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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평점 :
오늘날 문제가 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또 기만하는데
는 그리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는것 같다. 재산, 피부, 학식, 심지어는 개인적 견애까지... 이
처럼 많은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음은 물론, 대상을 공격하여 굴
복시키는 것을 하나의 쾌락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흔히 '우정'이라고 불리우
는 것은 그러한 인간의 추악한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는 가장 최고의 가치관으로서, 인간을 '구
제불능'의 늪에서 구해주는 하나의 구명줄이 되어주고 있다. '친구' 과연 오늘날의 사람들
은 그 단어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과 감상을 지니고 있을까? 물론 그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오랜세월을 지나며, 변화하였음이 틀림이 없지만, (적어도) 1950년대 쓰여진 이 소설은 오늘날
의 많은 북미의 사람들에게 읽히며, "우정이란 바로 이것이다." 라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를 전
해준다.
책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은 당시의 소설을 넘어, 2004년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많은 사람
들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라 기록되어 있다. 세계2차대전을 치루는 미국에서, 일종의 기숙학
교를 다니는 주인공'진 포레스터' 와 그의 친구 '피니어스' 가 만들어가는 우정의 이야기... 이
이야기 속에서, 많은 독자들은 우정이 가져다 주는 인연의 연속 속에서, 결국 포레스터의 나약
함이 불러온 '불의의 사고' 와 '피니어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단순히 운동바보였던 피니어스를 한편으론 부러워하고, 또 부담스러워 했
던 주인공의 면면을 엿보며, 단순히 우정이란 것은 생각처럼 아름답고 순수 한 것만은 아니다.
느끼게 된다. 16살의 어린나이, 그러나 이 소설속의 아이들은 하루빨리 '사회에 보탬이 되어
야 한다' "언젠가는 전장에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며, 소년과 어른 사이의 경계를
방황한다. 물론 주인공인 포레스터도 그 방황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개인이며, 특히 "어른
들이 일으킨 전쟁에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다" 라는 일종의 분노의 마음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친구인 피니어스는 그러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는 낙천적인 아이로 등장한다. 피니
어스는 포레스터를 꼬셔서 여기저기 놀고, 재미보는 일에만 관심을 보인다. 뭐든지 어영부영,
그리고 정작 '비행' 들키면 교묘한 말솜씨로 그 위기를 넘기는 오련한 피니어스. 때문에 주
인공은 그 피니어스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진심으로 부러워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주인공을 내리 누르는 '의무'와 '미래'에 대한 불만은 결국 한순간 피니어스
를 증오하게 만든다. 떨어지는 성적, 문제아와 우정을 나눈다는 주위의 소문... 그렇게 주인
공은 한 단순간의 증오에 눈이멀어, 친구를 불구로 만드는 끔찍한 사고을 일으킨다. 결국 양
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를 고백하는 주인공, 그러나 친구 피니어스는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라 일축하며, 그의 고백을 일절 무시한다. 그리고 피니어스 자신이 숨을 거두는 그날까
지 '주인공의 고백'을 비밀로 한체, 주변 친구들의 의욕과 질책, 선입견에서 그를 구해주는 자
비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에 나는 이러한 피니어스의 자비를 보면서, 자신의 두 다리를 앗아간 포레스터를 용서한 그
의 관대함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포레스터는 피니어스에 있어서, 증오와 분노
의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사이는 '분명한 용서도 분명한 증오도 아닌
것, 즉 '증오' '용서' '기쁨' '외로움' '즐거움' 과 같은 인생속의 감정이 모조리 믹스
된 하나의 칵테일이 되어, 이 소설이 끝나기까지 그 사이에 대한 분명한 결말을 남기지 않는
다. 분명 소설로서 그러한 애매함은 적지않은 생각꺼리를 가져다 준다. 아니... 깔끔하고 분
명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답답해 미칠 지경이리라. 그러나 생각하여 보면, 오
늘날 우리가 이어가는 우정이란 바로 이 소설의 성격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