 혼자서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도맡아 하기엔 그에겐 너무 벅찼다. 그도 아버지가 없었기에 아버지의 역할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 그가 엄마의 역할은 제대로 해 낼 수 있었을까...
 
소설은 편부와 편모, 완전하지 못한 조화롭지 않은 가정을 다루고 있어서인지 독특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고 덮고 나면 섬짓하다. 원장의 말처럼 사랑이 과하여 아이를 죽게 만든것일까 생각이 든다. 자신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아들을 엄마인 마리가 돌아옴으로 하여 그녀에게 빼앗기면서 자신이 모두 누렸던 엄마의 자리도 아버지의 자리도 빼앗기면서 그는 자신의 전부였던 존재를 없앤다. 날은 넌무도 화창하고 좋은데... 마리가 보았던 범인은 남자 였을까 여자 였을까... 그가 여장을 하기 위하여 발랐던 붉은 애무 자국이 확실하게 남는 정말 독특한 느낌의 소설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엄마라는 아빠라는 위치의 그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일깨워준 소설이다.
 
나는 옷 몇 벌, 마스카라, 입술에 바르는 '붉은 애무' 립스틱을 도로 챙겼다.......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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