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티움 해전 - 로마 제국을 만든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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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적인 몰락과 최후, 그 반대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한 옥타비아누스와 이후 이집트를 속주로 삼은 로마가 걸어간 '제국의 길'에 대하여, 분명 많은 이들은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지식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을때, 결과적으로 오늘날까지 굳어진 여러 상식들이 오롯이 역사적 기록과 사실을 따져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크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오랜 고전으로 꼽히는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다양한 문학작품으로서도 다루어진 것과 같이 이후 오랜 역사 속에서 해당 역사는 다른 지식인과 창작자들에 의하여 회상되고 또 정의내려진 일면이 많다. 때문에 과거의 '나' 또한 악티움 해전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건을 패전이라 인식하고 더욱이 그 원인을 클레오파트라의 변덕이자 유약함으로 파생된 (전장의)공포에 굴복해 스스로 도주한 것에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역사는 때때로 거대한 제국의 통치자였던 여왕의 진면목을 발견하기 이전에 그가 맞이해야만 했던 비극적이고 감정적인 최후에 대한 이미지만을 드러낸다. 물론 이전 그녀가 역사에 커다란 두각을 드러낸 일화가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을 사이에 둔 암투와 자신의 지위와 여성적 매력을 등에 업고 실행한 (정치적) 열애에 관한 것에 한정되기에, 결과적으로 이것만으로는 그녀가 스스로의 통치자로서 자질을 증명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가 없다. (...) 그나마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된 이후 정립된 적대적 전승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 진짜 이야기가 역사책 속에 스며들지 못했다.

58쪽

각설하고 이 책의 주제가 된 악티움 해전의 결과와 그 이후에 발생된 여러 사건에 대한 의의에 대하여 보다 다른 견애를 가진다는 것은 크게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적어도 전쟁이 진행 되어감에 따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어째서 역사에서 비추어지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가? 에 대한 그 환경과 과정을 따져보게 되면 의외로 그 내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겁함과 유약함 보다는 냉점함과 정치적 결단 등이 우선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보기에 따라 거대한 두 세력의 격돌로 보여진 위의 해전의 배후에서, 정작 그 승패를 나누게 된 것은 전함의 수와 전술적 노련함이 아닌, 정치적으로 안토니우스를 궁지로 몰아넣은 옥타비아누스의 중상모략 함께 이집트 함대의 보급로와 동맹자들과의 연계를 차단한 소위 전략적 우위를 선점한 것에 있다. 때문에 저자는 악티움 해전의 본질을 결전이 아닌 '탈출'이라 주장한다. 이는 애초부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불리해진 전황을 이해하고 해전이라는 수단을 포기했으며, 이후 세력의 재정비를 통해 상대에 대한 굴복이 아닌 협상을 이끌어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함대를 안전한 곳으로 빼낸 공로로 상을 받아 마땅했다. 그렇지만 몇몇 고대 저술가들은 그녀에게 경멸의 언사를 퍼부었다. (...) 당연히 예상된 일이지만, 적의 프로파간다는 잘 수행된 안토니우스의 탈출 작전을 비겁한 탈주라고 헐뜯기 위해 온갖 중상비방을 내보였다. (...)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우위를 점한 로마는 결코 협상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카이사르의 정치적 후계자를 계승하기 위한 경쟁이자 전쟁이였기에, 이집트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적으로 성장한 상대를 철저히 제거해야만 그 옥타비아누스 스스로가 완전한 계승자의 지위를 누릴수 있을 터였다. 때문에 외적으로도 그는 카이사리온을 포함한 권력과 연관된 모든 이들을 살려두지 않음은 물론, 이후 역사에 기록될 '경쟁자'의 명예까지도 크게 훼손시켰다. '도망가는 여왕을 쫓아 전우들을 내버린 장군' '이집트에 안주해 로마의 정신을 저버린 변절자'... 그밖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일화속에서 결국 그들이 '패배할 수 밖에 없었을 이유'를 찾게 된다면? 이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그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을 모략과 역사적 사정에 대하여 한번쯤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의 실수는 악티움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직접 공격했어야 할때 악티움에 계속 머무른 것이고, 후방의 취약한 기지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체 계속 그곳에 머무른 것이다. (...) 리더십의 분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 옥타비우스와 아그리파는 마치 쌍둥이처럼 움직였다.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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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도시설계 매뉴얼 : 공공공간
Prague Institute of Planning and Development 지음, 강 / 서울연구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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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지만 심히 화려한 도시... 어쩌면 여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시의 조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번영'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도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파리와 런던 등의 유럽의 대도시들도 결국 대대적인 도시설계와 '재정비 사업'을 거쳤다. 때문에 당시 도시를 설계하며 '무엇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는가'는 단순히 해당 도시의 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이후 도시로서 기능하며 형성되어진 문화와 행정 또는 여러 사회문제를 낳았으며, 특히 도시민의 삶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다.

이때 공공공간이라는 개념 또한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의 포럼과 같은 공간을 통하여 당시 수 많은 도시민들이 (불특정한 관계속에서) 교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보다 화려한 시설과 권위를 가졌던 수 많은 신전이나 궁전 등의 중요성을 능가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간과 시설은 과거의 단순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떠나 보다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국가와 지방정부가 거대한 예산을 들여 상수도를 정비하고 도로를 확장하는 등 이른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공공사업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위의 가치에 순위를 따지게 된다면, (의외로) 공적공간의 확장과 설계는 이제껏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공공공간의 존재만으로는 발전과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특정한 배제 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 이 없는 도시의 존재 또한 생각해보면 매우 사람 살기가 각박할 것이 분명하다.

(...) 고품질의 공공공간을 만들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이 일에는 갈등이 있는 것이 일상이다. 상반되는 이해집단을 화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122쪽

생각해보자. 어느 공간을 활용해야 할때 그 땅에 이해관계가 엮인 사람들은 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적어도 자연 공원보다는 유료 주차장을 만드는 것이 보다 그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때때로 자연적인 공원과 힐링을 위한 (무료로) 개방되어진 공간 등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넓은 가로수길과 자전거도로의 존재, 특히 여러 편의시설과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사회 기반 시설과 공공공간의 융합은 흔히 도시속에서도 높은 '삶의 질'을 누릴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하루를 마치고 '건강을 위해서 산책(또는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 깨끗하고 넓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범죄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공간, 이는 도시민 모두가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을 필요로하며, 이에 책은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보다 다양한 학문적 정립과 실제 도시설계에 적용되어 활용된 경우를 드러내며 보다 더욱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공공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전에 읽었던 다른 서적을 통하여 '교도소 설계'의 예를 들어 '인간 심리학적 개념과 건축기술의 융합이 얼마나 인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물론 도시는 교도소와는 달리 보다 크고 열린 공간이지만, 적어도 도시가 인간의 삶을 지지하는 보금자리의 역활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에 따라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도시의 설계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다시끔 생각해 보게 만든다.

공공공간은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공간으로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며,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하는 일차적 공간이다. (...) 전체적으로 가로연결성과 생활성이 좋고 쾌적하며 아름답기에 우리는 그러한 공공공간을 좋아하고, 나아가 그 도시를 좋아한다.

공공공간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므로 공적 행위인 도시계획을 통래 적극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 사익만을 추구하는 권력자, 사업가, 건축가에게 휘둘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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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하나가 되는 길 - 알베르투스가 알려주는 완전한 인간의 삶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지음, 안소근 옮김 / 오엘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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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종교 등을 마음으로부터 의지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이처럼 여느 종교의 의의와 개념을 무엇 때문에 접하고 이해하려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소위 역사 속에서 이어진 종교의 정체 또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내면적이고 심미적인 가치관의 보고로서 그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나름의 '경전'을 탐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적어도 이 책은 엄밀하게 '경전'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1200년대 중반의 신학자가 기록한 이 책을 통하여, 분명 당시의 종교관 뿐 만이 아니라, 그 해당 종교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 등을 살피게 된다면 적어도 해당 기독교의 원류를 이루는 핵심적인 가치에서 드러난 '사랑'에 대한 보다 남다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감상을 받는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것,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오직 사랑 안에서 가장 높고 가장 유익하게 완성된다. (...) 우리가 갈망하는 지고의 대상도 사랑 안에 현존한다.

81쪽

이에 책의 내용에 따르자면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위해서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하는 것은 크게 탄식과 참회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더 나은 삶에 대한 고뇌' 또는 사회와 인식의 지적 변화 등을 주장하는 여느 철학적 가치와 비교하여 매우 극단적인 믿음만을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나름의 교리가 이어져 내려온 까닭을 생각해보게 된다면 적어도 현대에서도 지나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인간과 그 끝없는 경쟁에 지친 자들에게 해당 종교가 심적인 압박감을 해소하는 '자유를 약속한 것' 이 보다 큰 장점을 발휘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비참함을 확실히 알수록 사람은 하느님의 위엄을 더 온전하고 분명히 보게 된다.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위해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길수록,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그는 더 귀하다.

99쪽

실제로 이 종교적 가치는 오늘날의 많은 이들의 내적 상처를 보듬는 역활을 한다. 그리고 덩달아 위의 주장에서 유래한 종교적 믿음과 가르침 또한 오랜 역사적 흐름을 거쳐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왔다. 이에 나는 스스로가 그다지 크게 공감하지는 못해도 이러한 내용 등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종교적 가치관를 정립하고 또 이해했다는 것에서 크게 만족한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보다 다양한 종교적 가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먼저 이 대한민국의 사회와 출판자료를 구하기 쉬운 면이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이 기독교의 기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가르침에서 매우 두르러진 특징 한 가지는, 먼저 영혼의 기능들의 완전성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 행위의 완전성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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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세계사 -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인류의 치열한 도전과 경쟁
브라이언 블랙 지음, 노태복 옮김 / 씨마스21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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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것' 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에 어쩌면 '불의 발견'이야말로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활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들 들어 불이라는 단순한 열에너지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인류는 결국 나무(땔감)를 소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보다 다양한 소재를 소비하는 체제를 구축해왔다. 그야말로 인류는 도기를 굽고, 금속을 재련하면서 거대한 문명사회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러한 문명이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 또는 '국가의 단점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또다른 에너지원을 활용하려 했고, 이에 바람의 힘을 이용한 선박 등이 훗날 또다른 시대의 전환점인 대항해시대를 주름잡는 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이전 인류가 에너지를 활용하고자 한 것은 소위 발전이라는 점에서 크게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초기 산업 활동은 여전히 생물학적 구체제에 해당하는 작은 규모의 노력들을 통해 발전했다. 기술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위대한 전환'이라고 칭하는 것은 꼭 1700년대 중반의 산업혁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는 지적인 사고는 물론이고 에너지 자원의 가용성 면에서도 '위대한 전환' 이 필요했다. (...)

119쪽

그러나 필연적으로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 더욱이 자연적 에너지가 아닌 화석연료 등을 활용한 새로운 에너지의 활용을 위해서 소비되어지는 막대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각국의 선진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한 국가들이 행한 것은 소위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실현시키는 것이였다. 물론 이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정치 문화적 갈등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기에서 내연기관으로 발전한 '혁신적인 기계문명'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대체불가능한 절대적인 지위를 오롯이 누리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느 많은 국가의 산업과 일상생활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 여전히 소비되어야 하는 자원 또한 그 어느때보다 크게 늘었다. 물론 현대의 기술을 통해서 효율은 극적으로 변화하였음에도 여전히 많는 나라들이 석유와 가스 등과 같은 막대한 지하자원에 의지한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러한 자원에 의지하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갈 필요성이 끝임없이 주문되고 있다. 그야말로 인류는 이제 '환경오염' '부족한 자원' '새로운 혁신의 필요성' 을 이유로 다른 형태의 에너지원을 확보하려 한다.

한 세기 동안 고에너지 소비를 일삼은 많은 국가들은 두각을 드러내며 번영했다. (...)과시적인 원유 소비는 결국 유한한 공급량으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356쪽

실제로 오늘날 세계 이곳 저곳에서 보여지는 '에너지의 무기화' 가 이전의 국제적 관계 등의 균형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가를 보라. 이는 크게 세계의 식량이 줄어드는 것, 또는 자원이 부족해지는 것에 더해 더욱 심각한 미래를 불러올 수 있다. 이제 각각의 국가들은 기술 경제적 발전만을 위해서 에너지를 확보하려하지 않는다. 이에 때때로 그러한 필사적인 모습은 이전의 번영을 가져온 익숙한 에너지원에 대한 맹신이 아닌, 그 에너지가 불러올 머지않은 '종말'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좀더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앞으로 맞이해야할 혁신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혁신이 되어주어야 한다. 물론 이는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고, 더욱이 에너지의 독점이 이루어지지 않는 '국제정세의 있어 무기화 될 가능성이 적은' 방식이 되어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과연 미래에 인류는 그러한 형태의 새로운 에너지를 활용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이에 함부로 미래를 가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약 위와 같은 에너지로의 변환이 불가능하다면 어쩌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문명사회를 스스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에너지 획득과 생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과정은 가진 자들의 국가와 갖지못한 자들의 국가 사이를 아주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이 사실은 선진국에게도 의미있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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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로 조선을 꿈꾸다 - 정조의 리더십과 무예도보통지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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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에서, 물론 어느 하나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역시 국방의 중요성만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를 토대로 과거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안타깝게도 수많은 전란의 사실들이 드러나듯이 과연 당시의 국가가 스스로의 영토와 백성을 지켜야하는 역활을 충실히 수행하였는가에 대한 당연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책의 주제인 무예를 더해 이를 토대로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한 임금 '정조'가 지니는 의미를 들여다 볼때, 과연 정조는 어떠한 이유로 무예 체계를 계승하고 또 표준화하려 하였는가에 대한 (책의) 내용 등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으면서 '적'을 상정한 군제개혁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달리, 정조의개혁 이면에는 국방과 더불어 왕권(정치적 입지)의 강화라는 (그에게 있어 절실했을) 목적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조선군은 또다시 기병 전술을 보완해야 했다. (...) 누구나 쉽게 무예를 익힐 수 있는 무예도보통지를 펴냈다. (...) 정조가 '이 책을 한 번만 폈다 하면 무예의 신묘한 작동법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정도' 라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였다.

121쪽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는 선언과 함께 권좌에 오른 임금이 맞닥뜨려야 했을 현실... 또는 과거의 잔재(또는 위협) 를 벗어던질 새로운 이상향의 나라를 재정비하기 위해서 행하였을 개혁의 이면에 당연히 국방의 모습 또한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더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저자는 스스로 무예도보통지를 비롯한 조선의 병서를 통해 현대에 조선의 무예를 실현하는 사람으로서, 그 무예 내면에 녹아있는 조선의 개혁을 드러냈다. 어느 누구나 무예를 익힐 수 있다. 그리고 '타국의 것' '과거의 것'을 보다 조선의 문화적 정서에 걸맞는 최신의 무예로 다시 변화시켰다. 더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 조선의 무예를 재현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라는 사실을 통해서 (비록 미완이라 정의된다 하여도) 정조가 실현시킨 과업 등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독특한 특성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권법을 보급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무예 전파 방식이자 정착 과정이였다. (...)그래서 무예를 '문화'의 일부로 살펴야 한다. (...)

228쪽

국가가 백성들에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한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정조가 품은 이상 가운데 다장 핵심적인 가치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여러 제도를 정비하며 국가의 재정과 행정등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의 변화가 가져온 변화와 그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수원화성'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도 정조의 시대를 살펴보는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주제인 무예와 그 속에 담긴 '정신'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결국 그것이 대부분 정조의 이상에 반영되어진 결과라 하더라도, 이에 단순히 정조 스스로의 (왕권 강화) 필요 만이 아닌, 그 필요 속에서 발현된 제도 (개혁) 등을 통해서라도 조선 백성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 일으킨 사실 등을 살피고 또는 그 변화의 장점등을 이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정조는 겉으로는 밝고 환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만백성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사심이 작용해 궁극적인 가치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비록 사심으로 시작한 일이더라도 진정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사람들에게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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