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것에 관심을 둔 미국의 1960년대 미술(6)
키치Kitsch
키치는 한마디로 전위예술의 정반대인 후방예술을 말한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39년 『파티잰 리뷰 Partisan Review』지에 기고한 논문 「아방가르드와 키치 Avant-Garde and Kitsch」에서 키치를 아방가르드의 정반대인 ‘모방의 모방’, 혹은 대중예술로 보았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소비문화가 만연하자 예술도 대중의 상품이 되었다.
기분 전환을 위한 오락에 굶주린 대중, 혹은 감상적 자기 향락을 좋아하는 대중을 위한 것으로 키치는 순수 문화의 질이 낮고 인습적인 시뮬라크라simulacra(가상 실재)를 그대로 소재로 이용한다.
키치의 선구자 중 한 사람 한스 라이만은 일찍이 1924년에 감미로운 것과 악마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는 에로티시즘의 묘사와 관련하여 “정욕이, 그러니까 목적이 그림에 거짓을 불어넣고, 이 거짓이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고 했다.
에로티시즘은 결국 누드를 묘사하고 즐기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기분 전환을 위한 오락에 굶주린 대중이 도덕적 정념과 에로틱한 욕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원하는 데서 키치의 양면성을 찾을 수 있다.
키치는 독일어로 ‘값싸게 하다’, ‘감상적으로 만들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비롯한 것으로 ‘천박한 쓰레기’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키치 대신 ‘싸구려 예술 Schlock art’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슐럭schlock은 결점이 있는 가짜, 싸구려의 조잡한 물건이란 뜻의 유태인의 이디시어에서 유래했다.
19세기 말의 인기 있는 회화는 하렘 장면이나 노예시장 장면이었다.
노예시장에서는 하렘의 백인 여자노예, 즉 오달리스크를 진열하여 매매했다.
이런 모티프는 여인을 누드로 묘사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말하자면 값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그림을 요구했으므로 화가들이 그들을 위해 그리게 된 것이다.
포르노그래피에서나 볼 수 있는 경박하고 음란한 성격이 악마적으로 유혹하는 요부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를 지오 H. 에드워즈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깨끗한 피부에 빨간 머리를 한 미녀가 북극곰 두 마리 사이에 있는 그림이다.
그녀가 앉아 있는지 허공에 떠 있는지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미숙한 작품이다.
미숙함은 그녀의 양팔의 길이가 다르고, 다리의 길이가 실재보다 긴 데서도 나타난다.
화가는 원근법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드를 그리는 데만 관심을 두고 신비한 에로티시즘은 고려하지 않았다.
고대 건물이나 폐허는 감상적인 작품의 모티프로 적당하다.
폐허는 낭만주의 화가들에게 매력적인 모티프였는데, 신비스러운 것, 과거의 이야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폐허는 키치적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 하는 수요를 충족시킨다.
폐허는 고대의 아름다운 것의 잔해인데, 사람들은 폐허 자체를 고대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본다.
부자 중에 폐허를 지어서 풍경을 미화시키고 부지를 더욱 흥미로운 장소로 만든 사람도 있다.
철학자 귄터 안더스는 이런 감정을 “열광적인 비애”라고 일컫는다.
열광적인 비애가 사람들로 하여금 산업적 폐기물을 아름다운 재료로 바라보게 만들며, 새것인데도 낡아 보이는 건물을 짓고, 일부러 허물어져가는 감상적인 분위를 불러일으키는 건물을 짓게 한다.
화가들은 폐허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폐허풍경을 묘사하면서 그림에 아름다움의 기능을 제공한다.
한스 차츠카의 작품에는 폐허의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묘령의 미인이 환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이 있다.
들장미가 치부를 가리는 무화과 잎 역할을 하면서, 화가가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은 면을 장식한다.
음울한 폐허와 창백한 소녀 사이의 강렬한 명암대조가 작품에 감상적 요소가 된다.
그림은 보기에 따라서 폐허가 두드러지거나 소녀가 두드러진다.
장미와 머리카락이 서로 얽혀있고, 어스레한 벽은 잠든 소녀 및 무성한 장미와 결합되어 작품이 신비롭게 보인다.
종교적 이미지에 키치가 도입되면 신앙심이 감상으로 바뀌게 된다.
루르드 수녀원의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의 환상을 토대로 곱슬머리에 불그스레한 입술, 육감적 표정으로 그려진 <자비로운 그리스도>는 감동적 순간의 진지하고 깊은 감정을 진부하고 감상적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이 그림은 그 앞에 있는 교황의 사진과 함께 2003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즉위 25주년 기념식에서 발표되었다.
신, 성모 마리아, 예수 등을 플라스틱 이미지로 침대 탁자의 장식품으로 만들면 키치가 된다.
성물업자가 대량생산한 성화들에서는 깊은 종교적 감정이 진부하고 공허한 상투적인 표현으로 바뀐다.
키치는 복제를 통해 늘어난다.
광고 및 디자인에 나타나는 유명 미술작품이 그런 경우다.
라파엘로의 <시스틴의 마돈나>에 나오는 천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 대표적이다.
1994년 이탈리아의 리치오네에서 열린 ‘예술과 담배’ 전시회에 F. 스피넬리는 천사들이 흡연하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흡연은 정말 유행이 지났는가?” 하고 물었다.
<최후의 만찬>을 100% 순면으로 만들면 키치가 된다.
사람들은 트럼프카드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놀랄 것이다.
복제를 통한 키치의 생산은 앤디 워홀에 의해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워홀은 1963년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 전시회에 대응하여 이 유명한 작품을 서른 번이나 복제하면서 ‘기술복제시대의 미술작품’을 양산했다.
그가 실크스크린 인쇄방식을 사용했으므로 그의 키치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으로 각광받았다.
그의 복제화는 원화와의 관계에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미술작품의 자율성을 강조한 당시의 관습에 이의를 제기했다.
워홀은 “서른 개가 하나보다 낫다”라고 했지만, 보수적 비평가들은 “공허하고 초점을 잃은 그의 작품은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의식의 증거”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복제를 하게 되면 원화가 지닌 예술성이 사라지는가 하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게르노트 뵈메는 라스코 동굴화와 같이 보호를 위해 더 이상 전시될 수 없는 작품의 복제화에서 원화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음을 예로 들어 복제에서도 원화가 지닌 예술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복제를 통해 통속화된 지 이미 오래이므로 워홀이 서른 번 복제했다고 해서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복제가 용인되자 만화, 광고, 낭만을 특징으로 하는 키치아트가 등장했다.
팝아트가 통속적인 회화세계를 다루고 원화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하는 데서 더 나아간 것이 키치아트이다.
제프 쿤스는 워홀이 멈춘 데서 출발하여 원화를 남용하지 않고 자신을 주제로 삼았다.
그는 ‘천국에서 만든 Made in Heaven’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로나가 위에서>이다.
쿤스는 아내인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와 함께 자극적인 체위로 포즈를 취한 장면을 공개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예술에서의 엘리트주의를 철저히 배척한 쿤스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만을 제작한다.
<진부함의 도래>는 어린 천사가 목에 리본을 두른 분홍색 암퇘지를 예술로 끌어들이는 장면이다.
쿤스는 진부한 것, 즉 키치를 예술로 끌어들여 사람들로 하여금 “기이하지만 내 마음에 들어” 하는 반응을 유도한다.
나쁜 취향으로 여겨졌던 키치를 애용하는 것이 키치아트이다.
유머와 아이러니가 키치아트의 생명이다.
그만큼 대중이 키치를 사랑하고 애호하기 때문에 이런 예술이 생겨난 것이다.
나쁜 취향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좋은 취향이 있다는 말이 성립된다.
사람들이 키치를 진지한 미적 현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촌티패션, 찢어진 청바지, 배꼽티, 복고열풍을 통해서 값싼 재료로 모조한 옷들은 키치에 속한다.
음악에서의 웅얼거림, 무의미한 소리가 키치에 속한다.
사람들은 본래 금지되었던 것, 감동적인 것, 나쁜 취향을 즐길 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내재한 키치적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쁜 취향을 즐기던 사람이 떳떳해지고 그런 사람들이 일체감을 갖게 한 것이 키치아트의 성공이다.
키치는 경제상황이 나쁜 시기에 더 융성한다.
키치는 예술인 체 위장하기 때문에 키치를 키치로 식별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
도자기로 만든 섬세한 작은 인형 대부분이 키치이다.
키치는 예술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약간 아름답게 만들고 현실의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려고 한다.
키치는 산업적 대중문화의 일부이다.
거의 차이가 없는 모티프를 늘 되풀이해서 그린 그림이 키치이다.
그런 그림이 과거에 이발소에 주로 걸려 있었으므로 ‘이발소 그림’이란 말이 생겼는데, 키치를 말한다.
요즘 중국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대량으로 제작하는 원화의 서툰 복제화가 키치이다.
키치는 저렴하기 때문에 장식용으로 널리 애용된다.
상아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성모상, 석고로 만든 그리스도상, 주물로 만든 성물들이 키치이다.
성모상의 볼에 흐르는 눈물은 키치의 특징이다.
거기에 조개를 붙이고 반짝이는 값싼 플라스틱 꽃을 장식하면 최악의 키치가 된다.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에서 파는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 복제품은 키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미술품으로 귀히 여긴다.
키치이지만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